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현장과 현상 사이]‘버텀라인’ 40주년과 허정선 대표
[윤중강의 현장과 현상 사이]‘버텀라인’ 40주년과 허정선 대표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23.11.15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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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인천엔 ‘버텀라인’이 있다. 40주년을 맞았다. 버텀라인의 허정선대표를 본 게 언제일까? 1990년 7월 28일, ‘월미도 재즈 올스타 페스티벌’이 열렸다. 인천 최초 야외 재즈공연이다. 서울서 활동하는 쟁쟁한 재즈뮤지션들이 월미도에 모였다. 난 관객 한 사람이었다. 거기에 허정선 대표를 봤던 것 같다. 

1990년 월미도 재즈 올스타 페스티벌 

내가 거기에 간 건, 야누스재즈동우회가 인천에 출연했기에 그렇다. 야누스재즈클럽이 생긴 게 1978년. 이판근, 김수열, 신관웅, 이동기, 최선배를 야누스 정기연주회에 만날 수 있었고, 미치 엔딩곡처럼 박성연의 ‘물안개’를 듣던 공간이다. 박성연은 야누스의 주인이었다. 

대한민국 3대 재즈클럽으로 올댓재즈(1976년) 야누스(1978년) 버텀라인(1983년)을 꼽는단다. 정성조, 이정식, 장응규를 들을 수 있었던 올댓재즈도 일찍이 알지만, 버텀라인은 정작 몰랐다. 인천아트플랫폼 개관(2009년)과 함께, 인근에 있는 버텀라인을 그 때서야 알게 됐다. 

버텀라인을 운영한지 28년째라고 한다. 버텀라인의 역사를 아는 이들은, 허정선에 의해서 버텀라인이 재즈클럽으로서의 품격을 점차 갖추게 된 걸 전설처럼 얘기한다. 

33주년 버텀라인 페스티벌(2016년)때, 허대표는 없었다. 이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해외여행을 다녀오라고 등을 떠밀었고, 그들이 페스티벌을 열어주었다. 허정선은 친구이자 버텀라인의 전 주인과 미국에서 만나 여행하고 돌아왔다.

허정선의 장기는 ‘버티기’ 

‘버텀라인 40주년 기념 공연이 열렸다. (11. 4. 송도 트라이보울) 이 자리에서 허대표는 내가 가장 잘 하는 건 ’버티기‘라고 말했다. 관객들 모두 짠한 기분이 들었을 거다. 집세를 걱정하고, 운영을 걱정하며, 28년이란 세월을 버텨왔다. 

내가 타지 사람들에게 버텀라인을 자랑한 건 언제부터일까? 버텀라인이 ’대한민국 최고 재즈 성지‘라고, 주변인에게 자랑스럽게 말한다. 장소가 바뀌지 않았고, 주인이 바뀌지 않은 곳은 여기뿐이다. 백년이 넘은 목조건축물이 재즈를 듣기에 딱 안성맞춤이기에 그렇다. 버텀라인은 뉴욕에까지 자랑할만하다. 이렇게 인천의 자랑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나또한 버텀라인에 큰 도움이 못되고 있다. 

1883년, 1983년, 2083년 

인천은 1883년에 개항했다. 인천에 버텀라인이 문을 연 건 1983년이다. 버텀라인은 현재 인천시가 선정한 ‘백년가게’다. 명실상부하게 2083년까지 존재하면서, ‘백년가게’로서의 존재해야 한다. 남아있는 건축물이 아닌, 살아있는 문화공간으로서, 버텀라인은 인천 최고(最古)이자 최고(最高)임에 인천의 의식있는 토박이들은 모두 동의를 한다. 버털라인은 진정 인천문화의 자존심이다. 

인천시, 중구, 인천문화재단은 이 자랑스러운 공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어떤 도움을 줄 순 없는 걸까? 대한민국에 재즈애호가도 많은데, 시작부터 지금까지 오직 한 공간에서 숭고하게 버텨온 ’버텀라인‘을 지켜낼 방법은 없을까? 

지금까지 잘 버텨왔으니, 앞으로도 잘 버틸 것이라는 건, 참 ’가혹한 희망‘이다. 지금까지 최상(最上)의 문화공간을 지켜온 허정선이라는 개인(인천시민)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서, 인천시 또는 중구 차원에서, 또한 인천시민의 차원에서 뭔가 ’문화적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버텀라인의 40주년을 그저 기뻐만 할 순 없다. 버텀라인은 이제 모두가 지켜야 할 귀중한 문화공간이다.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