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농 김광국 수집작 《석농화원》 실체 확인할 수 있는 자리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한 사람이 오랫동안 품고 아꼈던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광주박물관은 15일부터 12월 10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고故 허민수 기증 특별전 《애중愛重, 아끼고 사랑한 그림 이야기》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국립광주박물관이 지난 3월 미국에서 기증받은 조선 후기 공개 서화 4건 12점으로부터 시작했다. 이 작품들은 미국인 게일 허Gail Ellis Huh 여사(85세)의 소장품으로, 시아버지 고故 허민수許敏洙(1897~1972) 선생이 아들 내외에게 준 선물이었다.
허민수 선생은 전남 진도 출신의 은행가이자 호남화단의 거장 소치 허련許鍊(1808∼1893) 가문의 후손이다. 며느리 게일 허 여사는 시아버지 허민수 선생의 고향인 진도와 가까운 박물관에 존경하는 시아버지 이름으로 작품을 기증했다.
박물관은 게일 허 여사의 뜻깊은 기증을 기리기 위해 기획된 전시로, 고 허민수 기증 서화와 관련 작품 총 46건 83점을 모아 함께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17세기 문인 서화가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1658~1716)의 <묵매도墨梅圖>가 있다. 조선 중기 문기 넘치는 수묵 화조도의 양식을 따른 이 작품은 기증과정에서 조선 후기 최고 서화 수장가 석농石農 김광국金光國이 수집한 《석농화원石農畫苑》의 수록 작품임이 밝혀졌다. 기록으로만 전하던 《석농화원》권 1의 수록 작품이 새롭게 발견된 것이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김진규의 <묵매도> 기증을 계기로 현재 흩어져 전하는 《석농화원》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2013년 세상에 알려져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석농화원》 필사본을 최초로 대중에 공개하고, 현재 50여 점이 전하는 《석농화원》 수록 작품 중 총 15점의 서화를 한자리에 모아 전시했다. 특히 조선 중기 서화가 창강滄江 조속趙涑(1595~1668)의 <묵매도>를 비롯한 미공개 개인 소장 작품 4점 등이 포함돼 관심을 끈다.
전시는 며느리 게일 허 여사가 스토리텔러가 돼 세 가지 주제로 이끌어간다. 첫 번째 ‘소치 허련과 동초 허민수, 그리고 의재 허백련’에서는 소치 가문의 후손인 기증자 동초 허민수 선생과 집안의 주요 작품들을 소개한다. 이번 기증품에는 소치 허련의 작품 2점이 포함돼 있다. 두 번째 ‘새로운 <동파입극도>의 발견’은 기증작 신명연申命衍(1808∼1886)의 <동파선생입극도東坡先生笠屐圖>를 조명하는 주제다.
세 번째 주제 ‘그림을 보는 탁월한 눈, 김광국의 《석농화원》’에서는 이번 기증으로 세상에 처음 공개되는 김진규의 <묵매도>와 《석농화원》 속 작품 15점을 감상할 수 있다. 마지막 에필로그 ‘11,500km의 여정’에서는 2022년부터 2023년 3월까지,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한국 국립광주박물관까지 11,500km 기증과정을 영상으로 소개한다.
이번 전시 제목은 김진규의 <묵매도>에 석농 김광국이 적은 “소중히 아껴 소홀히 여기지 말라(애중무홀愛重毋忽)”는 문구를 인용했다. 김광국의 당부처럼 허민수 일가에서 오랜 시간 아끼고 사랑했던 그림들이 긴 여정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을 기념하며, 그 마음이 이번 전시를 찾는 이들에게도 전해지길 바라는 박물관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