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MMCA 《김구림》展, “총체예술가 김구림을 주목하다”
[현장스케치] MMCA 《김구림》展, “총체예술가 김구림을 주목하다”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8.29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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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CA 서울관 6,7 전시실, 내년 2월 12일까지
1960년 대부터 시작된 김구림 작품 공개, 신작 2점 최초 공개
미술관 광목으로 묶는 설치작 성사되지 못해, 미술 행정 비판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한국 아방가르드의 선구자, 총체 예술가로 평가받는 김구림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이 개최된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김구림》전을 지난 25일부터 2024년 2월 12일까지 서울관에서 개최한다. 전시 개막에 앞서 24일에는 김구림 작가가 직접 참석한 간담회가 열렸다. 고령의 나이에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현장을 찾았지만, 미술에 대한 열정만큼은 나이를 뛰어넘었다.

▲지난 24일 열린 간담회에서 김구림 작가가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서울문화투데이
▲지난 24일 열린 간담회에서 김구림 작가가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작가 뒷편의 작품은 <음과 양 91-L 13>, 1991, 캔버스 위에 아크릴, 낚싯대, 양동이, 213 x 335 cm. 개인 소장. ⓒ서울문화투데이

김구림(b. 1936)은 경북 상주 출생으로 미술대학을 중퇴하고, 1959년 대구 공회당화랑에서《김구림 유화개인전》을 개최하며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1960년대에는 섬유회사에서 기획실장으로 근무하며 영화, 연극, 무용 등에 관하여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1960년대 말에는 ‘회화 68’, ‘AG’, ‘제4집단’등 예술집단 활동을 주도하며 한국 최초의 일렉트릭 아트, 메일 아트, 실험영화, 대지미술, 해프닝 등을 발표했다.

이후 1973-1975년 일본에 머물며 사물과 시간의 관계성을 오브제와 설치작품, 판화 등을 통해 탐구하였다. 1970년대 전위적인 작품들은 제7회 파리비엔날레(1971), 제12회 상파울루비엔날레(1973), 《김구림전》(도쿄 시로타 화랑, 1973), 제2회 국제 임팩트 아트 비디오-74(스위스 로잔, 1974) 등 해외 전시에서도 활발하게 소개됐다.

이후 1984년부터 미국에 머물며 상호모순적인 두 상태를 대비시키고, 나아가 합일에 이르게 하는‘음과 양’연작을 지속해서 선보이며, 1986년 브루스 나우먼(Bruce Nauman)과 함께 《Artistic License》(갤러리 뉴욕, 1986) 등의 전시에 참여하며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나갔다. 2000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초대전 《현존과 흔적》을 개최하며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로도 ‘음과 양’은 김구림의 작품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로 현재까지 지속해 나가고 있는 개념이다.

김구림은 1950년대부터 다양한 매체, 장르, 주제를 넘나들며 예술의 최전선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실험미술의 선구자다. 비디오아트, 설치, 판화, 퍼포먼스, 회화 등 미술의 범주에서뿐만 아니라 무용, 연극, 영화,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 실험미술의 선구이자 총체 예술가로서 김구림의 미술사적 성과를 재확인하고, 새로운 담론과 연구를 지속 생성하는 현재진행형 작가로서 그의 행보를 살펴본다.

▲김구림, 124초의 의미, 1969, 단채널 비디오, 컬러, 무음, 10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김구림, 124초의 의미, 1969, 단채널 비디오, 컬러, 무음, 10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MMCA 제공)

김구림 작품 세계 총망라, 총체 예술가로서 김구림 선봬

이번 전시에서는 서울관 6, 7전시실에 작가의 작품세계를 총망라하는 230여 점의 작품과 60여 점의 아카이브 자료가 전시되며 총체 예술가 김구림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대규모 공연도 마련된다.

