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MMCA, 장욱진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 “한국적 모더니즘의 발견”
[현장스케치] MMCA, 장욱진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 “한국적 모더니즘의 발견”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9.15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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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CA 덕수궁, 내년 2월 12일까지
삶과 예술이 일치했던 작가, 장욱진에 대한 새로운 정립
1950년 ‘가족’, 1990년 ‘까치와 마을’ 등 최초 공개작 있어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그림처럼 정확한 내가 없다”라고 말한 장욱진 작가의 ‘가장 진지한 고백’이 시작된다. MMCA 덕수궁에서 개최되는 장욱진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이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관장 이계영)과 공동주최로 지난 14일부터 내년 2월 12일까지 장욱진 회고전을 선보인다.

▲장욱진, 자화상, 1951, 종이에 유화물감, 14.8×10.8cm, 개인소장, Self-portrait, 1951, oil on paper, 14.8 × 10.8cm, private collection
▲장욱진, 자화상, 1951, 종이에 유화물감, 14.8×10.8cm, 개인소장, Self-portrait, 1951, oil on paper, 14.8 × 10.8cm, private collection (사진=MMCA 제공)

이번 전시는 그간 축적된 장욱진(1917-1990) 연구와 전시들을 되짚어 보며, 1920년대 학창 시절부터 1990년 작고할 때까지 약 60년간 꾸준하게 펼쳐 온 장욱진의 미술 활동을 총망라하는 자리다. 유화, 먹그림, 매직펜 그림, 판화, 표지화와 삽화, 도자기 그림 등 엄선된 장욱진의 시기별 대표작 270여 점을 한 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다. 전시는 화가 장욱진이 진정으로 추구한 예술의 본질과 한국적 조형미의 구축이 한국미술사 안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전시 개막에 앞서 지난 13일에는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언론간담회가 열렸다. 이 날 간담회에는 장욱진 화가의 장녀 장경수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명예관장이 함께 자리했다. 전시 소개에 앞서 장 명예관장은 “이번 전시는 아버지의 작품이 200여 점 이상 출품되는 굉장히 큰 전시”라며 “아버지는 생활과 작품의 세계, 철학이 이어져 있는 분이었다. 전시 제목에 들어간 ‘진지한’이라는 단어가 아버지를 잘 담아내고 있다고 느낀다”라며 이번 전시에 대한 감회를 전했다.

이번 장욱진 회고전을 준비한 배원정 학예사는 한국 화단에 있어 서양화가 2세대이자 모더니스트 1세대의 작가들인 이중섭, 유영국, 박수근, 김환기 등의 굵직한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장욱진의 회고전을 준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지난 2017년 장욱진 탄생 100주년 기념전 이후, 대규모로 진행되는 전시다.

배 학예사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근현대 화단 2세대를 종합적으로 고찰해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라며 “장욱진의 엄선된 270여 점의 작품과 아카이브 100여 점의 공개는 큰 의미가 있다”라고 이번 전시의 의의를 짚었다.

▲지난 14일 열린 간담회에서 장욱진 화가의 장녀 장경수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명예관장이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서울문화투데이

독자적인 장욱진의 세계를 구축한 과정

전시는 장욱진의 작품 세계를 청년기(10~20대), 중장년기(30~50대), 노년기(60~70대)로 재구성해 궁극적으로 그가 추구하던 ‘주제 의식’과 ‘조형 의식’이 어떻게 형성돼 변모해 나갔는지를 살펴본다. 전시는 크게 4부로 나뉘는데, 전시실 1층 1부와 4부에서는 초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연대별로 작품 세계를 볼 수 있게 구성했다.

2층 2부에서는 장욱진 그림에서 반복되는 소재들을 ‘내용’과 ‘형식’으로 접근해 장욱진 그림을 보다 쉽고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배 학예사는 “덕수궁관을 방문해주는 관람객 중에는 1층 전시실만을 관람하고 나가시는 분들이 꽤 있다”라며 “1층만 보더라도 장욱진의 예술세계의 전반을 전달하고자, 1층을 시기별 섹션으로 구성했다”라고 설명했다.

▲장욱진, 새와 나무, 1961, 캔버스에 유화 물감, 41×32cm, 개인소장, Bird and Tree, 1961, oil on canvas, 41×32cm, private collection (사진=MMCA 제공)
▲장욱진, 새와 나무, 1961, 캔버스에 유화 물감, 41×32cm, 개인소장, Bird and Tree, 1961, oil on canvas, 41×32cm, private collection (사진=MMCA 제공)

이번 전시 제목인 ‘가장 진지한 고백’은 “그림처럼 정확한 내가 없다”라고 말한 장욱진의 언급에서 착안했다. 장욱진은 그의 화문집(畵文集) 『강가의 아틀리에』 서문에서 밝혔듯이 참된 것을 위해 뼈를 깎는 소모까지 마다하지 않는 진솔한 자기 고백으로 창작에 전념했고, 그림 그리는 시간의 대부분을 방바닥에 쪼그려 앉아 수공업 장인처럼 그렸다.

