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 아이의 노래 Ⅱ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아이의 노래 Ⅱ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승인 2023.10.2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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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노래: 이 제목은 욕조 속에 드러누워 미래의 아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이경호 작가의 모습을 은유한 것이다.
▲윤진섭 미술평론가

<지난 호에 이어서>

디종의 미술대학에서 사제지간(師弟之間)으로 올랑을 만난 이후, 이경호의 삶은 변화했다. 알다시피 프랑스 파리는 예술에 관한 한, 무한한 자유가 보장되는 곳이 아닌가?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이때부터 이경호는 다양한 작업을 통해 예술적 실험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기존의 예술 문법을 뒤엎기 위한 과격한 도전과 새로운 예술의 창조를 위한 그 나름의 몸부림이었다. 당시 이경호가 행한 여러 퍼포먼스들을 유튜브를 통해 지켜보면서 승부사로서 이경호의 그런 예술가적 기질을 강하게 느꼈다.

작가로 데뷔하기 전에 이미 이경호는 미술학교에서 온갖 예술의 실험을 했다. 1991년 작인 <Informance(Installation+performance/설치 퍼포먼스)>는 세계적인 소장가들의 이름이 적힌 전시장 바닥 위에 덮힌 2.5t의 소금을 13대의 청소기로 빨아들이는(왕두, 신흥우, 김태종 외 파리장식미술학교 동기생들 참여) 작업을 선보였는데, 청소기에는 그해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판매한 작가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3)

그보다 2년 전에 이경호는 모교인 디종의 에꼴 드 보자르 교정에서 저항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눈이 내리는 밤에 3층 건물의 옥상에 연결된 철선으로 불타는 13개의 옷을 연달아 내려보내 교정 한 가운데 놓인 욕조 속으로 빠트리는 작업이었다. 이때 이경호는 허공에 늘어뜨린 자루 속에서 나와 욕조 부근에 있는 3개의 드럼통을 ‘사물놀이’의 박자에 맞춰 탕, 탕, 탕 큰 칼로 내리치는 동작을 계속하였다. 퍼포먼스가 시작될 때부터 홍신자의 신들린 듯한 웃음소리가 담긴 황병기의 ‘미궁’과 함께 30명에 달하는 친구들의 고함소리와 사물놀이의 음향을 뒤섞은 소리가 들렸다.4) 장내에는 혼돈과 소란, 관객들의 고함소리와 놀라움이 뒤섞인 어수선한 분위기가 흘러넘쳤다. 이 작업은 숫자 3이 지닌 문화적 기호5)로서의 의미와 13이라는, 서구에서는 불길한 의미의 숫자를 뒤섞음으로써, 기존의 가치를 전복시키려는 의도를 담고있으며, 퍼포먼스가 벌어지는 서구사회 속에서 한국의 전통음악과 실험정신이 결합된 황병기의 <미궁>을 트는 행위를 통해 주류문화에 도전하고 저항하는 작가의 의식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주제, (쉼표) 돈과 예술, 돈과 종교
돈과 정치, 돈의 순환에 대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포괄하는 키워드는 '인생'이다

 

Ⅳ.

2000년도에 프랑스에서 귀국한 이경호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신의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인사들과의 만남을 통해 한국에서의 작가적 입지를 다져 나간다. 이 무렵 이경호는 프랑스에서 습작기와 수련기를 거치는 동안 점차 전위미술에 빠져 있었다. 형식과 매체로서의 테크놀러지와 인스톨레이션, 퍼포먼스, 오브제 등이 혼합된 가운데 이루어진 전방위적 아방가르드였다. 이경호는 훗날 유학시절을 회고하며 다음과 같이 술회하였다. 유학 전과 후의 의식을 연결시켜 보기 위해 다소 길지만 여기에 인용한다.

