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석의 컬렉션 비하인드] 호두 한 알, 사람을 만나다. 김재원(2-2)
[윤태석의 컬렉션 비하인드] 호두 한 알, 사람을 만나다. 김재원(2-2)
  • 윤태석 남평문화주조장 대표
  • 승인 2023.11.1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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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석 남평문화주조장 대표(예술감독)/문화유산국민신탁 자문위원

(지난 호에 이어 계속)

‘김 선생 잘 계셨습니까?’ 박태준 회장이었다. ‘어떤 행사에 갔다가 호도를 놓고 와 너무 아끼던 거라 아쉬웠는데, 김 선생이 선물해주어 아주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호도를 굴리며 간절곶에서 일출을 보고 있습니다. 바닷바람까지 불어주니 기분이 아주 좋네요. 모든 게 김 선생 덕분입니다.’ ‘혹시 김 선생 함자가 어찌 됩니까?’ ‘아 네 회장님, ‘있을 재(在)에 으뜸 원(元)입니다. 그런데 왜 물어보시는지요?’ ‘어떤 분인지 알고 싶어 그렇습니다.’ 이런저런 대화가 더 오가다 전화는 마무리되었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말끔한 중년 남성 한 명이 박물관으로 찾아와 김재원을 찾았다. ‘저는 박태준 회장님의 비서 아무개입니다. 회장님께서 전해달라고 하신 게 있어 왔습니다.’ 그가 들고 온 것은 박 회장의 자서전이었다. 갈 길이 멀다며 비서는 잠시 머물다 돌아갔다.

김재원의 한자 이름을 넣어 서명해준 박 회장의 자서전은 귀족호두박물관 명사 코너에 그가 떠난 지금까지도 잘 전시되어있다. 이후로도 박 회장은 포항제철 신년 인사회 때 귀빈용 선물로 귀족호도를 선택해 주문하는 등 김재원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포항제철은 물론 계열사인 광양제철 직원들도 가족을 대동하고 박물관을 찾는 발길이 잦아졌다.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박 회장과의 인연이 확산한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사실 오며 가며 우리 박물관에 들르시는 상당수의 사람은 진열품을 대충 둘러보고 갑니다. 그러다가 박태준 회장님의 자서전을 보고는 제게, 그분과의 관계를 묻기도 하고 박물관을 다시 보게 되지요.’ ‘작은 선물이 가져다준 박물관의 기적으로,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셈이 되었습니다.’

도올이 인정한 장인

호도로 만난 또 한 분은 도올 김용옥 선생이다. ‘언젠가 지방의원 선거가 있을 때였습니다.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군소정당의 공천을 받고 출마한 한 후보자가 선거운동을 위해 우리 박물관을 방문했었지요. 지역발전을 위해 열정적으로 운동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로 호도 한 벌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군소정당이라 문전박대가 십상인 데 이리 선물까지 주시니 큰 힘이 납니다.’ 그 후보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감사를 표하고 갔다. 그 일을 새까맣게 잊고 지내던 2년쯤 지난 어느 날 그때 그 후보가 편지봉투 한 장을 들고 찾아왔다. ‘관장님이 주신 호도를 제가 쓰기 아까워 평소 농민운동과 정책에 관심이 크시면서 제 멘토와도 같은 도올 김용옥 선생님께 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봉투는 도올 선생님이 당신 부인께 선물하고 싶다고 제게 보내주신 호도 값입니다. 사모님이 쓰실법한 호도 한 벌만 잘 포장해 주세요.’ 도올은 늘 글을 쓸뿐더러 강의 시에는 판서도 많이 해 자주 손이 저리고 쥐도 나고 했다고 한다. 이 후보자를 통해 선물 받은 호도를 2년간 가까이 한 덕에 그런 증상은 개선되었고 혈액순환도 좋아졌다고 한다.

 

도올이 인정한 장인

 

그의 말을 듣고 나니 김재원은 큰 보람과 함께 너무 기분이 좋아졌다. ‘이 봉투는 선생님께 다시 전해주십시오. 호도 한 벌은 제가 그냥 드리겠습니다.’ 그 후보자는 호도와 봉투를 들고 겸연쩍게 돌아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작은 책 한 상자와 평평한 큰 소포 하나가 도착했다. 뜯어보니 도올의 저서 전체와 손수 그리고 쓴 작품 액자였다. 이 역시 박태준 회장의 예와 같이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격이 되었다. 그곳에는 ‘김재원 선생은 장흥 귀족호도의 명장(金在元 先生 長興 貴族胡桃之名匠)’, ‘나는 평상시 글을 많이 쓰기 때문에 손에 통증이 있었다. 이 호도를 굴린 뒤로 통증이 사라졌다.(我平常 長時間 執筆脂痛 玩桃以後痛消了)’, ‘우리 조선 지기에 현묘한 이르기가 볼 만 하다.(可見 吾 朝鮮 地氣 玄妙)’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호두 한 벌에 1억은커녕 10만 원이라고만 해도 사기꾼 소리를 듣기 십상입니다.’ ‘도올 선생님의 이 글귀는 그 의문을 믿음으로 바꿔주는 마력입니다.’

한편 김재원은 그동안 받은 사랑을 지역사회에 환원하고자 한 가지 일을 하고 있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30년 이상을 한자리에서 한우물을 파온 분들을 발굴하여 「한우물패」를 수여해 오고 있다. 70년간 조청을 만들어온 할머니, 60여 년의 이발사와 미용사, 40년간 오일시장에서 일해온 톱 수리공, 신문 배달인과 라디오방 사장 등이 그들이다. 귀족호두박물관에 한우물인회를 조직해서 매년 패와 함께 100만 원씩의 위로금도 전달해 오고 있다.

‘제가 죽어 저승에 올라갈 때 염라대왕이 너는 생전에 무엇을 하고 왔느냐고 제게 물으신다면 저는 손 운동용, 건강용, 지압용 호도를 육종하고 만들어 전시하고 왔습니다. 라고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제가 좋아하고 원해서 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대가를 받았고 행복했으니까요? 그저 한우물 운동을 하다 왔는데요.라고 말하고는 싶습니다.’ 호도를 통해 만난 사람들이 김재원에게 준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