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프리뷰]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SeMA 앤솔러지: 열 개의 주문》, “동시대 미술의 본령 ‘상상’을 부르다”
[현장프리뷰]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SeMA 앤솔러지: 열 개의 주문》, “동시대 미술의 본령 ‘상상’을 부르다”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8.02 1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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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전, 8.3~10.25
관람객의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장르 선봬
아카이빙 전시를 넘어, 다음 10년의 미술관 준비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지역 공동체와 상생하는 미술관’이라는 지향점을 가지고 개관했던 서울시립미술관(관장 최은주) 북서울미술관이 개관 10주년을 맞이했다. 이를 기념하는 전시 《SeMA 앤솔러지: 열 개의 주문 (Anthología: Ten Enchanting Spells)》이 오는 3일부터 10월 25일까지 개최된다.

▲박성준 <Cinema Experience (#Tribunalism)>, 2023, 설치, 컴퓨터, UV 라이트, 스마트 조명, 스피커, 무선 헤드셋, 프로젝터, 가죽 소파, 가죽 카펫, 가변크기, 약 9분, 작가 소장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개관 10주년을 맞이해 공개된 북서울미술관의 전시는 단순히 지난 10년을 아카이빙 하고 돌아보는 전시에서 나아가, 앞으로 다가올 10년에 대한 상상을 제안하는 방향을 선보인다. 미술관의 운영 방향 속에서 예술의 역할과 공동체의 의미를 탐구하고, 다가오는 시간을 능동적으로 맞이하고자 예술적 장치로서 ‘상상’을 불러오고, 전시 구성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2일 언론공개회에서 인사말을 전하는 최은주서울시립미술관장 ⓒ서울문화투데이

2일 북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SeMA 앤솔러지: 열 개의 주문》 전시 개막에 앞서 언론공개회를 열었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 백기영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 송가현 학예연구사, 권혜원 작가, 전병구 작가가 자리에 참석했다.

최 관장은 “북서울시립미술관의 중요한 행사를 치루게 됐다”라며 “북서울미술관이 어떤 10년 겪어왔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이제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를 전시의 방법으로 택했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서울시립미술관은 서소문 본관부터 SeMA벙커, 창고 등 살림살이가 정말 많은데, 내가 가장 걱정하지 않는 살림살이로 ‘북서울미술관’을 꼽을 수 있다”라며 북서울 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조직력에 대한 신뢰감을 표했다.

《SeMA 앤솔러지: 열 개의 주문》은 지나온 시간을 토대로 다가오는 시간을 상상하는 여러 겹의 목소리를 모은 한 권의 작품집과 같은 구성을 띤다. 아홉 명의 미술 작가(구기정, 권혜원, 기슬기, 김상진, 노은주, 박경률, 박성준, 박이소, 전병구)와 한 명의 시인(최재원)이 참여했으며, 회화, 드로잉, 조각, 사진, 영상, 사운드, 텍스트, 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구성된 작품을 선보인다.

작고 작가인 박이소 작가의 <당신의 밝은 미래>를 제외하고 모두 다 신작이 출품된 것도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 특별히 ‘미술관’과 관련된 작품을 커미션하지 않았지만, 기슬기와 권혜원 작가는 ‘북서울미술관’으로부터 시작된 작품을 선보인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선보인다.

전시는 북서울미술관 1층과 2층으로 연결된 1, 2전시실에서 개최된다. 전시장은 특별한 구획없이 넓게 트인 공간으로 조성됐다. 관람객과 작품 간의 경계가 선명하지 않고, 관람객이 작품 사이를 오고 가는 방식으로 전시를 즐겨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송 학예연구사는 “북서울미술관 특성상 가족 단위 관람객, 어린이 관람객이 많은데, 이번 전시에선 관람객과 작품과의 경계가 없는 형식의 작품이 많이 출품됐다”라며 “박경률 작가의 <만남의 광장>은 전시 공간 바닥에 오브제가 놓여있는 형식의 작품으로, 관람객이 오브제를 만지는 등 관리가 어려울 것이 예상되지만, 미술관과 관객과의 소통도 이번 전시의 중요한 주제로, 창작 실험의 의미를 담기도 했다”라고 전시가 지향하고 있는 또 하나의 방향도 언급했다.