“87년 10월 프랑스로 건너가 디종과 파리에서 수학했다.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수업이 교차하던 시기에 여러 매체를 다룰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언어소통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작업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무언의 대화를 하는 방식을 체득했다. 퍼포먼스, 비디오, 사진, 조각, 설치, 그래픽디자인, 건축, 철학, 영화 수업 등은 자연스럽게 나의 작업 표현의 수단이 되었다. 그냥 스쳐가는 어떠한 우연도 뮤즈들이 주는 영감이라 생각하고 작업의 소스로 받아들였다.”6)

귀국 후에 이경호의 작업을 관류한 주제는 돈과 예술, 돈과 종교, 돈과 정치, 돈의 순환에 대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포괄하는 키워드는 ‘인생’이다. 그것도 나의 관점에서 바라본 곧 나의 삶(인생)인 것이다. 이경호의 작업 대부분에서 주관성이 강하게 노출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아무리 벗어나려고 발버둥쳐도 자신의 삶을 객관화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야말로 역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지름길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2014년 작인 <버스 기다리는 것을 생각해 보기!>(single channel, 6분)란 영상작품은 인생유전(人生流轉)을 다룬 수작(秀作)이다. 때는 겨울, 충청도 아산의 어느 황량한 들판 한가운데 있는 버스정류장이 무대인 이 영상작품은 버스를 기다렸다 타는 세 명의 남녀 시골 노인들의 평범한 모습을 통해 인생의 덧없음을 단순한 플롯과 깔끔한 영상미로 보여준다. 카메라의 초점을 화면 중앙의 버스정류장에 고정시킨 작가의 의도가 보여주는 것은 원근법적 시선이다. 서구 근대의 상징인 원근법을 통해 세계를 장악하려는 의도가 깔린 이 남근주의적 세계관이 한국의 한 한적한 시골 마을의 풍경을 장악했다고 가정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근대 이후 한국 사회에 불어닥친 이농(離農) 현상과 산업화 이후의 가족해체를 의미할 수도 있고, 황량한 시골 풍경을 통해서는 이른바 대지성에 대한 회복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어느 편이 됐든지 간에 작가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버스 정류장과 그 주변에 광활하게 펼쳐진 대지이다. 작품의 도입부에, 자욱한 안개 속에 가르마처럼 들판의 한 가운데에 난 길을 걸어가는 검정 코트를 입은 주인공(작가 이경호)의 모습과 안개가 걷히고 난 후 햇살이 가득한 들판에 황량하게 서 있는 버스정류장과 촌로들 등 영화에 전체적으로 흐르는 분위기는 곧 인생유전, 곧 덧없음에 대한 암시가 아닌가!

인생의 덧없음을 한 장의 비닐 봉지로 암시한 작업이 2006년에 세줄갤러리에서 발표한 <어딘가에/Somewhere>란 작품7)이다. 이 연작은 홍콩, 경주, 북경, 파리, 부르셀, 뉴욕, 하와이, 마이애미, 나오시마, 몽골 등지에서 행해졌으며, 길에서 줍거나 상점에서 구한 비닐봉지를 이용,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거나 드론으로 촬영하여 작품을 완성한다.8)

<다음 호에 이어서>


3) 이경호의 전언에 의하면 당시 크리스티의 경매 실적을 참고했다고 한다. 
4) 1967년 8월 3일생인 이경호는 숫자 ‘3’에 의미부여를 했는데, 이 3이라는 숫자는 3원소를 비롯하여 3위일체를 뜻한다. 이 ‘3’은 이경호의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5)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삼족오(三足烏)와 중국 고대에 등장하는 다리가 셋 달린 청동 제기(祭器/정(鼎)) 등 
6) 이경호, <차가운 미디어를 따뜻하게>, 작가노트 중에서
7) 이 작품의 원천은 유년시절 하교길에 버려진 돌이나 나뭇가지를 발로 차며 귀가한 경험들이며, 보다 구체적으로는 1988년 파리 유학시절에 가위 눌린 꿈에서 깨어난 후 다락방 창문에 걸어놓은 눈 두 개를 그려넣은 비닐 봉지다. 악귀의 힘을 빌어 공포심을 극복하자는 의미에서 한 행위의 소산이었다. 
8) 이 작품이 실내에서 이루어질 경우 여러 대의 선풍기를 틀어놓아 바람을 만든 다음, 떠도는 비닐봉지의 모습을 실물과 영상으로 동시에 보여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