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Interview]장수동 서울오페라앙상블 예술감독 “창작 오페라, 국가대표급 오페라단이 나설 때 됐다“
[Culture Interview]장수동 서울오페라앙상블 예술감독 “창작 오페라, 국가대표급 오페라단이 나설 때 됐다“
  • 이채훈 클래식 전담 객원기자/김바울 사진기자
  • 승인 2023.11.2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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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자화상> 이어 <야간비행>까지, 창작 오페라 40편 공연
“젊은 작곡가들에게 오페라 쓸 기회 제공한 것 보람 있어”
“제작 극장 시스템 마련해야 우리 오페라 생존 가능”
“여러 단체 협력 · 경쟁 필요, 내년 창작 오페라 심포지엄”
우리 창작 오페라의 기수, 장수동 예술감독 인터뷰

[서울문화투데이 이채훈 클래식 전담 객원기자/김바울 사진기자]오페라 연출가 장수동은 우리 창작 오페라의 대명사다. 그는 1994년 서울오페라앙상블을 창단하여 지금까지 많은 오페라 – 드뷔시 <펠레아스와 멜리상드>, 모차르트 <돈조반니>, 베르디 <리골레토>, 글루크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레온카발로 <이 팔리아치> 등 - 를 무대에 올렸다. 모두 우리 시선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이다. 푸치니의 <라보엠>은 그의 손에서 80년 5월 광주를 배경으로 한 <서울 라보엠>으로 거듭났고, CNN에 소개되어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는 서울오페라앙상블 장수동 예술감독 ⓒ김바울 사진기자

그의 열정은 언제나 우리 창작 오페라를 지향해 왔다. 우리 고유의 오페라를 만들어서 대중화하고 세계화하는 게 그의 일관된 목표였다. 그가 지금까지 무대에 올린 창작 오페라는 무려 40편, 제목을 열거하기가 버거울 정도다(괄호 안은 작곡자). 

1991 <보석과 여인>(박영근), 1993 <결혼>(공석준), 1994 <오따아 줄리아의 순교>(이연국), 1995 <안중근>(류신구), 1995-2012 <춘향전>(장일남), 1996 <에스더>(박재훈), 1997 <초월>(강석희), 1998 <순교자>(제임스 웨이드), 1999 <매직 텔레파시>(이종구), <둘이서 한발로>(김경중). <백범 김구와 상해임시정부>(이동훈), <사랑의 빛>(백병동), 2000 <무영탑>(이승선), <탁류>(임긍수), <성춘향을 찾습니다>(홍연택 ), 2001 <춘향>(이철우), 2002 <백록담>(김정길), <실크로드>(김대성), 2004 <황진이>(이영조), <직지>(박범훈), 2005 <논개>(최천희), 작곡 <봄봄>(이건용), <시집가는 날>(메노티), 2006 <초분>(박재열), <논개>(지성호), 2007 <심청>(김대성), 2012 <손양원>(박재훈), 2013 <청라언덕>(김성재), <백범 김구>(이동훈), <도산 안창호>(최현석), 2014 <나는 이중섭이다>(이근형), 2015 <운영>(이근형), 2017 <붉은 자화상>(고태암), <나비의 꿈>(나실인), 2020 <굿모닝 독도>(신동일), 2021 <빛아이 어둠아이>(신동일), <위안부 점례와 영자>(이재신), 2022 <장총>(안효영), <취화선>(이근형). <이중섭>(현석주), 도합 40편.

인터뷰가 약속된 시간, 그는 파주 세트장에서 막 돌아온 뒤였다. 18일로 예정된 <돈조반니> 고령 공연을 위해 세트를 체크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이달 29일과 30일에는 서울 강동아트센터에서 창작 오페라 <붉은 자화상>을 공연한다. 6년 전 초연됐는데, 스토리를 다듬고 음악을 보완해서 더 좋은 무대를 선보인다고 한다. 이 오페라는 24일 해남에서도 공연된다. ‘찾아가는 오페라’를 향한 그의 집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오페라를 향한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은 어디서 올까? 우리 오페라가 세계인의 인정과 사랑을 받을 날은 언제일까? 그의 노력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오페라에 대한 그의 생각과 포부가 궁금했다. 

때 : 2023년 11월 10일 오후 4시
곳 : 서초동 서울오페라앙상블 사무실
대담 : 이채훈(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 전담 객원기자)

오페라를 공연할 때마다 이렇게 파주에 다녀오시나?

