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 Library]Life is long, Art is short. 
[Human Library]Life is long, Art is short. 
  • 독립기획자 최소연
  • 승인 2023.10.11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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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과학적으로 풀 수 있나요?

“사랑을 과학적으로 다루려면, 사랑을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양, 기준을 정해야 해요. 그게 안되면 사랑은 적어도 물리학의 대상은 아닌거에요.“

김상욱 물리학 교수가 한 프로그램에서 받은 질문에 답한 내용이다. 김상욱 교수의 몇몇 영상을 찾아보다 그의 공통적인 답변 하나를 찾았다. “먼저 정의가 필요해요’ 무언가를 논하기 전에 질문 속 주제에 관해 정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인터뷰를 곱씹어 보며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지지만 놓치고 있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사유는 무엇을 정의할지부터 시작한다는 깨달음이 말이다. 
 고민에 고민이 꼬리를 잇는 삶에서 시작과 끝은 어디일까. 정의내려야 할 ‘무엇’은 무엇일까. 

“삶의 정의를 다루려면, 삶을 바라보는 기준을 정해야 해요. 

우리들의 삶에서 의미있다 여겨지는 것은 ‘단계’로 존재한다. 울음을 터트리고, 옹알이를 시작하고, 걷기 시작하고, 뛰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도달해야할 단계를 찾고 세우고 향해간다. 단계를 지날 때마다 삶에 층위가 생기고 인생의 굴곡이 생겨난다. 롤러코스터에 탄 순간에는 당장의 오르막과 내리막만 보인다. 그러나 모두가 끝을 알고 있다. 몇 분후면 멈춘다는 사실을 알기에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굴곡을 즐길 수 있다. 끝을 알기에 두려워도 즐길 수 있다. 인간이 ‘끝’을 정의내릴 수 있다면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추론해보지 않아도 모두가 답을 안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삶도 물리학의(정의내릴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안다. 모든 존재를 정의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삶은 정의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과 인간의 삶에 관해 불변하는 사실 하나가 있다면 ‘정의내릴 수 없이 복잡하다’일 테니까 말이다. 그 복잡함에 따르면 난 죽음도 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죽을 남기는 호랑이에게는 죽음이 끝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름을 남기는 인간에게는 말이다. 

답을 알면서도 삶의 의미를 찾고, 추구하고 탐구하는 과정은 또 어떻게 정의내려야 할까?

그게 된다면 삶은 적어도 예술의 대상인거에요”

도달하지 못하면서 동시에 매 순간 도달해 있는 삶. 정의내릴 수 없음에도 정의하고자 시도하는 예술., 이 두가지 단어가 오늘의 주제다. 삶을 분류하고 분석하고자 하는 시도는 다양하다. 시대로, 세대로, 철학으로, 트렌드로, 과학적 현상으로. 여러 시각에서 내놓은 시선들이 쌓인 굴곡의 롤러코스터에서 내리면 그때 비로소 그 시대를 정의(에 가까운 평가)할 수 있다. 이 때의 평가, 쉽게 말해 그 시대를 정의하고,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나의 답으로써, 삶과 예술이라는 두 단어를 주제를 들고 왔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평가이자 예시를 찾아보면, 난 낭만의시대라 불리는 80-90년대를 꼽을 수 있다. 지나간 역사로써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성 자체를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Y2K 패션과 함께 당시의 젊은이(소비층)를 떠올리고, 홍콩 누아르 영화 재개봉은 향수를 일으키고, 광고, 콘텐츠 등에서 레트로, 뉴트로가 열풍이라 불릴만큼 뜨거웠다. 낭만의 열풍은 그 시대를 살지 않은 이들에게도 향수를 일으킨다. 시대를 기억하는 방식을 문화뿐이라고, 예술뿐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과거가 기억되고 회자되는 과정은 곧 사람들이고,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은 문화이자 예술이다. 

끝(정의)을 맺을 수 없는 것이 역설적이게도 삶의 정의이고, 끝을 매길 수 없다는 걸 깨닫게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숨쉬는 철학자이며 예술인이다. 살아있는 자들이 남긴 예술과 그들을 살아있게 만드는 예술의 목적이자 본질은 정의할 수 없는 인간이다. 예술은 너무나도 느리기에 정의내려야 할 ‘무엇’을 앞으로도 찾지 못할 것이다. 예술은 너무나도 느리기에 인간이 더 나은 삶을 살수있도록 돕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 21세기가 기억되는 방식또한 지금의 문화이자 예술일 것이다. 21세기가 정의내려지는 과정에는 지금을 기록하는 예술인들이 존재할 것이다. 

문화예술트렌드라는 이름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끝’이자, 예술이 향해야 할 ‘끝’은 삶의 정의다.  이를 인식해야만 너무나도 느린 예술이 의미를 갖고,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동시에 매 순간 삶에 도달해있다고 말할 수 있을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