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nterview] 이명옥 한국시각예술저작권연합회장 “‘미술진흥법’, 미술계 새로운 운동장 만드는 일과 같아”
[Special Interview] 이명옥 한국시각예술저작권연합회장 “‘미술진흥법’, 미술계 새로운 운동장 만드는 일과 같아”
  • 이은영 발행인ㆍ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8.23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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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담회, 진흥법안 알리고 미술계 의견 정리돼
10년 뒤 미술계, 많은 변화 있을 것이라 확신
미술계 내부서 자생적으로 스타작가 창출해야
미술관 ‘최초’의 기록, 살아남고자 한 절박한 욕구의 기록
“사비나미술관 스타작가 창출, IP산업 본격화” 이루고 싶어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ㆍ이지완 기자/ 김바울 사진기자] 2021년 미술계 최초의 저작권연합회인 ‘한국시각예술저작권연합회’가 발족했다. 초대 회장으로는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이 선출됐다. 연합회의 출범은 이후 ‘미술진흥법’ 제정에 큰 동력이 됐다. 그리고 올해 6월 ‘미술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연이어 붙는 행보였다.

▲사비나미술관 특별기획전 《예술 입은 한복》 전시장 양대원 작가 작품 앞에서 이명옥 관장 ⓒ김바울 사진기자

2002년 개관한 사비나미술관의 슬로건은 “새롭게 하라, 놀라게 하라, 그리고 아름답게(Make it new, surprise me, beautifully)”다. 슬로건에 걸맞게 20년이 넘은 사비나미술관의 행보에는 항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은평구 내 최초의 현대미술관이자, 2010년 국내미술관 최초 전국 ‘미술관 찾기’ 어플리케이션 개발(2010년 2014년 국내 최초로 미술계의 구글로 불리는 아트시(Artsy)와 MOU 체결 등 여러 가지 최초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최초’라는 수식어는 이명옥 관장을 따라다니는 수식어인지도 모른다.

6월 ‘미술진흥법’ 제정 이후 시행준비를 위한 미술계 의견수렴간담회가 지난 7월 31일에 열렸다. 창작, 유통, 연구, 기획자 등등 미술계를 구성하고 전반의 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 ‘미술진흥법’과 관련해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긴 토론이 이어졌다. 이 관장이 회장으로 있는 한국시각예술저작권연합회가 만든 자리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한국 미술시장은 급부상했다. 이후 침체기를 맞이하기도 했지만, 한국 미술계를 향한 세계의 시선은 더욱 집중되고 있다. 지난해 프리즈 아트페어의 한국 상륙, 올해 9월 두 번째 개최를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서 ‘미술진흥법’ 또한 국회를 통과했다. 지금 한국 미술계는 중요한 변화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미술진흥법’ 제정을 위해 최전선에서 움직였던 이 관장을 만나 일련의 과정들에 대해 들어봤다. 1996년 종로구 인사동에서 사비나갤러리를 열고, 30여 년간 한국미술계를 지켜보고 때로는 주도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안해 온 인물이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는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회장을 맡았고, 1996년 사비나갤러리를 시작으로 2002년 사비나미술관을 개관했다.

이 관장은 자신이 미술계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만큼, 가장 뿌리가 되는 ‘미술관 운영’에 제일 큰 힘을 쏟고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맡고 있는 제일 근본이 되는 업을 제대로 수행할 때, 다른 일도 잘 해낼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미술계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으면서도 빈틈없이 자신의 커리어를 올려나가고 있는 자신감과 당당함이 느껴졌다.

인터뷰를 위해 이 관장을 만난 지난 10일은 태풍 카눈이 서울로 올라오고 있는 날이었다. 인터뷰 내내 장대비가 쏟아졌다. 이 관장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답변을 이어나갔는데, 그 답변에는 확신이 담겨있었다. 거침없이 내리는 빗줄기와 같은 힘이었다.

1시간 30분 여 진행된 인터뷰는 ‘미술진흥법’에 관련된 내용부터, 이 관장이 가지고 있는 미술계 전반에 대한 인사이트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의 30여 년의 행보를 이번 인터뷰가 다 담아낼 순 없어도, 그가 현재 가지고 있는 앞으로에 대한 비전은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달 <미술진흥법 내용 및 시행준비에 관한 설명회 및 의견수렴 간담회>를 개최했다. 간담회의 성과들이 있었다면.

미술인들이 ‘미술진흥법’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는 성과가 있다고 본다. 미술인들은 법에 대해서 잘 모르고, 법안이 제정되면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법안은 제정되고 나면, 시행령이 만들어져야 하고 그것을 토대로 법이 시행돼야 한다. 간담회는 ‘미술진흥법’의 33조항을 미술인들에게 알리고, 시행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였다.