내가 하는 일이 노가다라서…. (웃음) 유럽 오페라 관계자들이 보면 이해를 못한다. 유럽은 의상, 소품, 세트가 다 극장에 있으니까. 오페라단마다 자기 극장이 있고…. 우리는 매번 대관해서 하니까 세트는 파주, 소품은 광명의 창고에서 그때그때 가져온다. 아주 비효율적이다. 연습하다가 안 맞으면 “아, 이거 다시 가져와”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게 어렵다. 올해 예술의전당 30주년인데, 처음에는 세트장과 의상실이 다 있었다. 오페라 극장으로 시작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없다. 

어려운 여건에서 <돈조반니> 고령에서 하고, <붉은 자화상> 해남에서 하려면 버겁지 않은가? 

그래도 즐겁다. 고령에도 극장이 있는데 여기서 오페라를 한다니까 모두 기대하며 환영해 주신다. 해남에는 3번 갔는데, 윤선도와 윤두서가 지낸 녹우당이 있고, 근처에 대흥사도 있고, 인근 숲길이 정말 멋있다. 해남 일대를 관광 문화벨트로 가꿀 수 있다. 황지우 시인, 고정희 시인도 그 지역 출신이고, <붉은 자화상>도 관광문화 상품이 될 수 있다. 이번 해남 공연은 수능 끝난 고등학생들을 무료 초대한다. 

<붉은 자화상>은 어떤 작품인가?

조선 숙종 때의 화가 윤두서를 모델로 했다. 윤두서의 <자화상>은 국보 240호로 지정된 걸작인데, 이 얼굴에 얽힌 이야기를 그렸다. 320년 전 이야기지만 음악은 현대 어법으로 만들었다. 윤두서의 그림도 감상할 수 있도록 연출했다. 2017년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초연했는데, 공교롭게도 대통령 탄핵 및 선거와 겹쳐서 어렵게 공연했다. 이번에는 대본을 줄이고, 연결 대목을 다듬고, 새로 편곡해서 더 나은 작품을 보여드릴 생각이다. 오늘 중으로 음악 손질 마무리해서 프라임필하모닉에 악보를 전달할 거다. 

▲지난 2017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초연 당시 공연 장면

왜 ‘붉은’이란 수식어를 붙였는가?

‘붉은’이라는 건 홍매화의 이미지다. 대본은 역사적 사실에 픽션을 가미했다. 윤두서가 역모 사건에 연루됐을 때 제자 영창이 스승 대신 잡혀서 죽음을 맞는다. 영창을 사랑하는 윤두서의 딸 영래가 자기 손수건에 홍매화를 수놓아서 그에게 주었다. 영창이 스승 대신 잡혀서 고문당한 피, 죽어가는 피의 붉은 이미지가 홍매화와 겹쳐진다. 대본 작가 김민정이 멋진 스토리를 만들었다. 자화상은 원래 눈이 빨갛게 돼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 색이 바래서 지금은 붉게 보이지 않는다. 

화가 윤두서에 장수동 감독의 모습을 투사한 건가?

그런 의도로 만든 건 아니지만, 그렇게 말해도 틀린 건 아니다. 윤두서가 그 시대에 자기 얼굴을 왜 그렸을까? 백동경(거울) 보면서 그렸다는데, 자기와의 싸움이 배어 있다. 시대에 맞서서 자기 삶을 그린 사람을 통해 우리 시대를 노래하자는 것이다. 우리보다 더 힘든 시절에 그런 예술가가 있었다는 것, 그의 예술혼을 통해 지금 우리의 예술혼을 돌아보자는 거다. 

지금까지 만든 창작 오페라가 무려 40편이다. 우리나라에서 전무후무한 기록 아닌가?

그런가? (웃음) 좋은 작품도 있고, 창피한 작품도 있다. 나의 직계 스승인 오현명 선생께서 “야, 수동아, 우리 오페라 해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창작 오페라를 하면서 젊은 작곡가들에게 오페라 작곡할 기회를 준 것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뛰어난 젊은 작곡가들이 많지만 무대 전체를 관객 눈높이에서 보는 안목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지속적인 훈련과 무대 경험이 아쉽다. 종합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인문학적 소양도 필요하다. 무대에서 뒹굴며 이것저것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하고 영화, 무용, 연극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소통해야 한다. 그냥 음악에만 갇혀 있어서는 곤란하다. “너희들 삶의 스펙트럼이 넓어야 우리 오페라도 달라지지….” 늘 얘기하지만 쉽지는 않다.

