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수년째 기약 없는 유치전…‘희망고문, 공력 낭비’ 우려 목소리도
한예종 “부지 이전 결정권, ‘설치령’ 의거 문체부 장관 소관”
문체부 “당장 이전 결정할 상황 아냐, 기간 연장 신청할 것”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ㆍ이지완 기자] ‘대한민국 문화예술 사관학교’로 불리는 우리나라의 국립예술대학 한국예술종합학교 이전 문제가 기약 없이 늘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예종은 12월 초 현 부지 사용을 문화재청에 다시 한번 신청한다. 만약 이를 문화재청이 승인할 시, 한예종은 1년의 유예기간을 추가로 얻게 된다. 지자체의 한예종 유치 과열 경쟁이 몇 년째 지속되는 상황 속, 도대체 한예종의 이전은 언제 진척되는 것일까. 과연 이전을 하긴 하는 것일까.
한예종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朝鮮王陵) 중 하나인 의릉(懿陵)의 일부 부지를 사용하고 있다. 조선왕릉의 세계유산 등재로 인해 세워진 문화재청의 의릉 복원계획에 따라, 학교 이전 관련 문제는 약 13년 전부터 지금까지 뚜렷한 방향성 없이 논의만 계속되는 중이다.
본지 서울문화투데이는 여러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한예종 이전’ 문제에 대해 관련 지자체 및 문화재청, 문화체육관광부의 입장을 취재하고, 나아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공식 자문기구 이코모스(ICOMOS/ International Council on Monuments and Sites) 한국 위원회의 의견도 청취했다. 취재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결정된 것 없음’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령’ 제3조(설치 등) 1항을 보면 “예술영재교육과 체계적인 예술실기교육을 통한 전문예술인의 양성을 위하여 교육부장관의 관할 아래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예술학교”라 한다)를 두되, 교육부장관은 예술학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사항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게 위탁한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어, 2항에는 “예술학교의 소재지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정한다”라고 정해져있다.
한예종은 학교 이전과 관련해 연구용역과 교직원 설문조사 등을 진행했고 지속적으로 문체부와 소통하고 있지만,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령’에 따라 이전에 대한 결정권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소관이라고 말했다. 조선왕릉 의릉의 토지주인은 문화재청은 현재 2023년 12월 31일까지 문체부에 부지 관리를 수임한 상황이고, 현시점(23.11.27.)에는 문체부가 관리위임 신청을 하지 않은 상황이기에, 판단을 위한 검토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한예종 이전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정책과에서는 “당연히 연장 신청을 할 것”이라며 “당장 어디로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않느냐”라고 답했다. 이어 “연장 신청은 (문체부가 아닌) 한예종이 문화재청에 하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한예종 이전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학교 유치 의사를 밝힌 지자체는 고양시, 과천시, 서울시 송파구가 있다. 각 지자체는 지역의 유휴 부지를 내세우고, 한예종이 자신들의 지역으로 이전할 시, 어떤 이점이 있는지 끊임없이 알리며, 유치 의사를 밝혀왔다.
10여 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각 지자체 주민은 어떤 시간을 보내왔을까. 성북구는 학교가 사라질 경우, 교직원과 학생 인구의 유출로 지역 상권 붕괴ㆍ지역 슬럼화에 대한 우려와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지속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과천시는 한예종 유치를 공약으로 내세운 신계용 과천시장이 올해 초에도 추진단을 구성해 공력을 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고양시와 송파구도 이와 다르지 않다.
“당장 어디로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않느냐”라는 문체부의 답변은 최선이었을까. 당장 자신의 지역으로 와달라는 지자체가 벌써 여럿이고, 존치를 원하는 지자체가 있다. “당연히 연장 신청을 할 것”이라는 답도 최선이었을까. 연장 신청을 하지 않고, 최대한 기간 내 해결하려는 노력, 나아가 결정하는 것도 가능했을지 모른다. ‘한예종 이전’ 사안은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만큼, 역설적으로 누구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본지는 여러 책임자가 있음에도, 결국에는 책임지는 기관 없이 방임되고 있는 상황을 다각도로 살펴보고자 했다.
문화재청 “한예종 의릉부지 사용 연장, 아직 결정된 것 없어”
한예종은 문화재청의 2017.12.14. 결정을 통해 2018.1.1.~2022.12.31.(5년)간 의릉 권역 내 부지 관리를 위임받았다. 이후 2022.12.29. 결정을 통해, 한예종은 또 한 번 2023.1.1.~2023.12.31.(1년)간 사용하게 됐다. 하지만, 올해까지만 부지를 사용할 수 있기에 한예종은 다시 한번 문화재청에 관리위임 신청을 할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2022.12.19. 결정 당시, 의릉 권역은 문화재구역이자 국유재산이기에, 청이 국유재산의 운영 현황을 주기적으로 확인 등 관리업무를 원활하게 하고자 한예종의 관리위임 기간을 기존 5년에서 1년으로 결정한 바 있다. 사용 허가 기간을 5년에서 1년으로 단축한 것이다.
