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건호 작가 《신생명조형전Ⅲ》, 매력적 추상 회화의 세계
변건호 작가 《신생명조형전Ⅲ》, 매력적 추상 회화의 세계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11.1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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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훈갤러리 초대전, 12월 5일까지
신작 30여 점 통해, 조각 넘어선 자유로운 추상 선봬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생명의 본질’을 화두로 작업을 이어온 변건호 작가의 초대전이 열린다. 관훈갤러리에서 오는 12월 5일까지 관람객을 만나는 변건호 초대전 《신생명조형전Ⅲ(Neo Cosmos ExhibitionⅢ)》 이다. 오는 17일에는 전시 연계 행사도 준비돼 있다. 오후 3시에 ‘작가와의 대화’, 오후 5시에 마임이스트 유진규의 마임이 예정돼 있다.

▲변건호, Neo Cosmos 2023-No.9 , 130.4 x 130.4cm Acrylic, Carbon, Crayon, Aluminium (사진=에이앤씨미디어 제공)
▲변건호, Neo Cosmos 2023-No.9 , 130.4 x 130.4cm Acrylic, Carbon, Crayon, Aluminium (사진=에이앤씨미디어 제공)

이번 전시를 준비한 변 작가는 “지금까지 ‘생명 탄생의 비밀’을 주제로,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탐구해왔다. 그런데 ‘생명이란 어디로 간다기 보다 바로 그곳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조형의 세계는 곧 시공의 예술이자 연속된 삶과 생명의 예술이다. 나는 새와 꽃의 교감과 아우라를 화폭에 담고자 했다”라고 말했다. 작가는 전시에서 평생 화두로 삼아온 생명본질에 대한 탐구와 그에 대한 결과물을 평면 조형구도로써 풀어낸 대형 작품 30여점을 내걸었다.

前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장이었던 변건호 작가는 공예ㆍ디자인ㆍ미술의 융합 개념인 ‘조형디자인’의 정착을 위해 오랫동안 헌신해왔다. 많은 화제를 뿌렸던 전라남도 함평군 황금박쥐 서식을 기념한 <황금박쥐상> 작가이기도 하다. ‘조형’에 토대를 밟고 있던 변 작가 평면 작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Neo Cosmos 2023-No.15 , 146 x 83cm Acrylic, Carbon, Crayon, Oil pastel
▲변건호, Neo Cosmos 2023-No.15 , 146 x 83cm Acrylic, Carbon, Crayon, Oil pastel (사진=에이앤씨미디어 제공)

이번 전시는 변 작가가 중병으로 투병 중인 아내에게 헌정하는 전시이기도 하다. 변 작가는 투병하는 가족을 돌보며, 한층 심오한 평면작업 세계로 진입하게 됐다. 지난해 변 작가는 홍익대 앞 홍갤러리에서 환자용 링거, 물고기 등 독창적인 형상을 화면에 도입하고 한지 위에 연필, 크레용, 금박 등 다채로운 소재를 활용해 그림을 그렸다. 화면 위를 자유롭게 종횡하는 선(線)은 작가의 어지러운 마음을 대변하듯 휘몰아치는 강렬한 광풍을 연상시켰다.

올해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한층 더 깊이감을 더한 분위기다. <Neo Cosmos 2023-No.15>와 <Neo Cosmos 2023-No.16>에서는 아직도 환자용 링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Neo Cosmos 2023-No.2>에서는 가족의 병으로 인한 절망은 흑과 백, 청과 보라 등 다채로운 색이 어둡게 내려앉아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런가하면 <Neo Cosmos 2023-No.7>에선 맑게 갠 듯 짙은 그레이 위에 화이트 컬러가 도포돼 있기도 하다.

▲전시장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변건호 작가 (사진=서울문화IN 제공)

최근 조각가과 회화 작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은 낯선 시도가 아니다. 심문섭, 박석원 등 원로조각가들은 최근 평면 작업을 선보이고 있고, 주로 회화 작업을 해온 이강소 작가는 3차원의 흙조각을 발표하기도 했다. 변건호 작가도 1995년 《혼돈과 질서》전에서 이미 2차원과 3차원의 경계를 허무는 조형 작업을 선보인 바 있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평면작업을 지속해온 변 작가와 화면은 물감의 마티에르가 두터워졌고, 표현 방식과 컬러감도 심경의 변화만큼이나 달라졌다. 마치 자유로운 영혼이 마음껏 우주를 유영하듯 심도있는 조형세계를 표출하고자 한 것이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 작가는 이번 작업을 위해 한지 또는 캔버스 위에 무수한 드로잉과 평면 구상을 시작으로 아크릴 물감과 흑연, 색연필, 크래용, 금박, 은박 등을 이용해 외연을 확장시키는 조형을 시도했다.

▲변건호, Neo Cosmos 2023-No.17 , 222 x 208cm (6pics) Acrylic, Carbon, Crayon, Oil pastel (사진=에이앤씨미디어 제공)

변 작가의 주제의식은 반세기에 걸친 작가 생활 동안 ‘생명의 본질’이었다. “어차피 살다가 죽는 것이 생명의 본질이자 이치인데, 왜 사람들은 삶의 고단함에 이렇게 좌절하고 희로애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고민에 일찌감치 빠졌던 작가에게 ‘생명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멈출 수 없는 것이었다.

한편, 작가는 시대가 요구하는 융합과 상호작용, 상생의 미학을 실천하는 데 모든 역량을 쏟아 부은 바 있다. 융합과 상생에 바쳐 온 다양한 활동 가운데 현재 그는 회화 창작의 지점에 이르렀다. 그 회화도 단순히 어떤 우발적 충동에 따라 움직인 결과가 아니라, 지난하게 걸어온 오랜 추구의 연장선이자 한 과정으로 제시된 것이라는 점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전시장에서 변건호 작가 (사진=서울문화IN 제공)

이재언 미술평론가는 변 작가 작품에 대해 “작가는 과거에 했던 조형 작업의 이미지에 덧칠하는 자기 부정의 과정을 통해 또다른 자아를 발견하고 새롭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면서 “이런 과정을 통해 생명의 생성과 완성, 잊혀짐과 소멸 등의 필연적인 과정을 보여주느라 4~6번씩 캔버스를 덧바르는 노력을 해왔다”라고 밝혔다.

전시를 열며 변 작가는 “이번 작업에서는 특히 과거의 나와 조우하는 동시에 새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 작업에 집중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입체조형 작업에서는 무수한 드로잉과 평면구상을 시작으로 재료와 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요구하는 수많은 과정들을 거쳐 그 결과물에 다다르게 됐다”라며 “이번 전시를 위해 넓은 이해와 함께 용기를 일깨워준 가족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전한다. 특히 미소와 격려 그리고 인내로 신뢰를 아끼지 않는, 지금은 힘찬 생명력으로 병고와 투쟁하고 있는 나의 아내에게 이번 전시를 헌정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