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세상을 보는 창] 지구별 여행 이탈리아편, 느림의 도시 오르비에토
[예술가의 세상을 보는 창] 지구별 여행 이탈리아편, 느림의 도시 오르비에토
  • 유승현 아트스페이스U대표, 설치도예가
  • 승인 2023.09.13 15: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승현 아트스페이스U대표, 설치도예가

원주민들이 타는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산 중턱까지 올라갔다. 더 이상의 집들이 있을까 싶을 만큼 좁은 길, 시골버스노선이다. 바람이 살랑 불어대니 바다 향과 섞인 지중해 특유의 식물들이 품어내는 싱그러움이 코끝에 스민다. 바다를 뒤로하고 산으로 오를 준비를 했다.

슬로우 푸드의 발상지 오르비에토

오르비에토는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주에 있는 곳으로 해발고도 195M의 바위산에 위치하며 900년의 역사를 지닌 작은 도시이다. 작다는 표현보다는 조용한 곳이며 조용한 곳이라는 표현보다는 느리다는 표현이 적당하다. 산꼭대기에 위치한 오르비에토는 대중교통으로 하차하고도 한참을 올라야 하기에 이곳 원주민들도 케이블카를 이용한다. 등반하는 기분으로 하늘 끝과 맞닿은 그곳에 도착하니 쾌적한 공기와 아름다운 풍광이 기다리고 있다. 소중하게 정돈된 자연환경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주변의 비옥한 농업지대의 유통과 산업 관광의 중심지답게 ‘오르비에토’라는 이름으로 생산되는 백포도주는 매우 유명하다. 하지만 더 유명해진 계기는 세계최초로 슬로우푸드 운동의 발상지였기 때문이다. 1999년경 이탈리아의 세 도시는 치타슬로(cittaslow) 운동을 시작했다. 이 뜻은 이탈리아 말로 ‘유유자적한 도시, 풍요로운 마을’이라는 뜻인데 이것이 영어로 슬로시티다. 당연히 오르비에토는 패스트푸드점이 전혀 없다. 소상인들을 보호하고자 대형마트의 입점을 철처히 배제하고 있으며 타지역 상인들의 부동산거래를 허가하지 않는 것을 오랫동안 지켜나가는 곳이다. 결국, 지역경제에 환원이 되어 시민의 삶에 큰 도움을 주게 되고 대를 지켜가며 가업을 이어가는 곳이 많다고 한다. 잘 먹고 잘살기 위한 노력은 이것에 그치지 않았다. 자동차 대기 가스를 줄이기 위해 마을밖에 차를 세우고 마을광장의 차량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한참을 걸어 다니는 수고로움을 겪지만, 대기오염이 사라지고 산뜻한 마을 공기를 선물로 받았다. 주차장 자리가 될뻔한 대광장에는 전통시장을 열린다. 오르비에토 주민들은 이곳이 “사람들과 물건을 내다 팔고 우정을 나누고 사랑에 빠지는 장소”라고 자랑을 한다. 어쩌면 슬로우푸드 운동의 핵심이 되는 표현이다.

원주민 2만 명에 관광객 200만 명

유유자적한 도시, 풍요로움을 만들고 유지해나가는 오르비에토. 이 마을의 지역 정신은 느림이다. 느림의 미학을 지켜나가는 이념과 철학은 원주민 2만 명밖에 안 되는 소도시를 1년에 20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곳으로 만들었다. 1999년경부터 시작된 슬로시티의 전통을 지역주민이 주도적으로 지켜나가고 생태적으로 건강한 마을을 만들기 위한 도시의 노력은 성공적이었다. 지역의 자연문화를 최대한 보존하고 지역의 생산품으로 지역경제를 살리게 되니 결국 자연스럽게 관광산업으로 연결이 된 것이다. 일일 내내 관광객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이탈리아인의 애향심과 자부심이 작은 도시 오르비에토를 큰 도시로 만들었다.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이 마을에 있는 특산물이 저 마을에는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지역의 대표적 특산물이 공항에 없는 경우도 있다. 내 고장을 지키다 보니 다른 지역도 지켜주게 되는 셈이다. 오르비에토의 슬로우 시티 운동은 전 세계에 교육화되어 한국의 도시재생을 위한 프로젝트에 많이 활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개발을 위해 도시를 뜯어내기전에 도시가 지닌 지역의 문화와 지역의 특성이 무엇인지……. 그것부터 고민하면 좋겠다는 필자의 생각이다. 슬로시티 선언문을 살펴보자면 “우리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흥미를 갖는 도시, 훌륭한 극장, 가게, 카페, 여관, 사적, 그리고 풍광이 훼손되지 않는 도시, 정통장인의 기술이 살아있고 현지의 제철 농산물을 활용할 수 있는 도시, 건강한 음식, 건강한 생활, 즐거운 삶이 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도시를 추구한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참 이해하기 쉽다. 슬로시티 국제 연맹 가입조건은 인구가 5만 명 이하, 환경정책을 시행하는 곳, 유기농 생산과 소비, 전통음식과 문화보전 등의 조건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친환경적인 에너지를 개발하고 차량통제를 하거나 자전거를 이용하고 경적 등 소음이 없는 곳이어야 한다. 나무 심기와 패스트푸드 근절, 문화유산 지키기 등을 실천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시아 최초로 전남 4개 지역을 포함하여 경남 하동 등 12곳이 가입되어 있다.

돌산 꼭대기에 있는 오르비에토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모든 것이 작게 보인다. 사람도 작고 자동차도 작고 심지어 넓은 바다도 작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