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석의 컬렉션 비하인드] 호두 한 알, 사람을 만나다. 김재원 (2-1)
[윤태석의 컬렉션 비하인드] 호두 한 알, 사람을 만나다. 김재원 (2-1)
  • 윤태석 남평문화주조장 대표
  • 승인 2023.10.25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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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석 남평문화주조장 대표(예술감독)/문화유산국민신탁 자문위원

천안, 김천, 안동, 예천 등은 호두를 특산물로 하는 고장이다. 언제부턴 진 모르겠으나 호두과자는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있는 국민 대표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호두박물관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싶다. 전남 장흥에 있는 귀족호도박물관이 그것이다. 귀족 호두는 열매의 귀족이라 해서 조선 시대에 붙여진 이름으로 식용이 아닌 지압, 손 운동 등 건강용으로 쓰인다. 호도(胡桃)는 오랑캐를 통해 들어온 복숭아를 닮은 열매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나 2003년 국어 맞춤법 개정을 통해 호두가 표준어가 되었다. 그런데도 호두의 옛말인 호도를 김재원 관장은 박물관 명칭으로 쓰고 있다.

김재원 관장이 고향 장흥에 귀족호도박물관을 설립하게 된 배경은 세월을 꽤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우표수집을 취미로 갖게 되었다. 그러나 돈이 없어 새 우표가 나올 때마다 수집하는 데는 어려움이 컸다. 그러던 차에 같은 반에 김 관장과 같은 취미를 가진 한 친구를 알게 된다. 아버지가 경찰공무원이던 그 친구는 경찰서로 오는 우편물에서 제거한 우표도 수집 중이었다. 그 친구의 도움으로 김 관장은 취미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이후 사라져가는 농기구, 목가구류, 소소한 석물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는데, 이것은 그때 퍼진 수집병에서 비롯되었다고 김 관장은 말한다. ‘딱히 이유는 없지만 원래 그런 취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뭔가를 모으고, 쓰던 것도 버릴 때가 되면 망설여지고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이유는 담박했다.

▲귀족호도박물관에서 부인과 함께 ⓒ윤태석
▲귀족호도박물관에서 부인과 함께 ⓒ윤태석

김재원과 그의 부인은 공무원으로 일했다. 김 관장은 농업직으로 20년을, 아내는 19년간을 우체국에서 근무했다. 김 관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만의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내가 직장생활을 더 할 테니 자네는 이제 그만하고 좀 쉬소. 아이들 키우고 애썼으니.’ 20년을 채우면 연금이 나오는 걸 뻔히 알면서도 19년 차에 그만두기를 원했다. 종용에 가까운 남편의 설득에 넘어간 아내는 사표를 냈고, 20년을 딱 채운 김 관장은 아내와 상의도 없이 사표를 던지고 군청을 나오게 된다. ‘둘 다 연금을 받게 되면 안정감으로 나태해지고 내 할 일을 하는데, 방해될 것 같아 배수진을 친 것입니다. 아내는 제가 그 만둔 사실도 다른 사람을 통해 들었지요. 한번 대판 싸운 후 상황은 깔끔하게 정리되었지요.’, ‘당시는 IMF 정국이라 공직사회도 고강도의 구조 조정이 필요해 우리 과(課)에도 무조건 한 명은 옷을 벗어야만 했습니다. 제가 나간다고 하니 울고 싶은데 뺨 때려 준 격이 됐죠. 그래도 3개월간이나 사표 수리를 미루더라고요. 내가 필요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에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습니다.’

▲김재원 관장이 중학교때 수집한 우표첩
▲김재원 관장이 중학교때 수집한 우표첩 ⓒ윤태석

김재원은 농업에 문화와 예술을 접목해 6차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싶었다. 김 관장은 호두를 수집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는 뒤로하고 호두를 통해 만난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고 술회했다. ‘2010년쯤의 일입니다. 절 찾는 전화가 왔다고 아내가 수화기를 넘겨주었습니다. 거기 ‘호두박물관이죠?’ 서울 말씨가 아리따운 중년여성의 목소리였지요. ‘호두도 기념품으로 파나요? 거기 호두가 귀하고 비싸다고 하던데 호두를 한 쌍 사고 싶습니다. 남편은 손이 작으니 작은 것이면 좋겠어요.’ 우리 박물관에서 호두를 찾는 대부분이 사람들은 큰 걸 원하는데 그분은 달랐습니다. 그저 주문해주면 고마움을 표하고 잘 포장해 보내드리면 되는데 참 실용적인 분이구나 싶어 궁금해지더라고요.’ ‘‘저 혹시 남편분이 누구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것도 말 해줘야 하나요?’ ‘박태준이라는 사람입니다.’ ‘혹시 포항제철 초대 회장님이신지요?’ ‘아 네 맞아요.’ ‘사모님! 제가 그냥 보내드리면 안 될까요?’ ‘그걸 왜 보내요? 박물관 운영도 하셔야 하는데. 그분(박태준)도 원치 않으실 거예요. 계좌 알려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도 주소를 알려드릴 수가 없답니다.’ ‘사모님! 그게 아니라 국무총리까지 지내시며 우리나라를 이렇게 발전할 수 있게 이끌어주신 분이어서 제가 빚을 진 기분입니다. 또 회장님 같은 분이 계시기에 저 같은 사람이 박물관이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그건 아니지요.’ 이렇게 한참 실랑이가 이어졌지요. 결국은 제가 이겼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모님 것까지 호두 두 쌍을 정성껏 포장해 보내드리게 되었지요. 정말로 빚을 갚는 느낌이었습니다.’

▲박태준 회장이 보내준 자서전
▲박태준 회장이 보내준 자서전 ⓒ윤태석

그렇게 일주일쯤 지났을까. 김 관장 앞으로 난데없는 소포 한 박스가 당도했다. 살펴보니 박태준 회장이 보낸 것이었다. 아내와 함께 열어보니 갖가지 건어물이 거실 가득 이었다. 겸연쩍은 마음이 컸지만, 김 관장 내외는 호두에 대한 답례로 생각했다. 보름 후 또 하나의 박스가 왔다. 이번에도 박태준이었다. 잘못 온 게 아닌가 싶어 박스에 붙은 운송장을 살펴보니 분명 수취인이 김재원이었다. 이번에는 다시마, 미역, 김, 톳, 파래 등 갖은 해조류가 이웃과 나눠 먹어도 될 만큼 가득이었다. 이렇게 되니 호두를 그냥 보내드린 게 후회가 될 만큼 되레 빚을 진 기분이 들었다. 1년쯤 되었을까.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