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MMCA 서울 《올해의 작가상 2023》, ‘인간’을 말하는 4개의 시선
[전시리뷰] MMCA 서울 《올해의 작가상 2023》, ‘인간’을 말하는 4개의 시선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10.3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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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CA서울관, 내년 3월 31일까지
‘올해의 작가상’ 10년, 제도 개혁…전시 방식, 최종 심사 방식 변형
권병준, 갈라 포라스-김, 이강승, 전소정 선정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올해의 작가상 2023》이 개막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MMCA와 SBS문화재단과 공동 주최해 지난 20일부터 내년 3월 31일까지 관람객을 만난다. <올해의 작가상>은 2012년 출범이래 10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한국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수상제도로 자리매김했다. 국내 주요 중견작가들의 전시와 시상, 지속적인 후원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저변을 넓히고 국제적 도약의 토대를 제시해왔다.

▲이강승, 라자로(정다은, 네이슨 머큐리 킴과의 협업), 2023, 단채널 4K 비디오, 컬러, 사운드, 7분 52초. ed. 5, A.P. 2. 작가와 커먼웰스 앤드 카운슬 소장. (신작) (사진=MMCA 제공)
▲이강승, 라자로(정다은, 네이슨 머큐리 킴과의 협업), 2023, 단채널 4K 비디오, 컬러, 사운드, 7분 52초. ed. 5, A.P. 2. 작가와 커먼웰스 앤드 카운슬 소장. (신작) (사진=MMCA 제공)

예술가는 항상 세계의 가장자리에 서서 기민하게 세계의 변화와 흐름을 읽는다. 자신의 시각을 공고하게 다진 중견작가들이 바라보고 있는 지금 우리의 세계는 어떨까. 《올해의 작가상 2023》에는 권병준, 갈라 포라스-김, 이강승, 전소정 작가가 선정됐다.

올해는 <올해의 작가상> 10년 이후 대대적으로 제도를 개선해 선보이는 첫 전시인 것이 하나의 특징이다. 올해부터는 선정 작가들의 제작 지원 강화를 위해 후원 규모를 1인 5천만 원으로 확대했다. 또한, 작가의 신작과 기존 주요 작업들을 전시에 함께 출품함으로써 작가의 주제의식과 예술세계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경연이 중심이 되기보다, 관람객들이 작가의 예술세계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코자했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4명 작가의 약 90여 점 작품이 공개된다.

또한 《올해의 작가상 2023》의 가장 큰 변화는 최종 심사방식의 변경이다. 전시 개막 후 내년 2월 《올해의 작가상 2023》은 관객과 함께 하는 공개 워크샵을 개최한다. 워크샵에서는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심사위원들과 선정된 작가들이 자유로운 대화다 이어질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최종 수상자를 선정하게 된다. 공개 워크숍에선 사전에 일반 관람객들의 질문도 받아서 작가들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전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일반 관람객들이 현대미술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제공한다. 동시에 <올해의 작가상>이 단순한 수상제도가 아닌, 한국 동시대 미술과 국제적인 미술계가 만날 수 있는 장으로 작동하게 하기 위함이다.

▲전소정, 싱코피, 2023, 단채널 4K 비디오, 컬러, 스테레오 사운드, 29분 30초. 작가 소장. (신작) ⓒ서울문화투데이

‘인간’을 말하는 4명의 다른 시선

《올해의 작가상 2023》에는 권병준, 갈라 포라스-김, 이강승, 전소정 등 4인의 후원 작가가 신작과 함께 자신의 오랜 고민과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주요 구작을 전시함으로써 작가별로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예술세계에 대한 이해를 이끌어 내는 데에 집중한다.

