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리뷰] “그냥 봐! 그리고 살아, ‘인간’으로” MMCA서울 《김구림》展 연계공연
[현장 리뷰] “그냥 봐! 그리고 살아, ‘인간’으로” MMCA서울 《김구림》展 연계공연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9.11 23: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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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공연, 영화-무용-음악-연극 4개 파트
현대 문명과 인간 사이, 변치 않은 메마름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왜 김구림에게 ‘총체예술가’라는 칭호를 줬는지 알 것 같은 공연이었다. 지난 7일 오후 2시 MMCA서울에선 전시 《김구림》 연계공연이 열렸다. 공연은 영화-무용-음악-연극 4개의 파트로 준비됐다. <1/24초의 의미>(1969년), <문명, 여자, 돈>(1969) 영화 두 편을 시작으로, 무용극 <무제>(1969 안무/2023 재연), 음악 <대합창>(1969 작곡/2023 재연), 연극 <모르는 사람들>(1969 대본/2023 재연)이 관람객을 맞았다.

▲무용극 <무제> 공연 모습 (사진=서울예대 제공)

무용-음악-연극에는 서울예술대학교 공연학부 연기전공, 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과, 한양대학교 예술ㆍ체육대학 무용학과 재학생 70여 명이 함께했다. 현장에는 많은 인파가 몰려 원래 예정됐던 시각보단 조금 늦어진 시각에 시작됐다. 공연장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관람객들도 있어, 중간에 비는 좌석을 기다리는 행렬도 이어졌다.

도심 속 방황하는 존재들

<1/24초의 의미>는 1969년 촬영한 실험 영화로 김구림 작가가 제작, 감독, 편집, 디자인을 총괄했다. 1초당 24개의 프레임으로 구성되는 영화 구조에 기반해 제작한 실험적인 작품으로, <1/24초의 의미>는 삼일고가도로, 세운상가, 고층빌딩, 육교, 옥외광고판, 방직공장 등 빠르게 변모하던 서울의 모습을 속도감 있게 담고 있다. 영화는 1초 간격으로 바뀌는 무빙 이미지들을 조합해 통제 불가능한 현대 도시와 그 속도에 미처 적응하지 못하고 배회하는 현대판 룸펜의 모습을 병치시킨다. 영화 속 도시의 모습은 지금과 다르면서 같은 것 같다. 하품을 하고 흡연을 하는 남자의 모습은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1969년 같은 해에 제작된 <문명, 여자, 돈>(필름: 1969, 영상:1969-2016)은 상경한 한 여인이 무직의 고단함과 권태를 달래고자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앉은뱅이 화장대만 있는 단칸방에서 여자는 하염없이 흐르는 시간을 견디고, 무료하게 화장을 했다가 옷을 갈아입곤 한다. 허름한 실내 공간과 무기력하게 일상을 견디는 여인, 그 위로 몽롱하게 중첩되는 입술과 지폐 등의 화면 구성은 한국 사회의 성장이 개인의 삶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의 단면을 표현한다.

▲김구림, 문명, 여자, 돈, 필름 1969, 영상 1969-2016,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22분 10초.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MMCA 제공)
▲김구림, 문명, 여자, 돈, 필름 1969, 영상 1969-2016,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22분 10초.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MMCA 제공)

김구림 작가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중앙집중화 정책으로 수도권이 빠르게 도시로 변해가는 세상을 주목했다. 그리고 발전하는 현대문명과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인간과 낙오되거나 제외된 인간을 주목해 작품을 만들었다. 동시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의 시작이 담긴 실험영화 필름은 우리에게 어떤 감각을 전달할 수 있을까. 분명 영화 속 배경은 지금의 도시와는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무료하게 시간을 삭이듯 방 안에 갇혀있는 젊은 여자의 모습은 왠지 지금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 같다. 더 많아진 지도 모르겠다.

의상, 안무, 음악, 연출…모든 것을 아우르다

김구림 작가는 MMCA 개인전을 선보이면서, 과거에 성사되지 못한 공연예술을 선보일 수 있다는 것에 큰 보람을 표한 바 있다. 자신이 살아있으면서 직접 연출을 하고 무대를 올린다는 것에 있어 강한 의지도 드러냈다. 지난 7일에 열린 연계 공연에는 그 힘과 열정이 모두 담겨 있었다.

무용극 <무제>의 시작은 굉장히 기이했다. 인간이 아닌 듯한 존재들이 무대의 세 방향에서 아주 천천히 걸어 나와 무대 한 중앙에서 풀썩 쓰러지거나, 아주 느리게 바닥에 몸을 붙였다. 무용극에 나온 이들은 마치 어린 아이들이 유령 분장을 한 것처럼 흰 천을 뒤집어 쓴 의상을 입고 있었고, 한국 민속무용 승무의 고깔과도 같은 모자를 쓰고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독특한 의상이 무용극의 연출을 한층 극대화 시켰다.

