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THIS TOO, IS A MAP)》개막, 우리가 그리는 지도
[현장스케치]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THIS TOO, IS A MAP)》개막, 우리가 그리는 지도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9.21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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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외 5개 전시 장소서, 오는 11월 19일까지
모든 경계를 넘어, 새로운 지도 그리기 방법 제안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팬데믹을 겪고, 엔데믹을 맞이하며 유례없는 기후 위기를 맞닥뜨리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믿어왔고, 영원불멸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가치들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지금껏 우리가 주류라고 믿어왔던 것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그 질문을 ‘지도’라는 소재를 통해 던져본다. 우리가 여태껏 믿어왔던 지도만 지도가 아니라, ‘이것 역시 지도(THIS TOO, IS A MAP)’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구스티나 우드게이트, 〈신세계 지도〉, 2023.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전시 전경, 서울시립미술관, 2023. 사진: 글림워커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서울시립미술관(관장 최은주)은 오는 11월 19일까지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THIS TOO, IS A MAP)》(예술감독 레이첼 레이크스)를 개최한다. 비엔날레는 서울시립미술관 외 서울역사박물관, SeMA벙커, 소공 스페이스, 스페이스 mm과 서울로미디어캔버스까지 총 6곳의 전시장에서 펼쳐진다.

《이것 역시 지도》는 다공적이고 다층적인 지도 그리기를 보여준다. 역사와 지식을 매핑하는 전 세계의 예술가 40명/팀과 총 61점의 작품을 공개하고, 서구중심주의 인식론과 세계관 밖에 존재하는 네트워크, 움직임, 이야기, 정체성과 언어를 소개한다.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개막식 전시 투어를 진행하고 있는 레이첼 레이크스 예술감독 ⓒ서울문화투데이

공모를 통한 첫 예술 감독 선정

올해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처음으로 예술감독을 공개 모집해 레이첼 레이크스(Rachael Rakes)를 선정했다. 레이첼 레이크스는 헌신적이고 협력적인 큐레토리얼을 전제로 북미와 유럽에서 리서치 기반의 활동을 전개해온 글로벌 큐레이터, 저자, 교사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도 레이첼의 팀워크를 강조한 작업 방식은 적극적으로 실현됐다.

감독 선정 당시 레이첼 감독은 과거의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가 만들었던 미학과 구조를 이해하는 동시에, 서울시립미술관, 비엔날레 팀, 지역의 네트워크와 협업자들, 그리고 국제적 실천가들과 함께 비엔날레를 다시 그려내는 상상적 프레임을 제시하고자 함을 밝힌 바 있다.

지난 20일 열린 개막식에는 레이첼 레이크스 예술감독과 소피아 듀론(Sofía Dourron) 협력 큐레이터가 참석해 비엔날레에 대한 설명을 전했다. 이 날 간담회에선 ‘한국’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비엔날레를 준비한다는 것에 어려움은 없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소피아 협력 큐레이터는 “비엔날레를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을 말해야 할 것 같지만, 굉장히 편하게 이번 비엔날레를 준비했다”라며 “언어의 장벽이 있긴 했지만, 우리가 제시한 아이디어를 미술관에서 적극적으로 경청해주고, 함께 지지해주는 과정이 있었다. 비엔날레 팀이 완벽하게 협력하며 움직일 수 있었다”라는 답을 전했다.

