[현장스케치] 예술위-인천공항, 《남극/북극 출발 → 인천공항 도착》展…“극지와 맞닿은 인천공항”
[현장스케치] 예술위-인천공항, 《남극/북극 출발 → 인천공항 도착》展…“극지와 맞닿은 인천공항”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7.2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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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위ㆍ극지연구소ㆍ인천공항공사 공동 개최
인천공항 제2터미널 11.30까지, 키아프ㆍ추석연휴 기간 포함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평범한 사람이라면 쉽게 가볼 수 없는 곳, 극지. 그곳을 다녀온 예술가들은 어떻게 극지를 표현했을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원회, 위원장 정병국)는 극지연구소(소장 강성호), 인천국제공항공사(사장 이학재)와 함께 오는 11월 30일까지 약 4개월 간 극지를 주제로 한 전시 《남극/북극 출발 → 인천공항 도착》을 개최한다. 전시는 인천공항 제2터미널 출국장내 전시장(253번 게이트 인근)에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조광희(2011년 남극세종과학기지 레지던스) <아름다운 소멸>, 2012, 싱긍채널 비디오, 5분 반복 영상 (사진=예술위 제공)

이번 전시는 예술위원회가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협력해 개최하는 첫 전시다. 예술위원회와 극지연구소가 운영하는 극지 레지던스에 참가한 김승영, 조광희, 손광주, 김세진, 염지혜, 이정화, 홍기원 작가의 설치 및 미디어 작품 7점을 선보인다.

앞서 극지레지던스 13주년을 기념해 공근혜갤러리에서 극지 레지던스 성과보고전 《0.1cm: 극지로 떠난 예술가들》이 개최된 바 있다. 이 전시에선 그간 극지 레지던스에 참여한 15명(팀) 예술가의 작품을 모두 선보였다. 아동문학, 소설, 웹툰, 사진, 설치,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공개됐다.

《남극/북극 출발 → 인천공항 도착》은 앞서 개최된 《0.1cm: 극지로 떠난 예술가들》의 후속 전시와도 같다. 전시 환경에 좀 더 알맞은 영상 작업, 설치 작업만을 선별해 다시 한 번 깊이 있게 선보인다.

▲염지혜(2018년 남극세종과학기지 레지던스), <검은 태양>, 2019, 싱글채널 비디오, 13분 31초 (사진=예술위 제공)

7명의 작가가 만난, 7개의 극지

《남극/북극 출발 → 인천공항 도착》 전시에선 총 6개의 영상 작품과 1개의 설치 작품이 공개된다. 7명의 작가는 남극 혹은 북극으로 떠나 그곳을 관찰하고 작품으로 표현했다. 남극으로 떠난 예술가들을 세종기지서 30일 간 머물고, 북극으로 떠난 예술가들은 쇄빙연구소 아라온호에서 머물게 된다.

이번 전시에는 극지연구소로 처음 떠났던 김승영, 조광희 작가도 참여했다. 또한 가장 최근인 2022년에 극지로 떠났던 홍기원 작가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이 세 작가는 지난 26일 여린 언론간담회에도 참석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나눴다. 각 작가는 떠난 시기는 달라도 항상 극지를 보고 돌아왔다. 분명 그들이 본 땅은 같은 곳일텐데, 전시 속의 극지는 모두 다른 언어와 감각을 품고 있다.

국가 간의 경계와 세계 정치가 작동되지 않는 극지에서 그 이면의 보이지 않는 싸움을 알아챈 작가도 있었고, 극지의 환경, 생명, 그 곳에 머무는 사람들 다양한 지점으로 작가들의 시선은 뻗어나간다. 환경이나 기후에 대한 이야기를 함에 있어서도, 그 방법과 시각들이 모두 다르다.

