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Interview]국립극장 <세종의 노래> 작곡가 겸 지휘자 박범훈 인터뷰 “달빛처럼 어디에나 가닿는 음악을 꿈꾸며”
[Culture Interview]국립극장 <세종의 노래> 작곡가 겸 지휘자 박범훈 인터뷰 “달빛처럼 어디에나 가닿는 음악을 꿈꾸며”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3.12.14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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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남산 시대 시작 알린 박범훈ㆍ손진책ㆍ국수호 신작
“국립극장 3개 전속단체 및 민간 예술단체 참여, ‘사랑’과 ‘화합’ 전한다”
“다양한 창작 시도의 끝은 국악관현악, 내 DNA 잃지 말아야”
12.29~31,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ㆍ진보연 기자]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남산에 세종대왕의 노래가 울려퍼진다. 국립극장은 남산 이전 50주년을 기념해 <세종의 노래: 월인천강지곡>(이하 <세종의 노래>)을 송년 특별 공연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세종의 노래>는 567년 전 세종대왕이 직접 쓴 『월인천강지곡』을 바탕으로 한다. ‘마치 달이 천 개의 강에 비추는 것과 같다’라는 의미를 지닌 『월인천강지곡』은 세종이 먼저 떠난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한글로 지은 찬불가로, 석가모니의 전 생애를 담고 있다.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며 캐롤을 부르는 대부분의 송년 음악회와는 사뭇 다른 작품 선정이다. 크리스마스에 석가모니의 전 생애를 다루는 찬불가라니. 어색하고 낯선 조합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세종의 노래> 제작진은 종교적 의미가 아닌 ‘월인천강지곡’에 녹아든 군주로서의 외로움과 지아비로서의 지고지순한 순정, 한글이 만백성에게 전파되기를 바란 마음에 주목, ‘사랑’과 ‘화합’에 방점을 찍는다. 

▲박범훈 작곡가 겸 지휘자
▲박범훈 작곡가 겸 지휘자 ⓒ김연신 기자

작품의 작곡과 지휘를 맡은 박범훈은 2년에 걸쳐 작곡했던 미발표곡 ‘월인천강지곡’을 재구성해 <세종의 노래>에서 처음 선보인다. 그는 칸타타 ‘월인천강지곡’을 서곡과 8개 악장으로 구성했다. 기악 반주는 국악기 위주로 편성하되 부족한 소리는 서양 악기로 채워 풍성하게 만들었다. 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국악관현악단 3개 전속단체를 포함해 서양 오케스트라, 합창단까지 313명의 예술가가 함께 무대에 올라 화합과 협업의 정점을 보여줄 예정이다. 아울러, <세종의 노래>를 위해 작곡가 겸 지휘자 박범훈, 연출가 손진책, 안무가 국수호가 의기투합한다.

박범훈은 한국음악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명동 국립극장 시절 송범의 무용극 <사의 승무>(1976)를 작곡하여 무용 음악계에 데뷔한 후, 1987년 한국 최초의 민간 국악관현악단인 중앙관현악단을 창단했고, 1995년부터 5년간 국립국악관현악단 초대 단장을 역임했다. 1973년 국립극장 남산 이전 당시, 개관 기념 작품 중 하나인 국립무용단 <별의 전설>(1973, 안무 송범)에서 26세의 나이로 작곡을 맡아 공연계 안팎에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는 “코로나가 심했던 지난 2년, 박해진 시인과 연이 닿아 노랫말에 곡을 붙이는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지금까지 작업한 곡 중 가장 긴 시간을 고민한 작품이다. 원곡 자체가 백성들을 위해, 훈민정음이 많이 알려지도록 쓰인 곡이기에 쉽게 이해하고 부를 수 있는 곡으로 만들려 했다”라고 설명했다. 

국립극장의 남산 시대의 시작을 함께했던 신인 박범훈이, 지난 50년을 돌아보며 선보이는 무대는 어떤 모습일까. 천 개의 강물에 비추는 달빛처럼 사회 구석구석 우리 소리가 퍼지길 바란다는 그를 만나, 새롭게 선보이는 대형 칸타타 <세종의 노래>와 이를 이루는 그의 음악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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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남산 이전 50주년 기념 공연 <세종의 노래> 연습실 사진 ⓒ국립중앙극장

국립극장 남산 이전 50주년 기념으로 선보이는 공연 <세종의 노래>의 중심을 이루는 ‘월인천강지곡’은 완성되기까지 2년이란 시간이 걸린 만큼, 작품에 대한 애정도 남다를 것 같다.