이어 레이첼 예술감독도 “전 세계 작가가 모이는 비엔날레인 만큼 복잡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모두가 사려 깊게 움직였기에 어려움은 없었다”라며 “전세계의 작가가 함께 하는 만큼 운송의 문제가 있을 수 있었지만, 시선을 돌려서 운송을 창조적으로 바라보려하는 시도를 해보기도 했다. 서울의 제작자, 서울의 재료를 사용하고자 했고, 그 과정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맥락과 닿고 서울의 근대화를 이해할 수 있는 과정으로도 이어졌다”라고 비엔날레 준비과정을 설명했다.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개막식에서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레이첼 레이크스 예술감독 ⓒ서울문화투데이

레이첼 감독, 소피아 협력 큐레이터를 주축으로 한 비엔날레 팀은 비엔날레를 준비하는 1년의 기간을 시작하기에 앞서 리서치 트립을 했고, 서울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 속에서 과거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역사를 이해하고, 공간을 돌아보고, 한국 비엔날레 팀과 신뢰를 쌓으며 비엔날레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레이첼 예술 감독은 이번 비엔날레가 기존 비엔날레의 문법을 지양하고, 초국가적이고 초국지적인 동시대 변위의 상태를 보여주며, 고정형의 체제를 거스르는 동시대적 움직임을 주목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서구적 지도그리기의 대안을 제시하진 않는다.

감독은 “이번 비엔날레가 선보이는 새로운 지도그리기가 서구식 지도 그리기의 대안을 주는 것은 아니며, 이 또한 지도를 그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임을 제안할 뿐이다”라며 “모든 사람의 일상을 규정하고 있는 지도를 한걸음 물러나서 볼 수 있는 방법을 선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이끼바위쿠르르, 〈땅탑〉, 2023.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전시 전경, 서울시립미술관, 2023. 사진: 글림워커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레이첼 예술 감독 선정으로 완성된 이번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수많은 경계들을 넘어선다. 그것은 사회문화적 경계 뿐 만 아니라, 장르의 경계, 창작자 간의 경계도 넘어서며 초국가적 삶의 태도와 ‘문화적 혼종’을 추구한다. 동시에 지금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도시 ‘서울’에 대한 인식도 단단하게 붙잡고 있다. 올해 비엔날레 속 ‘서울’은 정체성이 되기보다 다양한 문화 속 동등한 하나의 공간으로 다뤄지면서, 지금까지 쉽게 인식할 수 없었던 ‘서울’의 이미지를 마주할 수 있게 한다.

개막식에 참석한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미술관이 운영하는 국내비엔날레로써, 미술관의 가치와 비엔날레 가치가 함께 시너지를 낸다”라며 “올해 비엔날레는 서울의 지상과 지하, 남과 북을 가로 지르며 일반적인 지도의 의미를 넘고, 세계의 지도 경계를 넘는 시도를 담고 있다”라고 이번 비엔날레가 아우르고 있는 새로운 지도 그리기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다.

덧붙여 최 관장은 비엔날레 전시 뿐 만 아니라, 전시를 둘러싸고 있는 연구와 다양한 행사 프로그램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비엔날레 워크숍과 퍼포먼스, 시각적 프로그램 등에 직접 참여 비엔날레를 다층적으로 즐겨보길 권했다.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개막식에서 인사말을 전하는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 ⓒ서울문화투데이

‘지도’를 그릴 수 있는 아주 다양한 방법들에 대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는 각 공간 별로 주제를 가지고 새로운 지도에 대한 인식의 확장을 선보인다. 전시장에 선명한 경계를 두지 않고 열려있는 공간에서 선보이는 전시는, 각각의 작품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동시에 전체 작품들이 지니고 있는 연결성에 대해서도 상상하게 한다.

서소문본관 1층은 비엔날레의 주제를 중심으로 전체 전시 장소와 협력 공간을 아우르는 정신적 지도로 구성됐다. 설치, 비디오, 직물, 사운드, 퍼포먼스, 목판 인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표현되는 작품들은 여러 방식의 지도 그리기, 땅의 표현, 사적이고 사회적인 기억, 경계와 언어의 풍경 등을 살펴보게 한다.