이번 전시를 준비한 이수연 학예사는 4명의 작가의 공통지점으로 ‘인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가’라고 말했다. 지난 19일 열린 간담회에서 이 학예사는 “4명의 작가는 인간에 대해서 용감하고, 담대한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모두 다 다르고, 다채롭다”라고 말했다. 갈라 포라스-김과 전소정 작가의 경우 거시적인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고 있다면 권병준, 이강승 작가는 미시적인 개인의 이야기로부터 인간에 대한 질문을 시작한다.

특히, 이들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후기 산업사회에 접어들며 변화한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고찰하는 포스트 휴머니즘의 주제를 공유하면서도 서로 다른 방향의 질문과 답을 던지며 동시다발적인 평행우주를 만들어낸다. 문명의 역사, 인간과 자연의 관계, 제도의 뿌리와 작동방식, 공동체의 정체성과 가능성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 이들의 작업세계는 동시대 미술이 끊임없이 직면하고 있는 철학적, 실천적인 도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시는 제2전시장, 제3전시장, 제4전시장 및 복도를 이용해 구성됐다. 각 작가 별로 하나의 공간을 활용해 전시를 꾸미고 있어서, 작가의 작품관을 보다 선명하게 만나볼 수 있다. 제 2 전시장에선 갈라 포라스-김과 전소정의 전시가 펼쳐지고, 제3,4전시실에선 각각 이강승, 권병준 작가의 전시가 열린다. 전시장 가장 중앙에서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이 배치돼 있다.

▲갈라 포라스-김, 세월이 남긴 고색의 무게, 2023, 종이에 납화법, 흑연과 색연필, 228.6x182.8cm. 작가와 커먼웰스 앤드 카운슬 소장. (신작)
▲갈라 포라스-김, 세월이 남긴 고색의 무게, 2023, 종이에 납화법, 흑연과 색연필, 228.6x182.8cm. 작가와 커먼웰스 앤드 카운슬 소장. (신작) ⓒ서울문화투데이

전시는 갈라 포라스-김과 전소정, 이강승과 권병승으로 가름해 구성돼 있다. 이는 인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4명의 작가를 좀 더 비슷한 표현법을 구사하는 방식으로 가름한 것이다. 갈라 포라스-김과 전소정은 마치 인류학(인간학)을 공부하는 외계인과 같은 관찰자적 시점과 닮아있다. 이들의 질문은 특정 지역이나 국적, 인종, 정치사나 사회사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문명을 구성하는 보편성의 기반을 흔드는 문제의식을 포괄한다.

이강승과 권병준은 보다 적극적으로 인간의 역사와 문명의 기준에 개입해 사회에서 추방되거나 잊혀진 역사를 탐구하고, 미시적인 관점에서 대안을 찾거나 도전적인 방식으로 실천을 모색한다. 이들의 작업은 공동체 안에서 가시적으로 혹은 비가시적으로 나뉘어져 있는 인간과 비인간, 이웃과 이방인, 난민과 정착민, 정상과 비정상의 교차점을 탐색하고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서, 이전에 없던 지식과 사실적ㆍ경험적 인식을 생성해내고자 한다.

▲지난 19일 간담회에서 작품 설명을 전하고 있는 갈라 포라스-김 작가 ⓒ서울문화투데이

갈라포라스-김, 시간과 종(種)을 뛰어넘는 가장 근본의 시각

갈라 포라스-김의 작업은 종교적 믿음이나 죽음과 같이 지나온 모든 문명이 관심을 갖고 흔적을 남긴 유물들에서 시작한다. 석관과 고인돌과 같이 삶과 죽음을 경외하기 위해 만들어진 고대의 오브제들이 현대의 박물관과 미술관, 문화유산 등의 시스템 속에서 본래의 기능을 잃고, 예술작품이나 국보로 분류돼 수장고와 전시장에 전시되는 상황에서 작가는 물건을 만들고 숭배하던 고대인들의 뜻과 현대의 제도를 화해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갈라 포라스-김의 신작인 <세월이 남긴 고색의 무게>는 고창 지역의 고인돌을 소재로 한 작업이다. 총 세 개의 화면으로 구성돼 있는데 흑연으로 검게 칠해진 화면은 죽은 자의 시각, 고인돌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는 화면은 현대의 우리가 고인돌을 보고 있는 시점, 그리고 마지막 고인돌에 피어난 이끼를 확대해 보이는 작업은 인간의 시간을 뛰어넘어 계속해서 고인돌에서 뻗어가고 있는 자연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이천 년 전 고대인과 우리의 생각 사이를 어떻게 좁힐 수 있는지 고민하고, 그 여러 겹의 역사가 의미하고 있는 바를 끈질기게 탐구해보고 있다.