지금까지 작업한 곡 중 가장 긴 시간을 고민한 작품이다. 2021년 여름, 박해진 시인과 인연이 되어 월인천강지곡의 노랫말 가사를 받게 됐다. 최세영 감독과 함께 이 작품을 다큐멘터리로 만들 생각이라며, 여기에 사용될 음악을 의뢰받은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월인천강지곡의 원어, 훈민정음을 풀어 만든 노랫말 가사에 21세기의 새로운 월인천강지곡을 만들어 보자는 논의를 이어갔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2년 후 탄생한 칸타타가 이번에 선보이는 ‘월인천강지곡’이다. 

칸타타 형식의 곡을 그동안 여러 개 써왔는데, 이 정도로 큰 작품은 아마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세종이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찬불가 ‘월인천강지곡’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지만, 국립극장에서 박범훈 작곡가의 수많은 작품 가운데 이 곡을 특별 공연 주제곡으로 선택했는지 의아한 면도 있다. 

처음엔 이 곡이 경복궁에서 연주되는 생각을 하며 작업했다. 하지만, 원체 스케일이 커서 예산도 많이 들고 현실적 어려움이 많더라. 만약 극장에서 이 작품을 올린다면 국립극장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국립극장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내 개인적인 친밀감도 있었지만, 세종대왕에 대한 얘기고 업적을 칭송하는 내용이니 나라를 대표하는 예술기관에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작업을 하다 보니 연출, 무대, 미술 등 종합적인 요소를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됐다. 소리를 들려주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공연을 만들고 싶었다. 이러한 작품의 의도가 국립극장에도 잘 전달되어 특별 공연으로 선보일 수 있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앞선 기자간담회에서 원작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색채가 지나치게 부각되지 않도록 작업 과정에서 신경을 썼다고 밝힌 바 있는데, 21세기 ‘월인천강지곡’은 세종의 것과 비교해 어떤 점이 같고 어떤 점이 다른가?

월인천강지곡은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에 곡을 붙여 백성들이 부를 수 있게 만든 성악곡이다. ‘여민락’을 비롯해 세종이 작곡한 곡들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으나, 아쉽게도 월인천강지곡은 가사만 일부 보존되어 있을 뿐 악보는 남아있지 않다. 21세기 월인천강지곡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이것이 작곡의 핵심이며 화두였다. 숙고한 결과 21세기에 살고 있는 나의 가락을 모체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내 몸에 스며있는 가락은 조상 대대로 전하는 우리의 정서가 스며들어 있어 그 가락의 DNA를 활용하기로 했다. 곡의 형식은 가사의 내용을 중심으로 소리를 엮어가는 칸타타 형식을 택했다. 

21세기의 소리는 다양하고 그 폭이 넓다. 하지만 온갖 음악 형식을 다 동원한다 해도 세종의 노랫말을 ‘이것이다’라고 결론 내리긴 어려울 것이다. 그저 우리 가락의 근본을 잃지 않되,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려 노력했다. 

▲국립극장 남산 이전 50주년 기념 공연 <세종의 노래> 무대디자인 이미지
▲국립극장 남산 이전 50주년 기념 공연 <세종의 노래> 무대 디자인 이미지 ⓒ국립중앙극장

이번 무대는 국립국악관현악단과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3개 예술단체와 더불어 서양 오케스트라, 합창단 등을 더해 300여 명이 출연하는 대규모 칸타타라 더욱 주목하게 되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칸타타는 지휘자, 교향악단, 합창단, 성악가 등이 출연하지만 이번 연주회는 악가무가 함께하는 종합적 성격을 띤 작품으로 확대 편성됐다. 손진책 연출가는 세종과 소헌왕후의 사랑의 노래를 통해 붓다의 일대기를 그려나가고자 했다. 작곡과 지휘를 맡은 입장에서 큰 부담을 느꼈으나, 연출의 의도대로 공연이 진행된다면 관객에게 볼거리와 감동을 제공할 수 있을 거로 기대한다. 

