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 듯, 무용은 왕조시대를 거쳐 근대 국민국가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역사적 전통 속에서 온 나라 겨레의 예술로 화려하게 꽃피웠다. 멀리 왕조시대엔 국가의례의 정점에서, 광복 이후 개발도상국 시절에는 민족문화의 창달과 국위선양의 선봉에서, 그리고 가깝게는 88서울올림픽, 2002한·일월드컵, 2018평창동계올림픽 등 굵직한 국제스포츠 행사의 중심에서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와 국격을 높이는 첨병의 역할을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용은 국가의 제도 및 정책에서는 늘 홀대되었고, 변방의 예술로 취급된 감이 없지 않다. 때문에 무용인들의 가슴 한 켠에는 정부에 대한 서운한 정서가 포진해 있었다. 지난달 정부에 대한 무용인의 오랜 서운함을 덜어주고, 밝은 미래를 전망케 한 의미 있는 모임이 있었기에 기록으로 남긴다.
무용인 현장간담회, 장르·세대·지역 망라 40명 참석
15년 만이다. 2023년 11월 15일 유인촌 문체부 장관이 주재한 무용인 현장간담회가 열렸다. 유인촌 장관 주재 무용인 간담회는 이번이 두 번째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첫 문체부 장관 소임 때인 2008년 3월 18일 서울 대학로 ‘토즈’에서 11명이 참석한 가운데 무용인 간담회가 있었다. 그리고 현 윤석열 정부에서 생애 두 번째 문체부 장관에 오른 유 장관은 취임한 지 한 달 만에 무용인 간담회를 개최했다. 장르, 세대, 지역을 망라하여 총 40명의 무용인이 한 자리에 모였다. 보다 촘촘히 무용현장의 이야기를 경청하여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해석되었다.
순수예술 분야 예술인 현장간담회 첫 순서로 무용계를 배려했다는 점에서 무용인 모두가 반겼다. 장소도 의미롭다. 간담회가 열린 광화문 아트코리아랩은 옛 한국일보 사옥으로 사용된 건물이다. 이 곳은 무용계와도 인연이 깊다. 일제강점기 세계적 무용가로 한 시대를 풍미한 춤의 선구자 조택원(趙澤元, 1907~1976)은 1973년 자서전 『가사호접』(서문당)을 펴냈다. 그해 3월 30일, 한국일보 사옥 13층 연회장에서 『가사호접』 출판기념회 겸 리셉션이 열렸다.
당시 출판기념회는 국무총리와 국회의원을 지낸 장기영 한국일보 사장이 주최한 행사로 정·재계 및 언론계 실력자를 비롯 문화예술계의 저명인사들이 대거 참석하여 성황을 이뤘다고 전한다. 그로부터 50년의 세월이 흘러 같은 공간에서 문체부 장관 주재로 무용정책 현안을 논의하는 공론의 장이 마련된 것이다. 우연치고는 참으로 공교롭다.
간담회는 시종 진지하면서도 화기애해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유인촌 장관은 예정된 일정을 연기하면서까지 3시간 넘게 무용계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소통하는데 할애했다. 40명에 달하는 참석자 전원에게 발언권이 주어진 것도 이례적이다. 무형문화재 제도, 무용교육 문제, 국공립무용단의 효율적 운영, 무용콩쿠르의 병역혜택 문제, 무용인프라 구축 방안 등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현장에서 답을 찾으려는 유 장관의 실천적 행보는 역시 남달랐다.
1960년대 ‘公的 제도의 창출’, 무용 발전 견인
알다시피, 무용은 순수예술이자 기초예술로 수익 창출이 쉽지 않다. 따라서 국가지원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무용에 대한 국가의 지원정책이 본격화된 것은 1960년대 초반이다. 예컨대,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과 더불어 무형문화재 제도의 성립으로 전통문화의 보존 계승의 길이 열렸다. 1962년 국립무용단 창단은 춤 직업화의 효시로 기록된다. 1963년 이화여대 무용과 창설로 춤아카데미즘이 구현되었고, 엘리트 무용교육의 서막이 열렸다. 1964년 창설된 동아무용콩쿠르는 무용인재 발굴의 요람으로 인식된다.
이와 같이 1960년대 초반, 이른바 공적(公的) 제도의 창출로 한국의 무용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무용정책이 구현된 지 60여년이 지났다. 디지털, 메타버스, 기후변화, 인류세 등 동시대 담론이 쏟아지고, K-컬처를 키워드로 한 글로벌 이슈 등 급변하는 예술환경 속에 무용계 역시 새로운 패러다임에 놓여 있다. 지형변화에 따른 예술지원 정책이 재설계되어야 함은 시대적 요청이다.
무용인이 생각하는, 무용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늘 다다익선(多多益善)일 것이다. 그런데 국가로부터 지원받은 만큼 과연 예술적 성과는 있는가? 가깝게는 5년 혹은 지난 10년을 반추할 때 기억에 남을 만한 명작이 과연 존재하는가? 다분히 회의적이다. 냉철한 시각에서 무용인 스스로 자성과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 여겨진다.