감독님은 젊었을 때 온갖 일 다 해 보셨잖나? 

그렇다. 하지만 “나 땐 이렇게 살았다.” 하면 꼰대 아닌가. (웃음) 사실 젊은 작곡가, 대본작가, 연출가들이 우리 세대보다 시야도 넓고 감각도 좋다. 젊은 분들이 성장하려면 무엇보다 오페라 제작극장이 있어야 한다. 베르디, 푸치니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모두 극장에서 이뤄진 작업이다. 40대 젊은 작곡가들 많다. 이 분들이 계속 오페라를 쓸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오페라 콘체르탄테 공연 후 커튼콜 장면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오페라 콘체르탄테 공연 후 커튼콜 장면

창작 오페라의 확산이 기대보다 더딘 이유는?

오페라 작곡은 어렵다. 3분짜리 노래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많다. 대중음악도 3분 아닌가. 하지만 30분 쓰기는 굉장히 어렵다. 근데 오페라는 3시간 짜리 아닌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차르트와 다폰테 같은 천재 명콤비가 아닌 한 불가능하다. 보통 사람들이 음악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게 가장 큰 한계인데, 이걸 해결하는 게 정말 어렵다. <붉은 자화상>도 노래 라인과 오케스트라 라인이 다른데, 이게 매력이지만 잘 하는 게 쉽지 않다. 작곡자의 의도를 살려야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대중성이다. 우리 창작 오페라는 대중성을 위해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 

우리 극장 시스템, 무엇이 문제인가? 

오현명 선생께서 “창작 오페라는 소극장에서 시작해야 돼” 하시더라. “걸음마도 못 하는데 장거리 뛰라고 하면 되겠냐. 작은 데서 하고 그 다음에 축구장으로 가야지.” 그래서 나온 게 공석준 <결혼>, 박영근 <보석과 여인>, 요즘 자주 하는 이건용 선생의 <봄봄> 같은 작품이다. 창작 오페라는 볼거리에 집착할 게 아니라 작은 공연장에서 출발하는 게 낫다. 7명이 노래하고 7명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나실인의 <나비의 꿈> 정도가 ‘찾아가는 오페라’에 적합하다. 큰 극장에서는 이틀밖에 못 하잖나. 대학로처럼 1주일, 2주일 하려면 소규모가 낫다. 

오케스트라 피트를 갖춘 극장이 별로 없는 것도 아쉽다. 구로, 마포, 토월극장, 국립박물관 극장 용, 그리고 이번에 하는 강동아트센터 정도다. 오페라는 자연스런 악기 소리와 무대 위 성악가의 소리가 잘 섞인 그 음악을 들으러 오는 거 아닌가. 그걸 할 수 있는 극장이 많지 않다. 작년 대학로에서 <장총> 할 때 문예회관 관계자에게 “원래 여기 오케스트라 피트 있었다”고 알려주니까 거기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더라, 그래서 내가 피트를 찾아서 보여줬는데, 열어보니까 쥐가 다니고 엉망이더라. 문예회관 연 뒤 한 번도 쓴 적이 없으니까. 문예회관은 무용, 연극 하느라 바쁜 극장인데, 그때 제대로 된 오페라를 처음 한 거다. 창작 오페라나 ‘찾아가는 오페라’는 그런 데서 해야 한다. 

장 감독께서 앞장서 오셨는데, 외롭지 않은가?

사실 외로운 작업이다. 제가 사명감을 갖고 이 일을 해 왔는데, 이제는 저뿐 아니라 많은 단체들이 함께 하면 좋겠다. 때로 경쟁도 하고, 때로 콘소시엄도 하고, 그러면서 의견을 교환하고…. 서울 예술의전당이 제작극장으로 거듭나서 콘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부산, 대구, 대전, 광주에서 등 광역시와 도청소재지에 거점 오페라 극장을 만들고, 이어서 군 단위로 극장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단기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예술의전당 같은 큰 무대는 국립오페라나 시립오페라가 하고, 나처럼 마이너리그에 있는 사람은 작은 극장에서 할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대구오페라가 가장 조건이 좋다. 자기 극장을 갖고 있으니까. 외국과의 교류도 극장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작년에 대구 오페라페스티벌에서 윤이상 <심청>을 한 건 참 고마운 일이다. 국립오페라단은 그 많은 예산으로 창작 오페라를 해야 한다. 서양 오페라 공연도 필요하지만,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창작 오페라를 국립오페라단 아니면 어디서 하나. 서울시립오페라단도 창작 오페라를 해야 한다. 푸치니 <투란도트>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서울을 소재로 한 오페라를 만든다든지, 뭔가 하라는 거다. 1,000만명이 사는 수도 서울의 대표 오페라단 아닌가. 나는 마중물에 불과하다. 개인의 힘은 한계가 있다. 국가대표급이 나서 줘야지…. 

