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별보기와 인공조명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별보기와 인공조명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 승인 2023.09.13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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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조명설계를 한다고 하면 이구동성으로 빛은 우리에게 혜택이며 그로인해 우리 삶이 엄청나게 그 이전과 달라졌다고 이야기하면서 또 과한 빛으로 인한 빛공해에 대한 우려도 잊지 않는다. 늦은 시간까지 빛이 가득한 거리는 낮시간 동안의 활력을 연장해 줄 뿐 아니라 안전함까지 보장해주어 밝음으르 탓할 수만은 없음을 안다.

아이러니한 것은 밤거리가 밝아질수록 별보기에 대한 로망을 꿈꾼다는 사실이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별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일은 드물다. 지방의 소문난 별보기 명소에는 도시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오랜만에 이렇게 많은 별을 본다’는 깊은 감동의 현장을 SNS에 올리곤 한다.

독일의 지구과학연구센터 연구진들은 매년 약10%씩 밝아지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밤에 250개 정도의 별을 보던 곳에서 태어난 아이가 18세가 되었을 때에는 100개도 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아주 구체적인 데이터를 들어 우리를 두렵게 한다.

빛을 계획하는 야간경관 전문가인 나 자신도 빛을 점점 못보게 될 것이라는 엄포는 매우 두렵다. 밤하늘의 별을 못보다니..

누구나 한번은 가지고 있을 별보기에 대한 추억은 아주 감동스러운 장면으로 남아있다. 나역시 대학 시절 보길도 여행을 하며 재래식 화장실과 아무데나 돌아다니는 타조 크기의 닭들 속에서 하루빨리 문명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외치다가 쏟아질 듯이 별로 가득한 밤하늘에 넋을 빼앗겨 한동안 보길도를 최애하는 섬으로 꼽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많이 달라져 예전 기억 속의 그 모습은 아니지만 밤하늘의 별이 주는 감동은 여전한 듯 하다.

하지만 가끔 이런 생각도 한다. 별보기는 과연 우리 삶에서 어떤 기능이 있나?

빛공해로 인한 불면, 생태계의 교란에 의한 간접적인 피해등 분명히 과한 양의, 원하지 않은 곳에 비추어진 빛은 우리에게 해가 된다는 것을 부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저 궁금한 건 별을 못 보게 되면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생길까, 그리고 그 변화는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라는 바보같은 질문을 해본다.

양평의 구둔역과 동해의 무릉별유천지는 명소화 컨텐츠로 별보기를 염두하고 방문했던 곳들이다. 야간에 사람들을 방문하게하고 머물도록 하기위해 조명을 계획하는데 그 목적이 별보기라니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지..

 

야간컨텐츠, 빛 벗어나 소등도 방법

 

이 두 곳은 닮은 듯 다르다, 두 장소 모두 과거 영광의 사회인프라시설 있었다가 이제 그 기능을 다하여 폐기되어 가는 운명이라는 닮음을 갖고 있다, 양평의 구둔역은 1940년에 지어진 간이역으로 전철화 사업으로 노선이 변경되어 2012년부터 폐역이 되었다. 동해시의 무릉별유천지는 1968년부터 40년간 석회석을 채굴하던 곳으로 이제는 그 수명을 다하여 공공이 이용하는 공원으로 변신 중이다. 두 곳 모두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주간에 방문하여도 볼거리, 즐길거리가 풍부하다는 특징 역시 비슷하며 주변 인공조명시설이 전무하여 별을 보기에는 안성맞춤이라는 사실 또한 닮아있다. 따라서 별보기에 적당한 어둠과 장소가 가지고 있는 주변의경관적 가치를 야간에도 드러날 수 있는 정도의 밝음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어야 한다. 마치 밤에는 잠들어야 하는 나무를 위해 어두워야하고 안전하게 산책할 수 있을 정도의 밝음이 필요한 도심공원의 조명 계획이랄까..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어둠과 밝음이 공존하는 빛환경은 없다. 반드시 어둠과 밝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고 나머지는 약간의 피해는 감수해야한다. 도심의 공원에서는 밝음을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었으나 이번에는 어둠을 선택하고 싶다. 이미 사람들은 별보기의 질을 위해 자신이 감수해야할 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구둔역에 별을 보기 위해 오는 사람들은 타고 온 자동차 전조등은 최소한으로 켜고 진입하고 신속하게 주차한 후 조명은 끄기로 한 듯하다. 주변이 몹시 어두운지 손전등을 준비하라는 정보도 공유한다.

무릉별유천지는 탁트인 넓은 장소에서 광활한 하늘의 별을 볼 수 있어 마치 온 우주를 한 눈에 보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할 것이다. 따라서 달빛이 그 장소를 어둡게나마 드러내어 주리라 기대할 수 있겠다, 사람에 따라 어둠으로 인한 두려움은 남을 수 있겠으나 안전할 정도의 밝기를 만드는 순간 별보기의 신비는 덜할 것이 뻔하다.

다만, 별보기가 이루어지는 장소까지의 도로, 보행로는 낮게 비추어 밝음을 드리우는 것이 좋겠다, 점점 어둠에 익숙해지도록 밝음의 정도를 줄여나가는 것도 고려해볼 일이다,

또한, 칠흑 같은 어둠이 드리워지기 전까지 주변을 드러내는 정도의 밝았다가 어느 순간 소등하는 퍼포먼스도 생각해 볼 일이다, 자연현상으로 오롯이 스며들듯 감상하는 별보기가 다이나믹한 이벤트가 될지도 모르겠다.

야간컨텐츠를 만들기 위해 빛을 반드시 두어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니 큰 숙제가 풀린 듯 하다. 밝음과 어둠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면 소등을 통해 빛의 드라마를 계획해 보시라 감히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