또한, 이번 간담회는 미술계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직업군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여서 의견을 제시했다는 의의를 지니고 있다. 간담회는 작가, 이론가, 미술계 관계자로 구성된 총 14명의 발표자가 ‘5분’이라는 한정적인 시간 속에서 발표를 이어나가며 굉장히 임팩트 있게 진행됐다. 간담회 이후에 참여한 많은 분들이 간담회가 지루하지 않고 재밌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간담회에 100명 정도가 참여했는데, 대부분 자리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간담회에 임한 것도 인상적인 지점이다. 미술계 다양한 직군들이 법안을 살펴보고 의견을 전한 자리여서, ‘미술진흥법’을 알리는 것에서 나아가 내용을 좀 더 깊이있게 파악할 기회까지 제공할 수 있었다.

▲이명옥 관장(한국시각예술저작권연합회장)이 「미술진흥법」 시행준비 의견수렴 간담회서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이명옥 관장(한국시각예술저작권연합회장)이 「미술진흥법」 시행준비 의견수렴 간담회서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사진=한국시각예술저작권연합회 제공)

2020년 10월 미술진흥법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4년에 달하는 시간동안 ‘미술진흥법’ 제정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쏟았다. 어떤 과정이었나?

법안을 발의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안했다고 본다. 2020년 10월 17일 미술진흥법 추진위원회 발족식을 하고 (사)한국조각가협회 김정희 이사장과 내가 공동위원장을 맡고 김창겸 작가가 사무총장을 맡았다. 위원회가 발족하면서 ‘미술진흥법’ 제정이 본격화됐다. ‘미술진흥법’의 대표 발의자는 도종환 의원이다. 이 법안을 위해서 국회와 문화체육관광부와 민간이 다 각자의 영역에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민간에서도 좀 더 본격적으로 움직이면서 법안제정을 위한 협의 체제가 구축될 수 있었다.

민간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문체부가 못할 수 있고, 문체부가 잘하는 행정적인 역할을 민간이 못할 수 있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각자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원만한 협력 구조를 이끌어내 법안을 만들었다. 탑다운 방식이 아닌 바텀업 방식으로, 우리 모두가 다함께 만들어 낸 모범적인 사례이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까지 ‘미술진흥법’ 제정에 온 힘을 다한 이유는 무엇인가.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하나는 박탈감이었고, 또 하나는 법안을 제정하면서 미술계의 새로운 운동장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였다. 지금 진흥법이 없는 장르가 없다. 서예, 공예 등도 진흥법이 다 있다. 그런데 미술만 없었다. 우리 미술인들만 진흥에 대해서 열외인 것 같았고, 이는 미술을 진흥하지 않겠다는 의사표현 같기도 했다. 법이 없다는 것은 우리 미술인들이 권리를 포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미술인들이 무슨 행사나 프로젝트를 펼치고자 할 때 구체적인 법안이 없어서 일을 추진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지자체와 함께 무슨 행사를 진행하려하면, 기관에선 먼저 관련법을 가지고 오라고 하는데 우리는 가지고 갈 법이 없었다. 진흥법을 제정한다면, 우리가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큰 운동장이 생기는 것이라고 봤다.

‘미술진흥법’ 제정은 한국 미술계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올 수 있을까.

창작과 창작자에 대한 지원이 활성화되면, 향유자와의 매개체가 될 수 있는 전시장이 활발해질 것이다. 자연히 기획자와 평론가들은 일이 많아지게 될 것이고, 이런 선순환적 작용이 확산되면 미술계엔 분명히 긍정적 변화가 올 것이다. 시장에서도 공급자인 창작자가 좀 더 좋은 환경에 머무를 수 있다면, 그 영향은 수요층에게도 충분히 전달될 것이다.

최근 K-클래식이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어떤 시기가 돼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같은 예술학교들의 정교한 교육 시스템이 구축돼있고, 기업단위에서 영재들을 후원하고 육성하는 프로그램이 맞물려 재능있는 예술인들이 인큐베이팅 될 수 있었다고 본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 예술인들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구조적 시스템도 잘 연결돼서 지금의 K-클래식 열풍이 완성될 수 있었다.

