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인간 관계 고찰하는 《2023바다미술제》 반환점 돌아
바다-인간 관계 고찰하는 《2023바다미술제》 반환점 돌아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11.08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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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9일까지 일광해수욕장 일대
작품에 담긴 깊이 있는 이야기, 감상 도움 돼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지난 달 14일 개막한 2023바다미술제 《깜빡이는 해안, 상상하는 바다 (Flickering Shores, Sea Imaginaries)》가 어느덧 미술제 기간의 반을 지나왔다. (사)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 조직위원장 박형준 부산광역시장)가 주최하고 있는 2023바다미술제는 일광해수욕장 백사장을 비롯해 인근 실내 전시장 3곳에서 오는 19일까지 관람객을 만난다.

▲2023바다미술제 전시 전경 (사진=부산비엔날레 조직위 제공)

이번 2023바다미술제는 그리스 출신의 기획자 이리니 파파디미트리우(Irini Papadimitriou)가 전시감독을 맡았으며, ‘깜빡이는 해안, 상상하는 바다’라는 주제 아래 20개국 31팀(43명)이 총 42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바다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시각에서, 바다와 인간의 관계를 깊이 있게 고찰할 수 있는 작품이 다수 출품 됐다.

조직위는 축제 중반부에 들어서고 있는 시점에서,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 볼수록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한다. 먼저 바다와 여성 노동자, 인간의 삶의 서사를 풀어낸 작품이 있다. 부산의 왕덕경 작가의 <발 아래 모래알 사이로 물이 스며들 때>는 소설가 오영수의 저작 ‘갯마을’에서 유래된 작품이다. 1965년 동명의 영화가 일광에서 촬영된 바 있다. 갯마을에 사는 주인공 해순은 결혼한 지 열흘 만에 폭풍우로 어부인 남편을 잃고, 새 연인을 사귀지만 수치심을 느끼고 마을을 떠난다. 하지만 머지않아 새 연인도 사고로 잃고 해순은 마을로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다. 소설은 당시 여인들의 수동적인 모습을 반영하며 이들의 비극적 삶을 그려내고 있다.

왕 작가는 이 오랜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이들의 삶의 터전이자 고향, 현실인 일광에서의 기억을 포착하기 위해 일광에서 살고 있는 일광 여인들을 인터뷰하고, 글들로 방안을 메웠다. 한켠에 쌓인 작품의 일부인 원고에는 일광 지역에서 십수 년을 살아온 여인들의 이야기가 빼곡하다. 작가는 해안과 바다가 남성 위주의 공간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고착화되어온 성 고정관념을 드러내고, 역사를 관통하여 바다의 역사와 이에 의지한 생계에 중요하고 고유한 역할을 여성이 해왔음을 함께 이야기한다.

▲ 2023바다미술제 설치영상 스틸샷
▲ 2023바다미술제 설치영상 스틸샷 (사진=부산비엔날레 조직위 제공)

미역이나 다시마 등 수생 유기체와 인간의 관계를 고찰하게 하는 작품도 있다. 일광의 유명 대형 커피 전문점 앞에는 독일 베를린을 기점으로 활동하는 양자주 작가의 작품 <바다로부터>가 자리해 있다. 150개의 벽돌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이 벽돌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 섞인 해초들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전통 한옥과 초가집에 관심을 가지고 빠르게 사라지는 흙집과 관련된 기록과 자료를 연구해왔으며, 해초를 건축 자재로 만든 집이 부산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50년대 한국 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 온 수많은 난민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빠르게 임시 거처를 지어야 했고 전통 흙집에 쓰였던 볏짚 대신 바닷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었던 해초를 흙에 섞어 집을 지었다.

작가는 이 기록을 토대로 해초를 건축 자재로 사용하던 방법을 재연하고자 했다. 이제는 자취를 감췄지만 기발하고 창의적이며, 소박하지만 혁신적이었던 흙과 해초로 집을 짓는 방법을 2023바다미술제에서 되살려낸 것이다.

▲2023바다미술제 워크숍 ‘해조공예과기장다시마로 오브제 만들기‘
▲2023바다미술제 워크숍 ‘해조공예과기장다시마로 오브제 만들기‘ (사진=부산비엔날레 조직위 제공)

해운 업체의 파산, 녹색운항항로 개발과 해상 도시 건축 등 부산과 밀접한 해양 산업을 주제 다룬 작품도 주목할 만하다. 제이콥 허위츠 굿맨 & 다니엘 켈러(Jacob Hurwits-Goodman & Daniel Keller)의 작품 <시스테더스:해양도시건축(The Seasteaders)>는 타히티에서 최초로 개최된 해양 도시 건축 학회를 기록한 영상이다. 작품은 해상의 미래에 대한 해양 도시 건축 지지자들의 신념과 비전을 들려주고 있다.

지난 2021년 부산시도 유엔 해비타트(UN-HABITAT)와 해상 도시 개발기업 오셔닉스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지속 가능한 해상도시’를 개발 중에 있다. 이 프로젝트는 해양생태계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인류의 피난처, 에너지, 식량 수요를 맞출 수 있다. 부산시는 세계 첫 ‘해상 도시’를 오는 2030년까지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생활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된 주제를 다루는 작품들도 2023바다미술제에서 만나볼 수 있다.

폐막을 2주여 앞둔 2023바다미술제는 오는 19일까지 기장군 일광해수욕장 일대에서 진행된다. 일광해수욕장을 비롯해 (구)일광교회와 신당 옆 창고, 2023바다미술제 실험실과 같은 실내 전시장과 인근의 강송정 공원, 일광천 등을 전시장소로 활용했다. 사전 예약 등 자세한 사항은 공식 홈페이지(https://www.saf2023.org/)를 참고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