그간 장욱진 작품에 대해서는 동심 가득하고, 작고, 예쁜 그림’이라는 단편적인 평가들이 있었다. 이번 전시는 그간 장욱진을 정의하던 많은 이야기들을 새롭게 정립하고, 장욱진만이 가지고 있는 조형 언어와 행적을 미술사적으로 규명하고자 많은 노력을 담았다.

▲장욱진, 까치, 1958, 캔버스에 유화 물감, 40×31cm, 국립현대미술관, Magpie, 1958, oil on canvas, 40 × 31cm, MMCA (사진=MMCA 제공)
▲장욱진, 까치, 1958, 캔버스에 유화 물감, 40×31cm, 국립현대미술관, Magpie, 1958, oil on canvas, 40 × 31cm, MMCA (사진=MMCA 제공)

전시 구성에 있어서도 이번 회고전은 다른 특징을 띄고 있다. 지금까지 장욱진 전시는 아뜰리에 중심으로 섹션을 나누어 기획돼 왔다. ‘덕소시기(1963~1975)-명륜동 시기(1976~1979)-수안보 시기(1980~1985)-용인 시기(1986~1990)’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장욱진의 일생 전부를 전시장으로 끌어와, 그의 청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새롭게 조명한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청년기, 중장년기, 노년기의 구분으로 장욱진의 작품을 돌아본다. 배 학예사는 “장욱진은 1918년 생으로 알려져 있지만, 생전 장욱진 작가 본인이 1917년이라고 언급하고, 본인 생을 음력으로 치룬다는 이야기를 전한 바있다”라며 “이러한 지점을 고려해서 전시에선 나이의 언급을 지양하고 연대 중심으로 장욱진의 작품세계를 조명했다”라고 전시 구성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을 전했다.

또한, 이번 전시는 장욱진 관련 아카이브를 통해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 이후 미술단체와 전람회 활동을 포함해 새롭게 밝혀진 장욱진의 초기 행적 및 기존에 알려진 작품명과 연보의 오류를 바로잡은 연구 성과도 공개한다.

특히, 은거화가라고도 알려졌던 장욱진이 항상 자신이 있는 세계 안에서 수많은 노력을 하며 자신의 세계관을 열심히 넓혀갔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짚어본다. 장욱진은 시대의 흐름을 함께하며 다양한 미술 사조를 습득하고, 그 흐름은 자신의 작품 안에서도 녹여냈다. 학생 전람회에서도 많이 수상했다.

특히 1부에서는 ‘신사실파’이외의 알려지지 않았던 미술단체들의 활동 이력과 전람회 출품 등 새롭게 밝혀진 장욱진의 초기 행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인 국립박물관 진열과에서 근무하며 작성한 순검일지를 공개하며, 그가 우리나라의 유물을 통해 한국적 방향을 모색해나간 흐름을 유추하게 한다.

▲장욱진, 월목/반월·목, 1963, 캔버스에 유화 물감, 53.3 × 38.4cm, 개인소장, Moon and Tree / Halfmoon and Tree, 1963, oil on canvas, 53.3 × 38.4cm, private collection (사진=MMCA 제공)

장욱진이 전하는 진솔한 고백

이번 전시는 각 섹션에 들어갈 때마다, 생전 장욱진이 실제 집필한 에세이 등을 선보이며 장욱진의 언어로 전시를 열고 있다. 생전 장욱진은 말수가 적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말수’는 적었을지 몰라도 자신이 구축하는 화면 안에서만큼은 끊임없이 말을 했던 장욱진을 조명한다. 장욱진에게 있어 작품은 자신 그 자체였고, 작품에 담은 언어가 그의 삶과 생활이었다.

1부, 첫 번째 고백 <내 자신의 저항 속에 살며>는 그의 학창 시절부터 중장년기까지의 작품을 살펴본다. 학생작품전에서 상을 탄 <공기놀이>(1938)와 문자를 추상화 시킨 과정을 보여주는 <반월·목半月·木>(1963), 뼈대나 윤곽만으로 대상을 조형화시키며 기호화된 형태를 그린 <자화상>(1973) 등을 통해 초기 화풍의 형성과정을 볼 수 있다.

