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근택 개인전 《반영》, 최근 신작 연작 40여 점 선봬
유근택 개인전 《반영》, 최근 신작 연작 40여 점 선봬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10.30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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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 전관, 오는 12월 3일까지
자연과 인간, 삶과 사물의 현상과 본질 다뤄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을 꾸준히 화폭 위에 담아오고 있는 유근택 작가의 개인전이 열린다. 갤러리현대에서 《반영》이라는 제목으로 오는 12월 3일까지 개최된다. 《반영》 전은 2017년 《어떤 산책》 이후 갤러리현대에서 6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으로, 〈분수〉, 〈창문〉, 〈봄-세상의 시작〉, 〈이사〉, 〈말하는 정원〉, 〈반영〉 등 작가를 대표하는 주요 연작 40여 점을 선보인다.

▲유근택반영, 2023한지에 수묵채색144 x 101 cmCourtesy of the artist & Gallery Hyundai갤러리현대 제공
▲유근택 <반영> 2023, 한지에 수묵채색, 144 x 101 cm, Courtesy of the artist & Gallery Hyundai 갤러리현대 제공

전시 타이틀로도 사용된 ‘반영’은 동명의 연작 제목이자 유근택의 작품 세계를 집약하는 키워드라 할 수 있다. 반영이라는 단어의 ‘빛이 반사하여 비침’과 ‘다른 것에 영향을 받아 어떤 현상이 나타남, 또는 어떤 현상을 나타냄’이라는 사전적 의미처럼, 유근택은 자연과 인간, 삶과 사물의 현상과 본질을 서정적이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작품에 나타낸다.

유근택은 지난 30여 년간 동양화의 전통적 개념과 방법론을 동시대의 언어로 전환하는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동양 미학에서 강조되는 관념적인 시공간과 대조되는 ‘일상성’에 일찍이 주목하며, 한국 화단의 신선한 움직임을 이끌었다. 작가에게 ‘일상’이란, 매일매일 반복되는 동일한 풍경이 아니라, 이 세계를 마주한 ‘나’를 새롭게 각인시키고 잊힌 감각을 여는 또 다른 세계를 의미한다.

유근택의 일상성에 관한 접근과 태도는 작품을 제작하는 방법론으로도 확장돼 왔다. 작가는 2010년대 중반부터 한지라는 동양화의 숙명적 재료가 지닌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려는 실험을 지속해 왔다. 그에게 한지는 대상을 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작가의 신체와 그림이 만나는 무대이자 스스로 회화적 언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와 같다.

▲유근택창문 - 아침, 2023한지에 수묵채색113 x 102 cmCourtesy of the artist & Gallery Hyundai갤러리현대 제공
▲유근택 <창문 - 아침> 2023, 한지에 수묵채색, 113 x 102 cm, Courtesy of the artist & Gallery Hyundai 갤러리현대 제공

작가는 두꺼운 한지를 여러 겹 배접해 그 위에 드로잉과 채색을 한 후, 전면을 물에 흠뻑 적셔 철솔로 한지의 표면을 거칠게 올리며 다시 채색하는데, 이 모든 과정에 그의 신체적인 흔적과 숨결, 물리적인 힘이 가해진다. 특히, 매끄러운 한지를 날카로운 철솔로 수백 번, 수천 번을 문지르는 노동 집약적인 작업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과정을 통해 작가는 작품의 표면과 물성에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표면을 해체하고, 그와 동시에 표면 아래에 숨겨진 공간을 끌어올려 새로운 공간을 생성하는 역설적인 작업을 완성한다.

물에 젖은 상태의 표면 아래에 숨겨진 풍경이 철솔질을 통해 서서히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낼 때, 현실의 공간과 회화 속 공간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내가 바라보는 풍경과 나의 존재가 교차한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1층 전시장에 설치된 〈창문〉, 〈거울〉, 〈이사〉 연작에서 관람객은 일상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이를 반복하고 변주해 그림으로써 풍경의 미묘한 변화와 움직임을 드러내는 유근택 작품 세계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실내에서 바라본 바깥세상의 평범한 모습은 그것을 마주하는 작가의 내면과 감각의 떨림, 개인적 서사와 결합됨으로써 기이한 장면으로 재탄생한다.

▲유근택 <분수>, 2023, 한지에 수묵채색, 258 x 206 cm, Courtesy of the artist & Gallery Hyundai, 갤러리현대 제공

이제 작가의 시선은 실내 공간에서 바깥 풍경으로 장소를 옮겨 간다. 2층 전시장에 소개되는 〈봄-세상의 시작〉, 〈반영〉, 〈말하는 정원〉 연작에서 작품 속 대지의 세계는 식물의 증식하는 에너지로 가득하다. . 〈봄-세상의 시작〉(2023) 연작은 욕조, 테이블, 거울, 화장대 등 일상의 오브제와 작가의 연작 속에 등장하는 주요 모티프가 대지를 뚫고 새싹처럼 돋아나 식물들과 함께 거대한 회오리를 이루며 우주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초현실적 장면이 담겨 있다. 〈말하는 정원〉 연작에서 식물들은 땅에서 올라와 화면을 잠식하듯 자유롭게 뻗어 나가고, 그 속에 공존하는 인간과 동물과 수다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하나가 된다.

〈분수〉 연작 15점을 집중적으로 선보이는 지하 전시장은 탄생과 소멸이 공존하는 분수의 물줄기를 몸으로 경험하는 공간으로 거듭난다. 작가는 1990년대 중반부터 분수를 작품의 소재로 그려 왔다. 물의 파편이 풍경을 자르고 해체하는 모습은 회화의 조형성을 사유하는 원천이었다.

▲유근택 <말하는 정원> 2020, 한지에 수묵채색, 149 x 101 cm, Courtesy of the artist & Gallery Hyundai, 갤러리현대 제공

유근택의 개인전 《반영》은 ‘나’라는 주체가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만나며, 어떻게 감각할 수 있는지를 투영한다. 일상에 내재된 강인한 생명력과 삶과 죽음이 중첩된 찬란한 순간을 포착해낸 유근택의 작품을 통해 우리의 익숙한 세계는 다시 낯설어지며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한편, 이번 전시와 연계돼 갤러리현대는 유근택 작가의 개인전 《반영》을 음악적 언어로 풀어낸 재즈 기반 뮤지션이자 베이시스트 정수민의 앨범 [유근택: 반영]을 발매한다. [유근택: 반영]을 앨범 타이틀로 하여 《반영》 전시에서 소개되는 주요 연작 〈반영〉, 〈분수〉, 〈세상의 시작〉, 〈창문〉, 〈말하는 정원〉을 곡 제목으로 구성한 총 5곡의 재즈 기반의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