작가들은 남극과 북극에서 지내며 수집한 영상을 활용해 남극이 가진 허구성과 실재성의 간극을 묘사하고(김세진), 남극에 얽혀있는 다양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드러내며(염지혜), 사라짐의 위기에 처한 북극해의 현재를 가시화하거나(손광주), 태초의 자연이 간직한 신화적 공간과 이를 갈망하는 국가들의 열망으로 형상화하는(이정화) 상상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극지에서의 경험을 통해 거대한 자연에 대한 숭고함을 전하거나(김승영), 서서히 녹는 남극의 얼음과 얼음 속 기포가 터지는 미세한 소리를 담아내고(조광희), 극지 환경을 마주한 탐사대원과 그들의 인터뷰를 담은 영상작업(홍기원)을 선보이기도 한다.

▲작품 <아름다운 소멸>에 대해 설명하는 조광희 작가 ⓒ서울문화투데이

남극 세종과학기로 제일 처음 떠났던 김승영 작가와 조광희 작가의 작품에선 극지가 가진 어마어마한 자연의 크기, 숭고함을 느껴볼 수 있다. 조 작가의 <아름다운 소멸>이라는 작품은 여름을 맞아 기온상승으로 빙산이 유빙이 되어 사람크기만한 얼음들이 집단으로 녹고 있는 풍경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영상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해보면 더욱 깊이감을 느낄 수 있다. 빙하가 녹아서 물이 떨어지면서 만드는 소리와 동시에 기포가 터지는 소리도 들을 수 있고, 새들의 소리도 함께 들을 수 있다.

조 작가는 “남극의 빙하는 눈이 계속 압착되서 빙하가 되기 때문에 그 안에 기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빙하가 녹을 때 기포가 톡톡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라며 “남극에는 인간의 크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빙하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대부분 몇 천 년의 시간동안 압착되고 얼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빙하가 하루 만에 녹아내리곤 한다. 그 유빙들이 떠내려 온 순간들을 촬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름다운 소멸>은 2012년 작품으로 영상 속 담긴 빙하는 2011년의 빙하들이다. 그리고 그 빙하들은 몇 천 년의 시간을 품고 있다. 2023년 관람객들은 영상 속 빙하를 통해 시간을 뛰어 넘어, 남극의 과거와 지금 그리고 그 후를 상상해볼 수 있다.

조 작가는 “남극에 도착하고 나서, 느낀 그 감각을 어떤 언어로 표현해야하는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아름다운 소멸’이라는 것은 단순히 빙하가 녹고 있다는 그런 기후 위기적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빙하가 녹고 있는 저 현상을 온전하게 담고, 느껴보고자 했다”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지난해에 북극으로 떠나 극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한 홍기원 작가의 <마음에 담아라>라는 작업은 아라온호에 타고 있는 과학자들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과학자의 끊임없는 도전, 자유로운 실험정신을 의미하는 영문제목 Wolf Trap을 갖고 있고, 영상은 예술과 과학의 접점을 모색하는 자신의 방향을 표현한다.

<마음에 담아라>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연구자들은 자신들이 연구하고 있는 내용과 현장에서 가지고 있는 마음 등을 진솔하게 풀어낸다. 작가는 과학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과학과 예술이 가지고 있는 울림과 교차점에 주목한다.

▲작품 <마음에 담아라> 앞에서 사진 촬영에 응하는 홍기원 작가 ⓒ서울문화투데이

홍 작가는 극지에서 만난 이들이 하는 말이 마치 우리 삶의 나침판이 되고, 삶의 희망이 될 수 있는 언어와도 같다고 느꼈다. 홍 작가는 “그곳에 있으면서, 박사님에게 우리는 한국이라는 조그마한 땅에 살고 있는데 왜 이 먼 극지까지 와서 이런 연구를 하고 있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는데, 박사님은 ‘사실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다’라면서 한국의 변화가 극지로 오고 있고, 극지의 변화가 언제가는 우리의 일상으로 닿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왠지 알 수 없는 삶에 대한 긍정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라며 “극지에서 연구를 하는 것은 대게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고, 14년 20년의 축적을 통해 결과가 나오고, 그것이 미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것들이다. 그런 모습들이 내게 굉장한 영감을 줬다”라고 말했다.

