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국립현대무용단의 MODAFE 개막공연, ‘정글-감각과 반응’
[이근수의 무용평론]‘국립현대무용단의 MODAFE 개막공연, ‘정글-감각과 반응’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23.10.1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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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용이 보여준 한국 컨템퍼러리무용의 비전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춤은 무엇인가?’ ‘왜 춤을 추는가?’, 무용가에게 주어지는 가장 원초적 질문이다. 춤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새로운 작품을 구상할 때마다, 더 나아가 춤 생(生)의 고비 고비마다 되뇌게 되는 무용가들의 숙제가 이 질문일 것이다. 어쩌면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무용가의 존재 이유이고 작품은 그들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대답이 무용가마다 다르고 작품마다 달라지더라도 창작의 원동력이 이 질문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정글-감각과 반응’ (Jungle-Sense and Response, 2023.10.4,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도 그러한 해답 중 하나다. 올 4월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김성용의 첫 안무작이면서 42회를 맞는 MODAFE(국제현대무용제)의 개막공연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무용수들이 온 감각을 깨워 본능적으로 반응해야 하는 곳’이 정글이라고 안무가는 말한다. 모든 생명과 무생물들이 실타래처럼 얽혀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소리를 생성하고 변화를 이끌어가는 에너지의 원천, 무용가에게 정글은 자연이며 환경이며 자극이다. 자연에서 날것으로 전해오는 소리와 색조, 형상이 무용수들에게 감각되고 무용가들의 몸은 이 자극에 반응한다. 정글에서 발원한 감각에 반응하는 몸이 춤이란 메시지로 읽힌 작품이다. 

조명이 꺼진 어둠 속에 사람들이 나무나 풀처럼 널려 있다. 누운 채로 혹은 두세 명씩 어울린 채 그들은 침묵 속에서 울려오는 연약한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뿌연 회청색으로 어둠이 걷혀가며 미세한 움직임이 나타난다. 소리는 증폭되고 공중에 매달린 타원형 물체(정글)에서 구름을 뚫듯 빛이 쏟아져 내리자 몸은 주섬주섬 일어서면서 환경에 반응하기 시작한다. 남녀가 9명씩 모두 18명 장신의 몸들이 겅중겅중 무대를 뛰어다니며 거친 몸동작들을 보여준다. 붉은색 짧은 반바지에 상체는 거의 벗은 채, 의상은 통일되어 있지만 움직임은 제각각이다. 열 여덟 명의 무용수가 한 명도 빠짐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60분간 함께 추는 공연은 드물다. “움직임은 무용수 개개인의 지난 시간과 역사를 보여주듯 각자의 개성으로 빛을 발한다. 가식과 허영이 있을 수 없는 곳, 스스로에게 가장 솔직한 움직임” 이라고 드라마트르그(김미영)가 설명한 모습 그대로다.

조명이 주황색으로 변하고 다시 붉은색으로 진화한다. 새소리에 바람 소리, 온갖 자연의 소리가 섞여 내는 음향이 강해질수록 감각하는 몸들의 반응도 빨라진다. 공중에 떠 있던 타원형 물체가 화려한 색채를 입은 채 부피를 확장하며 무대 한가운데로 낙하할 때 몸들은 움츠러들고 물체가 멀어져갈 때 변화된 몸은 다시 활기를 찾는다. “모든 감각을 깨워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반응해야 하는 곳, 빛이 지나가는 자리에 살아있는 존재들이 어렴풋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몸들은 점차 세련된 춤사위를 보여주고 제각각 다양했던 움직임들이 통일된 군무 형식을 띄기 시작한다. 거칠던 몸들이 부드럽고 정제된 동작으로 진화해갈 때 하나가 된 춤은 관객과 자신들을 함께 위로하는 에너지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안무가가 선택한 주제가 의도대로 무대에 구현될 때 작품은 생명을 얻고 안무가는 해답을 얻는다. 김성용은 ‘정글-감각과 반응’이 “가장 날 것의 환경에서 나오는 무용수들의 솔직한 움직임(춤)을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이 작품이 “무용수들에 의해 만들어진 무용수들을 위한 작품이며 안무가와 무용수가 중심이 되어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을 만든 것”이라고 부연한다. 그들이 보고 싶은 것이 바로 관객들이 보고 싶은 작품일 것이라는 김성용의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한양대 재학 시절, 약관의 나이로 동아 무용 콩쿠르 금상을 받고(1997), ‘초인’으로 서울무용제 대상을 받은(2013) 경력은 무용가에겐 중요한 자산이다. 그러나 내가 주목하는 것은 수상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정의로운 예술가가 되겠다. 욕심을 부리기보다 하고 싶었던 것, 좋아했던 것에서 벗어나지 않고 끝까지 무용을 하겠다는 뜻이 ‘정의롭다’의 정의다. 자기 자신을 잃지 말자.”라고 밝혔던 그의 다짐이다. 그때의 다짐이 5년간(2017~2022) 대구시립무용단을 이끌면서 쌓인 경륜과 어울리며 이러한 자신감을 형성해준 것으로 나는 믿는다. 필자가 평론이란 이름의 글쓰기를 중단한 후 5개월 만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김성용이란 정직한 예술가의 작품에서 한국 컨템퍼러리 무용의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초인’ ‘리턴 투 리턴’등 전작 들에서 보여준 그의 진지한 춤 캐릭터가 ‘국립현대무용단’의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오를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 설렌다.


이번 호부터 '이근수의 무용평론'이 다시 재개됩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