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313명이 전하는 칸타타, 국립극장 이전 50주년 기념 <세종의 노래:월인천강지곡>
[현장스케치]313명이 전하는 칸타타, 국립극장 이전 50주년 기념 <세종의 노래:월인천강지곡>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3.11.2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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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겸 지휘자 박범훈, 연출가 손진책, 안무가 국수호의 신작
세종이 직접 쓴 우리말 노래 『월인천강지곡』, 칸타타로 재탄생 
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국악관현악단 포함 313명 무대 올라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한국 공연예술계의 거장, 박범훈ㆍ손진책ㆍ국수호가 국립극장의 남산 시대 5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뭉쳤다.

국립극장은 내달 29일부터 31일까지 <세종의 노래 : 월인천강지곡>(이하 <세종의 노래>)을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국립극장 남산 이전 50주년을 기념해 선보이는 대형 칸타타(교성곡)로, 세종이 직접 지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바탕으로 한다. 

▲국립극장 <세종의 노래> 기자간담회 현장 (왼쪽부터) 박인건 국립극장장, 박범훈 작곡가 겸 지휘자, 국수호 안무가
▲국립극장 <세종의 노래> 기자간담회 현장 (왼쪽부터) 박인건 국립극장장, 박범훈 작곡가 겸 지휘자, 국수호 안무가 ⓒ국립극장

28일 오후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는 <세종의 노래> 개막을 앞두고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자리에는 박인건 국립극장장과 박범훈 작곡가 겸 지휘자, 국수호 안무가가 참석했다. 손진책 연출가는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했다.

박인건 극장장은 “국립극장이 남산에서 자리 잡은 지 50년이 됐다. 국립극장은 공연장과 연습실, 행정시설과 무대 제작소까지 갖춘 국내 유일의 제작극장이다. 다양한 장르의 공연과 연출이 가능해졌고, 분야별 예술단체가 한자리에 모이며 한국 창작예술의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라며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의견을 모으던 중, 국립극장의 성장을 함께하신 분들과 함께 공연을 만들게 됐다”라고 전했다.

▲국립극장 <세종의 노래> 기자간담회 현장, 박인건 국립극장장 ⓒ국립극장
▲국립극장 <세종의 노래> 기자간담회 현장, 박인건 국립극장장 ⓒ국립극장

1950년 서울 태평로 부민관(현 서울특별시의회 의사당) 자리에 창립된 국립극장은 대구·명동을 거쳐 1973년 10월17일 남산 장충동으로 터를 옮겼다. 안정적 공연장과 연습 공간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고, 분야별 국립예술단체의 태동과 완성도 높은 공연예술 작품의 탄생까지 이끌었다.

작품의 중심은 박범훈이 2년에 걸쳐 작곡한 미발표곡 ‘월인천강지곡’이다. 독창·중창·합창과 동서양의 관현악이 결합한 칸타타(교성곡)로, 서곡과 8개 악장으로 구성된다. 초연의 지휘는 작곡가 박범훈이 직접 맡는다. 작품의 극적인 선율을 끌어내 경건하면서도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현재도 유효한 보편적 가치를 전하기 위해 노랫말 작업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작가이자 시인으로 활동하는 박해진이 작사를 맡아 원문의 ‘도솔래의’를 ‘흰 코끼리 타고 오신 세존’으로 풀어쓰는 등 지금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쉬운 노랫말로 만들었다. 

▲국립극장 <세종의 노래> 기자간담회 현장,  박범훈 작곡가 겸 지휘자
▲국립극장 <세종의 노래> 기자간담회 현장, 박범훈 작곡가 겸 지휘자 ⓒ국립극장

박범훈 작곡가는 “코로나가 심했던 지난 2년, 박해진 시인과 연이 닿아 노랫말에 곡을 붙이는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지금까지 작업한 곡 중 가장 긴 시간을 고민한 작품이다. 21세기 ‘월인천강지곡’을 만들자는 방향성에는 동의했으나, 시를 노래로 만드는 것이 생각보다 까다로웠다”라며 “결국엔 단순하게 ‘우리의 소리’로 엮어보자는 결론이 났다. 원곡 자체가 백성들을 위해, 훈민정음이 많이 알려지도록 쓰인 곡이기에 쉽게 이해하고 부를 수 있는 곡으로 만들려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50년 전 국립극장이 남산으로 이전할 때 ‘별의 전설’, ‘수궁가’ 등 개관작품 2개를 작곡한 것이 인연이 되어 이후 국립극장의 무용극을 대부분 작곡했다”라며 “작곡가들은 항상 곡을 쓰고 나도 부족함을 느낀다. 국립극장 측에서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셔서 영광스럽게도 이번 작업을 함께하게 됐지만, 그만큼 부담도 크다. 50년 전부터 인연을 함께 한 친구(손진책 연출, 국수호 안무가)들의 도움을 받아 이 작품을 올리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국립극장 <세종의 노래>연습 장면
▲국립극장 <세종의 노래>연습 장면

작품을 이끌어가는 세존(석가모니의 다른 이름)과 소헌왕후 역은 국립창극단의 간판스타 김준수와 이소연이 각각 맡았다. 이외에도 세종 역의 김수인을 비롯해 민은경‧유태평양 등 창극단 주역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 다양한 인물을 노래한다. 창법과 곡 해석 등 노래 지도는 박범훈과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김성녀가 맡았다.