유물이나 문화재를 소재로 하는 작가의 작업은 대게 미술관이나 연구소와 같은 기관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전달하며 소통하는 과정 속에서 이뤄진다. 그 과정은 모두 편지로 이뤄지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갈라 포라스-김이 작업을 하면서 썼던 편지를 모두 국문으로 번역해 함께 전시한다.

구작에서 주목할 작품으로는 <영국 박물관의 이집트 제5왕조 기자 석관을 위한 일출>이라는 이집트 왕조의 석관을 복제한 작품이 있다. 작가는 이집트를 제외하고 가장 방대한 양의 이집트 오브제를 소유하고 있는 ‘영국 박물관’에 직접 편지를 써, 이집트의 석관이 실제로 보존돼야 하는 이집트의 방식을 제안하고, 고대 이집트인이 추구했던 방향을 현대의 우리가 이행하는 방식으로 고대와 현대의 간극을 좁혀보고자 한다.

작품과 함께 전시되고 있는 작가의 편지에는 “영국 박물관의 많은 이집트 유물들은 다양한 방식의 환생의 가능성을 품고 있으며, (중략) 무수히 많은 형태의 미라와 조각상 상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중 일부는 아마 박물관과 수장고의 조건에 맞추어 재구성됐을 것이며 (중략) 아직 사후세계의 원리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는 우리이기에,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은 고대 이집트 인들이 살아있을 당시 만들어 놓았던 불멸의 계획을 참고로 삼아, 이들의 지침을 안내로 해 전시하는 것입니다”라고 적혀있다.

실제 <영국 박물관의 이집트 제5왕조 기자 석관을 위한 일출>의 소재가 된 석관은 항상 동쪽으로 석관의 머리가 향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대의 수장고에서 이는 행해지지 못하고 있고, 작가는 모조품을 만들어서라도 그 방식을 따라가고 있다. 작가는 고고학적 상상력과 인간에 대한 보편적 이해, 범신론적 믿음을 바탕으로 한 이 방식으로 현대 문명의 기반을 이루는 법과 제도, 학문의 분류 체계와 예술의 역할 등을 우주적인 시공간 위에 놓고 새롭게 재단하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19일 간담회에서 작품 설명을 전하고 있는 전소정 작가 ⓒ서울문화투데이

전소정, 갑작스럽게 튕겨나간 음(音)에 대해

전소정은 끊임없이 동시대가 딛고 선 근대가 근대화의 과정에서 놓아버린 바깥의 영역을 탐색하는 작가다. 전소정이 《올해의 작가상 2023》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신작은 <싱코피>라는 작업이다. 포루투갈 어인 ‘싱코피(síncope)’는 의학용어로는 졸도, 기절, 실신, 인사불성 등을 뜻하고 문법적 용어로는 소실어, 중략어를 뜻한다. 음악에선 절조, 약조의 뜻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자본과 근대의 속도 밖에서 유랑하는 사람들과 존재에 대해서 주목하고, 그것을 시각이 아닌 감각으로 표현해낸다. 청각과 촉각의 방법이 주로 사용됐다. <싱코피>에는 우리 일상 속 공간들이 계속 등장하는 데 그곳을 채우는 기이한 물체는 그곳에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뻗어나간다. 작가가 바라보는 인물들과 그들의 이야기는 근대화의 시공간에 온전히 속해있기 보다 이를 넘나드는 경계의 것들이다.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소정의 구작과 신작에서 주목해볼 수 있는 것은 근대화 과정에서 획일되지 않는 대안적인 소통방법이다. 전소정은 소리의 질감, 떨림과 진동, 냄새의 기억들 같이 근대화의 과정에서 희미해진 잔영들을 가지고 와 인간과 역사의 서사를 잇는 통로를 구축한다.

