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비평]김수연의 ‘필리아: 모차르트’, 그 동안 쌓여 온 모차르트 사랑 풀어내
[이채훈의 클래식비평]김수연의 ‘필리아: 모차르트’, 그 동안 쌓여 온 모차르트 사랑 풀어내
  • 이채훈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 전문기자,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 승인 2023.09.27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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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를 너머 ‘음악가’를 지향, 김수연 개성 드러낸 앵콜 선곡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모차르트 평전> 저자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모차르트 평전> 저자

9월 7일 저녁 8시 금호아트홀 연세, 피아니스트 김수연의 독주회 ‘필리아: 모차르트’는 이 험한 세상에 아름다움을 가져온 시간이었다. 레퍼토리는 세상의 모든 추한 것의 대극점에 있는 모차르트 위주였다. 김수연은 모차르트에 대한 사랑을 듬뿍 담아 모차르트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었다. 어른의 혼탁한 세계를 떠나 동심을 꿈꾸게 한 슈만 <어린이의 정경>도 곁들였다. 올해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김수연이 마련한 <화음, 그림과 음악> 시리즈의 네 번째 무대로, 첫 앨범 <모차르트 리사이틀> 발매를 기념하는 의미도 있었다. 

첫 곡은 글루크 오페라 <메카의 순례자> 중 ‘어리석은 백성이 생각하기엔’ 주제에 의한 10개의 변주곡 K.455, 빈에 데뷔한 모차르트가 많은 청중 앞에서 자유분방한 음악성을 맘껏 뽐낸 작품이다. 김수연은 변주가 이어지는 순간마다 발랄한 표정 변화로 즉흥연주의 느낌을 충분히 살렸다. 특히 아다지오의 제9변주에서 급격한 템포 변화로 분위기를 반전시켜 내면의 소리를 들려줄 때는 원숙한 풍모가 느껴졌다. 

이어진 곡은 모차르트가 20살 때 잘츠부르크의 체르민 백작을 위해 작곡한 12개의 콩트라당스 K.269b 중 네 곡이었다. 원래 관현악곡인데 김수연이 직접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했다. 4명 또는 8명이 추는 4박자의 춤곡을 김수연은 리듬감을 살려서 흥겹게 연주했다. 1부 마지막 곡은 소나타 D장조 K.311로, 21살 모차르트가 만하임 여행 때 쓴 작품이다. 1악장 ‘알레그로 콘 스피리토’는 지시어에 어울리게 생기와 총기가 넘쳤다. 2악장 안단테는 따뜻한 표정이 가득했고, 3악장 론도 알레그로는 발랄한 느낌이 살아 춤추었다. 

2부의 첫 곡인 소나타 A단조 K.310은 모차르트가 파리 여행 중인 1778년 어머니를 잃고 슬픔에 잠겨서 쓴 곡으로, 앨범 <모차르트 리사이틀>에 들어있지 않다. 1악장 알레그로 마에스토소는 구슬처럼 빛나는 스케일에 투명한 슬픔을 담았는데, 김수연은 감정 과잉을 피하며 고결하고 세련된 자세로 정제된 연주를 들려주었다. 2악장은 가슴에 손을 얹고 삶과 죽음을 돌아보는 느낌인데, 김수연은 지나친 감상에 빠지지 않도록 적절한 템포를 유지했다. 

이어서 13곡의 소품으로 구성된 슈만 <어린이의 정경>이 펼쳐졌다. 연주회의 프로그램을 짜는 것은 청중들을 위해 정성스레 잔치상을 차리면서 메뉴를 결정하는 것과 같다. 김수연은 마리아 주앙 피레스 선생이 연주한 <어린이의 정경>을 매우 좋아했고, 언젠가 꼭 연주하고 싶었다고 밝혔는데, <필리아 모차르트>와 이 곡을 연결한 것은 설득력이 있었다. 순수함의 결정체인 모차르트 곡과 슈만이 묘사한 동심의 세계는 자연스레 어울렸다. 김수연은 담백하고 기품있게 슈만의 소품들을 연주했고, 청중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박수로 공감을 표했다.

▲피아니스트 김수연
▲피아니스트 김수연

앵콜곡은 다시 모차르트였다. 론도 D장조 K.485는 모차르트가 <피가로의 결혼> 준비로 바쁠 때 잠시 틈을 내서 작곡한 사랑스런 곡으로, 김수연은 상큼하고 경쾌한 터치를 들려주었다. 이어진 곡은 볼로도스 편곡의 <터키행진곡>이었다. 김수연이 테크니컬 쇼케이스라 할 만한 이 작품을 고른 것은 의외였다. 그는 물론 테크닉이 뛰어난 피아니스트지만 굳이 기교를 뽐내는 걸 즐기는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곡을 연주하자 관객들은 아니나다를까 열렬한 탄성과 환호로 답했다. 내 느낌으로 김수연은 한 곡을 더 할 것 같았고, 아마도 <아베 베룸 코르푸스>를 선택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러한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아베 베룸 코르푸스>(프란츠 리스트 편곡)를 <터키행진곡>과 대비시키며 연주회를 마무리한 것은 “(기교적인) 피아니스트인가, (마음으로 연주하는) 음악가인가?”란 물음을 스스로 던지고 있는 듯했다. 투명한 아름다움으로 눈물을 자아내는 <아베 베룸 코르푸스>가 화려하고 찬란한 <터키 행진곡>보다 김수연의 음악적 감수성에 더 가깝다고 느낀 건 나의 편견일까. 

아르투어 슈나벨은 “모차르트는 어린이가 연주하기엔 쉽지만, 전문 피아니스트가 치기엔 너무 어렵다”고 했다. 김수연은 “잘츠부르크에서 공부하며 모차르트를 자연스레 만났고, 그 동안 몸에 쌓여 온 모차르트를 이제 내놓는 것”이라고 밝혔다. 모차르트가 그의 내면에서 성장해 왔고, 앞으로 계속 진화할 거라는 뜻으로 들린다. 사랑으로 가득한 모차르트 음악, 그에 대한 김수연의 사랑도 점점 깊어갈 것이다. ‘필리아: 모차르트’가 들려 준 것은 바로 그 지점이었다. 김수연이 어린이처럼 모차르트를 즐기며 자유롭게 연주하는 경지를 들려주리라 기대한다.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열리는 김수연의 <화음, 그림과 음악> 시리즈는 1월 5일 ‘스케치’, 4월 27일 ‘블렌딩’, 8월 31일 ‘명암’, 9월 7일 ‘필리아: 모차르트’에 이어 다섯 번째 무대인 12월 7일 ‘콜라주 파티’를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