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 Library] 극적인 사유: 마음의 재구성
[Human Library] 극적인 사유: 마음의 재구성
  • 독립기획자 고은결
  • 승인 2023.11.15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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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언제나 우리 앞에 임박해 있다. 그래서 극적이다. 올해는 연극을 찾는 사람이 예년보다 많아졌다고 느낀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힘은 현장감에 대한 갈증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영화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 오랜 명성을 쌓아온 작품, 다양한 분야에서 필모그래피를 쌓는 배우들의 소식도 있다. 그걸 마주할 수 있는 곳이 오직 무대다. 물론, 국립극단의 네 번째 극장인 온라인에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작품을 관람하며 매력을 느낀 사람이라면 더욱 현장을 찾을 것이다.

올해를 지나친 많은 작품이 있으나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이 있다. 바로, 고전 작품이다. 3월, LG아트센터 마곡에서 선보인 ‘파우스트’, 같은 극장에서 선보인 ‘리어왕’ 5월 예술의 전당에서 선보인 ‘오셀로’, 마지막으로 10월 이해랑예술극장에서 선보인 ‘햄릿: 걷는 인간’까지 4개의 작품이 필자에게는 가장 임박한 작품이다. 네 작품은 고전 작품에 대해, 동시대에 대해 표현한다. 오래된 과거에서 가져온 이야기가 어떻게 현재의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킬까. 고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 역시 다시 돌아보게 한다. 그 가치가 어떻게 보존되었고 재구성되어 보이는가, 얘기하려 한다.

언급한 작품 중 가장 먼저 막을 올린 ‘파우스트’는 파우스트의 경우는 박해수, 유인촌, 원진아, 박은석 배우의 라인업을 선공개하며 관심을 이끌었다. ‘파우스트’는 신에게 대항하는 악마로 인해 혼란을 겪는 주인공 파우스트를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다. 인간으로서 겪는 충동, 방황, 지식의 한계,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에 대한 고찰을 보인다. 대극장임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 다양한 오브제가 그 허공을 가득 메웠다. 또한, 무대 뒤편과 생중계되는 와이드 스크린을 통한 연출적 시도도 동시대성을 보여주는 요소였다. 원초적인 사건을 스크린, 조명 및 무대 장치의 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재구성한 것이 돋보였다. 같은 무대에서 선보인 ‘리어왕’도 마찬가지다. 가운데 공간을 두고 스크린을 가벽으로 사용하며 무대 위에서 정의하는 공간과 감각이 다양하여 익숙하고 긴 서사임에도 지루함을 완벽히 지워냈다. 두 작품은 적극적인 기술 도입을 통해 무대 위의 모습을 관객이 쉽게 상상할 수 없게 만든다.

 

고전작품 재해석, 새로운 연출 방식은 

현 시대 필요한 사유와 소통 가치 지녀

 

‘오셀로’는 반면 특별한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뛰어난 무대 연출을 보여줬다. 벙커의 형태로 제작한 무대가 빛, 물, 그림자를 통해 무대 공간을 입체적으로 구성하고 배우들의 동선을 역동적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오셀로’의 백미는 의상이었다. 1600년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작품 배경과 인물을 현대의 의상을 통해 연출했다. 그로 인해 인물의 동작과 감정을 수용하는 데 있어 어떠한 거리감도 조성하지 않았다. 이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의상 디자인을 통해 작품의 서사는 과거가 아닌 현재에 당면해 있었다. 관객이 몰입하게 되는 이유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두고도 앞선 ‘오셀로’와 달리 ‘햄릿: 걷는 인간’은 기술과 의상이 아닌 다른 것을 집중하게 했다. 서사의 재구성이다. 햄릿이 고뇌하며 악몽을 꾸는 중에는 마치 코로나 시대를 묘사하는 듯한 방역복과 폐쇄적인 행동이 있었다. 무덤지기 두 명의 장면 중에는 제4의 벽처럼 연극계에서 나아가 정치, 사회까지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때부터 햄릿은 2023년에 함께 하는 인물이라는 걸 보인다. 시사성을 잘 녹인 두 작품이다.

어쩌면 고전이 관객에게 진부하고 따분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여전히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과 사회의 문제에 대한 논의를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상호 간의 신뢰, 가족 간의 연대, 연인 간의 사랑, 미래에 대한 불안. 그것들에 대한 갈등은 해소되지 못했다. 모두가 겪는 그 갈증을 볼 때 관객은 더 목마름을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외면하게 되는 사유를 담은 작품들은 위의 네 개의 작품은 직시하게 했다. 매력을 느끼게 유도하고 관심이 생기게 했다. 고전을 직면해야 하는 까닭은, 필자가 생각하기에 바라보는 것만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 배우들을 객석에서 볼 때 관객은 사유의 주체가 된다. 나와는 관련 없는 것 같은 바로 앞의 일을 직면하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 놓인 문제를 우리는 직면해야 할 필요가 있다. 돌파에 대한 두려움은 직면한 이후에 느껴도 충분하다. 동시대적이라는 연출을 거쳐 우리 앞에 당도한 고전 작품들은 현장감 속에서 사유와 감정을 촉발시킨다. 극예술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이다. 일상에 무뎌졌던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고전 작품의 재해석, 새로운 연출 방식을 통해 지금 시대에 필요한 사유의 소통을 이룰 수 있다는 가치가 무대에 있다. 그로 인해 작품은 관객을 기다리고 있으며, 관객은 작품을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