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중계]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 과정, 객관성ㆍ중립성ㆍ공정성 문제
[지상중계]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 과정, 객관성ㆍ중립성ㆍ공정성 문제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3.10.1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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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민요 중심 ‘무형문화재 제도 개선 방안 모색을 위한 정책토론회’ 개최
“무형문화재 보존ㆍ전승, 중요한 사회적 과제”
현행 무형문화재 보유자 지정 불복ㆍ이의제기 공식 창구 필요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최근 경기민요 보유자 심의 과정에서 여러 잡음과 논란이 불거지면서, 무형문화재 제도 전반에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재점화되고 있다. 이에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 과정의 문제점을 짚고 무형문화재 제도의 입법적 개선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무형문화재 제도 개선 방안 모색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지난 8월 29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과 국민의힘 이용호 의원 주최, 묵계월소리보존회ㆍ이은주경기민요보존회ㆍ아리랑보존회 주관으로 이뤄졌으며, 한상일 전 동국대 한국음악과 교수가 좌장을 맡았다. 경기민요를 중심으로한 토론회의 발제는 장희진 가로재 법률사무소 파트너변호사, 손태도 호서대 교수, 김정희 서울대 음악학 박사가 각각 맡았다. 

▲무형문화재 제도 개선 방안 모색을 위한 정책토론회 현장
▲무형문화재 제도 개선 방안 모색을 위한 정책토론회 현장

“무형문화재 보호, 입법 취지 검토 후 개선 필요”

1962년 성립된 무형문화재 제도는 어느덧 한 세대를 훌쩍 넘기며 ‘세대전환’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2000년대 이후 1세대 보유자가 퇴장함에 따라, 무형문화재 예술계에서는 전승자 간 혹은 전승자와 정부 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표적으로 무용 분야에서는 살풀이춤과 태평무의 신규 보유자 지정을 둘러싸고 상당한 갈등이 표출되면서 인정까지 17년의 시간이 걸렸음에도 여전히 진통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경기민요’ 분야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장희진 변호사는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과 관련된 판례들을 소개하며 “무형문화재 전수교육조교 등 소수의 예술인들이 소송 제기라는 최후의 선택을 했음에도 본안 판단조차 받아보지 못하고 있다”라며 “현행 무형문화재 보정 및 진흥에 관한 법률 및 동법 시행령, 시행규칙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무형문화재 보유자는 물론 문화재청 등의 그 어떤 지정행위에 대해서도 이의와 불복을 공식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방법도, 공식적인 이의 창구도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경기민요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을 둘러싼 논쟁은 2005년부터 2023년까지 계속되고 있다. 일련의 문제들은 비단 경기민요 분야에서만 문제화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무형문화재 인정제도에 대해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상황임이 확인된다. 특히 경기민요의 경우 이미 2005년 즈음부터 유파 인정 문제를 비롯한 각종 문제가 제기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2023년 인정에 이르기까지 전혀 이 부분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 혹은 문화재청의 재용역 실시 등은 없이 유사한 시비와 분쟁들을 다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장희진 변호사는 경기민요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에 있어 강도 높은 비난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무형문화재위원회 위원의 구성과 심의ㆍ의결에 있어 공정성 확보 문제라고 밝혔다. 그는 “법의 개정을 통해서라도 무형문화재위원회가 객관성, 중립성,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6조에 따르더라도 해당 사항을 반영한 개정이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이어 “문화재청이 각계의 의견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작금의 사태가 진정 불편부당한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것인지에 대한 반성적 고려가 시급한 실정이다. 이러한 자구적인 노력이 선행될 때 유ㆍ무형 문화재를 수호하고 계승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문화재청에 대한 대국민 신뢰 또한 근본적으로 회복될 것으로 기대되며 경기민요 사태와 같은 불상사가 다시 반복되는 일 또한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화재청의 유파(流派) 불인정 정책과 ‘경기민요’

