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와 작품 사이 관계 담아낸, 기록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무엇을 창조하는 자와 창조되어지는 존재의 관계를 화폭 안에 가득히 담아내는 박광수 작가의 개인전이 열린다. 학고재가 2023년의 마지막 전시로 선보이는 박광수 개인전 《구리와 손》이 오는 12월 9일까지 학고재 본관에서 개최된다. 총 30점의 회화를 선보이는 자리다.
박광수는 1984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숲과 자연 속에서 보냈다. 그 시절은 그의 화폭 안이 숲으로 가득 채워질 수 있는 동력이 됐다. 지난 8일 전시 개막과 열린 언론간담회에서 한 취재진은 “마치 미친 그림처럼 보인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여백 없이 빼곡하게 채워진 화면이 주는 압도감은 ‘평범’의 영역에서 쉬이 다룰 수 있는 감각이 아닌 듯 했다.
화면에는 여러 많은 색들이 상충되고 있다. 작가는 “화면 안의 색이 조화를 이루기보다, 충돌하고 안 어울리길 바란다”라며 “화면이 좀 더 우글거리고, 기원전 상태인 듯하며, 무엇인가 움트는 공간으로 보이길 바랐다”라고 말했다. 박광수는 화면 안의 색과 배치를 즉흥적으로 해낸다. 형상을 무너뜨리거나, 새로운 색을 조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유화는 그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기법이기도 하다.
박 작가의 예술세계를 한 마디로 요약하긴 어렵지만, 이번 전시를 준비한 학고재는 세 가지로 그의 예술 세계를 정리하고 있다. 첫째, 박광수 작가는 회화를 통해 과학과 과학주의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를 명백히 드러내고자 한다. 둘째, 세계는 다툼(datum)과 팍툼(factum)으로 구성돼 있다. 다툼은 ‘deity’ 신성(神性)의 어원으로서 신이 선물한 자연과 자연의 이치를 가리킨다. ‘공장(factory)’의 어원인 팍툼은 인간이 자연을 이용해서 제작한 모든 것을 의미한다. 다툼과 팍툼 사이의 완벽한 조화와 균형이야말로 최상의 문명(문화)이며, 우리는 절대로 다툼, 즉 자연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작가의 거시적 주제다.
셋째,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떨어져나와 분리된 존재(ek-sist)가 아니라 자연과 하나로 이어진 존재(in-sist)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인간과 인간은 서로 독립된 것이 아니라, 인연과 필연으로 모두가 서로 이어져 있다.
이번 전시의 제목 《구리와 손》은 문명의 시원과 과정에 대한 은유라고 볼 수 있다. 구리는 기원전 2,500년 전부터 인류 문명의 시작이었고, 그것은 인간의 손에서 이뤄졌다. ‘구리와 손’으로 정리되고 있는 박광수의 작품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우글거리고, 형체를 알 수 없는 숲과 그 한 가운데 서있는 인간의 존재인지 아닌지 모를 소년의 모습이 있는 회화로 무엇을 그리고 싶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작가는 “만드는 자와 만들어진 자의 관계”에 대해서 표현했다고 답했다.
박광수가 만든 화면은 굉장히 오랫동안 응시할수록 화면 속 숨겨진 면면들을 찾아볼 수 있다. 빽빽하게 채워진 색과 선이 가장 먼저 관람객을 압도해온다면, 그 다음은 화면 안에 있는 작은 식물들의 모습과 어떤 화면에서든지 등장하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다. 그 장치들을 마치 화면 속 세계가 진실로 존재하고 있는 곳으로 인식하게하며, 화면 넘어의 깊이를 상상할 수 있게끔 한다. 실제로 화면 속 소년은 무엇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기도 하고 절망하고 있기도 하며, 때론 해방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소년을 감싸고 있는 층위는 단 하나로 명명하기 어렵다.
간담회에서 전시 소개를 맡았던 이진명 철학박사는 박광수가 그리고 있는 자연의 모습에 집중해보는 시각도 제안한다. 이 박사는 “박광수의 화면은 현대미술에서의 구상적 회화(figurative painting)임에도 산수화의 구성이 보이는가 하면,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의 회화에서처럼 사물과 환경이 주인공과 일체화되는 형식에 근접한다. 기하학과 수학으로 계산하는 서구의 선원근법(linear perspective)과 달리 산수화는 산속을 거닐며 화가가 온몸으로 느꼈던 풍경의 생생한 생명적 체험을 그린다. 박광수의 회화는 동서양 회화의 정수를 추출하여 화합(종합)해내는 동시에 더 높은 경지로 도약하고 있다”라고 설명한다.
간담회 중 박 작가는 질문에 대한 답변 중에 ‘나 자신도 모호한 사람’이라는 말을 했다. 30대 후반에 들어선 작가는 현재 미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청년작가다. ‘청년’으로 설명될 수 있는 시기는 에너지와 앞으로 더 무궁무진하게 나아갈 시간이 많다는 뜻이다. ‘모호함’이 그의 특징으로 남을지, 아니면 또 새로운 박광수의 세계가 펼쳐질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