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ITI 아시아 지역협회 탄생과 아태지역 페스티벌, 그리고 NIB 페스티벌 탄생
[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ITI 아시아 지역협회 탄생과 아태지역 페스티벌, 그리고 NIB 페스티벌 탄생
  •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 승인 2023.10.25 10: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1997년 서울에서 성공적으로 치른 아시아권 최초의 총회와 페스티벌의 반응은 3년이 지나도 그 흥분과 여운이 가라앉지도 않은 가운데, 2000년도 프랑스의 말세이유에서 열리는 제20차 ITI 총회 참석준비에 마음이 바빴다.

개인적으로는 1996년 5월 3일 사단법인 한국공연예술원을 설립하고 경치 좋은 비원 옆 전 국립극장장이셨던 허규 씨가 세운 건물 2층에 둥지를 틀고 <한극 세우기> 제1호 사업으로 배우지망생을 제1기로 뽑아 <한극 만들기> 작업 공연 올리기에 열중하는 시기였다. 아울러 한국에서 역사적으로 관극의 시초가 무엇인가를 더듬어 올라가던 중 한국에서의 관극의 최초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었던' 모습이 관극의 시초임을 확인한 바다. 

잃어가고 무시당하는 굿의 모습에서 한국 최초의 제의로서의 굿을 살피기로 하였다. 1997년 한국 최초로 <샤마니카페스티벌>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우선 우리나라와 역사적, 정서적으로 제일 가까운 몽골제국의 굿을 비교 분석하기 위해 몽골여행을 감행했다. 그 결과 1997년 경복궁 안 민속박물관 마당에서 <한 몽 문화교류 2000년 행사를 치르며 아주 바쁘게 지냈다.

<샤마니카페스티벌> 행사는 나만 흥분시킨 게 아니고 1998년, 1999년을 이어 행사하는 동안 한국의 방송계와 공연예술계를 흥분시키며 KBS와 MBC 9시 뉴스에까지 소개되어 어디를 가면 일약 스타가 된 듯했다. 한국공연예술원의 국제적 <샤마니카 굿 공연>을 한 사람으로 알아봐 주었다. 이 일을 기획 진행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중인데 1998년 말과 1999년 여름에 이태주 평론가 선배님이 ITI 회장선거 출마를 권하는 것이다. <샤마니카페스티벌> 준비에 여념이 없던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뒤도 안 돌아보았다.

그 뒤 1999년 해가 기울어 연말이 다가오고 있는 10월경 음악평론 하시는 이상만 선생님이  또 다시 ITI에 출마하기를 강력히 권하시며 ‘출마만 하겠다고 말만 하면 만방으로 돕겠다’며 강권하시는 바람에 선거에 임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후배 김문환 교수와 겨루게 되어 여섯 번째 ITI회장으로 당선이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외부에서 보기는 화려하고 돈이 넉넉한 줄 아는 한국 공연예술계의 제일 오래된 국제기구 ITI의 살림은 맡고 보니 참으로 외화내빈의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세계 대회장을 배출하며 제19차 세계페스티벌을 주최한 한국ITI는 동양권 여러 나라가 우러러보며 모범을 삼고 싶어 하는 선망의 나라로 부상해 있었다. 2000년 여름 전 회장님들의 호응을 받으며 나는 지중해 한끝을 이으며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프랑스의 미항 말세이유를 향했다. 동행한 분들은 김정옥 세계대회장과 김의경 전 회장, 사진 찍기를 놓지 않으시는 이태주 교수님, 당시 춤지의 편집장으로 있던 김경애님 등 지금 기억으로는 한두 분 더 동행하여 여섯, 일곱 분이었다고 기억한다.

1999년 겨울 ITI한국본부회장으로 피선되면서 서부유럽에 치우쳐있던 ITI 활동을 아시아권에도 두어야 할 바를 깨달았다. (사)한국공연예술원의 샤마니카 페스티벌 준비를 하며 운둔의 아시아권 공연예술계에도 깊은 잠을 깨워줄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리하여 김정옥 선생님과 한국문화예술원원장으로 계신 차범석 원장님 등 전 회장 김의경 선생의 동의를 얻어 말세이유총회 때 ITI아태지역협회를 제안하자고 설득할 마음으로 총회에 참여했다.

다행히도 제20차 말세이유 총회에는 아시아권에서 8개국이 참석하여 한국본부회장인 내가 제안한 ITI 아태지역협회 창립에 모두 기뻐하며 회원이 되기를 기꺼이 찬동해 주었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한국ITI의 발전을 눈여겨보며 많이 닮고 싶어 하던, 방글라데시, 인도, 네팔, 일본, 중국, 몽골, 처음으로 ITI 멤버로 가입한 이란 등 한국 ITI가 발의한 아태지역협회 발족을 결의하는 자리에서 8개국 만장일치로 ITI총회에 발의해 그 자리에서 승인을 받아내었다.

아시아권 8개국 대표단들은 각 국의 회장을 중심으로 점심자리를 함께하며 그 자리를 <발기총회>로 간주하고 ITI아·태지역협회 정식 발족은 2001년 한국 주최 BESETO 연극제 때 정식 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큰 기구 하나가 한국본부를 중심으로 생겨난 것이다.

그리하여 2000년 9월 한국에서 개최하게 되는 BESETO 연극제한국에서의 개최를 기회 삼아 호주, 방글라데시, 중국, 프랑스, 인도, 일본, 쿠웨이트, 몽골, 네팔, 터키, 이란, .필리핀 등 한국을 포함한 열네 개국 대표들을 서울에 초청했다. ‘ITI아시아 페시픽 지역협회’를 결성하고 그 헌장을 14개국 대표들과 함께 만들고 공표했다. 새로 조성된 AP -ITI는 제2차 회의를 다카 방글라데시에서 개최한 페스티벌 초청으로 그곳에서 치르고, 제3차 회의는 2002년 중국 난징페스티벌 초청으로 중국에서 모임을 갖고 발전을 이어나간다.
 
2003년은 이란의 국제연극제를 계기로 크게 확대하여 <이란 국제공연예술제>에 AP - ITI 대표인 나를 최대해 주어 처음으로 이란의 국제연극제 이모저모를 보게됐다. 페르시아 문화와 페르시아 언어의 세련되고 수려한 모습과 함께 히잡문화의 엄격함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은 지금도 세계에 대한 감각을 터득하는데 많은 길잡이가 되어준다. 특히 이란의 풍부한 자원과 1억 명이 넘는 인구와 농업자원, 무엇보다 그들 자신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 그 모든 것들은 서양문화 중심으로 보던 나의 시야를 크게 넓혀주었다.

이러한 경험을 하며 세계를 보는 동안 인도, 방글라데시, 네팔 3 나라는 한, 중, 일이 모여 1994년부터 열어온 <BESETO>연극제를 보고 간 대표들이 THEATER FESTIVAL>을 열게 되었다. 3개국에서 그 행사를 AP- ITI 회장이 와서 열어주기를 원해 네팔에서 처음 여는 행사에 다녀오며 참으로 세계의 문화와 역사의 다원함을 경험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무엇보다도 각 나라의 행사를 주최하는 모습과 시상의 가치척도를 보며 문화의 다양함과 각 나라 역사의 아픔을 함께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는 다양하고, 각 나라 역사는 문화를 통해 그 깊은 속살을 들어내 주고 있다. -
다음번에는 한. 중. 일 3개국이 발전시키고 있는 BESETO 연극제에 관해 올려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