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Interview] 임미정 2023 DMZ오픈국제음악제 예술감독(피아니스트) “다시는 전쟁 일어나지 않기 바라는 염원, 음악제에 담고 싶었다”
[Culture Interview] 임미정 2023 DMZ오픈국제음악제 예술감독(피아니스트) “다시는 전쟁 일어나지 않기 바라는 염원, 음악제에 담고 싶었다”
  • 이채훈 클래식 전담 객원기자
  • 승인 2023.11.15 13: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람 마음 속의 ‘좋은 빛’이 꺼지지 않게 부채질 하고파”
‘평화’ 주제와 고품질 음악이 잘 융합되도록 최선 다해
음악이 전하는 평화 메시지는 정치적 논의보다 높은 차원
우리 안의 어두움을 빛으로 ‘변형’시키는 음악의 힘 믿어
세계 초연 「치유하는 빛」, 음악제 테마와 잘 어울리는 추상화 같은 작품, 평가

[서울문화투데이 이채훈 클래식 전담 객원기자] 2023 DMZ 오픈 국제음악제가 성황리에 열렸다. 11월 4일 김신 작곡가의 <치유하는 빛>으로 시작, 11월 11일 정명훈 지휘 KBS교향악단이 연주한 브람스 교향곡 1번으로 대단원을 이루었다. ‘어둠을 너머 빛으로 가는’ 음악의 대장정, 연주자와 청중들은 ‘열린 DMZ, 더 큰 평화’의 꿈을 다 함께 나눠 가졌다.

▲임미정 2023 DMZ오픈국제음악제 예술감독(피아니스트)

퀸 엘리자베트 콩쿨, 반 클라이번 콩쿨, 호로비츠 콩쿨 등 세계 유수의 콩쿨 입상자들이 연주에 참여했다. 개막 첫날, 임헌정 지휘 경기필하모닉이 세계 초연한 김신 작곡가의 <치유하는 빛>은 이번 음악제를 위해 특별히 의뢰해 탄생한 작품이다. 음악제의 주제와 의미에 부합하는 작품으로 청중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기도 했다. 지난 6일에는 DMZ 안에 있는 캠프 그리브스의 탄약고에서 음악회가 열렸다. 전쟁의 상처가 남아 있는 현장에서 울려퍼진 음악은 청중들의 가슴에 처연하게 다가왔다. 기념 심포지엄도 세 차례 열렸다. 플로리안 리임(국제음악콩쿨 세계연맹 사무총장), 자크 마르퀴즈(반 클라이번 콩쿨 CEO), 니콜라스 데논코트(퀸 엘리자베트 콩쿨 사무총장) 등 참석자들은 “인간이 음악으로 평화를 얘기하는 것은 정치적 프레임의 위에 있는 것”이며 “평화에 목마른 사람들을 위해 음악이 해야 할 특별한 역할이 있다”고 뜻을 모았다.

DMZ 오픈 페스티벌에서 ‘오픈’이란 말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냉전과 분단의 상징인 DMZ를 활짝 열어젖히고, 평화 마라톤부터 학술회의, 전시회, 음악회 등 다양한 장르를 연결하고, 아마추어와 전문가의 벽을 너머 다함께 참여한다는 뜻이다. 국가의 벽을 너머 미래를 향해 간다는 포부도 담겨 있다. 이 국제음악제의 프로그램을 짜고, 연주자를 섭외하고, 행정을 책임지고, 연주까지 참여한 사람이 바로 피아니스트 임미정 DMZ 오픈 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이다.

임미정 감독은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뒤 줄리어드에서 석사를 마쳤고 한세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2005년 ‘하나를 위한 음악재단’을 창립했고, 2019년부터 강원도 DMZ 접경지역에서 PLZ(Peace and Life Zone Festival)를 이끌며 음악을 통해 평화와 생태의 메시지를 전해 왔다. 이번 DMZ 오픈 국제음악제에서 두 차례의 ‘예술감독 콘서트’ 연주를 마친 그를 음악회의 막바지인 지난 8일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만나 이번 음악제에 의미와 성과를 들었다.

연주하랴, 진행하랴, 피곤하겠다.

피곤하지만 원하는 일, 보람있는 일을 하니까 지치지 않는다. 행정을 총괄하면서 연주까지 하는 게 쉽지 않았는데, 결국 연주를 통해서 내 영혼을 달래는 시간이기도 했다. 좋은 사람 만나서 에너지를 받고 일에 집중하니까 피곤한 줄 모르겠더라. 끝나면 앓아눕겠지. (웃음)

이번 국제음악제, 어떤 점에 포커스를 두고 추진했는지.

