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비평]뉴아시아오페라단 〈맛달레나〉, 음악 · 무용 대등하게 녹여낸 ‘새로운 오페라’ 인상적
[이채훈의 클래식비평]뉴아시아오페라단 〈맛달레나〉, 음악 · 무용 대등하게 녹여낸 ‘새로운 오페라’ 인상적
  • 이채훈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 전문기자,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 승인 2023.09.05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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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음악을 오페라와 무용(리케이댄스) 협연으로 배역의 심리적 정체성 뚜렷하게 풀어낸 수작
한국초연, 맛달레나역 김희정, 카리스마 넘치는 노래로 청중 압도 
소극장 오페라에 오케스트라 편성 최대치로 관객에게 음악적 완성도 안겨줘
부산소극장오페라축제서 첫 무대 올려
뉴아시아오페라단이 국내 초연으로 올린 프로코피에프의 '맛달레나'의 한 장면.
▲뉴아시아오페라단이 국내 초연으로 올린 프로코피에프의 '맛달레나'의 한 장면.

지난 9월 1일과 2일, 이틀에 걸쳐 부산 금정문화회관 은빛샘홀에서 프로코피에프의 단막 오페라 <맛달레나>가 한국 초연됐다. 작곡자가 20살 때인 1911년에 쓴 이 작품은 70년 뒤인 1981년 오스트리아의 그라츠에서 세계 초연됐다. 그리고, 프로코피에프가 1953년 사망하고 70년이 흐른 2023년 한국의 관객들을 만났다. 세계 무대에 자주 오르지 않는 이 작품을 발굴하여 프로코피에프 서거 70년을 기념한 것은 의미가 컸고, 해설을 맡은 베이스 황상현이 프로코피에프 1인칭 시점으로 작품을 소개한 것은 그래서 각별했다. 

음악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4장으로 구성된 오페라는 연주시간 약 50분으로, 네 악장의 환상곡이나 교향곡처럼 들렸다. 지휘자 박성은이 이끄는 오케스트라(피아노와 엘렉톤을 포함, 24명으로 구성)는 출연 성악가들과 호흡을 주고 받으며 정교한 디테일과 뉘앙스를 잘 표현했고, 클라이맥스 대목에서 ‘화산처럼’ 강렬한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세 주인공 맛달레나(소프라노 김희정), 제나로(테너 조중혁), 스테니오(바리톤 김기환)의 앙상블은 이 작품의 영혼이었다. 러시아어 가사의 딕션과 유장한 호흡의 선율은 매우 고난도였는데, 세 주인공은 자기 배역이 몸에 밴 듯 자연스레, 유감없이 열창했다. 특히 맛달레나역의 김희정은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와 드라마틱한 연기력으로 청중을 압도했다. 

▲뉴아시아오페라단이 국내 초연으로 올린 프로코피에프의 '맛달레나'의 한 장면.
▲뉴아시아오페라단이 국내 초연으로 올린 프로코피에프의 '맛달레나'의 한 장면.

〈맛달레나〉는 15세기 피렌체, 세 남녀의 삼각관계와 죽음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맛달레나는 예술가 제나로와 결혼했지만, 그의 친구인 연금술사 스테니오와 바람을 피운다. 이 사실을 제나로가 알게 되자 맛달레나는 두 사람이 싸우도록 부추긴다. 제나로는 스테니오를 죽이지만, 자기도 치명상을 입는다. 죽어가는 제나로는 맛달레나에게 자살할 것을 요구하지만 맛달레나는 자신이 진정 사랑한 사람이 누군지 잠시 생각한 뒤 창문으로 달려가 “낯선 사람이 남편을 죽였다”며 도움을 청한다. 어둡지만 매혹적이고, 허무하지만 치명적인 스토리다.  

▲뉴아시아오페라단이 국내 초연으로 올린 프로코피에프의 '맛달레나'의 한 장면.
▲뉴아시아오페라단이 국내 초연으로 올린 프로코피에프의 '맛달레나'의 한 장면.

이날 공연의 특기할 점은, 무용의 비중이 높았다는 점이다, 이경은 안무의 리케이 무용단은 오페라의 일부 장면에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통념을 뛰어넘어, 시종일관 드라마와 음악의 이미지를 몸으로 표현하여 생동감 있는 무대를 선사했다. 2장 맛달레나와 제나로의 이인무는 관능적인 매력이 가득했고, 3장 제나로와 스테니오의 2인무는 극적 긴장감이 넘쳤다. 다이내믹한 군무, 손과 발의 디테일까지 섬세하게 처리한 안무가 인상적이었다. 무용수 손정민과 소프라노 김희정은 의상, 분장까지 코디네이트하여 맛달레나의 ‘두 페르소나’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무용과 음악을 대등하게 결합시킨 이번 프로덕션은 ‘새로운 형태의 오페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다양한 요소를 통일하여 강렬한 예술적 경험을 선사한 예술총감독 그레이스조의 숨은 노력과 집념, 예술적 통찰을 엿볼 수 있었다. 

394석의 금정문화회관 은빛샘홀에 최적화된 규모로 공연을 준비한 것도 성의 있어 보였다. 오케스트라와 성악가의 음량, 무용의 규모와 동선을 적절하게 지정했기 때문에 만족할 만한 공연이 가능했다. 특히 이번 공연을 위해 임시로 오케스트라 피트를 만들어서 24명의 연주자를 배치한 것은 서울 예술의전당의 소극장오페라축제보다 한 걸음 진전된 면모였다. 

물론 아쉬움도 없지 않다. 마지막 순간 맛달레나의 극적인 감정 변화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는데, 이를 음악이나 액션으로 강조할 방법은 없었을지 궁금하다. 자막은 좀 더 다듬을 소지가 있어 보였다. 4장 직전, 나머지 스토리를 설명한 자막은 불필요해 보였다. 리허설 시간이 충분했다면 무용과 음악이 좀 더 완벽하게 어우러지도록 하여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제나로가 예술가고 스테니오가 연금술사라는 점이 표현되지 않았고, 맛달레나와 스테니오의 연애 행각이 묘사되지 않은 것에 불만을 느끼는 관객이 존재할 수 있지만 이는 원작의 한계를 탓할 일이다. 

▲뉴아시아오페라단이 국내 초연으로 올린 프로코피에프의 '맛달레나'의 커튼콜 장면.
▲뉴아시아오페라단이 국내 초연으로 올린 프로코피에프의 '맛달레나'의 커튼콜 장면.

프로코피에프가 이 공연을 보았다면 매우 기뻐했을 것이다. <맛달레나> 한국 초연을 위해 최선을 다한 뉴아시아오페라(단장 그레이스조)의 모든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부산소극장오페라축제는 <버섯피자>(8일 7시반/9일 4시)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13일/14일 7시반)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