작품은 576년 전 세종대왕이 직접 쓴 『월인천강지곡』을 바탕으로 한다. ‘마치 달이 천 개의 강에 비추는 것과 같다’라는 의미를 지닌 『월인천강지곡』은 세종이 먼저 떠난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한글로 지은 찬불가로, 석가모니의 전 생애를 담고 있다. 훈민정음 창제 직후인 가장 이른 시기에 활자로 간행됐다는 점에서 초기 국어학과 출판인쇄 역사에서 사료적 가치가 커 국보로 지정됐다. 제작진은 월인천강지곡에 녹아든 군주로서의 외로움과 지아비로서의 지고지순한 순정, 한글이 만백성에게 전파되기를 바란 마음에 주목, ‘사랑’과 ‘화합’에 방점을 찍는다. 

연출가 손진책이 극 공연 못지않은 무대·영상·조명·의상 등을 조화롭게 펼쳐내는 가운데 안무가 국수호가 완성한 다채로운 움직임까지 더해져 통념을 깨는 현대적인 무대를 완성한다. 국립무용단은 독무ㆍ3인무ㆍ6인무ㆍ군무 등의 다채로운 움직임으로 극적 몰입을 끌어올린다. 배역의 분신처럼 따라붙어 내면을 표현하는 무용수의 춤 또한 관람 포인트 중 하나다. 

▲국립극장 <세종의 노래> 기자간담회 현장, 국수호 안무가 ⓒ국립극장

국수호 안무가는 “1973년 개관한 국립극장에서, 국립무용단 1호 남자 무용수로 활동했다. 국립극장이 저를 키워준 본태가 되고 어머니가 되고 제가 성장하고 여러 가지 지금까지 하는데 저의 모든 밑걸음이 되어줬다. 50주년을 맞아 대작 안무를 맡아 감개가 무량하다”라며 “손진책 연출, 박범훈 작곡가와는 그때도 친구, 지금도 친구다. 제가 무용수로 성장하는 과정에는 항상 박범훈 선생의 곡이 있었다. 국립극장에서 함께 활동하고, 마당놀이 장르를 개척한 예술적 동지들이 지금은 어떻게 하면 노추하지 않게 살 것인가를 함께 걱정하는 친구로 남았다”라고 전했다. 

서양 오케스트라, 합창단 등 총 313명 출연진이 무대에 오르는 초대형 규모를 자랑한다. 3개 전속단체인 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국악관현악단이 함께하며, 민간 예술단체인 서양 오케스트라 랑코르 캄머 필하모닉이 참여해 동서양 악기의 조화를 만들어 내고, 메트합창단과 불음꽃 합창단, 슈리말라 합창단, 상월청년 합창단 등도 참여한다.

초대형 규모를 자랑하는 무대의 기반이 되는 ‘월인천강지곡’을 처음 작곡할 당시, 구상한 연출 혹은 공연장이 있었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박범훈 작곡가는 “처음엔 이 곡이 경복궁에서 연주되는 생각을 하며 작업했다. 하지만, 원체 스케일이 커서 예산도 많이 들고 현실적 어려움이 많더라”라며 “국립극장이나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같은 대극장 상연을 막연히 떠올렸는데, 가족처럼 생각하는 국립극장에서 공연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라고 밝혔다.

▲국립극장 <세종의 노래> 무대디자인 이미지
▲국립극장 <세종의 노래> 무대디자인 이미지 ⓒ국립극장

국립극장 5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공연이니만큼 많은 예산이 들어갔을 것 같다는 추측에, 박인건 극장장은 “313명의 출연진에 박범훈 작곡가, 손진책 연출가, 국수호 안무가가 참여하니 원래대로라면 많은 예산이 투입됐겠지만, 이번 공연은 모두가 개런티를 생각하지 않고 국립극장의 50주년을 기념하며 봉사하는 마음으로 참여해주셨다. 6억 원 정도의 예산으로 진행하게 됐다”라며 “뜻깊은 마음이 모여 만드는 이번 공연이 1회성 특별 공연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닐, 지속적으로 공연돼 제대로 자리잡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라는 소망을 전했다.

한편, 국립극장 남산 이전 50주년 기념공연 <세종의 노래 : 월인천강지곡>은 오는 12월 29일부터 31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