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2023 타이틀 매치 《이동기 vs. 강상우》, 미술관에 온 대중매체
[현장스케치] 2023 타이틀 매치 《이동기 vs. 강상우》, 미술관에 온 대중매체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11.28 1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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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A 북서울미술관, 내년 3월 31일까지
타이틀매치 10주년 맞아, 대중매체 활용 작가 초청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대표적인 연례기획전 ‘타이틀 매치’가 시작됐다. 올해 서울시립미술관(관장 최은주)은 2023 타이틀 매치 《이동기 vs. 강상우》를 지난 23일부터 시작해, 내년 3월 31일까지 선보인다.

▲이동기, 꽃밭, 2010, 캔버스에 아크릴릭, 100×160cm
▲이동기, 꽃밭, 2010, 캔버스에 아크릴릭, 100×160cm (사진=SeMA 제공)

2023 타이틀 매치는 10주년을 맞아 여러 세대가 함께 공감하고 즐길 수 있도록 대중매체 이미지를 작품에 활용하는 이동기, 강상우 작가를 초대했다. 전시 개막 전 지난 21일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백기영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은 “북서울미술관에서 개최한 전시 중에 대중에게 가장 즉각적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다채로운 조형을 선보이는 전시가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이동기 작가와 강상우 작가는 70년대부터 현재까지 대중매체 이미지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한국적 팝아트의 가능성을 열어왔다. 특히 올해는 한국 미술사의 특별한 캐릭터인 이동기 작가의 아토마우스 탄생 3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아토마우스는 아톰(Astro Boy)의 머리와 미키마우스(Mickey Mouse)의 얼굴을 결합한 한국 미술계의 특별한 캐릭터다. 이번 전시에서 이동기는 이질적인 것들의 혼성이라는 사회적 무의식을 포착하고, 미술의 위계와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져온 작가의 오랜 실험들을 선보인다.

《이동기 vs. 강상우》 타이틀 매치는 북서울미술관 전시실 1,2 및 프로젝트 갤러리 1,2에서 만나볼 수 있다. 1층 전시실에서는 이동기 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고, 2층에선 강상우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개별의 층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있지만, 대중적인 매체를 활용하며 작품을 창작한 두 작가에게서 공통점을 느껴볼 수 있다. 또한, 두 작가의 작품이 함께 전시된 공간도 마련돼 ‘대중매체’로부터 발생된 두 작가의 창작 경향을 느껴볼 수 있다.

▲강상우, 몽실통통 1, 2015, 종이 판지, 목재에 오일, 색 목탄, 230×160×40cm
▲강상우, 몽실통통 1, 2015, 종이 판지, 목재에 오일, 색 목탄, 230×160×40cm (사진=SeMA 제공)

‘대중매체’를 소재로 한 비슷한 듯 다른 경향

1977년생인 강상우 작가는 1967년생인 이동기 작가와 10년의 차이가 난다. 강 작가는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대중매체 이미지를 소재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작품은 광고, 만화, 영화, 뮤직비디오, 꿈을 오가며 작가가 건져 올린 이미지를 바탕으로 삼고 있기에, 이를 알고 있는 세대들에게는 공감을, 이를 모르는 세대들에게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올해 타이틀 매치에선 대중매체 이미지를 차용하되 ‘차용한 것을 차용’하거나 ‘하찮고 연약한 뒷모습’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우리를 둘러싼 스펙터클을 재구성하는 이동기, 강상우 작가를 초청해서, ‘한국적 팝’이 무엇인가를 탐구해보는 자리를 만든다.

SeMA는 작년 조각에 이어 회화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리얼리즘과 추상이라는 큰 흐름 사이에서 미술사를 자유롭게 참조하고, 진지한 실험과 위트있는 태도로 대중매체에서 발생한 조형과 무의식 그리고 사회적 현상을 탐구해 온 한국적 팝을 다시 정의해 볼 계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미술관 동시대 미술의 화두 중 하나일 대중매체 이미지 실험을 초기부터 지속해 온 이동기 작가와 그 실험의 반대쪽을 비추는 강상우 작가의 작품을 되짚어 보고, 두 작가의 신작을 통해 경계의 확장과 돌파를 시도하고자 이번 전시를 마련했다.

▲지난 21일 열린 기자간담회 현장, 이동기 작가가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서울문화투데이

전시에선 두 작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통해 ‘타이틀 매치’를 전개하고, 한국적 팝아트의 서로 다른 면모를 그려본다. 전시는 단순히 두 작가가 다루어 온 이미지나 소재에 집중하기보다 각자의 세계를 떠받치는 매체적 논리를 바탕으로 구성됐다. 두 작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요약하면, 이들은 사회적 무의식과 시각성에 대한 관심, 선형적 발전 논리에 대한 회의, 기이한(uncanny) 조형에 대한 감각적 촉수를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선명한 차이도 존재한다.