▲구기정 <초과된 풍경>, 2021/2023, 2채널 비디오, 시트지, 가변크기, (좌)4분 26초, (우)2분 28초, 작가 소장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10명의 작가가 만든 상상의 세계

《SeMA 앤솔러지: 열 개의 주문》은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적극적인 창조 행위로서 ‘상상’에 주목하고 열 명의 작가를 초대해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새로운 풍경을 상상해본다.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10명의 작가가 선보이는 10개의 작품은 모두 다 다른 ‘상상의 세계’를 미술관 안으로 가지고 온다. 10명의 작가 작품 사이에 선명한 연결성은 존재하지 않지만, 이 10개의 작품이 말하고 있는 하나의 주제는 ‘상상’이다.

이번 전시는 소통, 공유, 창조하는 인간 행위의 중심에서 상상의 메커니즘을 발견하고, 상상의 구조를 결정짓는 언어의 형식을 ‘상상의 문법’이라고 정의한다. 《SeMA 앤솔러지: 열 개의 주문》에 초대된 개별 작품들은 ‘조건의 재설정’, ‘기호로서의 질문’, ‘수사학적 전략’과 같은 언어적 구조들을 시각적으로 함축하는 가운데 과거-현재-미래를 오가는 독특한 시간적 감각을 구현한다.

‘조건의 재설정’은 상상하는 예술 언어의 형식을 통해 현실 속 주어진 조건을 재설정해 대상의 의미를 변경, 전복하는 것을 뜻하고, ‘기호로서의 질문’은 평범한 일상의 사물이나 현상을 독해하는 새로운 프레임을 창안해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사학적 전략’은 작품을 감싸는 수사학적 특징을 통해 재현의 논리가 품고 있는 의식과 무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권혜원 <초록색 자기로 된 건축물>, 2023, 2채널 비디오, 컬러, 스테레오 사운드, 미러볼, 8분, 《SeMA 앤솔러지: 열 개의 주문》커미션, 작가 소장 ⓒ서울문화투데이

권혜원 작가의 <초록색 자기로 된 건축물>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여섯 명의 직원을 인터뷰하고, 전시장소가 아닌 북서울미술관의 숨겨진 공간들을 촬영한 SF 단편영화다. 작품의 내용은 ‘미래의 시공간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라는 설정에 따라 미술관 곳곳을 누비는 인물의 시점을 통해 타자의 눈으로 바라본 미술관, 과거와 미래로 분열되는 아카이브로서의 미술관을 담았다.

권 작가는 “작업을 시작할 당시 나는 오래된 SF소설들을 읽고 있었는데, 그 소설들에는 모두 박물관과 미술관이 폐허로 등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미술관을 가지고 미래를 상상하는 방법을 탐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서울미술관 개관 10주년을 맞이해 열린 전시인데, 이 미술관에는 10년 넘게 일하신 직원들이 있다. 지금 같은 고용시장에서 10년간의 근속은 드문 일이고, 10년동안 미술관을 직장으로 바라봐 온 그들의 시선은 드문 것이라고 느꼈다. 미술관으로 미래를 상상하면서 다른 시각, 다른 시점으로 미술관을 상상해보고자 했다. 일반 관람객이라면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을 찾아보고, 북서울미술관에만 있는 ‘풍동실’이라는 공간도 작품 속 주요 공간으로 촬영했다”라고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전병구 작가는 이번 전시의 여러 개의 회화 작품을 선보인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제작한 <베를린, 캔디, 히잡을 쓴 여자> 등이다. 일상의 장면들을 수집해 캔버스에 옮긴 사물과 풍경 외에도 의미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읽어내기 힘든 기이한 오브제들이 다 함께 전시된다. 일상적이면서, 비일상적인 화면들은 공간이 통째로 대상의 일부가 된 듯한 독특한 정취를 드러낸다.

전 작가는 “내게 회화는 하나의 창과 같다. 낮에는 이 창이 창밖의 풍경과 사물들을 보여주지만, 밤이 되면 암흑의 공간 속에서 창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보여준다”라며 “나는 일상 속 풍경에서 영감을 얻고, 그 순간에 일어나는 감정 개인의 내밀함을 작품 속에 담는다. 이 회화들이 내 감정을 담는 동시에 작품을 보는 이들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창이 되길 바란다”라며 작품을 설명했다.