미술진흥법이 무슨 마이더스의 손처럼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순 없더라도,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 나은 미술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길을 열지 않을까 싶다. 미술진흥법은 미술생태계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할거고, 10년 뒤엔 정말 많은 변화라 올 것이라고 본다.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는 이명옥 관장 ⓒ김바울 사진기자

‘추급권’ 관련 법안도 실리면서 갤러리 같은 미술시장 관계자들과 갈등이 있는 것 같다. 갤러리들은 코로나19 경기 침체와 더불어 ‘미술 진흥법’ 시행이 한국 미술시장 발전을 막을 것이라고들 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번 간담회에서 의견수렴을 했고, 앞으로 견해를 점점 더 좁혀나갈 계획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재판매보상청구권(추급권)’이 막연한 불안감을 불러오고 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지금 미술시장에서 작가들이 계속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출판의 경우 재쇄를 하면 인세가 다시 들어온다. 음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미술만 예외 조항을 둬야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미술시장 초기에는 작가의 권리가 홀딩됐던 시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때엔 시장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시장을 만들어보자고 다 같이 힘을 모아서 작가들이 일정 부분 뒤로 물러나고 자신들의 권리를 내려놓았던 때다. 그런데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여러 조사들을 살펴보면 한국의 아트마켓 규모가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를 이어 5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제 한국의 미술 시장은 명확하게 존재하고 이제는 작가들의 권리에 대해 얘기해야 할 때다. 추급권 때문에 시장이 위축될 것이라는 불안들이 많이 조성되고 있는데, 어떤 수치나 자료로 정리된 것이 없다. 막연한 불안이 아닐까 싶다.

또 하나, 추급권이 일부 잘 나가는 스타 작가들의 유리할 것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이 또한 너무 한쪽으로 편향된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스포츠 계를 보면 김연아, 손흥민이 있었기 때문에 그 뒤의 또 대단한 선수들이 등장했다. 엄청난 스타의 존재는 우리에게 꿈을 주고, 나도 저렇게 돼보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한다. ‘해도 안 될 거야’보다는 ‘하면 될 수도 있어’라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것이 추급권의 또 다른 면이라고 본다.

그리고 간담회 전 날 화랑협회 황달성 회장을 만났다. 실제 대화를 나눠보니, 추급권보다는 법안에 있는 신고제 같은 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추급권에 대한 반대는 일부 언론에서 다루고 있고, 그런 것이 확산되면서 실체 없는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미술진흥원’ 신설을 명확하게 확정 짓지 못하고, 현재 법안에는 ‘미술진흥 전담기관 지정’이라는 수준으로 정리가 됐다. 간담회 현장에선 예산 등의 문제로, 미술진흥원 신설이 꼭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는 앞으로 어떻게 개선될 것으로 보는가.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 간담회가 있었다. 그때 현재 정부 구조에선 인력과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기관은 만들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진흥원을 신설하게 되면, 기관을 만드는 것이고, 인력을 뽑아야 하니 행안부나 기재부에서는 반대를 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선택을 해야 했다. 법안의 폐기냐, 일단 통과를 시키는 것이 우선이냐 라는 문제에서 우리는 스텝 바이 스텝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택했다.

2021년 발족한 한국시각예술저작권연합회는 ‘디지털 영역에서 제기되는 시각예술 분야 지적재산권을 활용한 산업생태계 조성’을 위해 설립됐다. 현재 어떤 활동들을 이어오고 있는가.

‘저작권 협회’라는 것이 또 미술만 없었다. 그래서 연합회를 만들었다. 저작권은 중요한 이슈다. 최근 검정고무신 사태도 그렇고, 지금 디지털 시대로 진입하면서 저작권 문제는 더더욱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시점이 됐다. 이미지 하나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정말 많은 길이 열려있고, 디지털로 이미지를 세계 어디든 보낼 수 있는 시대가 됐는데 이런 세상 속에서 저작권을 보호하고 육성할 수 있는 단체가 없다는 것은 큰 문제가 있다고 봤다.

이번 간담회에서도 발표된 내용이지만, 황선태 작가의 경우 작품을 중국 쇼핑몰에 표절해서 큰 피해를 입었다. 그 때 작가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 이럴 때 연합회가 필요한 것이다. 한국시각예술저작권연합회는 한국저작권위원회와 MOU를 맺고 있다. 이러한 관계망으로 여러 일을 추진하고 있는데, 황선태 작가의 사건도 저작권보호원의 도움으로 약 165개 정도의 중국 쇼핑몰의 표절 상품을 다 판매 금지 시켰다. 이런 일들은 개인은 할 수 없지만 단체와 국가는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더불어 저작권에 관한 작가 교육도 진행하고자 한다. 작가들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도 될 수 있기에 하루 빨리 작가들의 교육을 진행하고자 한다. 그리고 수익모델 창출도 구상하고 있다. 저작권을 잘 사용한 신사업을 생각하고 있어서, IP관련 사업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달 31일 열렸던 「미술진흥법」 시행준비 의견수렴 간담회 현장 (사진=한국시각예술저작권연합회 제공)

1996년 갤러리사비나로 한국 미술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30년에 가까운 시간을 한국 미술계와 동고동락했다. 앞으로 한국 미술계가 더 나아가기 위해선 어떤 지점을 고민해봐야 할까.