관현악은 국악관현악단이 중심을 이루되 부족한 부분은 서양악단이 함께 연주하도록 구성한 한양합주(韓洋合奏) 형식을 취했다. 이와 같은 악기편성의 이유는, 작품 내용상 다양한 극적 표현과 더불어 저음이 부족한 국악기의 소리를 보충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국악기 개량과 더불어 연주자들의 기량이 높아졌고, 서양악기 연주자들의 국악에 대한 인식과 관심 역시 커지면서 서로의 장점을 융합할 수 있는 연주가 가능해졌다. 선율악기로서는 해금을 도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의 악기가 협연하고, 대아쟁을 도와 콘트라베이스가 함께 연주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국악기와 브라스 악기의 어울림인데 6명의 브라스 연주자(호른2, 트럼펫2, 트럼본2)의 협연이다. 

음악계에선 초연 이후 사라지는 곡이 거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의 노력과 시간, 정성 그리고 자본이 들어간 이 무대가 1회성이 아닌 레퍼토리 형식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세종의 노래>가 공연되는 연말에는 주로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음악회가 무대에 오른다. 반면, 불교가 중심이 되는 공연은 거의 없다. 꼭 연말이 아니라도 부처의 일대기를 다루는 교성곡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다만, 불교적 소재를 다루는 ‘월인천강지곡’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너무 종교에 치우치지는 않으려 한다. 창작진이 주목한 것은 종교적 내용이 아닌 세종대왕의 사랑과 화합의 정신이다. (세종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대본과 악보에 고스란히 담으려 했다. 

많은 이들의 사랑과 화합을 최대치로 표현하려다 보니, 공연의 규모가 커진 것도 있다. 국립극장 3개 전속단체인 국립창극단ㆍ무용단ㆍ관현악단뿐만 아니라 민간 예술단체인 서양 오케스트라 랑코르 캄머 필하모닉이 참여해 동서양 악기의 조화를 만들어 내고, 메트합창단과 불음꽃 합창단, 슈리말라 합창단, 상월청년 합창단 등도 참여한다. 때문에 연말 공연 이후, 국립극장에서 동일한 규모와 구성으로 재공연 될 수 있을지 여부는 지금 확언하기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이렇게 크게는 못하더라도 구성을 달리하거나 일부만 선보이는 등 여러 방향으로 활용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국립극장 기획공연 <세종의 노래> 작곡과 지휘를 맡은 박범훈이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연신 기자
▲국립극장 기획공연 <세종의 노래> 작곡과 지휘를 맡은 박범훈이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연신 기자

1995년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그 역사를 함께 쓰고 있다. 초대 단장을 맡았을 때부터 레퍼토리 개발로 장르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왔는데, 전통성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음악을 찾는 길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은?

전통 국악이 전공 분야이지만, 그동안 폭을 넓혀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해왔다. <세종의 노래> 역시 그런 작품 중 하나다. 1987년 최초의 민간 국악관현악단인 중앙국악관현악단, 1993년 한·중·일 3개국의 민족음악 연주자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아시아, 1995년 국립국악관현악단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체를 거치며 다양한 국악관현악 작품들을 썼다. 오랜 기간 작업을 할수록 ‘국악관현악은 국악관현악다워야 한다’라는 걸로 귀결되는 것 같다. 

난 예전부터 제자들이 국악을 가지고 별 짓 다 하도록 그냥 내버려뒀다. 걱정을 안 하는 게, 연주되지 않는 곡은 결국 저절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베토벤이 사랑받는 이유와 일맥상통할 것이다. 많은 제자들이 “어떻게 가야하는지”를 묻는다. 50살이 넘어 대학 교수를 하고 있는 제자들과 만나도 질문의 화두는 항상 ‘방향성’이다. 이에 대한 내 대답은 항상 같다. 여러 가지 다양한 장르와 콜라보도 해보고, 새로운 맛을 내기 위한 시도를 하며 다양한 창조를 향해 가더라도 DNA는 네 걸로 가야한다는 것. 즉, 본질만은 잃지 않고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해야 한다. 

지난 10월에는 8개 악단이 참여한 ‘대한민국 국악관현악축제’가 처음 개최됐다. 축제의 추진위원장을 맡기도 했는데, 과거에 비해 국악관현악이 대중과 많이 가까워진 것을 체감하는지?

