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빛섬축제에 다녀와서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빛섬축제에 다녀와서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 승인 2023.10.1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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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지난 금요일부터 한강의 서래섬과 반포한강공원 일대에서 빛섬축제가 열리고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자연 환경과 밤이라는 시간은 점점 그 가치가 중요해지고 있음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여러 차례 언급한 바와 같이 많은 선진 도시들이 삶의 질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문화, 예술 그리고 야간컨텐츠를 다양화 하고 있고 그래서인지 도시마다 빛축제가 유행이다.

이제까지 시민의 물리적인 안전과 생리학적인 안녕을 위한 빛을 위한 정책에 치중하던 서울시의 야간경관 정책도 ‘Fun City’를 위한 다양한 ‘Fun Event’를 계획하고 있어 반가운 마음과 함께 기대가 크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고, 또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빛섬축제를 큰 기대를 안고 다녀온, 빛축제를 기획하고 감독으로 일해 본 - 많이 아는 - 사람으로 그 느낌을 적어 보려 한다. 빛축제를 준비하는 누군가가 주의 깊게 읽고 한번쯤 생각해 보기 바라면서…

 

‘매우 예술적인’ 콘텐츠여야 하나?

 

이는 2019 DDP 에서 열렸던 서울 라이트에서 세계적인 미디어아티스트 에픽 아나돌이 난이도 높은 3D 프로젝션 매핑 기술을 이용하여 아름다운 영상을 선보였을 때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지켜보던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이 처음에는 “와~ 놀랍다, 대단하다.” 라고 말했고, 그 다음엔 “그런데 이게 뭐래요?” 였고, 끝나고 난 뒤엔 “어렵네~” 였던 것을 기억한다. DDP서울라이트의 취지가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건축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함이거나 최신 기술을 이용한 미디어아트를 전시함으로서 장소를 세계적으로 알리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이는 장을 만들고 즐거워할 거리로서 미디어 아트를 선택하였으며, 나아가 DDP주변의 상권과의 상생, 활성화까지를 그 목적으로 하고 있었어서 대중의 눈높이와 다소 거리가 있는 , ‘놀라움’ 이상의 평가나 공감을 이끌어 내기에 무리가 있었음은 모두가 아쉬워 했던 부분이었다.

올해Digital Nature라는 주제로 진행된 서울라이트는 예년 대비 훨씬 많은 SNS에 올라왔고 현장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DDP의 굴곡진 면에 프로젝션된 미구엘 슈발리에의 작품 ‘메타-네이쳐 AI’는 식물을 모티브로 한 가상의 정원을 구현하였고, Dan Acher의 오로라 쇼 Borealis 역시 ‘서울’이라는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자연현상을 시연하여 지켜보던 사람들의 탄성을 들을 수 있었다.

빛섬축제는 레이져를 이용한 예술이 주축을 이룬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했던 빛이 예술로 보여지는 이벤트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예술이라는 옷을 입고 낯설게 다가온 느낌이랄까. (아이러니하게도 Borealis에서 이용된 빛 역시 레이져였다.) 팻말에 작게 쓰여진 작품 설명을 읽어보면 ‘아, 그렇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여 줄 수 있고, 모르고 본다해도 여전히 아름답고 놀라운 레이져의 변신에 박수를 보냈지만 ‘노잼 도시’에서 ‘펀 시티 서울’로 만들기에는 아쉬움이 남은 것도 사실이다. 어마어마한 구조물과 다채로운 색상으로 물든 레이져 작품을 지켜보는 얼굴보다 야광봉을 들고 무리지어 뛰는 얼굴이 더 즐거워 보이는 데에서 나의 아쉬움이 설명이 될지 모르겠다.

 

중요한 차별화 전략은 왜 중도하차하는가

 

개인적으로 ‘빛섬축제’ 작명가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말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줄여말하다 보면 의미 전달이 쉽지 않거나 세련되지 못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으로서 ‘빛’+’섬’+’축제’는 행사의 내용 (빛+축제) 과 장소(섬)을 명확히 알려줄 뿐 만 아니라 듣기도 부르기도 좋다.

서울시에서 빛섬축제를 계획한 취지를 살펴보면 한강이라는 서울만의 우수한 자연경관에 위치한‘섬’이라는 물리적 환경을 활용하여 이미 타도시에서 하고 있는 빛축제 사례와는 차별화된 야간 문화컨텐츠를 만들겠다는 내용이 있다. 즉,‘섬’이라는 장소적 특성은 빛섬축제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빛섬축제 홍보문구에도 ‘서울 시민의 일상과 뗄 수 없는 소중한 자연명소 한강’ , ‘메밀꽃이 만발한 서래섬 일대가 화려한 빛과 ~ ‘ 라고 쓰여있다.

서래섬은 봄부터 늦여름까지 유채꽃이, 가을에는 메밀꽃이 아름다워 유명하다. 굳이 제주도나 봉평의 가지 않아도 꽃밭에 들어가 꽃과 하나되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산책 삼아 걷기에도 아주 좋은 곳이라 자주 가는 터라 메밀꽃과 어우러진 빛의 향연이 매우 기대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 꽃이 망가질텐데 유지, 관리는 어떻게 운영이 될지도 걱정이 되었다. 그 걱정이 기우가 아니었다는 것은 도착과 함께 알아 차릴 수 있었다.

빛섬축제 첫날,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여 메밀꽃에 물든 일몰을 보고 빛섬축제를 보리라고 계획을 세우고 일찍 나섰는데 도착하여 보니 서래섬은 거대한 철제 구조물로 ‘점령’당해 있었다. 뽑다가 미쳐 다 못 뽑은 건지, 땅이 남아 심은 것인지 알 수 없는 메밀꽃의 흔적들이 아쉬움을 달랠만큼 남아 있기는 하였지만 ‘빛섬축제’라는 이름에서 기대했던 자연과 조명기술과의 아름다운 만남은 일어나지 않았다. 굳이 섬이 아니어도, 굳이 메밀꽃이 아름답게 핀 계절의 서래섬이 아니어도 될 축제였다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인지 묻고 싶다.

마지막으로 축제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전시의 불편함이다. 빛축제로 성공한 도시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말 그대로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가 가득한 잔치이다.

빛을 이용한 볼거리, 빛을 이용한 즐길거리가 풍부한 것이 다른 축제와 다른 점이지 누구나 즐겁게,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이동거리가 길고, 복잡한 인파로 참여하기 어려운 노인이나, 어린이 그리고 신체적으로 불편한 사람들이 참여 가능한 프로그램까지 만들 정도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잔치인 것이다.

작품을 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것이 없었던 빛섬축제는 축제라는 이름의 레이져 아트 전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읽고 혹시 불편해 할지 모르는 주최측 관계자에게 혹시 위로가 될 지 모르겠지만, 나와 동행했던 서울 시민 K씨는 “아주 좋네. 이런 걸 볼 기회가 없는데...” 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