현재 문체부(한예종)은 관리위임 신청 시 사유를 ‘캠퍼스 이전을 위한 사전 절차 기간 필요’로 밝히고 있다. 이에 문체부는 문화재청에 캠퍼스 이전과 관련한 추진현황을 제출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2023년 말 관리위임 기간 만료에 따라 문체부(한예종)에서 기간 연장 신청 시 이전 관련 추진사항, 향후 이전 계획의 구체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기간 연장을 판단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 ‘의릉’ 부지사용, 문화재적 가치 훼손 문제없나?
최근 몇 년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을 둘러싼 논란들이 있었다. 김포 장릉 앞에 아파트가 건설되는 상황 속,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지난 9월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인 풍수지리의 원리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의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해당 문제는 지난 10월 열린 국감에서도 지적됐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입장을 전하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 40기가 등재 14년 만에 일괄 취소 위기에 놓인 것이 아니냐는 거센 지적을 가했다. 이날 국감에선 김포 장릉 뿐 만 아니라, 택지 개발 계획이 추진됐던 서울 태릉도 언급됐다.
유네스코에서는 세계유산 조선왕릉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조선왕릉을 둘러싼 자연환경은 풍수지리의 원리에 의해 정해졌고, 의례가 결합된 살아 있는 조상 숭배의 전통을 위해 세심하게 조성된 것이다. 세속적인 구역에서부터 경건한 구역으로 이어지는 위계적 배치, 독특한 전각 및 오브제로 이루어진 조선왕릉은 조선왕조의 과거 역사를 상기시키는 조화로운 총체다”라고 밝히고 있다.
김포 장릉과 서울 태릉의 경우, 조선왕릉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인 풍수지리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유네스코의 우려를 받은 상황이다. 하지만, 지난 11월 장릉 지역 아파트 건설사들은 문화재청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 항소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문화재청은 이에 상고를 한 상태다.
김포 ‘장릉’ 논란과 한예종 ‘의릉’ 사용, 무엇이 다른가
일각에서는 대중적으로 이슈화만 되지 않았을 뿐, 김포 장릉과 서울 태릉 논란이 현재 한예종이 서울 의릉 부지를 사용하고 있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 아니냐는 지적이 존재한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이는 명백히 다른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조선왕릉의 세계유산 등재 전부터 한예종은 서울 의릉 부지를 사용하고 있었고, 유네스코 역시 이를 알고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실제 세계유산 조선왕릉의 ‘완전성’ 분야에서 “연속유산으로서 조선왕릉 유적은 왕릉의 환경, 배치, 구성에 대해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완충지역에 포함된 유적 중 일부에서는 몇몇 예외적 개별 유적을 볼 수 있다. 도시 개발이 몇몇 유적의 경관에 영향을 미쳤지만(선릉, 헌릉, 의릉) 대체로 특정한 능묘의 정상부에서만 도시 건물을 볼 수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2009년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 당시 유네스코는 권고 사항으로 조선왕릉의 발전적 보전을 위해 일부 훼손된 능역의 원형 보존 등을 요구했었다. 이에 문화재청은 2009년 「세계유산 조선왕릉 보존관리 및 활용 기본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
해당 계획안에는 “조선왕릉의 체계적인 보존관리를 위해서는 서삼릉(젖소개량사업소, 경주마 목장 등), 의릉(구 국가정보원 건물), 태강릉(국제사격장, 선수촌 등) 등 일부 훼손된 왕릉을 복원정비해 역사적 정체성을 회복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더불어 “조선왕릉 보존관리 및 활용 기본계획 추진은 (중략) 장기사업(2016~2025/10년간)은 능역 내의 사유지 매입과 발굴사업 등을 통한 능제복원사업을 시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실제로 2021년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에 제출한 (사)이코모스 한국위원회의 「조선왕릉 보존ㆍ관리ㆍ활용 중장기계획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의릉의 한예종이 부적합 시설로 언급 돼 있다. 문제점으로는 한예종 의릉 진입 동선 중복과 외연지, 재실 등 진입동선 저해가 정리돼 있다.
즉,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 이전에 유네스코가 한예종 부지 사용을 알고 있긴 했지만, 장기적으로는 훼손된 능역의 원형 보존을 요구했고, 문화재청 역시 이를 인지하고 있던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본지는 한예종 이전 문제와 관련해 이코모스 한국위원회에 “한예종 의릉 부지 사용이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자문을 요청했다. 위원회는 “해당 사안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지만, 전문가적 견해를 밝히기엔 시일이 촉박하다”라며 “이 문제의 경우 문화재청이나 문화체육관광부와 다 관련이 있어서, 섣부르게 위원회에서 이렇다 저렇다 판단할 수는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문화재청은 한예종 부지 사용으로 인한 ‘조선왕릉’ 가치 훼손에 대해서 명확한 답을 내놓기보단, 지속적으로 능제복원을 위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만 밝혔다.
