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프리뷰] 《디엠지(DMZ) 전시: 체크포인트》, 70년의 시간 층을 드러낸 ‘DMZ’
[현장프리뷰] 《디엠지(DMZ) 전시: 체크포인트》, 70년의 시간 층을 드러낸 ‘DMZ’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8.2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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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경기관광공사 ‘2023년 디엠지 오픈 페스티벌’ 일환
도라전망대ㆍ캠프그리브스ㆍ평화누리서, 9월 23일까지
9월 5~10일, 키아프ㆍ프리즈 연계 버스투어 진행 예정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일반인에게는 쉽게 공개될 수 없는 DMZ가 예술인들의 시선을 입고 대중 앞에 나선다.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는 경기도 디엠지 일대에서 오는 31일부터 11월 5일까지 현대미술 전시 《디엠지(DMZ) 전시: 체크포인트》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23년 디엠지 오픈 페스티벌(DMZ OPEN FESTIVAL)’의 영역 중 하나로,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된다. 오는 31일부터 9월 23일까지는 파주에서 열리고, 10월 6일부터 11월 5일까지는 연천에서 이어서 전시가 개최된다.

▲《디엠지(DMZ) 전시: 체크포인트》 임진각 평화누리 전시 전경 ⓒ서울문화투데이

제한구역 DMZ가 예술을 입고 열린다

디엠지 오픈 페스티벌(DMZ OPEN FESTIVAL)은 마라톤 대회, 학술대회, 무용, 음악 공연 등 11개의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아우르며, 예술가의 시선으로 DMZ의 과거ㆍ현재ㆍ미래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디엠지 오픈 페스티벌의 임미정 총감독은 “지난해까지 ‘Let`s DMZ’라는 명칭으로 행사를 운영하다가, 올해부터 ‘디엠지 오픈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11개의 프로젝트를 묶어서 선보이게 됐다”라며 “‘오픈’이라는 단어는, 일반인에게는 쉽게 공개되지 않았던 디엠지를 물리적으로도 연다는 뜻을 지니고 있고, 디엠지가 가지고 있는 가치에 대해서 함께 열고 바라보자는 뜻 또한 담고 있다”라며 이번 페스티벌의 의의를 전했다.

디엠지 오픈 페스티벌에서는 예술가뿐 만 아니라 세계적인 학자들도 함께 모여 디엠지가 지니고 있는 평화와 생명의 가치에 대해서 함께 얘기하고, 여전히 휴전국가인 우리나라의 미래 등을 마주할 수 있는 자리를 제안한다.

이 중 《디엠지(DMZ) 전시: 체크포인트》는 27명의 국내·외 현대미술 작가들이 참여한 전시회로, 한국의 분단 상황과 디엠지 접경지역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예술 작품으로 표현한 프로젝트다.

▲캠프그리브스 전시작, 임민욱, 커레히-홀로서서, 2023 (사진=경기도 제공)

이번 전시 큐레이터를 맡은 아트선재센터 김선정 예술감독은 “정전 70주년을 맞아, 올해 11회째 개최되는 DMZ전시에서 이번에는 북한과 가장 가까운 지역까지 전시영역을 넓혀봤다”라면서 “이번 전시에서는 원로, 중견 작가뿐만 아니라 젊은 작가가 다수 참여하고 있는데, 휴전 상황이 길어지면서 세대별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분단의 상황이나 DMZ가 가지고 있는 공간의 성격을 다르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번 전시에 그 점을 녹여내고자 했다”라며 전시 기획 방향성을 설명했다.

지금 우리 한국에는 분단을 직접적으로 겪거나 부모 세대의 경험으로 보다 가까이서 접한 세대와 분단이나 전쟁을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세대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 그러한 세대의 차이는 예술계에서도 드러난다. 젊은 세대의 작가들은 DMZ나 분단의 상황을 좀 더 추상적이거나 이미지적인 경험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인간의 시선에서 벗어나 DMZ가 가지고 있는 자연 그 자체로 옮겨가기도 한다. DMZ를 바라보고 있는 제약이 없는 예술가의 시선이 교차되는 자리인 만큼, 《디엠지(DMZ) 전시: 체크포인트》는 다층적인 레이어를 품고 있다.

파주의 도라전망대, 캠프그리브스, 평화누리를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며, DMZ의 가치를 회화, 조각, 영상, 설치, 퍼포먼스 작품으로 표현한다. 주요 참여 작가로는 90년대 파주 접경지역에서 작업한 사진들을 선보이는 토모코 요네다, DMZ의 완충 역할을 하는 식물을 채집하여 그래피티 제작·전시하는 이끼바위쿠르르, 남과 북 사이의 갈등과 주요 뉴스를 소재로 한 대형 회화 작품을 선보이는 서용선 등이 있다.