안 하는 건가, 못 하는 건가?

예술의전당 사장에게 “언제 우리 작품 합니까?” 물었더니 “창작오페라 할 겁니다. 하지만 외국의 유명한 작곡가에게 맡길 겁니다” 하더라. 깜짝 놀랐다. 그게 외국 작품이지 우리 작품인가? 우리가 작곡해야 우리 작품이지…. 우리 오페라를 세계화하려면 우리 얼굴을 한 작품들을 만들어야 한다. 당장 눈에 차는 작곡자가 없어도 시도는 해야 한다. 작곡가든 대본작가든 사람을 만드는 일이 창작 오페라에서 제일 중요하다. 이를 위한 뒷받침이 부족하니까 답답한 거다. 대본 쓰고 곡 쓰고, 그 다음 콘서트 한번 하고, 최종적으로 무대 공연 하려면 최소 2~3년이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딱 1년 단위로 일정과 예산을 짠다. 이건 하지 말란 소리나 다름없다.

▲서울오페라앙상블 <취화선> 쇼케이스 장면
▲서울오페라앙상블 <취화선> 쇼케이스 장면

언론의 관심이 부족해 보이는데?

음악 비평하는 분들은 베르디, 모차르트 얘기는 하는데 창작 오페라 얘기는 안 한다. 욕 해도 좋으니까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해 주면 좋겠다. 비평은 비평가의 몫이다. 많이 부족하다고 얘기해라. 곡이 그것밖에 안 되냐고 지적해라. 다양한 의견 듣는 게 작품 활동에 좋은 약이 된다. 이런 지적을 통해 훈련이 되고, 결국 작곡가의 작품이 되는 거다. 나같은 예술감독은 뒤로 빠지고, 작곡자를 앞세우고 싶다. 나 말고 다른 단체에서 이 작품을 다시 하면 좋겠다. 작년에 안효영의 <장총> 보고 좋아한 지방 팀이 있었는데, 결국 안 됐다. 내년에 하면 된다. 나실인 <나비의 꿈>, 신동일 <빛아이 어둠아이>, 고태암 <붉은 자화상> 등으로 ‘레퍼토리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창작 오페라를 한번 하고 버릴 게 아니라 여러 단체, 여러 장소에서 계속 공연해야 한다. 

결국 작품성이 중요할 것 같다. 세계인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이 나와야 하는데?

영화는 어느 순간에 그게 이뤄졌다. 동남아 영화인들이 한국 와서 보면 부러워한다. 시스템도 잘 돼 있고, 장비도 탁월하고, 그만큼 시장이 커진 거다. 오페라도 시장의 파이를 키워야 하는데, 지금은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다. <피가로의 결혼> 같은 거 우리 식으로 리메이크해서 동아시아에 돌려보자. 한국, 중국, 일본만 해도 인구가 10억이 넘는다. 최근엔 대만도 오페라를 시작했다. 타이페이 뿐 아니라 타이중과 카오슝에도 극장이 있다. 피나 바우슈가 왔을 때 대만 전체를 돌았다. 반면 우리나라는 LG아트센터에서 두 번 하고 끝났다. 굉장히 아쉽다. 동아시아 극장 문화가 비약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우리가 충분히 할 수 있다. 

K-팝으로 우리 음악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높아졌다. 우리 전통음악이 국제무대에 진출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한데, 창작 오페라에 우리 음악을 접목시킬 계획은 없나?

