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1996년 아시아 최초 ITI 회장국 등극한 대한민국
[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1996년 아시아 최초 ITI 회장국 등극한 대한민국
  •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 승인 2023.09.1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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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차 ITI 총회와 페스티벌 한국유치와 그 개최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세계 ITI 본부가 많은 공을 들여 1996년도 세계대회 개최지 선정을 했다. 그 개최를 위해 공들였던 나라와 장소는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였다. 프랑스 본부에서 ITI의 모든 살림을 결정하는데 막강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페리네티 본부장은 각국의 대표들과 논의하여 서유럽중심의 ITI 사업을 좀 더 세계로 확장하기 위해 유럽이 아닌 다른 대륙으로 눈을 돌린듯하다. 

그럼에도 개최지를 남미로 결정하는 데는 여러 어려움이 따른듯했다. 무엇보다도 치안의 확신과 안정이 큰 어려움이었던 듯하다. 한편 한국 ITI본부는 대망의 두 가지 큰 뜻을 품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북미 뉴욕을 거쳐 남미 중심에 자리 잡은 베네수엘라 카라카스로 이동했다. 

세계대회장이 되려는 큰 꿈을 안은 김정옥 회장님은 국수호 춤꾼의 춤과 한국 전통무의 춤바람을 백분 준비하였고, 김의경 부회장을 위시한 양혜숙, 김문환, 국수호, 손진책, 허순자 등 또한 우리와 함께하며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김정옥 회장님 부인등 10여 명에 가까운 한국위원들은 그 면면 만으로도 막강하였다.

아쉽게도 벌써 그 당시에도 수도 카라카스의 치안은 불안했다. 국제행사 개최는 신변보장이 불안하므로 ITI 총회에 참석한 외국인 예술인들은 애당초부터 위성도시로 분리돼 모셔졌다. 마치 분당이나 일산같은 위성도시에 배치되었으며 신변 보호가 철저하였다. 회의나 심포지엄은 예술행사도 제한된 그 위성도시에서만 진행됐으며, 모든 행사는 우리가 투숙한 도시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외부 활동은 제한적이었다. 반면 세계 ITI멤버들은 한정되고 폐쇄된 공간에서의 진행으로 인해 더욱 긴밀하고 가까워지는 경험을 한다. 

한국 ITI 멤버들의 뚜렷한 두 가지 목적, ‘세계회장피선’과 ‘20회 세계대회 한국유치’를 위해 10여 명이 안 되는 한국위원들은 열심히 뛰었다. 마치 장기판에서 김정옥 왕을 보필하는 졸들처럼 한국 위원들은 힘을 합하여 목적달성에 온 힘을 다해 드디어 목적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룬다. 1997년 아시아권 최초의 회장국 피선과 제20회 세계 ITI총회와 페스티벌 한국유치에 팡파르를 불며 귀국하였다. 참으로 뿌듯하고 신나는 경험이었다.

이 과정에서 큰 이슈가 발생했다. 회장선거와 개최지 선거에 마음을 졸이고 있을 때, 한국발  두 가지 빅뉴스가 터졌다. 첫 뉴스는 200여 명이 모여 점심식사 후 환담을 즐기는 시간에 맞딱뜨렸다. 텔레비전방에 앉아 얘기를 주고받고 있는데 갑자기 한국의 ‘삼풍백화점 붕괴’ 장면이었다. 그 앞에 앉아 있던 우리 모두는 놀라서 한국위원들 집안의 안위를 걱정하며 묻고 대답하기 바빴다. 그러고 한 2일이 지나지 않아 뉴스에서는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이 체포되어 나란히 법정에 서있는 모습이 이침 저녁으로 방영됐다. 한국인으로서 수치스러운 마음을 피할 길 없었다. 참으로 몸 둘 바를 모르고 있는데, 인사가 없던 타국의 위원들까지 인사를 나누며 위로해 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감사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창피하여 우리의 두 가지 목표달성에도 큰 차질이 있을 거라고 기대를 접으려 했다. 우려와 달리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두 가지 큰 뜻을 이루고 귀국하게 된다.

세계 ITI는 당시 한국이 대회를 유치하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역설적이게도 위에 두 사건으로 한국 위원들의 그 열정과 배경을 받쳐줄 만한 발전상을 텔레비전 방영으로 인지하게된 셈이었다. 또한 아시아라는 미지의 세계에 한국의 ITI 본부가 다리를 놓을만한 열정과 능력이 있다고 인정하는 계기가 된 듯했다. 

어찌 되었던 한국 ITI는 한국 공연예술 역사상 쾌거를 이룬 셈이며 그 일로 인해 한국 공연예술계에는 큰 발전의 발걸음을 내디뎠다. 공연예술축제의 개최지가 서울에 국한되지 않고 <과천한마당축제>가 또 하나의 공연예술축제의 거점이 되었는가 하면 그에 자극을 받고 <안성거리축제>며 <가평 재즈축제>가 후에 발전을 더하며 <의정부음악극축제>도 오늘날 한국의 지방축제의 큰 물꼬를 튼계기를 가져왔다고. 본다. 

다음에는 ITI 한국 본부가 발전시킨 <BESETO 연극 축제>와 아태지역협회 발족과 더불어 생긴 <아태공연예술축제> <NIB THEATER 페스티벌> 탄생과 발전에 관해 논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