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 본 전시, 공예 재료로 다시 그리는 세계 지도 ‘사물의 지도’
[현장리뷰]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 본 전시, 공예 재료로 다시 그리는 세계 지도 ‘사물의 지도’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9.04 1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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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지도-공예, 세상을 잇고, 만들고, 사랑하라”
‘생명애(Biophilia)’를 기반으로 한 공예정신
본 전시 참여 작가 80% 신작 공개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인간의 손끝에서 시작되는 행위 ‘공예’는 미술과 디자인의 모태가 되기도 한다.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고, 경험해볼 수 있는 분야다. 급격한 기후 변화, 기술의 발전 속에서 방향성을 잃은 지금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손끝에서 가장 원초적으로 시작되는 ‘공예’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이 있을까.

▲본전시 <대지와 호흡하며 함께하는 사물들>섹션, 다카하시 하루키 작품 ⓒ서울문화투데이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 본 전시 “사물의 지도-공예, 세상을 잇고, 만들고, 사랑하라”는 지금 시대 속에서 ‘공예’만이 전할 수 있는 포용성과 확장성을 담고 관람객들을 만난다.

지난 8월 31일 비엔날레 개막 전 열린 전시투어에 앞서,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 강재영 총예술감독은 이번 전시를 통해 ‘자연 사랑’과 ‘생명 사랑’을 말해보고 싶었으며, 공예의 실천으로서의 역할을 짚어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강 감독은 “공예는 디지털 문명 속에서 가장 느리게 변화하고 있는 분야로, 공예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라며 “이번 전시는 공예의 재료, 공예가 만들고 있는 문화, 공예가 가진 기술, 공예가 만들어 갈 수 있는 미래를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동시에 강 감독은 이번 비엔날레 본 전시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정말 ‘공예로운’ 여정이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이번 비엔날레 본 전시에 참여한 작가 80%가 모두 신작을 발표했으며, 참여 작가 중 한 명인 유르겐 베이는 청주에서 자라나고, 생을 다한 팽나무를 활용해 작품을 제작하는 등 이 땅과 이어지는 작품을 선보인다”라고 이번 전시의 특별함을 언급했다.

▲전시 투어 전 본전시 '사물의 지도'에 대한 설명을 전하고 있는 강재영 총예술감독 ⓒ서울문화투데이

천연재료부터 디지털 하이브리드까지, 다섯 개의 소주제

문화제조창 본관 1층 로비 및 3층에서 펼쳐지는 본 전시는 총 5개의 서사를 가지고 있다. ▲대지와 호흡하며 함께하는 사물들 ▲인간-자연-사물을 연결하는 문화적 유전자와 맥락들 ▲손, 도구, 기계, 디지털의 하이브리드 제작방식과 기술들 ▲생태적 올바름을 위한 공예가들의 실천들 ▲생명사랑의 그물망에서 지속되는 희망들이 주제다. 이 주제들은 공예를 구성하는 재료, 문화, 기술, 미래를 차근차근 이해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준다.

첫 번째 섹션인 <대지와 호흡하며 함께하는 사물들>에서는 땅에 묻힌 금속의 변색된 아름다움을 발굴하는 작가 아디 토크부터 원시 식물의 풍경을 테라코타로 빚는 김명진, 도자 넝쿨과 풀꽃으로 정원을 구축하는 작가 다카하시 하루키 등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들의 작품은 이 땅위에 살아가며 마주치는 모든 생명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그 시간을 통해 우러나온 경외심이 작품 창작의 근원이 된다.

이 섹션에서 만나볼 수 있는 아카누마 키요시의 <미진 (Slight earthquake)>은 금속캐스팅 작품이다. 작가는 자연재해로 손상된 금속을 다시 새롭게 형상화해 작품을 완성한다. 그에게 있어 작품은 사유의 흔적을 담고 있는 결과물이다. 천연화학물을 금속에 바르면서 금속의 색깔 변화 등을 드러낸 작품들이다.

▲<미진 (Slight earthquake)> 앞에서 아카누마 키요시 작가 ⓒ서울문화투데이

이 공간에선 공예가 만들어낸 정원을 만나볼 수도 있다. 김명진은 정통성을 유지하는 도예 작업으로 실험적인 설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실패한 재현>은 이 땅위의 산맥들을 연상시키는 작업이다. 이와 함께 설치된 다카하시 하루키의 작업도 주목할 만하다. 허공에 마치 물줄기가 흐르는 듯한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는 도자기를 통해 어떤 공간이든, 그곳을 정원화시키는 작업을 꾸준하게 선보이고 있다.