하나의 과정으로 본다. 과거에 비해 국악관현악단의 규모는 많이 커졌다. 서양 오케스트라 못지않게 국공립과 시립을 아우르며 국악관현악단이 있으니 말이다. 이제는 사회적 배경 속에서 어떻게 자리잡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노력을 하는 단계다. 월급 받는 단체에서 모든 예술가들을 수용하는 것은 무리다. 

일본의 경우, 수많은 전통악기가 있지만 NHK 외에 교향악단이 없다. 일본의 연주자들은 우리보다 3~4배가 많은데 전부 잘 산다. 월급을 받는 단체에서 활동하지 않는데도 사회가 받아주니 연주 활동 기회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중소기업에서 아침 회의 전에 연주를 듣고 시작하는 등 크고 작은 공연들이 정말 많다. 제도적으로는 어느 정도 갖춰졌고, 이제 사회가 받아줘야 한다. 연주자들이 사회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좋은 연주자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수많은 국악관현악단의 일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오히려 묶이는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어느 정도 제도적으로 자리 잡은 국악관현악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즐겨주신다면 연주자들과 단체들의 활동 영역 또한 더욱 넓어져 더 많은 연주 활동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2024년 새롭게 선보일 신작 계획이 있는지, 작업 중인 작품이 궁금하다.

지방에서 국악관현악 지휘를 해달라는 주문이 오고 해서 교육적 차원에서 몇 군데 갔는데, 내년에 부산시립관현악단이 40주년이라고 하더라. 그렇게 요청받은 작업들을 제외하고 큰 작품은 좀 쉬려고 한다. 대신, 당분간은 교육적 부분에 집중하게 될 것 같다. 현재 동국대 석좌교수로 있는데, 학생들이 아예 나를 지명해서 박사 쪽으로 들어와 버리니까 그걸 맡아줘야 하는 상황이 됐다. 

쉰다고 하셨지만 그러다가도 곡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떤 상황에서 곡이 잘 나오나?

작곡비를 많이 주고, 급하게 하면 잘 나온다.(웃음) 우스갯소리로 답한 것도 있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편한 상황에서 좋은 곡을 써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지금껏 개인 발표를 해본 적이 없다. 전부 주문에 의한 작업만 해와서 그런 것 같다. 

▲박범훈 작곡가 겸 지휘자 ⓒ김연신 기자

주문에 의한 작업이지만 어쨌든 본인의 작품이지 않나. 개인 작곡 발표회를 할 계획은 없는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데, 지금까지의 작업을 정리하는 작업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지금 문득 들었다. 나름 오랫동안 작곡을 해왔기 때문에, 교육적인 측면을 고려해서라도 시기별 음악적 특징이 드러나는 작업을 정리해보면 유의미한 기록이 되지 않을까 싶다. 국악과 서양음악 등의 흐름을 볼 수 있는 것은 기획해 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민간과 국립을 아우르며 우리나라 국악관현악단 외연 확장에 기여하고, 장르의 스펙트럼을 넓히며 대중화에도 힘써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치적 행보와 이것에서 비롯된 논란으로 인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다양한 일을 해온 만큼 공과 과가 공존하는 길을 걸어왔는데,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뛰어난 개인의 능력이나 자질 때문에 예술부터 행정까지 아우르며 이런 일 저런 일을 해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많은 일들이 해결되지 않고 많이 적체돼 있었고, 그걸 해결할 사람이 없었던 때에 누군가 했어야 할 일을 내가 했을 뿐이다. 그래서 내가 하면 다 ‘처음’이라는 말이 붙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로 보면, 문제를 해결하려는 집착이 강했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일들을 겪으면서도 내 컴퓨터 안에는 항상 작품이 들어있었다. 나의 전공을 놓지 않았다. 자리에 집착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주어진 일에 집착한 것이다. 지난 선택에 대한 후회와 반성은 있지만, 고통의 시간도 나를 이루는 어떤 것이 됐다고 생각한다. 어떤 존재로 기억되고 싶다기보다, 내 평생의 화두였던 ‘소리’를 어떻게 찾아서 만들고 공유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고민을 아직은 계속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