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근의 얼씨구 한국음악과 문화]하늘이 내리고 조선 왕실이 받든 대서사 음악극, ‘종묘제례악’
[주재근의 얼씨구 한국음악과 문화]하늘이 내리고 조선 왕실이 받든 대서사 음악극, ‘종묘제례악’
  • 주재근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 승인 2023.10.25 12: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재근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주재근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조선이라는 국가 창업의 위대성과 선왕들의 문덕과 무공을 어떻게 제례로 표현되었는가,  다음달 4일이면 종묘에서 그 생생한 현장을 마주할 수 있어”

서양의 중세 카톨릭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던 전례음악인 그레고리안 성가(Gregorian chant)는 전례의식과 음악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국의 종묘제례악은 의식과 음악 뿐만 아니라 춤이 함께 어우러져 있음이 다르다.

세조(재위 1455∼1468)는 아버지 세종이 새롭게 만든 보태평과 정대업의 내용적 의미와 음악적 가치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세종 때 만들어진 정대업, 보태평은 고려시대의 풍입송(風入松), 서경별곡(西京別曲), 청산별곡(靑山別曲) 등의 향악(鄕樂)과 고취악(鼓吹樂) 등 기존 선율이 많이 녹여 있었다. 이 새로운 음악은 궁중의 예법이 악가무로 표현되는 회례악(會禮樂)에 사용하고 『세종실록(世宗實錄)』 에 조선 고유의 기보법인 정간보(井間譜)에 그 고귀한 음악을 담아 두었다.

세조는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짓는 일에 참여 경험이 있었던 최항(崔恒, 1409~1474)에게 회례악이 아닌 종묘제례악으로의 가사를, 황효성에게는 음악적 변개 작업을 직접 명령하였다. 

왕위 등극 10년만인 1464년 음력 1월, 세조는 종묘제례의 주관자로 새로운 종묘제례악을 선왕들에게 선보였으며 이때의 종묘제례악이 오늘날 종묘 현장에서 공연무대에서 거의 그대로 연주되고 있다.

세조 때 만들어진 종묘제례악은 조선왕실의 음악기관인 장악원(掌樂院)의 악사들에 의해 연주되었으며 음악 선율은 『세조실록(世祖實錄)』 악보, 『대악후보(大樂後譜)』(1759년), 『속악원보(俗樂源譜)』(1892년 중수)등에 담겨 있다. 국가 왕실의 법통과 권위를 나타내는 종묘 제례는 그 어느 국가의식보다 가장 중요시하게 여겼다. 조선이라는 국가 창업의 위대성과 선왕들의 문덕(文德)과 무공(武功)을 제례에서 어떻게 찬미할 것인가의 표현 내용과 방식은 아주 중요한 과제였다.

종묘제례악의 악대 편성은 댓뜰 위인 당상(堂上)에서 연주하는 등가(登歌)와 댓뜰 아래의 당하(堂下)에서 연주하는 헌가(軒架)로 구분이 된다. 등가는 하늘(天), 헌가는 땅(地)을 상징하며 등가와 헌가 사이에 배치된 일무(佾舞)인원은 인(人)을 상징함으로써 천지인(天地人)의 삼재사상(三才思想)을 나타내었다. 『예기(禮記)』에 ‘큰 의례는 반드시 간단해야 하고, 큰 음악은 반드시 쉬워야 한다(大禮必簡 大樂必易)’라는 음악철학은 조선조 왕실의 제례음악에도 적용되었다.

종묘제례음악의 구성음은 아주 낮거나 지나치게 높지 않아야 하며, 선율 진행에 있어서도 큰 도약 진행이 없어야 하고, 음의 표현에 있어서 요성(搖聲, vibration)이나 음을 꺽어 내리는 퇴성(退聲)을 극히 제한하여 사용하게 하였다. 종묘제례에 사용되는 악기는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팔음(八音, 여덟 가지 악기 재료-쇠,돌,실,대나무,바가지,흙,가죽,나무)의 악기를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여기에 향악기(대금, 거문고, 가야금), 당악기(방향, 당피리 등), 아악기(편종, 편경, 축, 어 등)를 함께 사용함으로써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 유학을 숭상하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제사음악)과는 완전한 차별성을 두었다.

종묘제례에는 여러 악기 반주에 맞추어 왕의 문덕과 무공을 노래하는데, 그 노래의 높은 뜻과 왕실의 가장 큰 제사에 불려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가곡(歌曲)등 정가(正歌)라고 부르지 않고 악장(樂章)이라고 한다. 왕이 종묘제사를 참석하기 몇 일전부터는 연회와 술등을 금지하고 사악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였다. 종묘제례에서 노래 부르는 악장 또한 궁중의 법도와 노랫말의 의미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바른 마음은 물론 정성스럽게 위엄있는 독특한 창법으로 노래를 불러야 한다. 

종묘제례 음악에 맞추어 노래하는 것을 악장이라 하듯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은 춤이나 무용이라고 하지 않고 일무(佾舞)라고 한다. 조선 왕실에서는 가로6줄, 세로6줄 36명이 추었으나 오늘날에는 가로8줄, 세로8줄 64명이 추고 있으며, 무대 공연시에는 무대 규모에 맞게 무용수를 배치한다.

한국 음악 철학의 집대성이자 악가무가 어우러진 한국 음악 표현 방식을 대표할 수 있는 종묘제례악은 1464년 종묘에서 종묘제례악이 처음 연주된지 500년 후인 1964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500여년의 흐름 속에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등 크고 작은 풍상을 견뎌오는 동안에도 종묘제례와 음악은 그 어떤 음악보다도 굳건하게 지켜왔다. 그 지킴은 2001년 유네스코에서 종묘제례악을 세계의 무형문화유산 가운데 한국의 무형문화유산 가운데 제일 먼저 선정하게 된 배경이 된 것이다. 그 종묘제례악을 다음달 4일이면 종로3가 종묘를 무대로 한 장엄한 대서사 음악극을 우리는 함께 마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