절대 동의한다. <범 내려온다>가 조회수 1억이 넘었다. 푸치니를 우리 악기로 하자, 국악 어법으로 작곡하자, 완전히 색깔이 다른 음악으로 K-오페라는 오케스트라부터 다르네? 이런 인식을 주면 유럽 사람들에게 어필할 것이다. 판소리, 아악, 민속악, 남도민요 하는 사람도 출연하고, 서양악기와 퓨전으로 할 수도 있고…. 이런 건 큰 규모로 못 하지만, 작은 단위에서는 가능하다. 창덕궁 후원에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얼마나 멋진가. 이런 데서 음악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누가 창덕궁 얘기 안 쓰나, 이런 생각도 했다. 

▲창작오페라 ‘나비의 꿈’ 공연 장면 ⓒ서울오페라앙상블
▲창작오페라 ‘나비의 꿈’ 공연 장면 ⓒ서울오페라앙상블

내년이면 서울오페라앙상블 창단 30년인데,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계신가?

새 오페라 <야간비행>이다. 난민촌에 구호품을 떨어뜨리는 비행사를 통해 디아스포라를 얘기할 거다. 꼭 한국적 소재가 아니라도 괜찮다. 두루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창작 오페라의 소재를 확대하는 거다. 뮤지컬은 <마리 퀴리> 등 자유롭게 하지 않나. 오페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창작 오페라는 우리 소재로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제는 좀 더 시야를 넓혀야 한다. 내가 아이디어를 내고 오예승이란 젊은 작곡가가 음악을 썼다. 오예승씨는 뮤지컬적인 요소를 많이 넣겠다는데, 좋은 생각이다. 그리고, 울릉도에 가서 공연할 거다. 거기도 극장이 있다. 울릉도 문화회관에서 환영하더라. 
 
<야간비행>같은 작품은 해외에서 먼저 히트시키고 그 다음에 한국에 가져오는 방법은 없을까? 가령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서 연속 공연하면 호응이 크지 않을까. 

바렌보임이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로 그런 일을 했다. 대기업들이 지원해 주면 참 좋겠다. 내가 하노이에서 <황진이> 한 적 있는데, 하노이 교향악단은 악기가 전부 일본제였다. 우리는 LG전자 옥외광고판 걸고 냉장고를 엄청 파는데,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 오페라 같은 건 모르고, 그냥 물건 팔아먹는 나라로만 생각한다. 밀라노 살 때 보니까, 라스칼라 극장 앞에 삼성 전광판이 있고 라스칼라 메인 스폰서에 삼성이 들어 있다. 그러면 “라스칼라에서 한국 오페라도 하나 해”, 요구할 수 있거든. 일본은 ‘사계’ 뮤지컬팀이 거기서 <투란돗>을 했다. 일본 기업이 자본을 대고 관객을 다 채워 줬다. 심지어 중국 애들도 와서 했다. 우리는 뛰어난 성악가들이 많고, 정명훈도 라스칼라에서 한다면 기꺼이 참여할 거다. 라스칼라 측도 영리해서 무대를 제공하며 환영할 거다. 이탈리아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극장에 오지 않나. 그들에게 우리 오페라의 저력을 보여줄 때가 됐다.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는 서울오페라앙상블 장수동 예술감독 ⓒ김바울 사진기자

창작 오페라를 ‘여럿이 함께’ 할 방안은?

서울오페라앙상블 창단 30주년을 맞아 4월이나 5월쯤 우리 창작 오페라에 대한 심포지엄을 열 생각이다. 예술적 측면 뿐 아니라 산업적 측면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뮤지컬처럼 제작자도 있어야 하고 투자자도 있어야 하는데, 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우리 오페라를 관객이 좋아하게 만들고, 장사가 되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시장성을 확보하고 투자해도 되겠다는 믿음을 주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지혜를 모을 생각이다. 

오페라 단체 사이의 정보 교환도 필요하다. 일본만 해도 도요다에서 매년 4월 오페라 포럼을 한다. 전국의 오페라 관계자들이 다 모여서 “내년엔 뭐 하지? 너네 <헨젤과 그레텔> 해? 그럼 우리 같이 하자, 의상은 우리가 만들테니까 너희가 세트 만들어.” 이렇게 서로 협조한다. 서로 부족한 걸 도와주고 보충하고, 이런 면에서 그들이 우리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다. 협회 같은 걸 만들어서 이런 일을 해야 한다.

장 감독에게 오페라는 무엇인가?

세상을 바라보는 큰 거울이다. 음악을 통해서 세상을 본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래서 평생 끈을 놓지 않고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