두 번째 섹션 <인간-자연-사물을 연결하는 문화적 유전자와 맥락들>은 공예를 통해 전해지고 있는 인류의 문화를 만나보게 한다. 공예는 인류의 태초부터 함께 해 온 장르지만 대대로 이어진 가업과 지역, 문명권마다 각기 다른 유전자를 갖게 됐고 각기 다른 모습으로 발전돼 왔다. 하지만, 공예는 인간의 생로병사, 그리고 의식주와 가장 밀접한 예술이었다. 때문에 공예는 각기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어도 전통과 현대를 잇고 서로 다른 문화를 연결하는 특별한 존재가 됐다.

▲본전시 <인간-자연-사물을 연결하는 문화적 유전자와 맥락들>섹션, 신신조스 페이퍼컬처 '중국식 종이집' ⓒ서울문화투데이

이 섹션에선 한국 뿐 만 아니라 대만, 일본 등의 문화성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들이 공개된다. 또한, 나고 자란 국가를 떠나 새로운 곳에 정착하며 느낀 이질감을 풀어낸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이예림은 동양과 서양, 장식적인 것과 실용적인 것 그리고 영원함과 덧없는 것들 사이를 잇는 일종의 ‘다리’를 만드는 도예가다. 이번 전시에선 한국과 미국 생활을 경험을 담은 <캔디 앵글 테이블>을 공개한다.

두 번째 섹션에서 주목할 공간으로는 죽음을 공예적인 장례문화로 담아낸 테마 공간이 있다. 장례에서 사용되는 도기, 생과 사의 연결을 의미하는 듯한 매듭을 만나볼 수 있고, 신신조스 페이퍼컬처의 <중국식 종이집>은중화권에서 제사나 상례에 사용되는 호지로 제작한 작품이다.

이 공간의 마지막은 황란 작가의 <또 다른 자유_FB>로 마무리된다. 서양의 상징과 같은 독수리에 동양의 상징인 봉황의 꼬리를 접목한 하이브리드 생명체를 바늘과 실로 엮어서 표현한다. 황란 작가에게 있어 하나의 바늘들은 우리 인간이고, 그것을 엮는 실들은 관계를 의미한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선으로 엮을 순수한 관계망의 세계를 얘기한다. 삶의 연약함, 시간의 흐름, 상호 연결성 등의 개념이 작품 속에 녹아있다.

황 작가는 “팬데믹과 같이 인류의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고 비상하고 있는 우리의 희망을 얘기하고자했고, 하이브리드 생명체와 함께 있는 ‘거미’들은 우리가 지금 겪은 고통들을 의미한다”라며 “거미가 앞에 있을지라도 우리는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담았다”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본전시 <인간-자연-사물을 연결하는 문화적 유전자와 맥락들>섹션, 황란 '또 다른 자유_FB' (사진=청주공예비엔날레 조직위 제공)

세 번째 섹션 <손, 도구, 기계, 디지털의 하이브리드 제작방식과 기술들>에선 청주의 대표적인 문화유산 ‘직지’와 다양한 전통공예를 소개하는 동시에 새로운 기술들이 접목된 현대 공예들을 소개한다. 동시에 인간과 기술 간의 관계도 탐구해본다.

이상협의 <무제 2023>은 재료를 가공하는 데에 있어 산업 기술이 제한한 영역을 인간의 노력과 힘으로 넘어서고자한 작품이다. 작가는 공예의 행위와 결과물이 산업사외의 기술과 시스템에 얽매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술적인 도전을 통해 자신의 경계를 탐구한다. 산업화 이전의 수공예적인 생산 과정을 경험하면서, 작가는 동시대 작가들이 직면한 제작 조건을 초월하고 암묵적인 한계를 넘어선다. 이상협의 <무제 2023>는 작품의 원재료 형태의 모습인 순은 한 덩어리를 함께 전시한다. 어떤 재료가 어떻게 인간의 손으로 달라졌는지를 마주하게 한다.

▲본전시 <손, 도구, 기계, 디지털의 하이브리드 제작방식과 기술들>섹션, 이상협 '무제 2023' (사진=청주공예비엔날레 조직위 제공)

공예로 실천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해

전시 후반부의 두 섹션인 <생태적 올바름을 위한 공예가들의 실천들>과 <생명사랑의 그물망에서 지속되는 희망들>은 이전과는 다른 세계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변화된 삶을 선택해야 하는 인류에게 한 가지의 방향을 전달하고 있다.

