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안심하고 사는 세상 만들기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안심하고 사는 세상 만들기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 승인 2023.08.23 12: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늦은 시간 아파트 현관으로 향하는 여성을 발견한 한 남성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여성을 향해 여러 차례 주먹을 날린다. 여성이 몸을 막으면서 저항하지만, 남성은 발길질까지 하며 폭행을 이어간다. 우연히 비명을 들은 20대 남성이 범인을 추격하여 붙잡은 범인은 "나 약 먹고 있는 사람이다" "정신 질환이 있으니 놔 달라"고 주장 한다…

갑작스런 죽음, 타인의 공격할 땐 분명한 이유가 있던 시절에는 빌미를 제공하지만 않으면 안전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사이 발생하는 사건사고를 보면 왜, 언제, 누구든지 ‘나’를 공격하여 죽음에 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한다. 최근 사건에 오르내리는 피해자들은 평상시처럼 그날을 살다가 귀갓길에, 산책하다가, 분리수거하러 나왔다가, 혹은 저녁먹으러 나왔다가 변을 당했다.

가해자의 말은 한결같다. “취해 있어 생각이 나지 않는다.” , “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

누구도 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는 공포로 부터 자유스럽지 못한 시기를 살고 있다. 게다가 모방 범죄는 기승을 부리고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어디를 가더라도 주변을 잘 살피는 것 뿐..

CPTED, 범죄 예방 환경 설계는 건축 환경 설계 시 범죄 발생 수준이나 범죄에 대한 공포를 감소하고 개인이 환경 내에서 안전한 삶을 살도록 하는 설계기법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계획되는 도심 재개발 프로젝트에서는 적용하기 시작했지만 최초 개념이 제안되고 실제 도입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61년, 제인 제이콥스 Jane Jacobs는 《위대한 미국 도시의 생사 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에서 도시 재개발에 따라 증가하는 범죄 문제 발생에 대해 도시 설계 방법을 통해 해결하는 개념을 최초로 이야기 하였는데, 활발한 연구와 적용이 이루어진 것은

그로부터 10년 후, 레이 제프리 C. Ray. Jeffery가 《환경 설계를 통한 범죄 예방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에서 환경 설계와 범죄가 상관관계가 있음을 발표하면서 - 현재 우리가 말하는 셉테드 CPTED는 이 책의 제목에서 나온 용어이다. - 부터 였다.

CPTED에서 제시하는 세가지 방법을 살펴보면 가장 일반적인 것이 ‘자연스러운 감시’로 시야를 가리는 구조물을 없애고, 밝은 환경을 조성하여 다수의 눈이 범죄 상황을 자연스럽게 감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두번째 방법은 ‘자연스러운 접근 통제’로 범죄 목표를 향한 접근이 어려운 환경을 만들어 보행로, 조경, 대문 등을 출입할 경우 범죄 행위에 최대한 노출될 수 있도록 설계함으로서 출입을 허락받지 못한 사람들이 범죄 의도로 접근할 경우 범행 노출(발각)이 쉬워짐을 깨닫고 범죄를 제고하게 한다는 논리이다. 마지막으로 ‘영역성 강화’는 개개인의 공간에 대한 소속감을 갖게 하고 범죄 발생에 대한 관심을 높이며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명확히 구분지어 잠재적 범죄자로 하여금 그런 영역성을 인식하게 하여 범행 시도 자체를 어렵게 하는 것이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셉테드의 효과가 증명되어 실제 범죄발생률이 떨어졌고 그로인해 시민들의 범죄에 대한 불안감 또한 크게 줄어들어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가장 쉽게, 그리고 경제적인 셉티트 기법으로 알려진 것은 야간 빛환경 개선을 통해서이다.

단순히 조명기구를 증설하거나 광원의 효율을 상향시키는 것만으로도 자연적인 감시가 상당히 유리해질 수 있는데 런던의 에드먼턴, 햄리츠 타워, 해머스미스 세 지역에서 수행된 ‘가로 조명의 범죄 저감 효과’에 대한 연구를 보면 도로의 조명을 평균 5럭스(lux) 이하에서 10럭스로 높이자 세 곳 모두에서 무질서와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고 보행자의 도로 사용률도 50% 이상으로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 많은 곳에서 범죄자가 활개칠 수 없음은 당연한 이치다.

빛환경을 개선한다는 것은 단순히 빛의 양을 더하거나 빼는 것이 아니어서 다양한 빛의 질, 양의 차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접근을 통제하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빛이 비추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넘나드는 행위를 매우 조심스럽게 하게 되는 상황을 상상해보면 이해하기 쉽겠다.

또한 이것은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기도 한데 영국의 더들리 지역의 조명개선 프로젝트는 밝기 개선을 위해 단지 4600파운드(약 813만원)를 사용하였는데 이에 따른 범죄 감소 이익은 약 33만 파운드(약 5억8353만원)에 당했다고 하니 경제적인 효용성은 의심할 바가 없다.

사실상 최근의 범죄가 야간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어두운 곳에서 더욱 빈번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어서 야간 빛환경 개선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그래스고시의 뷰캐넌 스트리트나 로테르담의 아제스트리트 브로큰라이트 프로젝트 사례와 같이 환경을 정비하고 주, 야간 쾌적한 가로경관을 조성함으로써 주변 상권이 살아나 점차 지역이 활기를 찾으며 사람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져 결국 범죄율을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게 되는 것을 볼 때 사람의 문제로 시작된 범죄들이 환경의 변화로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범죄 예방 설계에 있어서도 감시나 통제 보다 더 신경써야하는 부분은 ‘영역성 강화’이며 공간에 대한 소속감, 나아가 사회에 대한 개개인의 소속감 강화가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고 결과적으로 범죄를 줄이기 위해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