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근의 얼씨구 한국음악과 문화]최옥삼류 가야금 산조의 멋과 맛
[주재근의 얼씨구 한국음악과 문화]최옥삼류 가야금 산조의 멋과 맛
  • 주재근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 승인 2023.11.15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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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근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주재근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최옥삼은 자신의 가야금 산조 음악 곳곳에 감탄할 만한 의도적인 가락들을 여러 곳에 심심치 않게 심어 놓았다. 다스름,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늦은자진모리, 휘모리 등 6개의 악장에 오동나무의 깊은 울림을 바탕으로 첫 번째 줄인 청현에서 마지막 12번째 쨍줄까지 인간의 세태와 천변만화를 타게 한 것”

4분33초. 현대음악가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가 작곡한 곡이다. 3악장으로 구분되어 있는 이 악보에는 음표 없이 ‘조용히(Tacet)’라는 글만 쓰여 있다. 당시 음악계에서는 이 악보 없는 음악을 음악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파격이라 생각하였다. 서양인들에게 이 파격적인 음악 연행 방식은 우리의 음악가들에게는 파격이 아닌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누군가에 의해 작곡된 곡을 악보를 보고 음표나 악상 기호에 따라 연주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 음악가에게는 파격인 셈이었다.

악보가 없음으로 해서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음악을 전하고 받을 수 있으며(口傳心受), 더욱 깊게 음악을 축적하고 쌓을 수 있는 음악적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음악장르가 19세기말 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산조(散調)다.

초기 산조를 받아 현재로 이어지게 한 여러 산조명인에는 연주에도 뛰어 났지만 산조 작곡자로서의 면모가 더 특출난 명인으로 최옥삼(崔玉三, 1905~1956년)이 있다. 인생의 절반은 전남 장흥에서, 나머지 인생은 북한에서 음악활동을 한 최옥삼은 일제강점기 장흥 신청(神廳) 출신 예술가이다. 신청은 오늘날로 비교하면 종합예술학교라 할 수 있다. 오로지 음악과 춤, 노래, 연기 등을 매일 갈고 닦으며 하늘과 자연과 사람과의 소통을 위한 신성시되었던 곳이다.  

그러나 전통사회에서 천대와 무시를 당할 수 밖에 없는 신청에서의 기반은 최옥삼을 뛰어난 음악예술가로 성장시켰다. 본격적인 활동은 악사로서의 서러움을 모두 떨쳐 버릴 수 있는 북한에서 이루어졌다. 월북예술가들에 대한 언급이 사회적 금기었을 때 최옥삼류 가야금 산조를 극적으로 복원재현할 수 있게 된 것은 그의 제자 함동정월(咸洞庭月, 1917~1994)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옥삼류 가야금산조 한 바탕을 듣고 있으면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의 진혼곡인 레퀴엠(Requiem)과 음악적 분위기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모차르트 자신의 불행한 생애를 통곡하면서 작곡하였다고 알려진 이 곡에는 인간의 삶에서 묻어나오는 분노와 좌절 그리고 희망과 용기를 느낄 수 있게 하는 대작이다.

모차르트 처럼 천재 예술가라 할 수 있는 최옥삼은 자신의 가야금 산조 음악 곳곳에 감탄할 만한 의도적인 가락들을 여러 곳에 심심치 않게 심어 놓았다. 다스름,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늦은자진모리, 휘모리 등 6개의 악장에 오동나무의 깊은 울림을 바탕으로 첫 번째 줄인 청현에서 마지막 12번째 쨍줄까지 인간의 세태와 천변만화를 타게 한 것이다. 때로는 가곡을 듣는 것처럼, 한편으로는 판소리를 듣는 것처럼 다양한 조를 사용하여 어느 지점에서는 봄 바람에 생기를 머물고 하늘 거리는 버들가지를 보고, 다른 한 곳에서는 봉새와 황새의 다정한 어울림 등 곳곳에서 자연의 풍광을 보게 한다. 그리고 장단의 제약을 초월하여 연주자에게 음악적 선물을 할 수 있도록 도섭의 가락을 넣기도 하고 3분박에서 2분박, 2분박에서 3분박 등 다양한 리듬을 만들어 냄으로써 소나기가 내리는 풍경, 말이 힘차게 뛰어 다니는 모습이 전심(傳心)이 된다.

미켈란젤로가 로마의 시스티나성당 천장에 그린 ‘천지창조’ 그림이 미켈란젤로가 그렸지만 신이 만든 예술이라 하는 것처럼 최옥삼이라는 명인만의 인위(人爲)라 할 수 없는 무아지경의 위대한 최옥삼류 가야금 산조가 만들어 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