▲도라산 전망대 전시작, 이우성, 잘 지내고 계신가요, 2021
▲도라산 전망대 전시작, 이우성, 잘 지내고 계신가요, 2021 (사진=경기도 제공)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감각

전문적인 전시 공간이 아닌 군사지역, 군사적 공간에서 이뤄지는 전시인 만큼 예술작품과 공간의 융화가 전시에서 중요하게 고민된 지점이었다. 도라전망대에서는 총 9명의 작가(정소영, 토모코 요네다, 이끼바위쿠르르, 이재석 , 옥승철, 성립, 박보마, 킴 웨스트팔, 이우성)의 작품이 전시된다. 도라전망대에선 건물 중앙 공간, 외부 정원, 복도 등을 활용해 작품을 선보이는데 무심코 지나가면 이것이 작품인지, 건물의 장식인지 쉽게 알아채기 어렵기도 하다.

도라전망대에 들어서는 순간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이끼바위쿠르르의 <덩굴: 경계와 흔적>이다. 이끼바위쿠르르는 DMZ 일대 식물을 채집해 그것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구성을 한 그라피티 작품을 벽면에 선보인다. DMZ는 사람이 일상적으로 접근이 불가능한 곳인 동시에 식물들의 자생 이 가능한 역설로 잠식된 공간이다.

작가들은 DMZ를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기에 인식하지 못하는, 숨겨진 공간, 일종의 어떤 ‘틈’과 같다고 봤다. 식물들은 유일하게 허용된 침입자다. 이 식물들의 모습을 통해 이끼바위쿠르르는 공간에 대한 애도의 의미를 담아 보여주고 있다. <덩굴: 경계와 흔적> 작품을 보면, 벽면 위에 남겨진 실제 식물의 흔적을 볼 수 있는데 식물들의 크기가 매우 크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공간에서 가장 크게 자라난 식물들이 전하는 감각들이 우리가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미지의 공간을 상상케 한다.

▲도라산전망대 전시작,  이끼바위쿠르르의 <덩굴: 경계와 흔적> ⓒ서울문화투데이

2층 카페 공간 근처로 들어서면 절에서 날 법한 신성한 향이 나는데 이는 박보마 작가의 <초록의 실제>다. 박 작가는 38선을 볼 수 있는 도라전망대 창 앞에서 생화에 페인트를 칠한 조악한 장식품을 만들어 설치했다. 이 작품에서 나는 것이 신성한 향이다. 이 작업은 38선을 두고 4km씩 유격을 둔 DMZ를 전망대에서 보면서, ‘천국’ 같다고 느낀 작가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됐다. 박 작가는 국가라는 개념, 인공적인 무엇으로부터 벗어나 있는(벗어나 보이는) 자연의 이미지를 보며 낯선 감정을 느꼈다. ‘존재하지 않는 곳을 경험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통해 신성한 향과 매치되지 않는 식물로 작가는 DMZ를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시선을 표현하고 있다.

전망대 외부에서는 정소영 작가의 <환상통>이라는 작품을 볼 수 있다. ‘환상통’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신체의 부위에서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환상통>이라는 각각 한 면이 절단된 두 개의 돌은 본래 서로 하나였는지, 혹은 다른 두 개의 돌이었는지 알 수 없다. 지속적으로 빛과 위치에 따라 변화하며 보이는 절단된 돌의 형상은 과거 돌의 형상과는 무관하게 새로운 모습을 보인다.

정 작가는 전망대에 올라서서 풍경을 바라보는 동안 우리는 인식 속에서 사라지고 없는 부분을 감각하는 모순된 상황에 놓이고, 물리적 존재의 유무보다 기억의 작동에 더 강한 영향을 받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겪지 않았지만, 겪은 듯 하고 있지만 명확히 알 수 없는 DMZ에 대한 감각을 표현한 작품이다.

▲도라산전망대 전시작, 박보마 <초록의 실제> ⓒ서울문화투데이

공간이 가진 기억을 끌어내는 예술

이번에 전시가 열리는 캠프그리브스는 한국전쟁 이후 미2사단 506연대가 주둔했던 공간이다. 미군철수 이후 철거위기에 놓였었지만, 2013년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가 평화통일 체험시설로 리모델링 했고, DMZ 남방한계선에서 불과 2km 떨어진 곳인 민간인 통제구역 내 유일한 숙박형 문화예술 체험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캠프그리브스에서는 미군 보존 막사, 박물관, 체육관 등에서 19명 작가(임민욱, 장수미, 서용선, 성시경, 박노완, 마키코 쿠도, 권혜성, 박형진, 써니 킴, 미카엘 레빈, 문경원&전준호, 최원준, 킴 웨스트팔, 이정훈, 나미라, 조경진/조혜령, 혜안폴권카잔더)의 작품을 선보인다. 도라산 전망대 전시 작가와 겹치는 작가가 있다.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김홍성, 토모코 요네다, 최원준의 작품을 선보인다.