6전시실은 작품 활동 초기에 해당하는 1950년대부터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작업을 전개한 1970년대 김구림의 작품으로 구성했다. 활동 초기부터 품어온 ‘현전과 현상’에 대한 작가의 오랜 관심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이 전시된다. ‘AG’활동기에 선보인 얼음을 주재료로 사용한 <현상에서 흔적으로>(1970), 한국 실험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 <1/24초의 의미>(1969), 1970년대 초반 일본에서 머물며 제작한 설치작 등을 소개한다.

7전시실에서는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에서 작품 활동을 전개하며 발표한 오브제를 활용한 평면 작업과 2000년대 귀국 이후 선보인 <음과 양> 오브제 작품을 두루 선보인다. 김구림은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자연’에 집중하면서 제작한 작품들로 시작한다. 이 시기 작가는 나뭇가지 등을 화면에 부착해 자연과 인공의 관계를 탐구하고, 1990년대 접어들면서는 여러 개의 캔버스를 이어 붙여 제작한 콜라주 기법의 <음과 양> 평면 작업, 2000년대 중반 이후 물질문명의 부산물을 이용해 제작한 <음과 양> 오브제까지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 공개된 2023년 신작 김구림 <음과 양> ⓒ서울문화투데이

이번 전시에선 환경에 기민하게 대응해 온 김구림의 ‘현재’를 확인하고, 그가 품고 있는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는 신작 2점이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공개된다. 첫 번째 작품 <음과 양: 자동차> 설치에서 작가는 고도로 문명화된 현대사회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재해를 비판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두 번째 작품 <음과 양> 설치는 미디어를 통해 소비되는 역사의 순간들이 반복 송출되는 비디오 조각 작품이다. 김구림은 언뜻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시간, 지역, 사건 등의 요소들을 충돌, 증폭시키는 가운데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는 김구림의 공연도 만나볼 수 있다. MMCA다원공간에서 오는 9월 7일 오후 2시 상연된다. 김구림의 공연예술가로서의 면모도 확인할 수 있다. 공연은 김구림의 영화-무용-음악-연극 등 총 4개 파트로 구성된다. 한국 실험영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1/24초의 의미>(1969), <문명, 여자, 돈>(1969) 영화 상영을 시작으로 1969년에 시나리오, 안무, 작곡을 한 <무제>(무용), <대합창>(음악), <모르는 사람들>(연극)이 각 15분간 차례로 선보인다. 관람객은 이 작품들을 통해 1969년부터 공연을 제작하며 비언어적 소통의 방식을 추구했던 김구림의 실험성을 재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김구림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공연 예술이 성사된 것이 의의가 있다고 본다”라며 “미술은 내가 죽고 나서도 작품으로 남겨질 수 있지만 공연은 그럴 수 없는데, 이번에 선보일 수 있어서 의미가 있다고 느낀다”라고 소회를 전했다.

김구림, 걸레, 1974, 단채널 비디오, 컬러, 무음, 2분 7초, 작가 소장.
▲김구림, 걸레, 1974, 단채널 비디오, 컬러, 무음, 2분 7초, 작가 소장. (사진=MMCA 제공)

“이번 전람회에 아방가르드는 없다”

지난 24일 열린 간담회에서 김구림 작가는 작심한 듯 이번 전시에 대한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간담회 초반 작가의 인사말을 듣고자 마련된 시간에, 김구림 작가는 “이번 미술관 전시를 ‘아방가르드’라고 칭하지만, 실제로 이 전시장에는 아방가르드 작품이 하나도 없다”라며 “전시장에는 고리타분한 것만 늘어놨고, 새로운 파격적인 작품 못 보여줬다. 미안하고, 내가 어디 가서 작가라고 얼굴을 내밀 수 없는 부끄러움 있다”라는 말을 전했다.

김구림 작가는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제 1회 한국미술대상전(1970년 6월 10일 -7월 9일) 당시 1970년 6월 9일 서울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보였던 <현상에서 흔적으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자 했다.

