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의 미술현장 크리틱] 윤정미의 연출사진: 연출과 기록사진의 끝없는 경계
[이은주의 미술현장 크리틱] 윤정미의 연출사진: 연출과 기록사진의 끝없는 경계
  • 이은주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 승인 2023.11.17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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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제 21회 동강국제사진제 수상자 윤정미. 윤정미는 올해 사진계에서 굉장히 뜻깊은 상을 수상했다. 강원도 영월이 ‘사진마을(2001.9)’로 선포한 지 22년째 되는 해이다. 동강국제사진제의 역사만큼 윤정미의 작업역사도 만만치 않다. 젊은 작가 타이틀을 뗀 지 오래됐다. 어느덧 중견작가로 향했고, 미술계에서 굳건히 살아남은 중견작가이다. 새로운 시리즈 작업도 역동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1998년 <동물원> 작업을 시작으로 사진 작업 활동을 시작했다. 꼭 25년 되는 해이다. 그간 국내외 사진 전문가가 인정하는 히트 작품도 내 놓았다. 10년 이상 작업한 작품 시리즈도 여럿 있지만 <핑크&블루 프로젝트>는 윤정미의 시그니처 작품이 되었다. 그 작업이 주는 보편적 충격은 컸다. 윤정미는 곧 <핑크&블루> 작가로 통한다. 많은 이들에게 각인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한번 스치듯 봤더라도 절대 잊을 수 없는 한 컷 이다.

글을 읽는 잠시라도 주변 사물과 공간이 가진 색을 둘러보자. 핑크와 블루만큼 자극적이면서 눈길을 끄는 색도 별로 없다. 그리고 그 색은 현실에서 곧 비현실세계로 이끈다. 무의식 속까지 깊이 침투되어 있다. 희극을 담보한 동화 속 판타지, 어린 시절의 기억, 어린이, 행복감 등으로 말이다. 시들고 말라비틀어진 핑크, 불에 그을려 버려진 쓰레기 같은 블루는 이미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 세계 그 어디에도 없다. 핑크와 블루는 그만큼 시각적 효과가 굉장히 크다. 그렇다면 다른 작업은 어떤가? 크게 각인됐던 만큼 이걸 뛰어넘는 다음을 만드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작가는 끊임없이 다른 시도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효과였을까? 윤정미의 작업 면면을 자세히 보면 수없이 많은 데이터가 겹겹이 축적되어 있다. 그가 무수히 쌓고 수집한 사물체계를 보면 경이롭다. 부단한 움직임으로 빚어낸 그물망 같은 촘촘한 관계(사람, 사물)는 덤이다.

▲핑크 프로젝트-서우와 서우의 핑크색 물건들, 뉴욕, 미국, 라이트젯 프린트, 2005 (사진=이은주 제공)
▲핑크 프로젝트-서우와 서우의 핑크색 물건들, 뉴욕, 미국, 라이트젯 프린트, 2005 (사진=이은주 제공)

윤정미 사진에 등장하는 공간과 사람은 어느 것 하나 그냥 우연히 찍은 사진은 거의 없다. 여러 번 리서치 끝에 섭외, 인터뷰, 세팅의 과정을 거친다. 모두 한땀 한땀 쌓은 노동의 산물이다. 윤정미는 새로운 작업을 찍기 위해 시나리오에 상응하는 시공간을 연출한다. 사람을 섭외한다. 연출사진이다. 사진 속 공간은 점차 특정 장소성을 갖기에 작가는 그곳을 여러 번 찾아 재촬영하기도 한다. 세월에 따라 변한 공간의 흔적은 더욱 진화된 형식을 갖추게 한다. 각주가 붙듯 부연설명이 있는 아카이브가 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새로운 작업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윤정미의 시리즈 작업은 끝없이 계속 확장된다. 사진 속 주인공들은 아이들에서 어른으로 성장해 있기도 하고, 아줌마에서 할머니로 변해있다. 작가의 작업 경험 횟수 만큼 사진도 같이 늘어난다. 흐르는 세월만큼 변화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기록된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집요하게 기록해 나가는 댜큐멘터리 사진 형식도 취한다. 기록사진이다.

▲반려동물- 선규네 가족과 코코와 건달이, 서울, 삼성동, 라이트젯 프린트, 2014
▲반려동물- 선규네 가족과 코코와 건달이, 서울, 삼성동, 라이트젯 프린트, 2014 (사진=이은주 제공)

초기 <동물원>과 <공간-사람-공간> 작업으로 카메라 주체가 객관화되는 사진을 찍었다. 그 이후 <핑크&블루프로젝트>, <반려동물>을 시작으로 카메라 속 대상(사람, 사물)과 친숙하게 대화하는 듯한 공감적 체험을 담아냈다. 25년 동안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논의되는 사진의 거의 모든 유형을 다뤘다. 그렇다고 거대담론이 그의 작업을 집어삼키진 않았다. 작업 시리즈의 모든 시작은 지극히 개인의 체험에서 비롯되었다. 작가의 경험은 어느새 점차 집단적 내러티브를 형성시켰고, 집약된 이야기는 곧 사회적 문제를 고민케 했다. 모두 한 번에 이뤄진 게 아니다. 매해를 거듭해서 시리즈 작업을 새기고 시간의 추이를 두고 다시 재촬영한 결과이다. 사회적 환경, 권력의 서열과 구조가 변하면 작업도 변한다. 코로나 19로 기존질서로 짜여진 사회적 기능이 마비되니 전례 없던 새로운 시도를 했다. 카메라를 들고 길거리를 누볐다. 그리고 찍었다. 특별한 연출 없이 그리고 기약된 기록에 대한 계획없이. 사진 형식의 질서 안에서 과연 어떤게 새로운 사진 일까? 그는 끊임없이 사진 장면을 만들고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공간을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