이 공간에서 주목할 작품으로는 1949년 11월 《제 2회 신사실파 동인전》에 출품했던 13점의 작품 중 하나인 <독>이 있다. 배 학예사는 이 작품을 조목조목 뜯어보면 그 심오함을 더욱 잘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시기에 한국 화단에선 ‘달항아리’라는 소재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 시기 장욱진도 독을 화면 정중앙에 배치하면서 동시에 독 뒤편에 달을 그려 넣어놨다”라며 “또한, 이 그림에는 장욱진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나무와 까치가 처음 등장하기도 해 의미를 가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장욱진, 독, 1949 ⓒ서울문화투데이

2부 두 번째 고백 <발상과 방법: 하나 속에 전체가 있다>에서는 장욱진 회화 대표적 모티프인 ‘까치’, ‘나무’, ‘해와 달’의 상징성과 의미, 도상적 특징의 변모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까치’는 장욱진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의 작품에서‘까치’를 소재로 한 작품은 60%에 달한다. 장욱진은 정말 다양한 형태로 까치를 그려냈다. 조형적인 측면이 강화된 까치, 세밀한 표현으로 그려진 까치 등 다양하게 볼 수 있다.

이외 그의 온 세상을 품는 우주인 ‘나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성의 매개체를 상징하는‘해와 달’에 대한 그림도 함께 공개 된다. 장욱진의 그림에선 해와 달이 동시에 등장하곤 하는데, 해와 달이 계속 떠있을 수 있는 영원성, 그리고 해와 달이 떠 있는 시간성, 마지막으로 빨간 해와 푸른 달의 모습으로 조형성을 담고자 했던 장욱진의 방법이었다. 한편 이 공간에선 장욱진의 생전 마지막 작품인 <까치와 마을>(1990)이 최초로 전시되며, 그가 처음 그린 표지화 초안과 더불어 한국 전쟁 후 가족의 생계를 위해 그렸던 『국제신보』「새울림」 (글 염상섭, 삽화 장욱진) 삽화 56점 전체가 최초로 공개된다.

▲장욱진, 진진묘(眞眞妙), 1970, 캔버스에 유화 물감, 33 × 24cm, 개인소장 Zinzinmyo:My Wife’s Buddhist Name, 1970, oil on canvas, 33 × 24cm, private collection (사진=MMCA 제공)

3부 세 번째 고백 <진眞.진眞.묘妙>에서는 장욱진이 남긴 불교적 주제의 회화들과 먹그림, 목판화 선집 등을 통해 장욱진의 불교적 세계관과 철학적 사유를 들여다본다. 이 공간에선 최초의 불교 주제 회화로 아내의 초상을 그린 <진진묘>를 만날 수 있다. 장욱진은 어느날 아침에 불경을 읽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그 길로 작업실로 향해 7일 동안 작업만 해 <진진묘>를 환성했다고 한다. ‘진진묘’는 아내 이순경 여사의 법명이다.

배 학예사는 “장욱진 선생이 당시 아내의 모습에서 영성을 봤던 게 아닐까 싶다”라며 “장욱진은 ‘가족’안에서 불교적 세계관을 투영한 작가였는데, 생각해보면 한국 근현대화단에서 아내를 영성으로 보고 기록할 수 있었던 화가가 몇이나 있었을까 싶다”라고 삶 그 자체에서 불교적 세계관을 행한 장욱진을 언급했다.

▲3부 전시실에 공개된 장욱진 최초 가족 그림인 1955년작 <가족>(우측)과 1972년 <가족도> ⓒ서울문화투데이

장욱진은 생전 ‘착하지 말라’라는 말을 자주했다고 한다. ‘착하지 말라’는 선(善)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집착(執着)하지 말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 말은 가족 간에도 서로를 옭매거나 집착하지 말고, 항상 개별의 독립성과 주체성을 강조한 그의 철학이 담겨 있다. 장욱진은 슬하에 1남 4녀의 자식을 뒀는데, 4명의 따님이 항상 하는 말이 “아버지는 나를 가장 좋아했어”라고 한다. 장욱진이 좋은 아버지였고, 모든 자식들을 온 마음 다해 사랑했음을 알리고 있다.

