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늦깎이 문인들이 쓰는 여행수필…산들문학회 《모노톤으로 그리는 풍경》
[신간]늦깎이 문인들이 쓰는 여행수필…산들문학회 《모노톤으로 그리는 풍경》
  • 김연신 기자
  • 승인 2023.12.12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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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문학회 다섯 번째 동인지
아홉 작가, 45편의 작품
▲산들문학회, 《모노톤으로 그리는 풍경》(말그릇출판/220p/14,000원)
▲산들문학회, 《모노톤으로 그리는 풍경》(말그릇출판/220p/14,000원)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늦깎이 문인들이 여행수필을 엮었다. 산들문학회(회장 황현탁)에서 다섯 번째 동인지 모노톤으로 그리는 풍경》(말그릇출판/220p/14,000원)을 출간했다. 

산들문학회는 2019년 발족했다. 회원들은 2017년 서울교육대학 평생교육원에 개설된 여행작가반 ‘늦깎이 학생들’로 시작해, 여행하며 느끼고 배운 것들을 글로 담아냈다. 지도교수인 문윤정 수필가의 지도 아래 지난 5년 간 10여명의 평균연령 65세의 학노(學老)들이 ‘문인’으로 등단했다. 매주 이뤄지는 합평은 냉철했고, 글 한 편마다 수십 번 소리 내어 읽어보며 고치는 과정을 거쳤다. 그렇게 해마다 12월에 동인지를 엮어, 어느덧 올해로 다섯 번째에 이르렀다. 

황현탁, 허혜연, 한미경, 피희순, 최계순, 이문숙, 오순진, 양문선, 김영석 총 아홉 작가의 다섯 편씩의 작품, 모두 45편이 수록됐다. 덕유산, 마이산, 대관령 삼양목장, 남이섬, 수연산방, 한라산 등 국내여행지부터 아이슬란드,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  루앙프라방까지 각지의 여행 기록을 담았다.

수필은 파편화된 기억을 이리 깁고 저리 기워 하나의 이야기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이다. 오래된 기억 혹은 파편화된 기억이 수필가의 손에 들어가면 갈변한 꽃잎도 생명을 얻고, 울음이 섞인 생(生)도 느린 가락을 입에 물게 된다. 산들문학회 회원들의 글솜씨가 이러하다는 것을 에둘러 말하고 있다.(p.4)_ 문윤정 지도교수의 〈축하의 말〉 중에서

축하글에서 문윤정 수필가는 “세월이 흘러도 문청(文靑)의 꿈을 잃지 않기를 발원한다.”고 말한다. 글쓰기가 ‘향연’이 되도록 열정과 성실이 변하지 않기를 소망하고 있다.

흑백의 오묘한 조화들은 과거로의 여행처럼 익숙하다. 흑백사진이나 흑백영화처럼 추억을 불러온다. 지난날의 사진은 흑백사진이 많다. 컬러사진이 발달한 지금도 흑백사진을 찍기도 한다. 컬러사진에서 볼 수 없는 깊이감이 있다. 예전 흑백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등이 굽은 친정엄마의 허리도 펴지고 갑작스럽게 떠나온 친구와 재회하는 마법 같은 시간낚시를 할 수 있다. (p.40)_본문 중에서

좁은 항아리에 담겨 돌아앉을 틈도 없는 유리 상자 속에서 열쇠 잠그는 딸깍 소리로 지난했던 삶을 끝낸다는 것이 허망하다. 이승의 삶은 넓은 공간이 허락되지 않은 삶이었지만 이제는 우주공간을 마음껏 유영하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기를 빌어본다.(p.154)_본문 중에서

나는 원초적 고독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은 있었지만, 때론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 속에서 불편함은 컸어도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고독을 통해서 나 자신을 새롭게 알게 된다면 나는 또 다른 삶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자기의 생각과 감정이 다르듯 고독은 각자의 몫이고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이다.(p.176)_본문 중에서

올가을도 성균관에 들어섰다. 은행나무는 사각형 철제와 수많은 인파 속에 갇혀있었다. 나무에 안겨 듬직한 허리를 만져보던 기억이 났다. 한 번 보듬어 안아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 나무도 아쉬운 듯 노란 잎을 날리며 나를 어루만진다.(p.215)_본문 중에서

《모노톤으로 그리는 풍경》은 문학향연을 향한 회원들의 열정의 산고(産苦)다.

▲산들문학회 회원들, 서울대학교 자하연 앞에서 찍은 사진 (사진=산들문학회)
▲산들문학회 회원들, 서울대학교 자하연 앞에서 찍은 사진 (사진=산들문학회)

《논어》 제15편 <위령공>편에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말하지 말아야 할 때 말하면 말을 잃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도 잃지 않고 말도 잃지 않는다.”(가여언이(可與言而) 불여지언(不與之言)이면 실인(失人)이요, 불가여언(不可與言)이여지언(而與之言)이면 실언(失言)이니, 지자(知者)는 불실인(不失人)이며 역불실언(亦不失言)이니라)라는 말처럼, 얼굴 붉히고 조면(阻面) 일보 직전까지 가는 것을 감수하고 생각을 밝히는 가운데 글 솜씨를 연마해 왔다.

외로운 노동이지만 자판을 두들기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책상머리에 앉아 써야만 글이 나온다. E.B.화이트는 "위대한 글쓰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지도교수와 문우들로부터 가차 없는 '합평'을 통해 수준을 높이고 몸에 배게 하는 것이다.

회원들은 '단조롭게, 한 색깔로'만 살 수 없었다. 5집의 제목처럼 '모노톤'으로 살기에는 여건이 우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세상 역시 우리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살아온 연륜은 세상에 생각을 거듭하도록 우리를 단련시켜 놓았다. 밝은 내일을 고대하지만 주변도 살펴야 하고, 매일 부닥치는 일들의 해법도 고민해야 한다. 모노톤을 지향하지만 닥치는 일상도 헤쳐나가야 한다. -황현탁 회장 <제 5집을 내며>중에서

황현탁 회장은 "때로는 쫓기는 삶이 수명을 길게 할 수도 있다"라며 "회원들이 ‘자신들의 저서'를 펴내는 날까지 글쓰기 작업이 계속될 것이다"라는 각오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