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또 빛축제의 계절이다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또 빛축제의 계절이다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 승인 2023.11.2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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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올해도 어김없이 12월 8일경 주말, 리옹을 시작으로 유럽의 크고 작은 도시에서 빛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에 싱숭생숭하다. 빛축제만 돌아보아도 한 달 이상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언젠가는 빛축제 지도를 그려 겨울 유럽 여행을 가보리라 다짐만 몇 년때 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즈음 동화 속 마을로 변신한 소도시를 둘러보고, 트리를 장식하는 오너먼트를 파는 크리스마스 마켓에서의 쇼핑 그리고 하루 4시간만 해가 뜨는 북유럽의 겨울도 등 한번 경험해 보고 싶은데 거기에 더해 빛의 예술로 가득한 도시들을 볼 수 있다면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시기와는 다른 유럽을 즐길 수 있을 듯하다.

최근 빛축제 관련 일을 하는 지인들과 ‘도시와 빛축제’라는 책을 출간했다. 도시의 야간경관 전문가로 빛을 계획하고 더불어 빛공해 방지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빛축제는 무슨 관련이 있겠나 싶겠지만 빛축제 역시 일시적이지만 도시에서 일어나는 빛환경으로 시민들의 일상과 일몰 후의 안전이라는 조명 고유의 역할에서 벗어나 계획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빛축제가 열리게 될 장소에 대한 빛환경 분석과 일상의 빛과 축제의 빛이 어떤 위계 혹은 구조 속에 있어야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과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축제의 밤을 즐길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

어쩌면 이는 서울이라는 메가시티가 가지고 있는 독특함 – 사람도 많고, 차량도 많고, 건물도 많고 그래서 밤에도 빛이 많은 – 때문에 유럽의 도시와는 다르게 접근 해야 하는 부분일 수도 있겠다. 유럽의 도시들은 빛축제 시기에 거리의 조명을 소등을 하거나 제한적으로 광량을 낮추는 장치를 동원한다. 뿐만 아니라 차량의 통행도 제한하여 차량의 전조등으로부터 나오는 빛 – 이 빛은 높은 광량을 내며 움직이며, 통제 불가능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 은 철저히 배제시킨다. 유럽 사람들에게 일몰 후 한적한 거리를 걷는 일은 일상적으로 일어나지 않으며 일조량도 적어 어둑한 환경에 익숙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낮보다 더 활기찬 밤거리가 당연한 서울은 빛을 제한하고 차단한다는 것은 일상을 멈추라는 의미가 될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많은 사람이 모이는 축제의 장에서 ‘본다’는 것을 제한하는 것은 위험을 초래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두가지 빛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이야기한 바 있다. 작년 겨울 도심 광화문 광장에서 개최된 빛축제, 서울라이트 광화에서 광화상상도나 비바서울등 건물에 프로젝션된 미디어 아트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었을 때에 세종대로의 가로등이나 연계 운영되었던 빛초롱축제의 대형 조명조형물, 게다가 크리스마스 마켓의 대형트리와 스노우볼 등 다양한 빛들의 간섭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이와는 반대로 올해 서래섬에서 개최된 빛섬 축제는 관람 동선이나 보행로가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다양한 빛 전시물들을 위해 보행등의 밝기가 제한되는 바람에 평평하지 않은 땅을 걸어 다니기 어려웠다는 평가가 있었다.

 

빛으로 가득한 도시, 서울에서 빛축제를 즐기려면 축제의 빛과 일상의 빛 간의 관계 정립이 필요

 

사람들이 모여 즐기는 축제를 기획하는 일도 전문적인 부분이고 창의적인 빛 조형물을 선보이는 것도 전문적인 분야이며 아울러 축제를 일상과 어떻게 관계 맺고 어두운 환경에서 어떻게 안전한 밝기를 제공할지에 대한 부분 역시 전문적인 분야이다. 도시와 빛축제를 출간하면서 이렇게 세 개의 전문적인 분야가 모인 이유도 서울이 갖는 이 특이성 때문에 빛축제 기획 조직은 유럽과는 달라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유럽의 빛축제는 대부분 빛이나 영상 관련 아티스트에 의해 기획되거나 조직되어 운영되고 지자체에서는 부분적으로 관여한다. 온 도시를 돌아다니도록 관람 동선을 구성하면서도 도시계획가나 경관 분야에서 관여하는 부분이 거의 없다. 도시의 구성은 간단하며 사람들이 도보로 움직이기에 거리도 적당하다. 또한 시민들은 빛축제로 인해 얻게 되는 경제효과 그리고 조명예술로 아름다워지는 도시에 대한 만족감, 고단한 일상에서 벗어나 축제를 참여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으로 일상의 불편을 얼마든지 감수할 자세가 되어 있다. 어찌보면 위험한 환경으로부터 안전은 스스로 책임진다는 사회적인 합의가 그들에게는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곧 시작되는 서울의 빛축제 서울라이트 광화는 작년과는 달랐으면 한다.

학습한 여러 가지 문제들이 다양한 전문가의 검토를 통해 개선되어 심혈을 기울여 제작된 미디어아트 컨텐츠도 제대로 즐길 수 있고 빛초롱 축제의 조형물도 공간과 주제에 조화롭길 바란다. 역사 위를 걷고 문화 곁에 쉴 수 있는, 과거와 현대를 연결하는 모두의 문화공간, 광화문 광장에 안성맞춤인 빛축제 였다는 소식이 들리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