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조명 때문에 못살겠다.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조명 때문에 못살겠다.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 승인 2023.10.25 1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도시마다 야간 경관 (개선 혹은 명소화) 사업이 넘쳐난다. 이러한 사업의 대상지는 주로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나 수변의 산책로 혹은 공원이다.

통영에 가면 꼭 보아야 한다는 디피랑은 남망산 일대이며 최근 울산의 핫플레이스로 주목받는 명선도 역시 울산 앞 바다 위에 위치한 무인도 섬으로 물 때에 맞추어 제한적으로 걸어 들어갔다가 나와야 하는, 사람의 흔적이 거의 없는 곳이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선정한 밤이 되면 더욱 빛나는 ’야간관광 특화도시‘ 5곳을 살펴보면 강릉시 솔향수목원, 진주시 남강, 부산시 용두산공원 등 환경부 빛공해 방지법 상 1,2종으로 밝기 기준도 낮고 연출에 있어 가장 가장 낮아야 하는 지역들이다.

또한, 야간경관 개선사업의 성격도 절대적 밝기 부족으로 위험을 개선하기 위해 밝기를 보완하거나 고른 밝기를 위한 프로젝트들이었으나 최근은 관광활성화를 위한, 체류형 도시 인프라의 하나로 색과 움직임를 담거나 나아가 미디어 콘텐츠를 연출하여 재미를 더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대상지 선정에 있어서도 알려지지 않은 숨은 장소 보다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관광명소에 밤의 콘텐츠를 더하여 밤까지 체류하게 하려는 의도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을 선정하기도 한다.

문제는 그 대상지가 대부분 환경부에서 정한 조명 환경 관리구역 상 1,2종인 지역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즉, 법 상 조명 설치를 지양해야 하는 지역에 지자체에서 주도적으로 조명을 설치하라는, 법을 어기는 용역을 발주하고 있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담당 주무관이 많지 않다. 그 이유는 이러한 용역이 경관보다는 관광 부서에서 이루어지며 주무관들이 빛공해 방지법이나 야간경관 가이드라인등의 조례의 내용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친숙하지 않을뿐더러 이미 타 지자체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사업으로 ’아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시의 자연경관은 그 도시의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도 그 도시를 방문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산이나 공원, 강등이 첫 번째로 꼽히곤 한다. 이러한 자랑거리 경관이 밤에는 어둠에 쌓여 접근조차 못하게 되는 것도 답답한 일이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부분적으로는 조명을 설치하여 아름다움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대하여는 이견이 없다. 다만 자연경관이 가진 특징을 드러내기는커녕 오히려 훼손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큰 문제이다.

지난 주 막을 내린 빛섬축제가 서래섬의 메밀꽃 물결과 공존하지 못함이 그러하고, 이번 주 열린 하늘공원의 억새 축제에서도 우람해 보이는 지지대 위에 설치된 조명기구는 여전했다.

단언컨대, 품격있는 밤의 도시, 밤의 명소가 되기 위하여 꼭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문화, 예술과의 어정쩡한 결합이 아니라 주간 경관을 훼손하지 말 것 그리고 주변 빛환경을 고려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위하여 대상지에 대한 물리적인 특징을 파악하고 주, 야간 환경에 대한 특징을 분석하는 과정이 반드시 우선되어야 한다.

자연에 스며드는 조명예술로 유명한 설치 작가 브루스 먼로 Bruce Munro는 현대 테크놀러지의 하나인 ”빛‘을 소재로 하며, 주제를 정하는데 있어서 세상과 존재와의 교감하는 순간을 중요시 한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그의 유명한 작품 Field of Light은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므로 아름답다. 2018년 제주에 선보인 작품 오름 Oreum을 위하여 그는 대상지를 3년간 여러 차례 방문하여 장소의 특징을 연구하여 가장 조화스러운 방식으로 설치하였고 그 결과 작품이 설치된 장소에 어떤 시각적 방해도 되지 않았다. 호주의 울룰루 Uluru에 작업한 Field of Light도 3주간 여행을 하며 구상을 하였다고 하니 장소에 대한 특성을 파악하고 훼손하지 않도록 작품을 설치하려는 노력이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장소의 특징을 고려하려는 노력 그리고 당당하게 조명기구가 자연 속에서 서 있지 않게 하도록 하는 정도의 노력은 하기를 바란다. 빛은 어디에서 비추어도 어둠만 있다면 그 대상을 드러나게 할 것이므로 보다 품격있는 야간 경관을 위하여 이제는 감추기에 더 힘 써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