▲최찬숙, 〈THE TUMBLE〉, 2023.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전시 전경 ⓒ서울문화투데이

1층 전시실로 들어서면, 이번 비엔날레를 여는 작품과도 같은 아구스티나 우드게이트(Agustina Woodgate)의 <신세계 지도(The Times Atlas of the World)>(2023)를 볼 수 있다.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가 제작 지원한 이 작품은 550쪽 분량의 지도책에 재현된 국가, 국경, 정치적 지표, 주요 랜드마크를 지워서 흐릿하게 처리한 기존 작품 <세계 지도(The Times Atlas of the World)>(2012)을 재구성한 신작이다.

지도책을 자동으로 넘겨주고 실시간으로 스캐닝하는 기계 장치, 스캔한 이미지 파일을 신경망 학습의 조합으로 재구성한 새로운 세계 지도의 이미지가 전시장에서 영상으로 실시간으로 보여진다.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전시 전경, 서울시립미술관, 2023. 사진: 글림워커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개막식에 참석한 아구스티나 작가는 “<신세계 지도>는 지도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고 있는 작품”이라며 “과거에 손으로 직접 제작했던 공간과 지도들을 가상의 공간에 다시 축적시키면서, 새로운 방향의 지도를 선보이며 예술과 기술의 혁신을 담는 작품이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미술 콜렉티브 이끼바위쿠르르가 제작한 서소문본관 마당에 설치된 작품 <땅탑(Earth Monument)>(2023)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1990년대 후반 사회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던 한국의 작가들은 다양한 예술실천을 전개하며 지역성과 지역의 미술 언어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경험했던 이끼바위쿠르르에게 미술의 지역성은 주요한 주제로 자리 잡게 된다. 부동산의‘평’단위를 활용해 만들어진 여러 형태의 탑들은 무연의 공동체가 오랜 시간 흙을 두드리고 밟아 만드는 과정을 통해 보이지 않는 연결의 공동체와 그것의 임시성을 드러낸다.

▲크리스틴 하워드 산도발, 〈출현의 표면(두폭화)〉, 2023.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전시 전경, 서울시립미술관, 2023. 사진: 글림워커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본관 2층에는 지도에 나타나는 이미지의 재현과 실제 간의 간극을 살펴보고, 인간의 주관적인 소통 방식에 뿌리를 둔 새로운 지도 만들기로서 작품들을 소개한다. 이 공간에는 이번 비엔날레 준비 기간동안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 머물며 크리스틴 하워드 산도발(Christine Howard Sandoval)이 제작한 <출현의 표면(두폭화) (Surface of Emergence (diptych))>가 전시된다. 이 작품은 쓰레기 매립지였던 난지도의 복합적인 토양을 어도비 점토와 섞어 완성한 드로잉으로, 스페인 미션건축의 아치 형상을 주제로 하고 있다. 다양한 식민주의 건축의 아카이브이면서 동시에 원주민의 미래주의 현장으로 연결하는 경로를 제시한다.

본관 3층에서는 국경을 넘는 신체들의 이동과 기억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훨씬 더 복합적인 디아스포라의 양태를 질문한다. 나아가, 다양한 미학, 글로벌 기술, 과학의 발전으로 인한 이동과 생태적 변화까지 아우른다.

이 공간에선 비엔날레 커미션으로 제작된 최찬숙의 <THE TUMBLE>(2023)이 전시 된다. 뿌리와 몸을 분리시켜 먼지처럼 굴러다니는 1년 초 식물 회전초를 통해, 살고 있던 땅에서 밀려나 흔들리며 생을 일궈나가는 인간의 모습을 은유한다. 작가는 그동안 꾸준히 이동, 이주, 공동체의 매개체들을 통해 땅과 몸의 다층적인 관계를 탐구해왔는데, 이번 신작에서 인간이 아닌 생명체를 통해 땅에서 ‘방출된’ 몸과 그것의 물질적이고 비물질적인 흔적을 되새김한다.