당시 김구림 작가는 전시 장소인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 건물 외관 전체를 30cm 폭의 흰 광목천으로 한 바퀴 두른 후, 천의 두 끝자락을 현관 앞의 구멍에 매장하고 큰 돌을 얹어 미술관 전체를 묶었다. 덧붙여 ‘일금 900만 원’이라는 작품 값을 매겨 놓음으로써 미술관 전체를 작품화 했다. 전시 초대 작가였던 김구림은 기성 미술을 묻듯이 그 천을 매장하는 작품을 통해, 낡은 관념은 하늘로 보내고 새로운 것을 지향하자는 의도를 드러냈다. (《한국 시험미술 1960-70년대》도록 발췌)

▲지난 24일 열린 간담회에서 작심한 듯 비판을 쏟아내는 김구림 작가 ⓒ서울문화투데이

김구림 작가는 이번 개인전에서 다시 한 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광목천으로 묶고자 했으나, 실행 할 수 없었다. 김 작가는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이뤄지지 못했다. 세월이 반세기가 지나고 1970년 과거에 했던 것을 실현할 수 없었다”라며 “40년이 지난 지금 오늘에 과거에 했던 설치 작업을 못하게 될 줄 미처 몰랐고, 만약 설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이 전람회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답답함과 분노를 토로했다.

이어 김구림 작가는 설치를 하고자, 문화체육관광부에 문의를 했는데도 전시 개막을 앞둔 지금까지 답을 주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김 작가는 “이런 사안에 대해 답을 해주지 않는 문체부가 어떻게 예술과 문화를 논할 수 있는지 알 수 없고, 이런 식이라면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명칭을 ‘근대미술관’이라고 바꾸는 것이 맞다. 행정으로 예술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라며 강한 비판을 가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김 작가의 비판에 1970년 퍼포먼스 <현상에서 흔적으로>의 재현을 못한 것이 아니라, 전시 준비 기간 내에 성사되기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옛 국군기무사령부의 본관으로 등록문화재 375호로 등록돼 있다. 문화재로 등록 돼 있는 만큼 건물 외벽을 감싸거나 하는 것은 관련 행정부처의 심의가 필요한데, 전시를 준비하는 기간 내에 맞추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작가는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작년부터 전시를 준비했는데, 3,4개월 전 큐레이터가 바뀌는 등 제대로 협의되지 않았다. 작품을 설치하는 데 있어서 안 되는 이유가 너무 많고, 규제가 너무 많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구림, 핵 1-62, 1962, 패널에 비닐, 유화, 181.5 x 91 cm. 개인 소장.
▲김구림, 핵 1-62, 1962, 패널에 비닐, 유화, 181.5 x 91 cm. 개인 소장.  (사진=MMCA 제공)

이에 본지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기자는 “이번 전시 기간이 거의 6개월인데, 이 기간동안 행정부처와 협의를 해 전시 기간 내에라도 작품을 재현할 수는 없는 것인가”라며 “기간 내에 검토를 한 번 해봐야 한다고 본다”라고 지적을 했다.

류지연 국립현대미술관 현대미술1과 과장은 “검토는 해보겠지만, 쉽지 않다”라며 “실제로 작가님이 작품 설치를 언급한 것은 6월 20일로 전시를 2개 월 앞둔 상황이었고, 2개 월 내에는 검토가 이뤄지기 어려웠다. 문화재 관련 심의의 경우 하나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심의를 개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문제가 모였을 때 비정기적으로 개최해 시간이 많이 걸린다”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덧붙여 이후 미술관 학예과와 행정과는 “검토는 할 수 있겠지만, 외벽에 광목천을 장기간 고정할 수 있는 구조물 및 장치가 설치되려면, 작품 구체 계획은 물론 건물 구조분석 등도 시간이 소요돼, 5개월 안에 가능하다고 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라는 추가적인 답변을 전했다.