▲캠프그리브스 미군 보존 막사를 활용한 문경원&전준호 <자유의 마을> 전시 전경 ⓒ서울문화투데이

이 공간은 실제 미군들이 사용했던 보존 막사나 화장실, 체육관 시설을 그대로 활용해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박물관의 사진 자료, 재현품 등이 그대로 있는 상황 속에서 전시가 열린다. 관람객들은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작품인지, 원래 기존에 보존돼 있던 것인지 혼동이 생기기도 한다.

문경원&전준호는 한국전쟁 이후 한국에 주둔하던 미군들이 쓰던 막사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공간에서 한국의 DMZ 내에 있는 ‘자유의 마을(Freedom Village)’에 관한 영상작업 <자유의 마을>을 선보인다. 70여 년 동안 시간이 멈춘 채 현실에서 소외된 이곳을 과거로부터 불러내어 우리를 둘러싼 세계 의 모순과 한계를 직시하려 한다. 작가들은 찢어진 커튼과 무너져내리고 있는 벽의 페인트 자국들 늘어서 있는 폐허의 공간에서 변하지 않는 우리의 시간을 상영한다. 폐허가 가지고 있는 공간과 시간이 흐름에도 달라지지 않는 우리 세상 속 어떤 세계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자유의 마을’ 그 한복판으로 관람자를 데려간다.

▲캠프그리브스 도큐멘타 공간을 활용한 나미라 <밤시각> 전시 전경 ⓒ서울문화투데이

도큐멘타 공간 중 하나에서 전시를 선보이는 나미라 작가는 일제 강점기 무속인으로 살았던 증조할머니와 1990년도에 오토바이를 타고 38선을 넘었던 삼촌에게 영감을 받은 영상 작업 <밤시각>을 선보인다. 나 작가는 제주도 여행 당시 적외선 야간 카메라로 제주도를 촬영하던 중 장비에 결함이 생겨 과거의 장면이 현재에 반복적으로 나타나 두 세계를 이어주는 것 같은 영상을 마주할 수 있었다. 작가는 이 카메라를 비무장지대로 가져와 영상을 촬영하며, DMZ라는 경계의 지역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 신체와 정신의 경계를 얘기한다. <밤시각>은 홀로그램 아크릴을 사용해 영상의 면이 3개의 층위로 나뉘어져 전달된다. DMZ의 경계, 세계의 경계, 한 인간이 마주할 수 있는 경계를 짚어볼 수 있는 작품이다.

미국 주둔 당시 화장실, 세탁실로 활용됐던 공간에서 혜안폴권카잔더는 다수의 작업이 들어간 장소 반응적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그 중 <너와 나 가장(假裝)행렬>은 과속 방지를 위해 남한의 고속도로 갓길에 흔히 세워져 익숙한 T자 모양의 경광등을 각색해, 교동도의 국경 근처 논에서 우연히 발견한 허수아비를 연상시킨다. 작가는 공간 안에서 억압되고 있는 여성성을 상징할 수 있는 작업들을 선보인다.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열의 문제를 건드리면서 통일을 바라면서, 또 그것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까지 시선과 생각 집요하게 끌고 간다. ‘화장실’이라는 공간과 ‘DMZ’라는 공간이 작품과 연결되며, 새로운 감각을 마주하게 한다.

▲서용선, 시선, 2005 (사진=경기도 제공)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 큐레이터는 “디엠지를 바라보는 예술가의 시선은 무거운 역사와 정치에 비해 어쩌면 감성적이고 가벼워 보일 수 있지만, 이 가벼움 안에 여러 층위의 생각과 상상이 담겨 어느 곳으로든 날아가 새로운 이야기를 싹틔울 씨앗처럼 퍼져나갈 것이다”라고 전시의 의의를 밝힌 바있다.

《디엠지(DMZ) 전시: 체크포인트》는 지난 시간동안 우리가 생각하면 안될 것 같았던 영역의 시도까지 건들이며, 새로운 시선을 제안하고 있는 전시다. DMZ라는 공간은 민간인이 들어가서는 안되고, 우리의 삶과 영영 먼 곳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곳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일부라는 것을 전시는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