작가는 예술가와 과학자의 공통점으로 새로운 것을 찾고, 불확실성을 찾아나가는 것을 말했다. 예술과 과학이 맞닿아 현 인류를 어디로 이끌어가고 있는지, 그 긍정과 희망을 느껴볼 수 있는 작품이다.

▲김승영(2011년 남극세종과학기지 레지던스), <Flag>, 2015, 소금, 깃발, 모터, LED, 가변크기 (사진=예술위 제공)

특정 시간ㆍ공간이 느껴지지 않는 듯한 ‘인천공항’서 만나는 전시

예술위원회와 극지연구소는 2011년부터 매년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남극과 북극에 파견하는 극지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진행해오고 있다. 이를 통해 과학계와 예술계의 소통을 활성화하고 예술가에게 새로운 창작의 영감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매년 1회 공모를 통해 참여 예술가를 선정한다.

이번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극지연구소, 인천국제공항공사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전시다. ‘공항’이라는 특별한 공간에 ‘극지’의 이야기가 담기면서 특별한 분위기를 만든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효정 독립큐레이터는 ‘공항’과 ‘극지’가 많은 부분 닮아있다는 점을 발견해, 그 점을 주목했다. ‘공항’과 ‘극지’는 특정한 국적이 없는 공간이라는 점, 24시간 운영돼 특정한 시간이 느껴지지 않는 공간이라는 점, 영구히 체류하지 못하고 잠시 머물다 가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

김 큐레이터는 “순수하게 과학적 목적으로만 이용되는 남극과 북극, 출국 혹은 경유를 위해 오는 공항의 출국장은 특정한 국적이 없는 공간,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라며 “극지에 예술가들이 체류하는 기간은 길어야 두 달 남짓, 남극/북극 과학기지의 월동대원들의 연구 기간은 1년, 출국장에 여객이 머무는 시간은 길어야 하루 이틀 정도다”라며 두 공간의 유사성을 설명한다.

마치 어딘가에 종속되거나 얽매이지 않은 듯 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번 전시는 공항을 이용하는 국내외 여행객들에게 시공간을 초월해 서로 다른 두 공간이 연결되는 색다른 경험과 그 이면의 다채로운 면모를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한, 키아프ㆍ프리즈 기간 및 여행 성수기(추석연휴) 기간까지 아울러 전시를 진행하는 만큼 한국미술을 알리는 자리로서의 역할도 할 것으로 보인다.

▲손광주(2019년 아라온호 승선 레지던스), <파이돈>, 2021, 3채널 비디오 설치, HD, 컬러, 사운드, 33분 15초 ⓒ서울문화투데이

전문 전시 공간이 아닌, 공항에서 이뤄지는 전시인 만큼 좀 더 관람객들에게 즉각적이고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전시공간이 조성된 것도 특징이다. 《남극/북극 출발 → 인천공항 도착》이라는 직감적이고 명시적인 제목을 통해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극지의 생생함을 전하고자 했고, 남극과 북극에서 출발한 작품들이 인천국제공항에 상륙한 장면을 공간 디자인으로 풀어내 관람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자 한 것도 돋보인다.

이번 전시를 준비한 인천국제공항공사 김지숙 문화예술공항팀 과장은 “어느 공항이 더 큰가, 더 최첨단인가 하는 인프라 경쟁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무엇으로 인천공항을 더욱 알릴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한국이 가지고 있는 콘텐츠 힘을 떠올렸다”라며 “공항에서 전시를 본다는 것이 낯설 수 있지만, 이제는 공항에서 점점 더 많은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이번 전시도 그런 도약의 시작이라고 봐주길 바란다”라며 전시의 의미를 설명했다.

높은 층고와 북적북적하고 바쁜 공간 속, 미술 작품의 전시는 낯설 수 있다. 하지만, 기획자의 말처럼 ‘공항’이라는 공간이기에 시도해볼 수 있는 감각이 존재한다. 이번 전시 《남극/북극 출발 → 인천공항 도착》은 공항과 극지만이 가진 독특한 지점들을 잘 융화시켜 새로운 감각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