새로운 예술지원체계 구축 필요
관건은 ‘미래의 고전’으로 남을 만한 우리시대의 명작이 탄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적지 않은 국가예산이 지원됨에도 예술적 성취 면에서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한마디로 왜곡 편향된 지원 탓이다. 일부에게 독점된 예산지원은 무용계의 양극화를 초래했다. 이는 무용생태계의 붕괴를 촉진했고, 나아가 무용가의 창작의욕을 저하시키는 결정적 동인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 지난 15일 유인촌 문체부 장관 주재로 열린 무용인 간담회는 현재의 위기와 난제 해결을 위한 소통의 장으로 유익했다. 이 자리에서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다양한 의견들이 오고갔다. 우선 무용 인프라 구축 방안 관련, 아르코예술극장의 무용중심극장 지정 및 국립무용원 설립 등이 거론됐다. 그러나 한편으론 새로운 기관 설립에 앞서 기존의 문체부 소속 기관들이 애초 설립 취지에 걸맞게 고유의 기능과 역할에 충실한지의 여부도 냉정히 따져 봐야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새로운 예술지원체계 구축의 필요성엔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일부 협회 및 단체 중심 지원에서 개인의 창조성이 발현될 수 있는 지원구조로 전환돼야 한다는 대목에서 특히 그랬다. 이른바 ‘책임심의제’를 도입하여 심사에 대한 사후 책임 및 공정성을 담보하겠다는 문체부 방침엔 무용인 대부분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국공립무용단의 특성화 및 정체성 확보 방안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예술감독 선임 시, 기존 공모제에서 임명제로 전환하고, 예술감독의 ‘자기작품’ 안무 의무화 및 사후 평가제 도입은 혁신적 발상으로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자유시장경제체제에 걸맞는 진정한 프로페셔널리즘 강화 의지로 읽혀진다.
80여 년의 숙원, 무용교과 독립 추진 기대
무용교과 독립 추진은 무용계의 오랜 과제 중 하나다. 2002년 무렵부터 일부 무용인들이 주축이 되어 무용교과 독립 추진운동이 전개되었으나 아쉽게도 성과는 저조했다. 엄밀히 말해 무용교과 독립 필요성이 최초 주장된 시점은 해방직후로 소급된다.
1946년 일본 유학파 함귀봉이 설립한 조선교육무용연구소 실천목표 소칙에는 “초·중등 각 학교에 무용을 정과목으로 넣어 음악·미술과 동등한 시간을 배정할 것, 그리고 무용교원도 음악교원과 동일한 면허제로 할 것” 등이 명시되어 있다. 1955년 1차 교육과정 수립 이전, 이미 1946년에 무용의 독립 교과목 신설 필요성이 주창되었음이 실로 놀랍다. 따지고 보면, 무용교과독립추진운동은 이미 80여 년 전 시작된 셈이다.
간담회에서 유인촌 장관은 무용교과 독립 추진과 관련 해법을 모색하겠다고 화답했다. 2010년 무용계의 오랜 숙원이던 국립현대무용단 창단도 유 장관의 정책적 의지에 따라 단번에 성사됐듯이 무용교과 독립 문제도 해결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 보다 높다고 하겠다. 그밖에 생활무용 활성화 및 무용직업화 방안, 무용의 합리적 창·제작 및 유통체계 수립, 무용저작권 문제, 무용인 복지 등 건설적인 의견들이 개진되었다.
그런 가운데 무용인들이 제기한 무용콩쿠르의 병역혜택 전면 재검토 요청은 실로 전향적이다. 일부에게만 주어지는 특혜가 아닌, 다수가 공정하게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정책으로 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존 무용콩쿠르의 병역혜택은 분명 제고의 여지가 있음을 무용인 스스로 인정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단연 주목된다.
유 장관의 깜짝 제안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른바 ‘춤추는 도시’다. 지방에 터 잡고 ‘춤추는 도시’ 만들기에 앞장선다면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 ‘춤추는 도시’가 탄생되길 기대한다. 나아가 현장에 토대한 실효성 있는 지원정책을 통해 공정의 가치를 실현하고, 이권 카르텔을 타파하여 건강한 무용생태계가 복원되길 희망한다. 그런 속에서 ‘미래의 고전’으로 자리매김 될 우리시대의 명작이 탄생될 수 있지 않을까.
무용인 현장간담회 참석자 명단
김숙자·박명숙·정승희·조흥동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채상묵 승무 예능보유자, 김복희 한국무용협회 명예이사장, 허영일 서울국제무용콩쿠르 집행위원장, 양정수 한국현대무용진흥회 이사장, 이병옥 한국무용사학회 초대 회장, 임학선 국제석전학회장, 김영숙 아악일무보존회 이사장, 국수호 디딤무용단 예술감독, 최정임 전 국립정동극장장, 김양근 한국현대무용진흥회 이사, 백현순 서울국제문화예술협회장, 김긍수 세계무용연맹한국본부 회장, 문영철 대한민국무용단체연합 회장, 손관중 한국현대춤협회장, 조윤라 한국발레연구학회장, 윤미라 한국기무치유협회장, 조남규 대한무용협회장, 박재홍 한국발레협회장, 이해준 한국현대무용협회장, 윤수미 한국춤협회장,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김인희 서울발레시어터 명예단장, 홍승엽 국립현대무용단 초대 예술감독, 안애순, 국립현대무용단 제2대 예술감독,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김종덕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김성용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정혜진 서울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유정숙 전 국립국악원무용단 예술감독, 김충한 전 경기도립무용단 예술감독, 김혜림 제주도립무용단 예술감독, 배상복 최현춤보존회장, 제임스전 국립한체대 교수, 이윤경 서울종합예술학교 교수, 김지영 경희대 교수,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상 무순, 총 4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