▲프랑소와 노체, 〈코어 덤프〉, 2018-2019.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전시 전경, 서울시립미술관, 2023. ⓒ서울문화투데이

광섬유 케이블, 철새의 이동, 상충하는 근현대사, 하천 시스템과 무역로와 같은 복잡한 관계망과 네트워크로 얽혀 있는 네 도시; 킨샤사, 선전, 뉴욕, 다카르를 배경으로 하는 비디오 연작과 한국의 전자폐기물을 활용한 조각으로 구성된 설치 작품 프랑소아 노체의 <코어 덤프(Core Dump)>(2018-2019)도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서소문 본관 이외에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제시 천 작가의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서베이 전시 <시, language for new moons>가 전시되고, SeMA 벙커에서는 인간, 기술, 광물의 이동을 잇는 연결고리에 주목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자원을 뽑아 쓰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치우칠 때 초래할 결과와 복합적인 관계들을 형상화한다.

또한, 서울 지하철의 시청역과 을지로역을 연결하는 통로에 있는 미술 공간 스페이스mm과 소공 스페이스에서는 공공과 사적 공간의 경계, 일상 속 가상과 실재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야기되는 정치성과 긴장에 관한 전현선과 왕보의 작품을 소개한다. 서울의 고가 보행로인 서울로 7017에서도 미디어 작품들이 송출된다.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개막식 전시 투어 현장 ⓒ서울문화투데이

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는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가치나, 방법, 시선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시도 자체일 것이다. 전시장 속 다양한 작품과 작가들의 고찰을 마주하면, 이미 그려진 지도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우리들이 마주할 수 없었던 세상의 또 다른 면을 만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규정화된 언어를 벗어나고, 규정화된 관습이나 사상을 넘는다. 그러한 시도들의 모음이기도 한 이번 비엔날레는 결국 지금 동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변화의 움직임을 드러내고 있다.


<참여 작가 65명/팀>

구이도 야니토(Guido Yannitto), 나타샤 톤테이(Natasha Tontey), 놀란 오스왈드 데니스(Nolan Oswald Dennis), 라야 마틴(Raya Martin), 로-데프 필름팩토리: 프랑소와 노체, 에이미 윌슨)(Lo-Def Film Factory: Francois Knoetze and Amy Louise Wilson), 메르세데스 아스필리쿠에타(Mercedes Azpilicueta), 미코 레베레자(Miko Revereza), 사노우 우마르(Sanou Oumar), 사샤 리트빈체바&그레임 안필드(Sasha Litvintseva & Graeme Arnfield), 사샤 리트빈체바&베니 바그너(Sasha Litvintseva & Beny Wagner), 쉔신(Shen Xin), 스테파니 제미슨(Steffani Jemison), 아구스티나 우드게이트(Agustina Woodgate), 아나 벨라 가이거(Anna Bella Geiger), 아니말리 도메스티치(Animali Domestici), 아르차나 한데(Archana Hande), 안나 마리아 마이올리노(Anna Maria Maiolino), 엘레나 다미아니(Elena Damiani), 왕보(Bo Wang), 유어 컴파니 네임: 클라라 발라구에르, 센지즈 멘규치(Your Company Name: Clara Balaguer and Cengiz Mengüç), 이끼바위쿠르르(ikkibawiKrrr), 이재이(Jaye Rhee), 이케조에 아키라(Aikira Ikezoe), 전현선(Hyunsun Jeon), 정소영(Soyoung Chung), 제시 천(Jesse Chun), 주마나 에밀 아부드(Jumana Emil Abboud), 차학경(Theresa Hak Kyung Cha), 찬나 호르비츠(Channa Horwitz), 최윤(Yun Choi), 최찬숙(Chan Sook Choi), 최태윤(Taeyoon Choi), 켄트 찬(Kent Chan), 크리스틴 하워드 산도발(Christine Howard Sandoval), 텐진 푼초그(Tenzin Phuntsog), 토크와세 다이슨(Torkwase Dyson), 파이어룰 달마(Fyerool Darma), 펨커 헤러흐라번(Femke Herregraven), 프랑소와 노체(Francois Knoetze), 그리고 히메나 가리도-레카(Ximena Garrido-Lec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