한편 3전시실에서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발굴된 장욱진 최초의 가족 그림인 1955년작 <가족>을 최초 공개한다. 이 작품은 생전 30여 점 이상의 가족을 그린 장욱진이 항상 머리맡에 걸어둘 만큼 애착을 가졌던 작품이자 생애 첫 돈을 받고 판매한 작품이다. 평생 가족 이미지를 그린 장욱진 가족도의 전범(典範)이 되는 그림이자, 최초의 정식 가족도라는 측면에서 미술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3부 전시실에 최초 공개된 <가족>을 보는 취재진들 ⓒ서울문화투데이

한국적 모더니즘을 완성한 장욱진

마지막 4부, 네 번째 고백 <내 마음으로 그리는 그림>에서는 1970년대 이후 장욱진의 노년기를 살펴본다. 수묵채색화 같은 유화 및 특유의 비현실적 화면 구성 등이 정점을 이룬 작품들을 볼 수 있다. 1973년 전후로 그의 작품에서는 1960년대까지 주를 이루던 강한 마티에르 대신 얇아진 색층이 등장하면서, 조형성이 강했던 졸박한 반추상에서 표현성을 가미한 담채풍의 담졸(淡拙)한 양식으로 변화가 본격화된다.

또한 장욱진은 작품 속에 인장을 찍거나 동양화 전문 표구사인 동산방화랑에 표구를 맡기는 등, 서양화가이지만 동양화가적 면모를 띠게 된다. 이러한 그의 작품 변화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재직하면서 실제로 고려고분 벽화를 만나고 진열하는 과정 속에서 다듬어 갔던 과정이었다.

배 학예사는 장욱진을 ‘정직한 화가’라고 칭했다. 예술과 생활이 일치했고, 그의 화면에는 거짓이 없었다. 그리고 1000점 이상의 그의 작품 양은 그가 얼마나 성실하고, 일관성있는 작가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욱진, 밤과 노인, 1990, 캔버스에 유화 물감, 41 × 31cm, 개인소장, Night and an Old Man, 1990, oil on canvas, 41 × 31cm, private collection
▲장욱진, 밤과 노인, 1990, 캔버스에 유화 물감, 41 × 31cm, 개인소장, Night and an Old Man, 1990, oil on canvas, 41 × 31cm, private collection (사진=MMCA 제공)

이번 전시는 1951년에 그린 <자화상>과 1973년에 그린 <자화상>, 그리고 그가 타계하기 두 달 전 그린 <밤과 노인>으로 시작되고 이어져서 완성된다. 장욱진은 60여 년의 화업 인생 동안 꾸준히 나아간 작가였다. 6ㆍ25전쟁 이후 임시수도인 부산에서 피난살이를 하던 장욱진이 종군화가로 복무 중 그린 1951년 <자화상>에선 결혼식 때 입은 하이칼라 프록코트 차림으로 귀향 중인 그를 따라 동네를 서성이던 검둥개와 새들이 뒤따른다. 노년기에 등장하는 서너 마리가 일렬로 줄지어 나는 새들의 비행 도상도 이 작품에 처음 등장한다. 그리고 1973년 <자화상>은 모든 배경을 생략하고 오로지 사람의 형상, 즉 얼굴, 몸, 팔다리를 물기가 넉넉한 중봉의 필선으로 마감한 인물화다. 순수 추상의 세계로 나아가는 또 다른 장욱진의 세계를 볼 수 있다.

마지막 그의 노년 작인 1990년 <밤과 노인>에선 마치 하늘을 날아다니는 도인과도 같은 노인의 모습이 등장한다. 이 작품화면 오른쪽에는 화가가 사랑했던, 그리고 그의 일부로 표현되는 대상인 집, 까치, 나무, 아이가 있다. 노인의 표정은 세속에 초탈한 듯하고 만사를 관조하는 모습이다. 마치 자신의 삶을 돌아보듯 완성된 이 그림은 장욱진이 평생 동안 그려온 세계를 담고 있는 듯 하다.

▲장욱진, 자화상, 1973, 캔버스에 유화 물감, 27.5 × 22cm, 개인소장, Self-portrait, 1973, oil on canvas, 27.5 × 22cm, private collection (사진=MMCA 제공)
▲장욱진, 자화상, 1973, 캔버스에 유화 물감, 27.5 × 22cm, 개인소장, Self-portrait, 1973, oil on canvas, 27.5 × 22cm, private collection (사진=MMCA 제공)

장욱진의 작품은 동심이 가득하고, 순수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그 아름다움과 순수함이 어디서부터 비롯됐으며, 어떻게 완성됐는지를 조목조목 살필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전시를 다 보고, 다시 한 번 1973년에 그린 장욱진의 <자화상>을 마주할 때, 그가 만든 담백한 조형세계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연구 속에서 나온 지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번 전시는 항상 자신의 팔이 닿는 공간 내에서만 작업을 했던 장욱진의 창작 방법을 녹여내, 작은 집 안에서도 작품을 즐겨했던 그의 공간감도 전시장 안으로 가져왔다. 장욱진의 작품 크기가 작다고 하지만, 그가 만드는 세계 안에서는 가장 완벽한 크기였다는 것을 관람객은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