청은 “의릉 사적지 내 부적합 시설물은 ‘조선왕릉 문화재구역 전체가 하나의 문화재로서 보여주는 가치’를 제한하고 있으나, 한예종은 2009년 조선왕릉 세계유산등재 과정에서도 유네스코에서 인지하고 있던 시설물로 현재 한예종은 문체부 본부와 캠퍼스 이전과 관련해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문화재청은 한예종의 캠퍼스 이전 계획 등을 검토해 국유재산 관리위임 기간 연장을 판단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유치 공세 벌이는 지자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유치 노력뿐”
문체부와 한예종의 결단이 내려지지 않고, 후보지 결정이 미뤄지는 사이 고양시와 송파구의 경쟁에 과천시가 가세했다. 이에 질세라 성북구도 존치의 목소리를 더욱 높이고 있다.
문화재청이 부지 사용을 계속 연장해주는 시간동안 한예종 유치를 위한 고양시, 과천시, 송파구의 유치전은 점점 더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예종 이전 결정이 또 1년 유예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각 지자체들을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을까. 대부분의 지자체는 ‘하던 걸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라고 답했다.
송파구는 한예종 학교 설립 부지 확보를 위해 방이동 442-13번지 습지 일대 면적 46만7985㎡ 중 그린벨트 지역을 해제해 자연 친화 캠퍼스 조성을 계획하고 있다. 한예종에서 필요로 하는 면적은 약 12만㎡이다. 캠퍼스는 습지를 피해 지을 것이며, 습지와 캠퍼스 사이 완충지대도 조성할 계획이다. 송파구는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만큼, 신중한 결정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해온 대로 한예종이 송파구로 이전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전했다.
과천시는 기획재정부가 소유한 옛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터 9만 7380㎡에 한예종을 유치하기 위해 지난달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추진단을 구성했다. 수천억 원에 달하는 토지매입비 없이 캠퍼스 조성이 가능해 대학 이전을 추진하면 타 후보지에 비해 최소 5000억 원 이상 절감할 수 있고, 그린벨트 해제ㆍ토지보상 등의 문제도 없어 신속한 이전도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과천시는 “한예종 이전 문제가 또 연장된다 해도, 지자체 입장에서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없다”라며 “차분히 기다리면서, 좋은 방향으로 결정 나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라고 답했다.
고양시는 일산 장항공공주택 조성 사업부지 내 약 11만7천㎡ 규모의 유보지를 한예종 유치를 위한 부지로 선정했다. 부지 내 행복주택 1,000가구를 기숙사로 공급하고, 킨텍스 등 주변 산업 인프라와 연계한 산학협력 시스템 구축 등의 지원책도 제시했다. 고양시는 “우리 시는 2016년부터 한예종에 유치 제안서를 전달ㆍ설명하고 2017년부터 TF팀 운영해오고 있다. 오랫동안 노력을 쏟은 만큼, 부디 긍정적인 결정이 나길 바랄 뿐이다”라고 밝혔다.
한예종이 자리하고 있는 성북구는 지속적으로 존치의 목소리를 냈다. 2021년 ‘한예종 이전 반대 SNS 릴레이 캠페인’을 열었고, 한예종 총장과 논의 자리도 마련했다. 당시 성북한예종지키기추진위원회에선 “한예종 이전에 소요될 막대한 예산, 행정력 낭비보다는 한예종과 지역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한예종 2032년 이전계획, 기간 내 이행 가능할까?
지난 7월,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세계유산법)」('21.2.5.)제13조에 의거하여 수립한 「(조선왕릉) 세계유산 보존관리 및 활용 시행계획(2023~2027)」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한예종과 협의하에 2032년까지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이코모스의 신관 철거 계획에 대한 답변서에 밝혔던 조치계획은 2008년 8월 구관지역 분관동 철거 이후 전부 시행 ‘예정’으로 남아있는 답보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자체 관계자는 “강제성이 없다고는 하나, 한예종 철거 및 이전 계획이 십수년째 멈춰있는 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유치에 목메는 지자체들은 기약 없는 희망고문을 당하고 있는 꼴이지만, 혹시라도 불이익을 당할까 조용히 눈치만 볼 수밖에 없다”라며 “세 개의 캠퍼스를 통합 이전 하는 것이 무리라면, 분산 이전 등 다른 대안을 강구해 무의미한 시간 싸움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한 문화예술계 관계자 역시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는 “사례가 다르다고는 하나, 이미 한 차례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과 관련하여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이는 우리나라가 역사적 문화유산 보존보다 개인의 이익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방증이다”라고 꼬집으며 “한예종 이전 문제도 궤가 전혀 다르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전 여부는 이미 한참 전 결정된 문제고, 국가는 이 결정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벌써 3개의 지자체에서 수많은 공력을 쏟아가며 유치전을 벌이고 있는데, 언제까지 책임을 회피하며 결정을 유예할 것인가. 합리적 진단을 통한 정확한 결정이 빠르게 내려져야 할 때이다”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