몸과 얼굴을 다 가리고 있는 의상의 형태는 무대로 걸어 나오는 이들의 개별적 존재를 인지할 수 없게 만들었다. 무용극이 진행될수록 인간이라고 믿고 있던 존재들에 대해서 의심마저 들게 한다. 이는 출연진들이 무대 중앙에서 하나의 거대한 원형으로 뭉쳐지면서 더욱 극대화됐다. 바닥에 몸을 붙이고 누운 이들은 어디가 머리이고 어디가 발인지 알 수 없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묶여갔다.

▲음악 <대합창> 공연 모습 ⓒ김윤재(코코아픽쳐스) (사진=MMCA 제공)

무대의 세 출입구에서 들어온 하나의 존재들이 형체를 알 수 없는 하나의 형태로 완성되는 순간들은, 마치 무대가 하나의 캔버스가 되는 듯한 느낌까지 들게 한다. 그리고 모든 존재들이 뭉쳐지고, 물결이 일 듯 이 존재들에게서 움직임이 번져나간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뭉쳐졌던 존재들은 분해되고, 마지막에 이들은 한 존재 위로 자신들의 고깔을 벗어던지며 인간으로, 개인으로 존재하며 무대 바깥으로 흩어진다.

현대 사회 속 한 명의 개인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다양성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과연 우리는 인간 고유의 개성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고 있을까. 가끔씩 우리는 익명성에 기대어 거대하고 무지성의 생명체가 되기도 하고, 가끔은 의식 없이 시대의 흐름에 내 자유의지를 맡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린 인간이어야 할 것이다. 얼굴을 가지고 있고, 몸을 가지고 있는 한 존재로 고깔을 벗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김구림 작가는 말하고 있는 듯 했다.

<대합창>이라는 제목의 음악은 인간이 낼 수 있는 기이한 소리의 형태를 엮어냈다. 중얼거림, 잡소리, 소리 지름 등으로 이뤄지는 음악은 마치 도시 소음 같기도 하다. 또한 합창 중간 중간 하품을 하거나 기이한 소리를 내는 이들은 도시 속 방향을 찾지 못한 이들의 존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음악이라면, 어떠한 음률과 박자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합창>은 그 고정관념을 부수면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현재 《김구림》 전시 아카이빙 섹션에선 <대합창> 구상을 위한 악보도 전시돼 있다.

▲MMCA 《김구림》展에서 전시 중인 <대합창> 구상을 위한 악보, 1970, 골판지, 종이에 드로잉, 25X34.4cm. 작가소장. ⓒ서울문화투데이

김구림, 무대 깜짝 출연 백미

마지막으로 공연을 장식한 연극 <모르는 사람들>은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인간 군상을 소재로 한 전위극이다. 오늘 날 우리 사회에 대한 작가의 통찰과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날 공연에서 백미는 연극 <모르는 사람들>에 직접 출연한 김구림 작가였다. 작가는 지팡이를 짚고 꼿꼿하게 서서 무대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무대에 흩어져있는 여러 인물들을 돌아보곤 “아는 사람이 없네”라고 말한다. 원로 작가가 뱉은 그 한 마디 대사에는 예술가의 여전한 기백과 지금 사회를 바라보고 있는 작가의 시선이 은유돼 있다. 제각각 각자의 일을 하면서, 소통되지 않는 언어를 단편적으로 내뱉고 분화되고 있는 지금 우리 존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동시에 예술을 보는 대중들에게 던지는 작가의 메시지도 담겨있는 듯하다. 명확한 의미, 내포된 선명한 전위를 파악하려 예술 그 자체를 직시하지 못하는 시선을 짚는 듯도 하다.

▲ 연극 <모르는 사람들>에 직접 출연한 김구림 작가ⓒ김윤재(코코아픽쳐스) (사진=MMCA 제공)

‘영화-무용-음악-연극’ 총 4개의 파트로 구성된 이번 공연 예술은 한 가지 장르로는 정의될 수 없는 김구림의 ‘총체적예술가’ 면모를 보여준 자리였다. 공연은 단순히 무대 위에서만 완성되지 않았다. 무대의 공연은 자연스럽게 MMCA서울에서 선보이고 있는 《김구림》 전시와도 이어졌다. 특히 <모르는 사람들>에서 반복적으로 터져 나오는 <현상에서 흔적으로>, <음과 양>, <걸레> 등의 작품명은 무대 공간을 뛰어넘어 김구림이 만들어오고 있는 예술세계를 끊임없이 연상하게 했다. 김구림은 ‘총체예술가’다. 경계를 뛰어넘어, ‘김구림’이라는 장르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