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한국ITI 와 BESETO 연극제
[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한국ITI 와 BESETO 연극제
  •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 승인 2023.11.1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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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교류 통해 터득하고 깨달은 바 커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1990년대만 해도 한국의 정치상황은 외눈박이로 세상을 보며 살아온 게 현실이다. 공산권세계인 중국, 동독, 소련연방국은 접근해서는 안 되는 금족의 세계였다.
특히 남 북으로 분단된 대한민국에서의 모든 상황은 참으로 깨기 어려운 금족의 세계가 바로 세계의 반쪽인 공산권 나라들의 세계였다. 그러는 중에 소련은 고르바초프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맺은 군비축소의 약속과 더불어 서방권의 상징인 햄버거 가게 등이 모스크바에 등장했다. 냉엄했던 공산권과 민주진영의 양측세계의 벽에 금이 보이기 시작한 1990년, 중화인민공화국이 UNESCO의 ITI 기구를 통해 처음으로 세계에 중국 경극의 역사와 현황을 소개하며 중국 공연예술을 서방세계에 소개하기에 이르렀다.

필자와 김의경은 최초로 중국의 가려졌던 거대한 연극사의 발전현황을 비좁은 문틈으로나마 크게 들여다보는 최초의 경험을 하게 된다. 그 결과 나는 한국 공연예술의 범주가 <연극>을 뛰어넘어 더 포괄적인 범주로 발전해야겠다는 각성을 했다. 1990년 한국공연예술학회와 한국공연예술원을 세워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1996년 사단법인 <한국공연예술원>을 세우는 일로 한국의 연극을 공연예술의 범주로 넓혀 발전시키는 일에 열중했다. 반면 당시 ITI한국본부 부회장이었던 김의경은 아무도 모르게 중국과 일본을 왕래하며 2,3 년이 흐르는 동안 동북아권 세 나라, 한 중 일을 엮는 <연극제>를 엮어냈다.

어학에 관심과 소질이 있던 김의경 부회장은 간자체 중국의 글자공부에도 열의를 다지고 우리가 초등학교 2학년까지 배우다 3학년 초에 해방되어 놓은 일본어 실력을 높여갔다. 이어 동북아 세 나라의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여, Beijing, Seoul, Tokyo 세 개 도시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BESETO연극제>를 탄생시킨 쾌거를 이룬다.

아직 공산주의체제에 묶여 자유롭지 못한 중국희극학원 서효중 원장님을 앞세워 어렵게 중국이 호응하도록 끌어낸 일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구나 콧대 높은 일본 연극계의 거장 스즈끼 다다시 연출가를 동원하여 이 일을 엮어내기가 당시는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웠으리라 짐작한다. 국내에서는 김정옥 국내 회장도 전여 모르는 가운데 진행된 일이었다.

그러던 중 1994년 초 봄, 3월로 기억된다. 중국 북경에서 온 한 연극단체가 중국현대극을 한편 무대 위에 올려 우리나라 관객을 놀라게 했고, 뒤이어 일본연극을 올렸어야 했는데 여의치 않아 중극 현대희곡 한편을 보고 우리나라 관객은 모두 흥분의 도가니에 잠겼던 기억을 지금도 지울 수없다. 당시 한국 ITI부회장 김의경이 ‘철의장막’으로 굳게 닫혀있던 공산권의 중국현대극을 한국에 소개하는 기적 같은 일을 해냈을 뿐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한. 중. 일 삼국의 굳게 닫혀있던 강철문의 빗장을 처음으로 풀어헤친 것이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나는 김의경 부회장의 역량과 혜안에 감탄하며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고등학교 동기동창으로서의 큰 자부심을 느꼈고, 지금도 자랑으로 느낀다.

그 후 BESETO 연극제는 매년 어김없이 Beiging과 Seul, Tokyo의 순으로 돌아가며 오늘날까지도 어김없이 세나라 연극인들이 중심이 되어 현대연극의 교류로 많은 것을 서로 배우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연극장르에 끝나지 않고 춤극과 더불어 그때그때 마다 자기 나라의 이슈가 되는 작품들을 소개하며 세나라 국민정서의 다름과 같음이 무엇인가를 배울뿐 아니라. 각 나라의 공연시스템의 다르고 같음을 견주어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또 관객정서의 현저한 다름이 어디에서 기인하는가도 배우는 좋은 깨달음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근 30년이 되어오는 동안 세나라 연극인들과 관객들은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우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내가 ITI회장이 되었을 때 한중일 청년교류 및 합동공연을 제안하여 한중일 삼국의 같은 소재인 <견우와 직녀>를 합동공연으로 올리며 겪은 고난과 열의는 세나라 연극인들의 연극을 대하는 태도와 성숙도의 비교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참으로 많은 공부가 되었음을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또한 연극교류 과정을 통해서 연극 외교력뿐 아니라 연극을 통한 연극인들의 외교감각을 성숙하게 하는 좋은 기회임을 경험한다. 그 가운데 예술성과 인품, 품격을 갖춘 구자흥 같은 좋은 인재를 연극계예 심을 수 있었던 것은 또 하나의 큰 쾌재이었음을 이 자리를 빌려 말해둔다. 이외에도 BESETO연극제를 통해. 우리 연극인들이 한중 일. 세 나라를 돌며 터득하고 깨달은 바가 적지 않았음을 일러두며 할 말은 많지만 지면관계로 오늘은 이것으로 마무리할까 한다.

다음 호에는 필자가 설립한 (사)한국공연예술원이 심혈을 기울여 기획하고 치러낸 <샤마니카 페스티벌>에 관해 언급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