두 가지 포인트가 있다. 먼저, 음악제는 무엇보다 음악의 완성도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연주자 선정과 레퍼토리 선곡에 만전을 기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평화의 모티브를 잘 녹여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반 클라이번은 미국 피아니스트로서 냉전시대 소련의 차이콥스키 콩쿨에서 우승하여 미국의 히어로가 됐다. 이번에는 (임윤찬이 우승했던) 작년 반 클라이번 콩쿨에서 2위를 차지한 러시아의 안나 게뉴시네와 3위에 입상한 우크라이나의 드미트로 쵸니를 함께 초청하여 음악으로 평화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도록 했다. 타이틀을 ‘냉전을 너머’라고 했는데, 제목뿐 아니라 내용까지 세밀하게 점검해서 ‘평화’라는 주제와 고품질의 음악이 잘 융합되도록 최선을 다했다.

▲피아니스트 임미정 연주
▲피아니스트 임미정 연주

임윤찬도 참가했으면 더 좋았을텐데.(웃음)

콩쿨 수상자들은 전문 음악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무대를 통해 스스로 점검하고 돌아보게 된다. 그들이 평화음악제에서 연주한 경험은 오래 기억에 남을 일이고, 상징적 의미도 크다. 그들과 함께 연주하면서 대화를 나눈 게 즐거웠고, 이 음악제의 메시지를 널리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다. 세계인이 그들의 활동을 지켜보는데, 드미트리 초니가 이 음악제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린 뒤 긍정적인 연쇄반응이 일어나기도 했다.

2023 DMZ 오픈 국제음악제의 메시지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이다. 음악제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무엇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 핵심은 우리 안에 있는 어두움을 빛으로 ‘변형’시키는 것이다. 강원도에서 PLZ(Peace Life-Zone Festival)를 할 때는 자연을 주로 생각했는데 경기도에서는 역사를 만났다. 우리 조상들은 삼국시대 때부터 한강 유역을 차지하려고 전쟁을 벌이지 않았나. 김포 덕포진은 외세의 침탈을 저지하기 위해 싸운 곳이고…. 이렇게 보면 DMZ의 역사는 단순히 70년 역사가 아니다. 인간의 역사는 전쟁과 함께 전개됐구나 싶다. 한 나라가 침략자였다가 어떤 때는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누가 가해자고 침략자인지 따지자는 게 아니라 인간이 인간 스스로에게 저지른 어두운 역사를 직시하고 미래를 위한 빛의 메시지를 던지고 싶다는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이 세상에 전쟁이 또 일어나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국지전은 몰라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이렇게 일어날 줄은 몰랐다. 세상은 여전히 그렇다. 다시는 이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을 음악제에 담고 싶었다. 어려운 역사를 겪은 한국의 DMZ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메시지, 평화를 위한 메시지를 던지자는 것이다.

연주 곡목 중 특히 ‘평화’의 취지를 잘 드러낸 곡을 꼽는다면.

첫날 세계 초연한 김신 작곡가의 <치유하는 빛>은 음악제의 테마와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4월에 제네바에서 개최된 호로비츠 콩쿨을 보러 갔다. 원래 우크라이나에서 하는 콩쿨인데 올해는 전쟁 때문에 제네바에서 하지 않았나. 거기서 1등 입상자인 우크라이나의 로만 페데리코를 초청했다. 그리고 이 콩쿨에서 2022년 작곡 부문 1등을 한 김신씨에게 작곡을 위촉했다. 그에게 “경기필 초연인데, 연주 시간 10분 정도의 곡을 써 달라”고 하니까 바로 <치유하는 빛>을 얘기하더라. 70년 쌓여온 DMZ의 아픔을 치유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취지가 담길 거라고 했다. 제목도 맘에 들었는데, 완성된 곡을 들어보니 추상화처럼 빛이 넘실거리는 곡이었다. 사운드로 빛을 묘사했다고 할까, 여러 악기가 다양한 음색으로 아름답게 섞이면서 통일을 이루고 있었다. 오후석 경기도 부지사께서 “추상화를 보는 느낌”이라며 “아주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음악전문가가 아닌 분께도 메시지가 잘 전달됐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감독이 직접 연주에 참여한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트리오 E단조는 2차대전 막바지에 썼고, 친구의 죽음으로 고통을 겪은 쇼스타코비치의 마음을 담은 곡이다. 이번 음악제 취지에 잘 어울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그런 의도로 선곡했다. 지금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가 일으켰지만, 쇼스타코비치 트리오는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을 때 작곡했다. 이 곡은 굉장히 어두운데, 그 속에 엄청난 에너지가 끓고 있다. 역설적으로 전쟁을 고발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행정 일이 많아서 연주를 많이 할 수는 없었지만, 이 곡만은 꼭 하고 싶었다. 두 차례의 예술감독 콘서트에 ‘진지한(serious)’, ‘다양한(various)’이란 제목을 붙였다. 전체 DMZ오픈 페스티벌에서 자주 사용하는 슬로건이 ‘진지하고 유쾌한’인데, ‘진지한’ 측면을 대표한 게 이 곡이다. 첼리스트 임희영, 바이올리니스트 김은채에게 이 곡을 제안했더니 흔쾌히 응해 주었다. 두 젊은 연주자와 호흡을 맞추는 것이 즐거웠고 재미있었다.

