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MMCA 소장품전 《피카소 도예》, ‘도예가’로서의 피카소 만나기
[현장리뷰] MMCA 소장품전 《피카소 도예》, ‘도예가’로서의 피카소 만나기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9.0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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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관 5층 기획전시실, 내년 1월 9일까지
피카소 작고 50주년 맞아, 피카소의 새로운 모습 조명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회화 작가로 대중에게 더 익숙한 피카소의 도예를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직무대리 박종달) 청주 미술품수장센터(이하 청주관)에서 열리는 소장품 기획전시 《피카소 도예》다. 이번 전시에서는 MMCA 이건희컬렉션 중 피카소 도예 작품 107점을 만나볼 수 있다.

▲《피카소 도예》전시 전경 (사진=MMCA 제공)

《피카소 도예》는 2021년 기증된 이건희컬렉션 가운데 피카소 도예 107점을 공개하면서,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도예가로서의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를 조명하는 전시다. 특히 올해는 피카소 작고 50주년이 되는 해로 도예 작품을 통해 피카소의 창작 세계를 재조명해보는 데 의미가 있다. 또한,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 기간 동안에 ‘도예전’을 개최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자 기획됐다. 도예의 매력과 예술적 가치를 재확인하는 기회를 마련코자 한다.

피카소는 ‘도예’를 말년에 새롭게 시작했다. 그는 입체주의의 선구자이며 현대미술의 천재 화가로 불리며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판화, 도예, 무대미술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한 분야에 안주하지 않은 열정적인 예술가였다. 특히, 도예는 피카소가 화가로서 괄목할만한 성취를 이룬 말년의 시기에 시도한 새로운 도전으로, 흙과 불의 특성에 매료돼 수많은 작품을 제작했다.

▲《피카소 도예》전시를 설명하고 있는 설원지 학예사 ⓒ서울문화투데이

말년에 시작한 새로운 도전 ‘도예’

피카소는 1906년 스페인 출신 도예가 파코 프란시스코 두리오(Paco Francisco Durrio, 1868-1940)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도자를 접하게 됐다. 1929년에는 도예가 장 반 동겐(Jean Van Dongen, 1883-1970)과의 협업으로 화병을 제작하는 등 도예에 대한 호기심을 이어간다. 그리고 1946년 휴가차 머문 지중해 연안의 도시 발로리스 마두라 공방을 방문하게 되면서 도예와 본격적인 인연을 시작한다.

피카소는 마두라 공방에서 도예의 본질적인 요소들을 성실하게 배워나갔다. 초기에는 도자 장인들의 도움을 받아 접시 위에 디자인하는 방식으로 도조에 가까운 작업을 이어갔고, 점차 도자의 모양을 변형하면서 피카소만의 조형적 특성을 형성하게 된다.

피카소 도예의 특징은 도예에서 회화와 조각, 판화의 요소를 두루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피카소는 평소 즐겨 다뤘던 주제를 도예에 자유롭게 응용했다. 여인과 동물, 신화와 투우, 사람들과 얼굴 등 각각의 주제를 반복적으로 표현하거나 주제의 상충적인 결합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는 것을 즐겼다. 피카소 특유의 입체주의 성향이 드러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피카소 도예》전시 전경 (사진=MMCA 제공)

전시는 피카소가 자주 사용한 주제인 여인, 신화, 얼굴, 투우 등으로 구성됐다. 도자의 다양한 측면을 활용한 작품을 선보인 피카소이기 때문에, 전시 공간은 도자를 360도로 관람할 수 있는 환경으로 조성됐다. 또한, 당시 마두라 공방의 모습과 작업 환경을 담은 사진 등의 아카이브 56점과 영화 1편(루치아노 엠메르, 피카소를 만나다, 2000)이 설치돼 피카소가 어떻게 도예에 빠져들게 됐는지 느껴볼 수 있게끔 한다.

이번 전시의 특징으로는 전시에 출품된 작품이 모두 마두라 공방에서 제작한 에디션이라는 것이다. 피카소는 대중적인 예술을 꿈꾸면서, 도예에 에디션 개념을 도입해 20세기 도자 역사에 새로움을 불어넣었다. 에디션 제작은 도예의 대중성과 범용성을 구현할 수 있도록 해줬고,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작품을 향유할 수 있기를 바랬던 피카소에게 더없이 매력적인 작업이었다.

전시에 출품되는 에디션 종류는 총 세 가지다. 피카소가 사용한 기법과 재료를 바탕으로 원본을 복제한 ‘에디션 피카소(edition picasso)’, 작품 원판을 석고틀로 제작하고 점토로 찍어내는 ‘엉프렁트 오리지널(empriente originale)’, 리놀륨 판화에 새겨 만든 도장을 점토 위에 눌러 제작한 ‘뿌앙송 오리지널 드 피카소(poinçon original de picasso)’다.

▲《피카소 도예》전시에 출품된 얼굴 모양이 그려진 도자들 ⓒ서울문화투데이<br>
▲《피카소 도예》전시에 출품된 얼굴 모양이 그려진 도자들 ⓒ서울문화투데이

피카소 특유의 자유분방함, 도자로 드러나

20세기 도예 역사에서 피카소의 작품은 유희적 도예로 분류된다. 도예 작업을 통해 해방감을 느꼈으며 흙을 만지면서 느낀 창작의 자유가 유희적 도예의 근간이 됐다. 점토가 촉촉한 상태에서 피카소는 도자의 목을 꺾거나, 손잡이 등으로 다채로운 형상을 만들었다. 피카소의 도예는 보는 이들에게도 즐거움을 전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설원지 학예사는 전시장 가장 처음에 놓인 <큰 새와 검은 얼굴>(1951)들을 주목했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올빼미로 추측되는 새의 모습과 사람의 웃는 얼굴을 결합해 혼종의 이미지를 재창조했다. 또한, 새의 날개이면서 사람의 팔과 같은 화병의 손잡이는 피카소 도예 특유의 조형적인 특징을 담고 있다.

▲파블로 피카소, <큰 새와 검은 얼굴>, A.R.118, 1951, 백토, 화장토 장식, 나이트 각인, 50x47x38cm ⓒ2023 - Succession Pablo Picasso - SACK (Korea) (사진=MMCA 제공)

설 학예사는 “<큰 새와 검은 얼굴>이 이번 전시 출품작 중 크기가 크고, 이 작품을 시작으로 전시가 시작되고 마무리되도록 공간을 기획했다”라며 “전시 시작에서는 이것이 피카소의 도예라고 느끼면서 진입할 수 있고, 하나의 서사와도 같은 전시를 다보고 나면 새와 사람의 얼굴이 혼합돼 있는 이 작품에서 관람객들이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피카소의 도예 작품 속 주제가 되는 여인, 사람의 표정, 비둘기와 염소, 개, 물고기 들은 굉장히 자유분방한 선으로 묘사되고 있다. 선에서도 즐거움이 느껴지고, 하나의 도자가 캐릭터처럼 느껴지는 것도 전시에 재미를 더한다. 피카소는 두 세가지 분야를 섞는 것으로 자유로움과 자신의 마초성을 드러냈다. 이번 전시는 회화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피카소의 새로운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