무형문화재에 있어 유파(流派)를 인정한다는 것은 어떤 종목에 있어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일정한 일가(一家)들을 이룬 성취들을 인정한다는 것으로 무형문화재 제도에 있어 특히 중요한 것이다. 전통공연예술에 있어 유파가 중요한 경우가 있고, 중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전통사회의 무형문화재적 내용을 지켜야 하는 무형문화재 제도에 있어서는 유파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손태도 교수는 “유파들을 지켜야 하는 문화재청이 앞서서 스스로 버려 나가는 것은 참으로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문화재청은 무형문화재 제도 운영에 있어 이러한 비상식적이고 어처구니없기도 한 지금과 같은 유파를 없애는 작업을 당장에라도 그만두고, 근래에 없앤 유파들을 지금에라도 빨리 되살려야 한다. 그리고 오히려 아직 무형문화재들로 지정되지 않은 유파들을 찾아서 더 지정하는 일들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문화를 다루고 있어, 어떤 경우에도 가장 문화적인 전범(典範)을 보여 줘야 할 문화재청이 이런 일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2011년과 2023년의 경우) 보이는 것을 보면, 문화재청이 잘못되어도 아주 잘못되었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경기민요’에는 종래 묵계월(1921∼2015. 2005년 명예보유자로 물러남), 이은주(1922년생. 2015년 명예보유자로 물러남), 안비취(1926∼1997) 등 3명이 독립된 계파 혹은 유파들로 보유자들로 지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문화재청에서는 2011년 6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국문화의집(KOUS) 무대에 묵계월의 제자 김영임(전수조교), 이은주의 제자 김금숙(보유자후보), 김장순(전수조교), 안비취의 제자 김혜란(보유자후보), 이호연(전수조교) 등 5명을 모두 모아 놓고, ‘경기민요’ 보유자 지정 심사를 했다. 종래의 경우 이들은 각기의 보유자 쪽에서 심사를 보아야 되는데, 이렇게 다른 계통의 보유자 아래에 있던 전수조교 등에 한꺼번에 모아 놓고 하는 심사는 1964년 무형문화재 지정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손 교수는 “심사 방식도 이들 3개 계파를 무시한 방식이었다. ‘경기민요’라고 하지만 ‘경기민요’(제57호)에서 묵계월 등 3명이 보존·전승해 왔던 것은 서울의 12잡가(雜歌, 긴잡가)였다. 또 이들은 묵계월이 <적벽가>, <선유가>, <출인가>, <방물가>, 이은주가 <집장가>, <형장가>, <평양가>, <달거리>, 안비취가 <유산가>, <제비가>, <소춘향가>, <십장가>와 같은 방식으로 3명이 4곡씩 나눠 맡는 형태로 이 12잡가를 보존·전승해 왔다. 그런데 김영임 등의 심사 대상자들은 이들 묵계월, 이은주, 안비취가 보존·전승해 왔던 곡들을 1개씩 선택해 모두 3곡씩을 부른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문화재청은 2012년부터 지금까지 이뤄지는 유파를 버리는 일과 같은 문화재 보존에 역행하는 일을 당장에 그만두어야 한다. 오히려 2002년 3월 이래 기존에 확보된 12개의 유파들에서 보유자의 사망 등으로 보유자가 없는 유파들에 그러한 유파의 소리를 제대로 들려 줄 수 있고 일반으로부터도 명창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한 사람들을 찾아 보유자를 지정하는 일들을 제대로 하여야 한다. 더 나아가, 역시 2002년 3월 이후 새로운 유파를 찾아 보유자를 지정하는 일을 한 번도 한 적이 없기에, 지금부터라도 이러한 새로운 유파를 찾아 그러한 유파의 소리를 제대로 들려 줄 수 있어 명창이란 소리를 들을 만한 사람들을 새로운 최초 보유자들로 지정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6월, 경기민요 전승자들이 경기민요의 유파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재청과 무형문화재위원회를 규탄하는 집회를 가졌다
▲지난 6월, 경기민요 전승자들이 경기민요의 유파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재청과 무형문화재위원회를 규탄하는 집회를 가졌다

경기민요의 다양성 확보와 안정적 전승 방안

경기민요에서 판소리 기준의 ‘유파’는 형성 자체가 어려우며, ‘계보’는 근래에 형성되어 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기민요에서 ‘계보’ 간의 차이는 판소리의 그것과 달리 세밀하고 작은 차이로, 3인 보유자 안비취, 묵계월, 이은주 간의 시김새, 창법, 잔가락 등이 그 내용을 이룬다. 김정희 박사는 “작은 차이가 경기민요의 다양성을 이루는 핵심이며, 결코 부정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만일 이를 간과한다면 경기민요의 다양성은 급속히 소멸할 것이며, 이제 막 성장 중인 장르의 발전에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 박사는 “이는 문화 권력 집중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 계보에서 하나의 문화재가 독점되면 권력 또한 그 계보로 집중되고, 그 나머지 계보는 도태 및 소멸할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이는 다양성에도 치명적일 뿐 아니라, 장르 내의 불균등과 위화감,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해당 장르의 원만하고 고른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각 계보의 안정적 전승을 위한 장치가 꼭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이어 “경기민요 보유자 지정에서 기 형성된 3인의 계보는 해당 장르의 다양성이 충분히 형성, 유지, 발전될 때까지 유지되어야 할 것이며, 한 계보에서 모든 보유자가 지정되는, 문화재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직계 스승이 동일인인 집단 내에서는 1명의 보유자만 지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만 12잡가를 굳이 4곡씩 나누어 전승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현재 경기소리 연주자들의 기량은 충분히 각 ‘계보’의 ‘전형’을 유지하면서도 ‘개성껏’ 12곡 모두를 연주할 만큼 성숙했다고 보기 때문이다”라고 첨언했다.

