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CA,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展
MMCA,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展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11.2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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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CA 과천관, 내년 5월 19일까지
단색화에 가려진 한국 기하학적 추상 조명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조명하는 전시가 개최된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과천관에서 내년 5월 19일까지 선보이는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전시다. 1920년대부터 1970년대에 국내에서 제작된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역사를 조망하는 자리다. 한국 대표 추상 미술가 47인의 작품 150여 점이 공개된다.

▲유영국, 〈산〉, 1970, 캔버스에 유채, 136.5×136.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사진=MMCA 제공)

기하학적 추상미술은 점과 선, 원과 사각형 등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형태, 원색의 색채, 화면의 평면성을 강조하는 회화의 한 경향이다. 서구에서는 몬드리안, 칸딘스키, 말레비치와 같은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각광받고, 20세기 내내 현대미술의 주요한 경향으로 여겨졌다.

국내에서도 기하학적 추상은 1920-30년대 근대기에 등장해 1960-70년대에는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등, 한국 미술사의 주요 변곡점마다 각기 다른 양상으로 존재해왔다. 하지만, 기하학적 추상미술은 장식적인 미술 혹은 한국적이지는 않은 추상으로 인식되며 앵포르멜이나 단색화와 같은 다른 추상미술의 경향에 비교해 주변적으로 여겨졌다.

이번 전시는 한국 미술계에서 소외된 주제였던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지닌 독자성을 밝히고 숨은 의미를 복원하면서,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기회를 마련해보고자 한다. 특히,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건축과 디자인 등 연관 분야와 접점을 형성하고, 당대 한국 사회의 변화와 연동되면서 한국 미술의 외연을 확장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 주목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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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송-유향〉, 1985, 캔버스에 유채, 130.5×97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MMCA 제공)

전시는 한국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시대별 주요 양상을 따라 5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 “새로움과 혁신, 근대의 감각”에서는 근대기에 미술과 디자인, 문학의 영역까지 확장된 기하학적 추상의 사례를 살펴본다. 1920, 30년대의 경성에서는 기하학적 추상이 새로움과 혁신을 상징하는 감각으로 인식됐다. 1930년대 김환기와 유영국의 최초의 한국 기하학적 회화 작품 〈론도〉(1938), 〈작품 1(L24-39.5)〉(1939)을 공개한다.

두 번째 “한국의 바우하우스를 꿈꾸며, 신조형파”에서는 바우하우스를 모델로 해 1957년 한국 최초로 결성된 화가, 건축가, 디자이너의 연합 그룹 ‘신조형파’의 활동상과 전시 출품작을 소개한다. 이들은 현대사회에 적합한 미술은 합리적인 기준과 질서를 바탕으로 제작된 기하학적 추상미술이라고 봤고, 이것을 산업 생산품에도 적용해 국가의 발전에 이바지 하고자 하는 이상을 보여줬다.

세 번째 “산과 달, 마음의 기하학”에서는 김환기, 유영국, 류경채, 이준 등 1세대 추상미술가들의 작품과 이기원, 전성우, 하인두 등 2세대 추상미술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한국적인 기하학적 추상의 특수성을 살펴볼 수 있는 섹션이다.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에서는 자연의 형태를 단순화하는 과정을 거쳐 추상을 제작하거나, 자연을 대하는 서정적인 감성을 부여한 작품들을 찾아볼 수 있다.

▲변영원, 〈합존 97번〉, 1969, 캔버스에 유채, 91×116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변영원, 〈합존 97번〉, 1969, 캔버스에 유채, 91×116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MMCA 제공)

네 번째 “기하학적 추상의 시대”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엽까지 기하학적 추상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된 양상을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본다. 먼저, 1967년에 개최된 《한국청년작가연립전》을 계기로 ‘청년 미술로서의 기하학적 추상’이 등장하게 된 상황을 소개한다. 이어서 ‘미술, 건축, 디자인의 삼차각설계도’에서는 당대의 미술가, 건축가, 디자이너들이 공통적으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서울의 현대성과 미래적인 국가의 면모를 재현하는데 적합한 미술로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상정한 상황을 소개한다. 최초로 공개되는 윤형근의 1960년대 기하학적 추상작 〈69-E8〉(1969)을 포함해 박서보, 하종현 등 한국 추상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기하학적 추상 시기의 작품을 선보인다.

‘우주시대의 조감도’에서는 1969년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면서 시작된 우주시대와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접점을 소개한다.

마지막 다섯 번째 섹션 “마름모-만화경”에서는 창작집단 다운라이트&오시선의 커미션 작품을 소개한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들이 지닌 마름모와 같은 반복적 패턴에 주목하고 이를 디지털 만화경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 그룹은 아티스트, 디자이너, 엔지니어로 구성되어 순수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탐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