▲전병구 <베를린, 캔디, 히잡을 쓴 여자>, 2021-2023, 《SeMA 앤솔러지: 열 개의 주문》커미션 외, 작가 소장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이외에도 김상진 작가의 <That body of yours is absurd>는 인터넷 밈을 사용해서 우리의 언어 체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를 드러낸다. 이는 언어와 기호 체계에 의거해 작동하는 우리 세계를 은유하면서, ‘상상’이라는 것이 막연하게 긍정의 것 희망의 것이 아니라는 시선도 제안한다. <That body of yours is absurd>는 전면에 설치된 오브제에 적힌 문장이 뒤의 벽면 그림자에는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작품의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송 학예사는 박이소 작가의 <당신의 밝은 미래>가 이번 전시의 상징적인 작품으로 꼽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전시에서 아카이브가 아닌 도래하는 시간을 언급하고 있고, 박 작가 2002년 작품 <당신의 밝은 미래>는 전시의 시간을 더욱 확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2002년 박 작가의 작품이 지금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지 함께 고민해보고자 했다”라고 말했다.

▲취재진들이 박경률 작가 <만남의 광장>을 통과하고 있다 ⓒ서울문화투데이

지역 공동체와 ‘미술관’만이 할 수 있는 시도

‘상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SeMA 앤솔러지: 열 개의 주문》은 주제를 잘 담고 있는 작품들로 구성됐다. 그런데, 굳이 이 전시를 북서울미술관의 개관 10주년 기념 전시로 선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언론공개회에서 백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은 북서울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으로 ‘미술관의 지역적 역할’과 ‘공동체와 화합하는 미술관’을 언급했다.

백 부장은 북서울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는 서울 강북권 지역의 특징으로 어린이ㆍ청소년을 꼽았다. 미술관 주위에는 대단지 규모의 아파트들이 자리하고 있고, 어린이 관람객과 가족 단위 관람객이 미술관을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백 부장은 “북서울미술관은 개관 당시부터 어린이 갤러리가 있었고, 단순히 어린이를 위한 전시가 아닌, 동시대 미술 속 중견 작가 이상의 하이퀼리티 전시를 어린이의 시각으로 풀어내려는 시도를 많이 했다”라며 지역 공동체와 미술관의 화합 과정을 말했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북서울미술관의 10년은 무엇을 향해오고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상상’이었다. 최 관장은 ‘미술관’이 지역공동체와 화합하고 함께 걸어가고 시도한 지난 과정이 결국 우리의 상상력을 향해 가고 있었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2일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백기영 = 

북서울미술관은 지난 10년간의 과정을 ‘상상’으로 정리하고, 앞으로의 미술관이 공동체와 함께 걸어갈 방향으로 ‘상상’을 제안한다. 동시대 지역사회에서 미술관의 역할은 동시대 미술의 본령인 ‘상상력’을 키워드로, 함께 상상할 공간을 제안하는 것이 아닐까 물어보고 있다.

현재 북서울미술관에서는 어린이들이 현대미술을 접해볼 수 있는 멜라니 보나요 작가의 《터치 미 텔》과 상설전시인 《서도호와 아이들: 아트랜드》가 열리고 있다. 그리고 귀여운 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풍자를 담고 있는 《쉿!》을 선보이고 있다.

백 운영부장은 “《터치 미 텔》은 어린이들의 촉감을 자극하는 전시라면, 《쉿!》은 청소년 관람객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현대미술을 선보이고 있다”라며 “《SeMA 앤솔러지: 열 개의 주문》은 모든 세대가 함께 상상을 해볼 수 있는 전시”라고 말했다.

▲박이소 <당신의 밝은 미래>, 2002, 전기램프, 나무, 전선, 가변크기,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서울문화투데이

북서울미술관은 어린이로부터 시작해, 동시대 모든 세대가 함께 동시대미술을 좀 더 가깝게 접할 수 있는 전시를 제안하고 있다. 미술관은 ‘동시대 현대미술’이 대중과 전혀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함께 즐기고 상상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을 판타지 소설에서나 쓸 법한 ‘주문’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재미있게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우리는 모두 ‘상상’할 수 있으며 그 ‘상상’의 영역은 단순하지 않고, 막연히 긍정적이지도 않으며, 우리 모두 개별의 것이라고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