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조의 초정보화 시대의 문화예술 경영론] 나도 똥이다
[조기조의 초정보화 시대의 문화예술 경영론] 나도 똥이다
  • 조기조 경남대학교 명예교수, 경영학 박사
  • 승인 2023.11.2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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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조 경남대학교 명예교수, 경영학 박사

오랜만에 넷플릭스에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Daily Dose of Sunshine)’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이틀을 밤낮으로 ‘우리집에도 아침이 와요’까지 보아서 다 보았다. 그만두고 기다릴 수가 없어서다. 나도 조절장애 증상이 심하구나 싶다. 그래도 위안이 된다. “참지 마! 쫄지 마! 너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것을 해!” 라는 말에 힘이 났기 때문이다. ‘범죄도시’처럼 법보다 가까운 주먹이 후련하지만, 멜로, 폭력, 불륜 말고 참신해서 빠져들었나 보다. 나만 그럴까?

자주 보게 되면 눈에 드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의사 두 사람이 각기 제 눈에 드는 두 간호사를 찾아 마침내 그들의 마음을 얻는다. 내라도 그녀들을 사랑할 것 같다. 때 묻지 않고 열심인 모습에 이끌린다. 영악한 간호사가 의사에게 추파나 미끼를 던진 것이 아니다. “저를 택하시면 똥 밟는 겁니다. 뜨거운 물 안 나오는 집에 살아 보았나요?” 잘난 의사의 구애는 고마운 일이지만 사실, 감당하기 어려운 처지다. 누가 이런 솔직한 마음씨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세상에 사랑이 빠지면 재미없다. 세상은 사랑스러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 사랑받는 사람으로 가득 차야 한다.

“간호사를 하면서 한 번도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어요.” “나는 안 괜찮은데 사람들이 괜찮냐고 자꾸 물어봐. 나 안 괜찮아!” “저는 넘어지면 못 일어나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일어나는 방법을 배우려고 해요.” 뚜렷이 기억에 남는 말이다. 사랑을 받은 ‘민들레 샘(선생)’과 ‘다은 샘(선생)’의 말이다.

‘다은 샘’은 자신보다 환자나 남을 먼저 생각하다 보니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사는 것 같다. 그리 살면 안 되는 것인데. 그래서 마침내 지쳤고 병을 얻었다. 내가 그랬다. 바보같이·····. 지친 나머지 마침내 다른 병원의 정신병동에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했지만 ‘다은 샘’은 복귀를 망설인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출근하는데 우려한 대로 소문은 퍼지고 환자 가족들이 시위한다. 정신병을 앓았던 간호사를 쫓아내라고. 다은 샘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참다못한 수 쌤(수간호사 선생님)이 일갈한다. “당신의 가족이 지금 정신병을 앓고 있지 않습니까? 이들이 영영 집에만 틀어박혀 살란 말입니까? 나아서도 사회생활을 하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이다.

 

하고 싶은일, 좋아하는 일을 해야
지치고 힘들어도 쫄지 말고 참지마

 

“살면서 가슴 설렌 적이 없었다.”는 말을 듣고 보니 먹먹하다. 참으로 그런 인생을 살면 안 되는 것이다. 수백 계단을 올라 뜨건 물 안 나오는 방에서 살고 있다. 은행거래는 정지되고. 이게 똥의 전부는 아니다. 전세금을 빼내어 은행 빚을 갚고 나머지를 도박으로 정신 못 차리는 엄마에게 다 주고는 빈털터리 ‘민들레 샘’이 마침내 하고 싶은 일, 가슴 설레는 일을 찾아 간호사를 그만둔다. 한 번도 행복하지 않았던 간호사 일이란다. 큰맘 먹고 10년 묵은 체증 같은 그 엄마도 버린다. 그러면서 웃는다. 웃는 모습을 처음으로 본다. 소도 웃으면 큰 입이 벌어진다. 웃는 동안은 모든 긴장이 풀린다. 잠시라도 긴장이 풀려야 더 힘이 나는 법이다. 그런데 웃을 일이 얼마나 있던가? 나는 언제 파안대소를 했던지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 하고 싶고 하면 즐거운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1년이나 못 보게 된다 해도 그 사람이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하니 쿨하게 권하는 그 남친이 참으로 멋져 보인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정신적으로 전혀 고통을 받지 않고 즐겁기만 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티 없이 맑은 가을하늘과 곱붉게 물든 단풍을 보면서 마음이 부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그러다가 찬 서리 내리고 단풍마저 떨어지고 없는 나목 아래 혼자서 걷는다면 활기차고 즐거울 사람이 몇이겠는가. 우울하기도 하고 또 들뜨기도 하는 조울증, 큰일을 두고 가슴이 콩닥거리거나 충격을 받고 난 후로 공황장애가 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어려움이 있어도 엄마로, 아빠로, 또 일터에서 맡은 일을 해야 해서 어쩌지 못하고 넘어가는 것이 일상이다. 4당5락이라며 잠 못 자는 고통과 중압감을 견뎌야 하고 좁은 문을 뚫고 대학을 들어가도 일자리 찾기, 내 집 마련, 아이 낳고 키우는 일까지 계속 힘들다. 이런 때에 털어놓고 상의할 사람이 있는가? 서로 마음을 닫고 사니 인생이 어찌 이리 하마스의 땅굴 같은지? 찾기도 어렵지만, 곳곳에 허방이 있고 언제 어디서 적이 공격할지 모르는 굴 말이다.

극중의 환자 대부분은 학교나 직장, 사회가 병을 주고 키운 것이다. 버러지 같은 상사로부터 병을 얻은 김성식, 잘한다고 떠맡기는 많은 일을 거절하지 못하고 맡아서 하던 송유찬, 이들은 직장 생활로 인해 상처 입은 인물이다. 수년간 공시생으로 살아온 사람이 합격 아니면 아무것도 될 수 없는 사회에서 어찌 아무 탈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지능이 약간 떨어지는 사람들은 꿈을 갖지 말아야 할까? 조종사가 되고 싶지만, 성적이 안 되는 학생을 학교는 ‘ㄱ+ㅐ무시’했다. 조종사가 일하는 곳 가까이에서 일하다 보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권고는 기발한 아이디어다. 그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이다. 몸이 아파 수술하고 치료받는 것은 흉이 아니고 마음이 아파 치유 받으면 정신병자란다. 그것도 OK 목장의 말 궁둥이에 지진 낙인(烙印)처럼 평생을 가는.

이제 좋아하는 것을 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해야겠다. 싫어도 상대방이 마음 상할까 봐 내색하지 않는 것은 배려가 아니란다. 잘난 것이라고는 없는 사람이지만 스스로 못났다고는 말아야겠다. 그래도 꾸준히 재능기부를 하며 살아왔지 않았던가. 이제 나도 나를 격려하는 칭찬일기를 써 보련다. 멋쩍기는 하겠다. 나를 칭찬하고 또 너를 칭찬하여 칭찬의 나비효과로 세상이 바뀌면 좋겠다.

세상에 똥으로 사는 사람들,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무수히 많은 그 똥 같은 인생들을 어찌하면 좋을까? 이들을 이끌고 도와야 할 나으리들이 금준미주(金樽美酒)에 옥반가효(玉盤佳肴)를 즐기면서도 제 주머니만 챙기고 기부는 못 할지라도 탈세는 말아야 하는데, 나오는 대로 상처를 주는 이들이 어찌 똥보다 낫단 말인가? 그런 족속들이 정신병자이고 그곳이 정신병동 아니겠는가. 쫄지마! 나도 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