쇼스타코비치 트리오는 6일 캠프 그리브스의 탄약고에서도 연주했는데, 느낌이 어땠는지.

탄약고에서는 피날레 4악장만 했다. 무대에서 연주할 때는 30분 동안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반면 탄약고는 시멘트 벽이 벙벙벙벙 울리니까 연주가 쉽지 않다. 하지만 공간이 크지 않아서 그런지, 사람이 공간을 채우니까 음향이 계속 변하더라. 탄약고는 음향이나 기술적인 면에서는 어려움이 있지만 무의식에서는 연주자와 청중들에게 특별한 느낌을 준다. 음악이 주는 감동도 있지만, 그 공간에서 한다는 특수한 감동이 있다. 존재의 체험이랄까…. 탄약고는 단순한 음악 감상이 아니라 존재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체험을 제공한다.

▲DMZ내 캠프그레이브스 열린 탄약고음악회
▲DMZ내 캠프그레이브스 열린 탄약고음악회

임 감독에게 DMZ는 어떤 의미인가.

제 마음의 어두움의 상징? 어둠의 흔적? 그것을 밝게 만들자는 게 바로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 곧 ‘변형’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DMZ에 대해 그냥 덤덤하게 생각하는 반면, 외국 사람들은 ‘한국’ 하면 DMZ를 떠올리는 것같다.

맞다. 서울의 호텔 로비에는 외국 사람들을 위해 DMZ 관광 전단지가 꼭 놓여 있다. 외국인들은 DMZ를 대한민국의 중요한 상징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이 음악제는 관광 프로모션의 의미도 크다.

DMZ 오픈 국제음악제를 성공적으로 진행해 오고 있는 건 PLZ(Peach Life-Zone Festival)의 경험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DMZ 하면 아름다운 자연을 빼놓을 수 없는데.

그렇다. 내가 PLZ 연주를 한 동해 고성 명파해변, 구 철원 제일교회, 금강산 건봉사, 포천 성당, 김포 덕포진, 모두 영상으로 담았는데 참 멋지지 않나? 날씨도 변덕스럽고, 걱정도 많았지만 다채로운 경험을 쌓았다. 2019년부터 영상 작업을 해 왔는데, 그건 굉장히 중요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음악을 DMZ의 자연에 담아서 평화를 위한 메시지를 던지는 건 뿌듯한 일이다. 이런 가운데 올해 경기도의 DMZ 오픈 페스티벌을 맡게 돼서 참 감사했다.

개인적으로 평화와 생태를 생각하게 된 계기는.

2000년대 초반, 히로시마에 연주하러 갔을 때 전쟁기념관에 들렀는데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통곡이 나왔다. 그 사진들, 원자폭탄 피폭으로 사람의 살이 축 늘어진 모습, 압도적인 느낌을 참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이란 나라에 대해 갖는 감정을 떠나서,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이 폭력은 말이 안 된다, 이런 걸 강력하게 느꼈다. 우리 안에 내재한 잔인함과 폭력을 중단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됐다. 음악은 인간 영혼의 숭고한 부분을 건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음악가가 된 이상 음악을 통해 좀더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던져야 하지 않을까, 막연하게 고민을 시작하게 됐다. 그게 PLZ를 하게 된 계기였고, 결국 DMZ 오픈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런 신념은 하루아침에 갖게 되는 게 아닐텐데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음악으로 남한테 도움을 주는 삶을 살고 싶었다. 대여섯살 때부터 “너 뭐가 될래?” 하면 “고아원 원장이 되고 싶다”고 했다. 부모님의 영향일 수도 있고 종교적인 것 때문일 수도 있다. 고등학교 때 KBS교향악단과 협연하면서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본 게 인상깊었다. 라흐마니노프 연주를 녹화할 예정이었는데 이산가족 상봉 때문에 카메라가 부족해서 녹화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얼마 뒤 또 갔는데 그날도 힘들다고 해서 세 번째 날에야 녹화를 했다. 그 때 생방송 현장에서 피켓 들고 전국에서 올라온 사람들의 모습이 뇌리에 남았다. 아, 이런 일이, 내가 하루아침에 부모님과 헤어져서 몇십년을 못 만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잖나. 그 뒤 뉴욕에서 남북 이산가족찾기 음악회를 했는데, 뉴욕에 살던 실향민들이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말씀해 주셨다. 이 때 음악이 사람의 영혼을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큰 자부심을 느꼈다.