<생태적 올바름을 위한 공예가들의 실천들>은 이번 비엔날레 본전시의 주제가 가장 잘 녹아있는 섹션이다. 산업 폐기물로만 치부되던 구리 조각과 덩어리를 아름다운 가구와 소품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든 스튜디오 더스댓, 버려진 플라스틱 로프와 어망을 수집해 지역의 직공들과 협업해 타피스트리로 제작하는 아리 바유아지, 해진 옷과 버려지는 사물을 수선해 정서적인 지속가능성을 실천하는 실리아 핌의 작품을 선보이며,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아니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공예’의 고민을 선보인다.

인도 작가인 아리 바유아지 <바다를 엮다> 플라스틱 로프와 어망으로 인도의 바다를 다시 구현해 선보인다. 인공적이고 공업적 재료로 완성된 바다는 우리에게 공예가 어떻게 자연과 인간을 포용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듯 하다.

▲본전시 <손, 도구, 기계, 디지털의 하이브리드 제작방식과 기술들>섹션, 직지 소개 섹션(사진=청주공예비엔날레 조직위 제공)

옻칠에 대한 열정하나도 디자이너, 도예가, 목수, 의사, 작가등 직업과 성별 테크닉도 무엇하나 닮은 것이 없는 17명이 모인 프로젝트 팀 서로재의 작품 <우리 서로 다리가 되어>도 인상적인 작품이다. 옻칠 의자를 이어 붙여 거대한 의자로 완성시키는 과정은 ‘함께’ 무엇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섹션 <생명사랑의 그물망에서 지속되는 희망들>에선 미래를 위한 공예의 실천들이 완성할 수 있는 세계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죽은 생명체를 표본화해 맑고 투영한 유리 속에 오래도록 살게 한 양유완 작가의 작품과 청주의 팽나무로 인간이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만든 유르겐 베이까지, 공예가 끊임없이 이어오고 있는 가치들의 열매를 만나볼 수 있다.

총 5개의 주제로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 나간 이번 전시는 마지막 다섯 번째 주제에 다다라서 다시 한 번 첫 번째 주제 ‘대지와 호흡하는 재료’로 닿는다. 자연 근원의 재료로 인간은 공예를 시작했고, 한동안 인간은 ‘쓰임’에 주목해 공예를 이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우린 지금 다시 근원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번 전시는 지금까지 인간들이 ‘공예’와 ‘사물’로 그려온 지도를 통해, 세계를 다시금 탐색하게 한다. 우리는 새로운 지도를 얻게 되는 것이다.

▲본전시 <생태적 올바름을 위한 공예가들의 실천들>섹션, 서로재 '우리 서로 다리가 되어' (사진=청주공예비엔날레 조직위 제공)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의 본 전시 “사물의 지도-공예, 세상을 잇고, 만들고, 사랑하라”는 전시에 출품된 개별의 작품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이 작품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이야기를 통해서도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공예는 노동집약적인 과정을 지니고 있는 분야다. 공예는 인간과 가장 가까이서 그 역할을 찾고, 동시에 가장 인간적으로 접근해서 시간을 투자했을 때 그 가치가 더욱 배가 된다. 전시장을 채운 3,000여 점의 작품엔 공예 작가들의 시간과 온기가 묻어 있는 듯하다. 그 끈질긴 아름다움을 느끼며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공예가들의 시선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본전시 <생명사랑의 그물망에서 지속되는 희망들>섹션, 유르겐 베이 '트리 트렁크 벤치 2023'(사진=청주공예비엔날레 조직위 제공)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는 관람객들이 더욱 깊이 있게 비엔날레를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제공한다. AI 오디오 가이드와 대화형 인공지능(챗 GPT) 서비스, 도슨트 프로그램이다. 관람객들은 리플릿과 가이드북에서 언제 어디서든 QR코드로 AI오디오 가이드에 접속할 수 있고, 본전시와 청주국제공예공모전, 초대국가전 등 대표 작품에 대한 궁금증을 답변해주는 대화형 인공지능(챗 GPT) 서비스는 본관 3층 전시장에 마련돼 있다.

전문적인 전시 가이드와 함께 깊이 있게 비엔날레를 돌아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매일 10시, 11시, 14시, 15시, 16시 총 5차례 사전예약으로 운영하며 회당 20명까지 함께할 수 있다. 지금 시대에 공예가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들어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