채수현, 이희문, 전병훈, 송소희 등 젊은 경기민요 소리꾼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경기민요의 전형성을 유지하면서도 오늘날의 정서와 취향을 반영한 이들의 다양한 작품과 국내외의 적극적 연주 활동으로 인하여 일상에서 경기민요를 접할 기회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고, 사람들 사이의 관심 및 해외의 관심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아무리 파격적인 재구성이라 해도 이들 젊은 소리꾼들은 경기민요의 전형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이요, 생명이기 때문이다. 

김정희 박사는 “경기민요를 문화재로 지정하여 각종 지원을 하는 것은 우리의 무형유산을 바탕으로 시대의 요구를 반영한 미래의 전통을 만들어가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또 경기민요의 전형과 다양성을 유지, 보존하고 확대, 발전시키는 것은 한국 음악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도, 세계 음악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서도, 후손들의 더욱 윤택한 삶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며 “오늘날의 젊은 소리꾼들이 진로에 대한 불안감 없이 어느 계보에 있든 안심하고 자신의 소리길을 연마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에게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 문화재 보호하는 ‘공정한’ 기준 마련 시급”

발제에 이어 채치성 전 국악방송 사장, 이재필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장, 임정란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1호 경기소리 보유자, 심은주 경상남도무형문화재 전문위원, 김문성 이북5도 문화재위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토론이 진행됐다.

채치성 전 국악방송 사장은 경기민요 보유자 인정과정에서 보여준 문화재 지정 기관인 문화재청의 잘못된 태도를 지적했다. 채 전 사장은 “2차 실기평가에서 각 계열의 전수교육보조자들만 평가 대상으로 할 것이면서, 이수자들에게까지 수많은 시간과 경비를 들여서 서류를 작성하여 경기12잡가의 동영상을 제작하여 제출하게 한 것은 기만행위이다. 또한 각 계열의 전수교육보조자인 김혜란, 이호연, 김영임, 김장순 등의 실기평가 과정에서 합당한 예우를 받지 못하고 경직된 분위기에서 마치 학생들 경연대회처럼 치러진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또한 “수십 년 동안 전승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 전수교육보조자로서 전승교육을 하고 있는 전문가들을 함부로 평가해서 점수가 낮다고 탈락시키는 문화재청의 행위는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행위”라고 덧붙였다.

국악인 ’마지막 보루’ 문화재청, 소리 경청해야

임정란 경기소리 보유자는 “이번 경기민요 보유자 인정과정을 지켜보며, 문화재청에 대한 믿음보다는 불신이 더 커졌다. 국악인들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문화재청이고, 문화재청은 모든 국악인의 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과정을 보면서 국악인을 지켜준다는 느낌보다는 문화재 위원회 편에서 있으면서 국악인을 범법자로 만들고 악성 민원인으로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다”라고 밝혔다. 이어 “안비취 선생님은 가곡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발성이며 창법을 쓸 때 목을 활용한 기교가 뛰어나신 분이고, 묵 선생님은 통목에 서도 요성을 잘 활용하신다. 처음 들으면 두 분의 떠는 소리가 비슷하게 느껴질지 모르나, 떠는 위치와 방식이 다르고 소리를 띄우는 방식도 아예 다르다”라며 “이론가들의 귀와 눈에 이런 점들이 단순 개인기로 비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50년간 존중하고 인정한 고유 계보의 지표로 삼고 배웠으며 또 가르쳤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심은주 위원은 “무형문화재 제도 개선방안에 대하여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여론은 여론으로서만 남아있고,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인간의 수명은 한계가 있다. 아무리 갈고닦은 자신의 재능을 전달하고 끝없는 예술의 길을 열심히 걸어간다고 해도 숨 쉬는 동안 자신의 재능을 전수하고 세월이 흘러 기력이 약해질 때 전수자와 이수자, 그리고 보유자 후보자들은 의욕마저 조금씩 약해져서 한국의 귀한 전통예술의 맥을 끊어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길을 걷게 된다”라고 전했다. 이어 심 위원은 “또한 외부의 전문 실기인들을 위촉하여 심사에 함께하면 잡음이 없을 것이다. 모든 잡음에는 이유와 바람이 있다고 생각된다. 여론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잣대를 가지고 평가한다면 영원한 잡음은 끝없이 영원할 것이다. 실기인들이 문화재 지정을 받아 고유한 한국음악의 전통을 대대로 이어 나가려 노력한다는 것만 해도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김문성 위원은 “이번 경기민요 보유자 인정 절차와 관련해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발제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신 것처럼 오류의 시작은 2009년 문화재청이 발주해 한국국악학회가 용역을 받아 제출한 용역보고서라고 생각한다. 해당 용역보고서의 효력을 공식적으로 무효화할 필요가 있다”라며 “이 용역보고서 중 거문고산조의 경우 문화재로 지정된 두 개의 유파 중 한쪽 유파의 이수자가 집필자로 참여하여 상대방 유파의 업적을 다소 폄하하는 발언이 실리는 등 용역보고서라고 하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많이 보인다. 이를 공식적으로 폐기할 경우 경기민요 보유자 인정 방식은 통합 방식이 아닌 판소리처럼 개별 인정 절차가 가능해질 것으로 본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