이동기의 작업은 텔레토비 꽃동산을 연상시키는 아주 매끈한 수공의 캔버스 표면을 보여준다. 이 작가는 캔버스 표면 뒤에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며, 단번에 작품의 의미나 작가의 의도, 존재를 포착할 수 없도록 작업한다.

이에 비해 강상우의 작품은 마치 딩동댕 유치원의 거친 세트나 신데렐라의 호박 마차를 연상시킨다. 강 작가는 화려한 앞면과는 다른 세트 뒷면을 자꾸 노출시키고, 작가 머릿속 이미지 기억 창고에서 생생했던 이미지를 건져 올리자 눈앞에서 풍화돼버렸음을 보여준다.

▲이동기, 샘, 2008, 린넨에 아크릴릭, 200×130cm
▲이동기, 샘, 2008, 린넨에 아크릴릭, 200×130cm (사진=SeMA 제공)

‘한국적 팝아트’는 무엇인가

이번 전시는 ‘대중매체’의 이미지와 사회에 대한 관김을 중첩시키면서, 발전만을 추구해온 도시의 한국 사회를 주목한 이동기와 강상우의 작품 세계를 재발견하고자하는 의도도 담고 있다. SeMA는 이번 전시를 통해 “옛 대중매체 이미지나 회화 같은, 신기술과 거리가 먼 매체는 레트로하거나 올드한 것인가? 한국의 팝아트는 뻔하고 상업적으로만 보이는가? 개인은 하찮고 우리를 둘러싼 대중매체 이미지는 저급한 것인가?”라는 이동기와 강상우의 질문을 수면으로 끌어올린다.

두 작가는 지속적으로 신제품을 출시해 옛것을 진부하게 만드는 소비 사회에서, 언제나 청춘인 로큰롤처럼, 머리가 꼬리를 먹는 순환의 뱀처럼, 동시에 존재하는 다중우주처럼, 이미지와 매체는 언제나 새로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간담회에서는 전시 소개에서 계속 언급된 ‘한국적 팝아트’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의가 있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권혜인 학예사는 “‘한국적 팝아트’는 깊이 연구된 적이 없는 것은 사실이나,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중국, 일본, 미국 등에서 전개된 팝아트와는 다른 지점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무라카미 다카시를 중심으로 펼쳐진 일본의 팝아트 경향은 ‘슈퍼플랫’이라는 세계관을 갖고 있고, 중국의 팝아트 경향은 웨민쥔 작가의 <웃는 남자>에서 볼 수 있듯이 반 사회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다. 그럼 한국의 팝아트 경향은 무엇일까.

권 학예사는 “한국은 중국, 일본에 비해 굉장히 빠르게 확산된 온라인 문화가 있었고, 혼성과 모방 등의 키워드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강상우, 당신을 가두는 주방 가구 03, 2019, 혼합재료
▲강상우, 당신을 가두는 주방 가구 03, 2019, 혼합재료 (사진=SeMA 제공)

이동기와 강상우가 보여주고 있는 한국적 팝아트는 유럽과 미국의 팝아트가 보여준 실험들(이미지 매체의 변환, 노스탤지어, 새로운 원본을 만들어내는 수공성 그리고 폭력, 죽음 등 사회적 사건에 대한 관심)과 공명하는 동시에, 매체성, 작가성, 가상성에 대한 새로운 면모들을 혼성해 짜넣으며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두 작가는 개인, 시대, 미술사를 오가며 증식하는 이미지를 타고 이미지의 위계와 매체별 조형 언어, 참조, 시각적 리얼함에 대한 인식의 틀을 가로지른다. 이는 선형적이고 내면화된 규준들을 깨어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 타이틀 매치 《이동기 vs. 강상우》 전시는 대중에게 익숙한 소재를 미술관 안으로 가져오면서, 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장벽을 허무는 시도를 한다. 이동기 작가는 “이번 전시는 미술이 가진 난해한 지점을 대중적으로 완화시켜서 보여줄 수 있는 자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다채로운 색상과 아톰이나 미키마우스를 연상케 하는 작품, 스타크래프트, 순풍산부인과 등 대중 매체가 활용된 작품들은 확실히 경계가 허물어진 듯 해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이 대중매체가 왜 미술관 안으로 들어왔는지 생각해보는 순간, 두 작가가 가진 세계관을 얼핏 엿볼 수 있게 된다. 이질적인 존재들의 만남에서 생기는 균열은 평소에 우리가 인지할 수 없었던 사회의 면면을 마주하게 하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