▲제 7전시실에서 2000년 대 이후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에서 취재진이 전시 작품 설명을 듣고 있다 ⓒ서울문화투데이

《김구림》으로 설명되는 전시

단순히 회화 뿐 만이 아니라, 설치, 판화, 비디오아트까지 미술의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고, 미술을 넘어 음악, 연극, 영화까지 다룬 김구림은 총체 예술가로도 평가받는다. 이번 전시를 통해 ‘총체 예술가’라는 호칭을 얻게 된 작가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총체예술가’라는 호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작가는 “예술이라는 것은 다 같은 것이라고 본다. 어쩌다보니 판화, 패션, 공연 등 모든 것을 하게 됐다”라고 담담하게 답을 전했다.

1950년대부터 이어져 온 김구림의 작업은 어떤 하나의 정의로 규정되기 어렵다. 이번에 공개되는 230여 점의 작품은 모두 다 김구림이라는 세계 안에서 연결은 되지만, 그것을 관통하는 단 한가지의 정의를 찾기란 쉽지 않다.

1962년 <핵1-62>라는 작품을 통해 ‘회화가 아닌 회화, 즉 그리지 않은 회화’의 작가의 시도를 언급하고, 1970년 《제1회 AG전: 확장과 환원의 역학》(중앙공보관, 1970)에서 처음 공개된 <현상에서 흔적으로>를 전시하면서, “있음은 곧 없음의 상대적이며, 이 세상의 존재물은 태어났다 사라지고,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우리를 감싸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곧 자연에 순응하며 공의 세계와 무위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존재와 시간의 관계성을 얘기한 작가의 세계를 선보인다.

<핵1-62>은 붓을 사용하지 않고 퍼포먼스와 같은 행위를 통해 비정형의 화면을 구축한 작품이다. 패널 위에 비닐을 바르고 불을 붙이면 석유가 붙은 부분이 타오르는데, 이때 담요 등을 이용해 불을 끄고 남은 흔적이 작품의 골조가 됐다. 1970년 《제1회 AG전: 확장과 환원의 역학》에 공개된 <현상에서 흔적으로>는 먼저 붉은 플라스틱 통 3개에 각기 다른 크기의 얼음을 넣고, 얼음 위로 트레싱지를 덮어두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후 얼음이 서서히 녹으면서 물 위로 트레싱지가 떠 있다가 그 물마저 증발하면 어그러진 종이만 남는 장면이 연출되는 작품이다. 이처럼 김구림의 작품은 작품이 존재하게 되는 과정과 시간 또한 큰 의미를 형성한다. 전시는 이러한 김구림의 세계를 본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판단과 감상을 오로지 관람객에게 맡기는 것이다.

▲김구림, 현상에서 흔적으로, 1970, 플라스틱 상자, 얼음, 투명지, 170 x 120 x 20 cm (3). 작가 소장.
▲김구림, 현상에서 흔적으로, 1970, 플라스틱 상자, 얼음, 투명지, 170 x 120 x 20 cm (3). 작가 소장. (사진=MMCA 제공)

이번 전시를 기획한 우현정 학예사는 “전시 제목을 ‘김구림’이라고 설정한 것은 김구림이 가지고 있는 세계자체를 보여주고자 함이었다”라며 “어떤 제목을 설정함으로 인해, 김구림이 가진 세계에 선입견이 생기길 원치 않았고, 작가님과 동의하에 이런 식으로 제목을 설정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전시 투어가 끝나고, 이번 전시회를 보러 오는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전시를 보면 좋을지에 대한 기자 질문에 김 작가는 “자신의 방법으로 , 맘대로, 보고 싶은 대로 봐주길 바란다”라고 답했다. 한국 미술사에서 항상 새로움을 시도하는 선구자의 역할을 하던 김구림의 세계와 90이 다 돼 가는 나이에도 여전히 세상과 소통하고자하는 김구림의 현재를 모두 만나볼 수 있는 자리다. 김구림을 이해하고 느끼는 것은 관람객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