구작 중 하나인 <광인들의 배(La Nave de Los Locos)>에선 시각장애인 무용수(후안 카사올리바(Huan Casoliva))가 추는 암흑의 무용 공연 영상이 있다. 전소정 작가는 실제 이 작업을 촬영할 때 암흑에서 펼쳐지는 무용수의 춤을 볼 수 없었고, 촬영이 모두 끝난 뒤에야 작업을 거쳐서 춤을 볼 수 있었다. 그만이 펼칠 수 있는 무용은 또 하나의 획일화되지 않은 소통의 방법으로 그려진다.

▲지난 19일 간담회에서 선인장 <하비>에 대한 설명을 전하고 있는 이강승 작가 ⓒ서울문화투데이

이강승, 누가 우리를 돌보는 이들을 보살피게 될까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강승은 소수의 역사가 미술사와 교차하는 지점에 관심을 두고 배제된 타인들의 서사를 미시사적으로 발굴해 새롭게 드러내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이강승이 《올해의 작가상 2023》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신작은 <라자로(정다은, 네이슨 머큐리 킴과의 협업)>라는 영상 작업이다. 워싱턴 발레단의 싱가포르 무용수 고추산과 브라질 미술작가 호세 레오닐슨의 옷 설치작업의 예술적 협업을 통해 퀴어 역사를 연결하고, 역사에 새로운 관점과 지식을 만들어낸다. <라자로(정다은, 네이슨 머큐리 킴과의 협업)>는 셔츠의 등판이 연결된 두 개의 셔츠를 각각 입은 두 무용수가 춤을 추는 영상이다. 두 사람의 모습은 사랑하는 듯하면서 동시에, 힘겨워 보이기도 한다.

이강승의 전시는 <하비>라는 작은 선인장으로부터 시작한다. <하비>는 미국에서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고 선출직 정치인이 된 하비 버나드 밀크로부터 시작된다. 하비 밀크는 소수자들의 정당한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던 중 1978년 동료 시의원에 의해 암살당한다. 그 이후 하비 밀크의 친구들은 하비가 키우던 선인장을 잘라서 나눠, 그의 의지를 이어왔다. 이강승 역시 그렇게 이어져 온 선인장을 실제로 미국 생활 중 받게 됐다. 하비 밀크의 선인장의 6세대 정도에 해당하는 선인장이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이강승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그 뿌리를 조금 옮겨와서 <하비>라는 식물 작업을 선보이게 됐다.

이강승의 작업에 있어서 ‘돌봄’이라는 것 역시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다. 그의 이번 전시의 작은 제목과도 같은 <누가 우리를 돌보는 이들을 보살피게 될까>는 실제 에이즈가 미국 전역에 퍼졌을 때 게이를 돌보아주던 레즈비언들이 했던 말이었다. 이강승은 ‘돌봄’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역사를 새롭게 재구성해서 바라보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을 꾸린다. 이강승의 “돌보다”는 단순한 도움이나 호의를 뜻하지 않는다. 돌보아 주는 자와 돌봄을 받는 사람 간의 깊은 이해와 연결이 전제 돼 있다.