‘하나를 위한 음악재단’도 계속 이어가고 있는지

2000년대에 북한을 여러 차례 다녀왔다. 뉴욕에서 공부할 때 교포 남편 만나서 미국 시민권을 갖게 된 뒤 북한에서 음악회를 열 수 있었다. 조선국립교향악단과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연주 하면서 음악이 표현하는 이상을 이 사회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구현해 보자고 결심했다. 2005년도에 ‘하나를 위한 음악재단’이란 NGO를 만든 게 첫걸음이었다. 국내 저소득층 어린이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탄자니아와 캄보디아에 음악프로그램을 만들고 음악가들이 재능기부로 연주하고…. 지속 가능성 있는 사업을 위해 기금을 만들어서 음악가들에게 월급을 주는 실험적 모델을 시도했다. 그러던 중 코로나 때문에 해외 교육은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잘 정비해서 다시 시작해 보려고 한다.

어느 나라든 평범한 사람들은 서로 환대하고, 음악으로 마음을 나누지 않는가.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를 보면, 1차대전 때 전선에서 독일, 영국, 프랑스 병사들이 싸움을 멈추고 함께 음악으로 어울리지 않았나. 전쟁이 왜 일어나는지, 권력자들의 탐욕 때문이 아닌지, 성찰해 봐야 할 것 같다.

며칠전 자크 마르퀴즈랑 그런 얘기를 했다. <비평화시대, 음악의 특별한 역할>이란 주제로 플로리안 리임이 발제를 했다. “정치의 언어로 음악을 설명하면 음악이 프로파간더에 휩쓸릴 수 있다. 우리가 음악으로 얘기하는 것은 정치적 프레임의 위에 있다. 이 한계를 너머 사람의 마음을 모을 수 있는 영역의 이야기를 하자.” 이런 얘기를 나누며 공감했다.

▲DMZ 오픈 국제음악제 심포지엄
▲DMZ 오픈 국제음악제 심포지엄

감독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음악의 힘’ 하니까 모차르트 <마술피리>가 생각난다. 타미노가 마술피리를 불면 악당이 착한 사람으로 바뀌고, 사나운 맹수가 즐거워 춤을 추는데, 이런 음악의 기적이 현실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하지만 시간이 걸린다. 음악은 한 개인의 삶에는 충분히 모멘텀을 줄 수 있지만, 사회 구조적인 차원까지 변화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정치나 경제 시스템을 떠받치는 생존의 논리가 인간의 사고를 강하게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음악의 부드러운 힘으로 한꺼번에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시스템을 이루는 것은 결국 인간 개체들이다. 각 개인에게 교육이나 음악의 경험을 충분히 제공해서 햇빛처럼 쏘아 주면 그것이 결국 이 딱딱한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의 소망이다. 세포 하나하나를 바꾸다 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순간 임계점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더 큰 변혁의 순간 말이다. 독일 통일을 보라. 우연해 보이는 사건으로 순식간에 이뤄지지 않았나. 언제 올지 모르는 ‘임계점’을 위해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내년에는 더 멋진 국제음악제를 준비해야 할텐데,

그냥 ‘멋있는 행사를 만들었다’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내용으로 더 충실한 페스티벌을 하고 싶다. 올해는 내가 실수도 있었고 실패할 위기도 있었는데 나의 진정성을 알아봐 주시는 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내가 힘들어 할 때 “뭐예요? 할 수 있으면서!” 이러면서 격려해 주시면 저는 순진하게 “네, 할 수 있겠죠?” 하면서 또 계속했다. 올해, 100% 만족은 아니지만 많은 분들이 힘을 주셔서 어느 정도 완성된 페스티벌을 만들 수 있었다. 내년엔 더 효율적으로 하고, 놓쳤던 것들도 보완하고, 내용도 고도화시키고 싶다. 사실, 평화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건 공허하다. 평화란 말은 사람마다 자기 경험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된다. 내가 음악가로서, 페스티벌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얘기하자면, 인간의 마음이라는 우주를 정점에 두고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는 도구로 나 자신을 자리매김하며 어떻게 페스티벌을 준비하고 예산을 집행할 것인가, 거기에 집중하려고 한다.

꿈이 있다면.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크든 작든 ‘천사’라 해도 좋고, ‘좋은 빛’이라 해도 좋고, 그런 게 있다고 믿는다. 다만 그 빛이 꺼지지 않게 계속 부채질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어떤 임계점이 와서 확 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해 왔다. 이번 페스티벌 하면서 정말 힘들 때는, “아 내가 피아니스트로서 이런 모델 하나를 만들었으니 뭐, 내일 죽어도 요만큼의 영감을 후배 음악가들에게 주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가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