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학고재, 이우성ㆍ지근욱 개인전 개최 “지금 한국의 젊은 작가”
[전시리뷰] 학고재, 이우성ㆍ지근욱 개인전 개최 “지금 한국의 젊은 작가”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8.22 18: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고재 본관ㆍ신관, 오는 9월 13일까지
지금 한국에서 보여줄 수 있는 젊은 작가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전세계의 컬렉터들이 한국으로 들어오게 될 9월, 학고재는 이우성과 지근욱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지금 역동하고 있는 한국 미술계의 젊음과 방향성을 선보이겠다는 힘이 느껴지는 전시다. 학고재는 본관과 신관을 이용해 각각 이우성, 지근욱 작가의 개인전을 선보인다. 이우성 작가는 본관에서 34점의 회화를 공개하고, 지근욱 작가는 신관에서 40점의 작가를 선보인다.

▲이우성, 해질녘 노을빛과 친구들 The Sunset and Friends, 2023, 자투리로 만든 천에 아크릴릭 과슈 Acrylic gouache on a quilted cloth, 260x600cm (사진=학고재 제공)
▲이우성, 해질녘 노을빛과 친구들 The Sunset and Friends, 2023, 자투리로 만든 천에 아크릴릭 과슈 Acrylic gouache on a quilted cloth, 260x600cm (사진=학고재 제공)

지난 9일에는 전시 개막과 더불어 작가들이 직접 참여해 작품에 대한 소개를 전하는 간담회 자리가 마련됐다. 이우성은 사실적인 형상회화로 현재 우리의 삶을 다루고, 지근욱은 질서정연한 추상화를 펼쳐서 우리를 미시와 거시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우성은 홍익대학교 회화과에서 학사, 한국종합예술학교 평면전공 전문사를 졸업한 후 30세부터 우리나라 주요 미술관 및 레지던시, 해외 유수 공간에 초대받은 작가다. 특히 2018년 광주비엔날레 《상상된 경계들》에서 주목받으면서 한국현대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근욱은 홍익대학교 판화과와 런던 예술대학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서 아트&사이언스 석사를 취득했다. 2017, 2018년도 크리스티 홍콩 정기 경매에서 열린 특별전에 참가해서 추정가를 크게 뛰어넘는 가격에 작품이 낙찰돼 세계적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지근욱, 상호-파동 019 Inter-wave 019, 2023, Mixed media on canvas, 50x50cm
▲지근욱, 상호-파동 019 Inter-wave 019, 2023, Mixed media on canvas, 50x50cm (사진=학고재 제공)

학고재는 한국현대회화의 역사가 70년을 맞이하는 현재, 탈역사 국면에 돌입하고 있는 지점에 주목해 이번 개인전들을 선보인다. 탈역사란 역사적 성질을 벗어났다는 뜻이다. 역사는 거대담론으로 쓰이고, 거대담론은 인간해방, 자유의 쟁취, 절대정신의 구현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존재해왔다. 탈역사 국면에 돌입하고 있는 지금, 역사에서 거대담론, 즉 그랜드 내러티브가 더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미술사에서도 거대담론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유파가 없고 담론이나 개념도 더는 통용되지 않는다. 자본과 인터넷 등 매체에 모든 것이 빨려들고 있다. 탈역사는 무한 자유를 허용하는 동시에 방향성이 부재하다. 무엇을 해도 좋지만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어서 고통스러운 시대다. 이러한 시기에 지금 한국의 젊은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이우성과 지근욱은 비록 외피는 다를지언정 자유 속에서 평정을 찾고, 방향의 부재라는 혼란 속에서도 사랑이라는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이우성은 인간에 대한 사랑을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지근욱은 인물균(人物均), 즉 사람과 사물(외부세계, 우주)는 모두 소중하다는 생각을 펼친다.

▲전시장에서 이우성 작가 (사진=학고재 제공)

이우성 개인전 《여기 앉아보세요》

이우성은 우리 일상 속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을 화폭 안으로 담는다. 작가의 일상을 함께 채우고 있는 한국의 젊은 청년들이 주인공이다. 이우성은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만나는 살아있는 사람, 함께 한 시간 및 사건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생각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2018년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동굴에서 발견된 4만 년 전 동굴벽화의 손바닥 스텐실 그림에 감화돼 시작될 수 있었다. 작가는 몇 만 년 전 우리와 같은 손을 가지고 있었던 존재들에 대해 상상하고, 지금 우리의 모습을 담고자 했다. 4만 년 전 그들이 남기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4만 년 전 인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우성은 옛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역동성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아름다운 신호를 후대에 남기는 것이 회화의 본령이라고 말한다.