작가의 “돌보는 행위”는 보이지 않던 자료들과 물건들을 발굴하고, 시대와 국경, 인종과 성별을 넘어 이들을 연결하여 새롭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산실의 역할을 한다. 그의 작업의 퀴어 역사 아카이브들은 서로 돌보아주던 공동체의 다른 사람들로부터 수집된 것들이며, 작가는 소중한 아카이브의 자료들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노동과 수고를 들여 이들을 미술작품이자 미술사의 일부로 편입시킨다. 그의 작업에서는 삼베를 활용하고 금실로 수를 놓는 행위가 이어지는 데, 이는 인간의 시간을 넘어서 이어지는 공동체의 이야기를 상상하게끔 한다.

▲권병준, 춤추는 사다리들, 2022, 사다리, 모터, 레일, 가변크기. 서울문화재단 후원. 작가소장 (사진=MMCA 제공)
▲권병준, 춤추는 사다리들, 2022, 사다리, 모터, 레일, 가변크기. 서울문화재단 후원. 작가소장 (사진=MMCA 제공)

권병준, 인간사회 소수자로 자리하는 ‘로봇’

권병준은 소리 관련 하드웨어 연구자로, 입체음향이 적용된 소리기록과 전시공간 안에서의 재현 및 기술 개발에 관심을 두고 음악, 연극, 미술을 아우르는 뉴미디어 퍼포먼스를 기획, 연출해오고 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인간사회의 소수자이자 동반자로서 로봇을 선택해 전시와 공연을 선보인다. 작가가 기존에 해왔던 퍼포먼스들을 로봇이 행해주는 형식이다. <일어서는 법(How to Stand Up)>(2023),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로봇(Robot Crossing a Single Line Bridge)>(2023) 등의 작업이 공개된다.

권병준 작가는 사운드 작업과 퍼포먼스 연출을 통하여 공동체 속의 인간의 연대와 확장 가능성에 관한 실험을 해왔다. 주로 전시가 아닌 공연과 퍼포먼스, 사운드 경험 등으로 마주할 수 있었던 그의 작업은 로봇의 등장과 함께 종합적인 극의 형태로 진화하게 됐다. 실제로 이번 전시장을 보면, 하나의 거대한 무대가 완성돼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무대 위에서 로봇들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행하고 있고, 그 모습은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을 연상케도 한다.

작가는 사운드라는 매체를 이용하여 소리를 듣는 경험이 타인을 이해하고, 낯선 이들 간의 연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에 대하여 고민해 왔다. 이주민들의 낯선 노래들과 풍경의 향, 지나간 시대의 변화가 사운드 하드웨어에 담겨 전시장에서 제공되면 이 청각적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의 사이에서는 잠시나마 공감과 연대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더 나아가 작가는 인간을 닮은 비-인간의 상징인 로봇을 파트너로 삼아 이 비누방울과 같이 투명하고 아름답지만 찰나적인 공동체가 이웃과 타인의 구분을 넘어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인간 공동체의 궁극적인 한계를 시험한다.

권 작가는 전시를 소개하는 중에 로봇들을 향해 ‘이 녀석’이라는 식의 애칭같은 표현을 붙였다. 권병준 작가가 만든 그 공간에서 어색할 것이 없는 호칭이었고, 인간 공동체의 한계를 상상해볼 수 있게 했다.

▲《올해의 작가상 2023》 선정 작가 4인 (좌측부터) 전소정, 이강승, 갈라포라스-김, 권병준 작가 ⓒ서울문화투데이

이번 전시는 점점 더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세상 속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잊혀지거나 부정당한 존재들을 좀 더 인간의 영역으로 마주할 수 있게 한다. 그 네 가지의 방법이 모두 독창적이고 각기 다른 시선이라는 점이 더욱 세계를 확장시켜준다. 세계의 가장자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예술가들의 걸음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다.

《올해의 작가상 2023》 최종 수상자는 전시 기간 중 일반인 공개 워크샵과 2차 심사를 거쳐 2024년 2월에 발표될 예정이다. 최종 수상작가는 ‘2023 올해의 작가’로 선정 및 후원금 1천만 원을 추가로 지원받는다. 또한 후원작가 및 최종 수상작가의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현대미술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어 SBS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을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