K-아트의 어떤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 미술시장에는 스타급 작가들이 생기지 않고 있다. 생겨났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해외에서 주목을 받고, 또 해외에서 마케팅을 통해서 만들어진 작가들인 경우가 다수다. 미술계에서도 BTS와 같은 자생적인 스타 작가 육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정부에서 K-아트, 미술을 육성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는데 이런 흐름을 따라서 미술계 관계자들이 합심해서 좋은 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먼저 좋은 작가가 등장 할 수 있는 화랑이나 대안공간들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엔 2차 시장, 그리고 마지막에는 뮤지엄으로 올라설 수 있는 그런 사다리가 잘 만들어져야 한다고 본다. 이런 환경이 완성되기 위해선 예술적 검증을 해주는 비평가들의 역할이 더욱 커져야 할 것이다.

지금은 미술관이 좋아하는 작가와 화랑이 좋아하는 작가가 다르다. 완전히 따로 가고 있다. 최근 옥션에서 어마어마한 가격에 거래된 작품들이 미술관에선 걸리지 않는다. 결국 작품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본다. 시장 가치가 예술적 가치로 올라서는 일은 없다. 예술적으로 인정받은 가치를 화랑이 프로모션과 마케팅을 통해 구매자에게 연결해줘야 한다. 이런 방향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본다.

사비나 미술관의 그간의 성장과정을 보면 ‘최초’라는 수식이 참 많다. 미술과 과학의 융복합 시도, VR미술관 제작 등 앞서서 변화를 맞이했다. 이런 변화의 필요성을 어떻게 빨리 준비할 수 있었는가.

가지고 있는 성향 자체가 모험적인 지점이 분명히 있다. 사비나갤러리는 전시 기획을 전문화한 화랑이었다.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미술관과 미술관 주위의 환경을 살피고 기획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항상 트렌드가 무엇인지 읽으려 노력했다. 예술과 과학의 융합적인 요소는 트렌드를 읽는 과정에서 일찍이 깨달을 수 있었던 것 같다.

VR미술관의 경우, 2011년 파리에서 참석했던 ‘구글 아트프로젝트’인 ‘구글 아트 엔 컬처(Google Art & Culture)’ 행사 덕분이었다. 시간과 공간을 타파하고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엄청난 시도였다. 그래서 이후에 사비나 미술관의 전시를 VR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2020년에 코로나19가 퍼졌다. 갑자기 우리 미술관이 선구자가 되는 상황을 마주했다.

미술관을 운영하면서 항상 전략적으로 고민했다. 거대 미술관, 기업이 운영하는 미술관과 우리 사비나 미술관은 어떤 차별점을 가져야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결론은 그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는 틈새 전략을 펼치는 것이었다.

‘최초’의 기록들은 내가 가진 성향과 어떤 전략적 사고가 맞물려서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본다. 사실 그 ‘최초’의 기록들은 사비나 미술관의 연혁이고 또 미술관이 살아남기 위해 가졌던 절박한 욕구 발현의 흔적이라고 본다.

▲인터뷰 중 미소를 짓는 이명옥 관장 ⓒ김바울 사진기자

전시기획자이자 컬렉터였고, 가장 빠르게 미술계 변화를 마주하며 작가들 곁에서 오랜 시간 미술과 함께 했다. 이 관장에게 ‘미술’은 어떤 의미인가.

어떤 의미일까. 잘 생각해보지 않아서 답이 잘 나오지 않는다. 나는 아마도 미술이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서 공부를 많이 하게 해서 계속 이끌리는 것 같다. 예를 들어서 렘브란트의 <야경>이라는 작품만 봐도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를 공부하게 되고, 그 안에 생겼던 미술의 생산적인 시스템, 무역의 발달들을 다 살펴볼 수 있게 된다. 존 커스터블의 구름연구 작품을 보면 기상학을 공부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그림 하나로 정말 많은 것을 공부하고, 관심의 영역을 넓힐 수 있다. 미술이라는 장르 자체가 융복합적 사고를 이끌어내는 것이라 본다.

나는 죽을 때까지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이다. 원체 호기심이 많기도 하고, 세상의 정말 많은 것이 궁금하다. 공부를 하기 위해선 공부의 동기가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촉매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 미술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이미지로 그렇게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은 미술만 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딱히 계획이랄 것은 없지만, 장기적으로 시도하고 싶은 일이라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미술관 운영 영역에서는 우리 미술관에서 스타급 작가를 배출하고 싶은 것이다.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고, 한국 미술계를 이끌어갈 수 있는 흐름을 만들어 보고 싶다.

그리고 한국시각예술저작권연합회 영역에선 IP산업을 좀 더 본격화해서, 작가 육성과 지원에 힘을 싣고 싶다. 가능하다면 IP 아트페어도 만들어보고 싶다. 연합회가 중요한 허브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