이우성이 그린 청년들의 모습은 지금 우리 시대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아있다. 밝고 눈부시고, 아름다운 동시에 어떤 지점에선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지는 고단함과 씁쓸함이 묻어있다. 이우성의 회화는 민중 미술등, 우리 회화사의 작법들을 활용해 새로운 형식을 고안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더욱 관람객은 이우성의 회화 속에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지도 모른다.

▲이우성, 엎치락뒤치락 Tumbling Around, 2023, 자투리로 만든 천에 아크릴릭 과슈 Acrylic gouache on a quilted cloth, 200x200cm
▲이우성, 엎치락뒤치락 Tumbling Around, 2023, 자투리로 만든 천에 아크릴릭 과슈 Acrylic gouache on a quilted cloth, 200x200cm (사진=학고재 제공)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 작품인 <해질녘 노을빛과 친구들>은 작가 자신과 친구들의 모습을 담은 대형 작품이다. 이 작가는 “큰 바위 같은 느낌의 작품을 완성하고 싶었고, 작업을 위한 사진을 찍을 때 친구가 딸아이를 같이 데려왔는데, 그로 인해서 작품이 더욱 풍성해진 느낌이라서 좋다”라는 작품에 대한 설명을 전했다.

이우성의 작품은 개별적인 존재들을 담고 있고, 그들의 색을 풍부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그의 작품은 개별의 존재가 함께할 때 더욱 그 깊이와 의미가 증폭된다. 작가는 그림 개체가 모두 만나 전체를 이룰 때, 비로소 시대와 삶의 의미가 드러난다고 말한다. 이우성은 모든 부분이 만나 전체를 이루어 구성하는 서사의 구조를 제시해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청장년의 삶과 미의식을 대변한다.

▲전시장에서 지근욱 작가 (사진=학고재 제공)

지근욱 개인전 《하드보일드 브리즈》

지근욱은 색연필로 새로운 추상회화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지근욱의 회화는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모두 아우르고 있다. 우리는 분자가 무엇인지 볼 수 있어도 원자가 무엇인지 모른다. 원자를 넘어 아원자 입자나 쿼크에 이르면, 이것은 추정 상의 개념이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작가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이 원자의 세계를 회화로 표현해, 아름다운 형식을 극한으로 밀고나가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작가는 <임시의 테(Inter-rim)>와 <상호-파동(Inter-wave)>, <교차-형태(Inter-shape)> 연작을 출품한다. 전시 제목으로 사용되는 ‘하드보일드’와 ‘브리즈’는 굉장히 극과 극의 성질을 띠고 있다. 하드보일드(hard-boiled)란 용어는 문학용어로, 현실을 비정하고 냉엄하게, 때로는 군더더기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문학을 지칭한다. 이에 비해 브리즈(breeze)는 아주 기분 좋게 느껴지는 부드러운 바람, 즉 미풍(微風)을 뜻하며, 우리말로 남실바람ㆍ산들바람ㆍ건들바람ㆍ흔들바람 등으로 번역된다.

▲지근욱,  교차-형태 001 Inter-shape 001, 2023, Acrylic and colored pencil on canvas, 45x45cm
▲지근욱, 교차-형태 001 Inter-shape 001, 2023, Acrylic and colored pencil on canvas, 45x45cm (사진=학고재 제공)

작가는 왜 이 두 가지의 상반된 성질을 통해서 이번 전시를 소개하고 있을까. 이번에 공개되는 연작에서 작가는 화면에 색연필로 연한 색의 심층(깊숙한 화면)과 짙은 색의 표층(겉 화면)의 다른 층위(레이어)를 주어서 미묘하게 화합하는 경지를 그려낸다. 어떠한 미학적 수식이나 철학적 담론을 배제하고, 오로지 좋은 그림 자체만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하드보일드’이면서 비정하고 냉엄하기는커녕 극히 온유하고 부드러운 화면과 곡선, 운율을 잘 살려 표현된 ‘브리즈’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하드보일드 브리즈》는 언어적으로나 개념적으로는 형용모순을 이루지만, 지근욱의 회화의 세계에서는 절실한 실존의 무게를 더할 나위 없이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