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국립창극단 심포지엄 ‘창극,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로’는 알찬 기획이었다. (12. 5. 국립극장 하늘) 창극과 국립창극단에 대해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돌아볼 기회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뜻깊다. 유은선예술감독이 좌장을 맡은 패널 토의에선, 주된 관심은 작창(作唱)이었다. 국립창극단은 창단(1962년)부터 주로 김연수(1907~1974)가 작창을 맡았다. 당시 이를 ‘창 지도’라 했다. ‘작창(作唱)’이란 용어를 처음 쓴 공연은 창작 창극 ‘광대가’(1979)로, 허규 극본에 김소희 작창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에 걸쳐서, 여러 명창이 작창에 참여했는데, 김소희와 정철호의 작창이 가장 성과가 있었다. 이런 흐름은 성창순과 안숙선에 이어졌다.
2000년대에 들어서, 국립창극단은 아쉽게도 새로운 인물에 의한 새로운 작창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반면 이 시기에 젊은 소리꾼을 중심으로 한 ‘타루’와 ‘바닥소리’가 참신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롭게 작창을 만들고자 힘을 기울였다. 현재는 ‘입과손스튜디오’의 창작작업과 작창작업에 주목하게 된다. 작창과 관련해선, 이자람은 늘 처음 거론된다. ‘사천가’(2007)부터 ‘노인과 바다’에 이르는 일련의 성과를 냈다. 그의 작창을 김연수와 비교할 수 있다. 연극성을 강조하면서, 전달력에 우선을 두는 방식이다. 국립창극단과 연관해서 이자람은 ‘코러스 판소리’라고 부를만한, 다성부에 의한 판소리적인 효과는 주목할만하다.
국립창극단에선 지난해 ‘작창가프로젝트’에 이어서, 올해의 작창가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갔다. (12. 8~9. 국립극장 하늘) 평론가의 입장에서 보는 작창의 아쉬움은, 현재 작창의 지향점을 ‘가사의 전달력’으로만 생각한다는 한계다. 작창에서 가사를 잘 전달하는 것은 필요조건일 순 있어도, 충분조건은 아니다. 이런 의식으로 만들어진 작창은 대중들에게 일단 빨리 어필할 순 있어도, 계속 듣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한 마디로 ‘액면(額面)은 있되, 이면(裏面)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연기적 박인혜, 율격적 장서윤, 성음적 김율희
작창에서 주목할 인물을 꼽으라면, 여성 작창가 3인을 꼽겠다. 박인혜는 경기소리 등 타 분야의 성악을 작창에 녹여내면서 판소리화(化)시킨다. 박인혜는 ‘소리로 연기를’ 할 줄 안다. 장서윤은 작창의 근본이 시(詩)라는 걸 새삼 일깨운다. 서정적인 노랫말을 잘 살릴 줄 안다. ‘소리로 시를’ 읽을 줄 안다. 율격(律格)의 측면에서 장서윤은 돋보인다. 김율희는 작창에선 ‘성음’이 살아있다. 전통판소리에 비해서, 창작판소리나 창극에서의 작창은 ‘귀명창’의 바람을 채울만한 깊이가 발견되는 경우가 드문데, 김율희의 작창에선 ‘소리로 감동을’ 받게 된다.
유태평양은 21세기적 전기수
유태평양은 참 현명하다. 작창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본–음악–연기의 셋의 이상적인 조화를 이룰 때 작창이 빛이 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지난해 작창가 프로젝트의 하나였던 ‘강릉서캐타령’을 통해서 그의 출중한 능력을 확인했다. 조선시대의 전기수(傳奇叟)와 같은 역할을 가장 잘 해낼 이 시대의 소리꾼이다. 하지만 아직 유태평양은 작창가로 본격적으로 나서지 않아서 말하기 조심스럽다.
한승석의 작창에는 이면이 있다!
현재 작창과 관련해서, 가장 큰 일을 해가는 인물은 한승석이다. 이번 국립창극단 심포지엄을 통해서, 작창가로서의 고뇌와 노하우를 동시에 알려주었다. ‘창극을 창극이게끔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창(唱)’임을 전제하면서, ‘작창을 판소리의 특정대목에 새로운 사설을 얹어 약간의 선율적 수정을 거치는 것’으로 여기는 일부의 시각에 경종을 울렸다.
작창은 궁극적으로 ‘극의 맥락과 흐름에 부합하면서도 음악적 아름다움을 지닌 소리를 얻기 위해서는 판소리의 모든 음악기법에 정통해야 함’을 한승석은 강조한다. 그는 ‘천년만세에서 새로운 시김새를 찾고 터벌림장단에서 새로운 붙임새를 찾는 등’ 작창가의 노력과 분투에 방점을 찍었다. 현재 활동하는 작창가 중에서 그래도 ‘이면’을 가장 느끼게 하는 작창가는 역시 한승석이다.
작창(作唱)과 편창(編唱)
현재의 작창은 어떤 돌파구가 필요하다. 지금의 작창은 대본의 가사와 연관된 ‘주된 선율’을 잘 만들고자 함에 치중한다. 여기서 그쳐선 안 된다. 창극에서는 한국적인 화성, 한국적인 대위를 만들어내야 한다. 작창에서 편창으로 가야한다. 작창이 ‘대본’이라면, 편창은 ‘각색’이다. 판소리 전공자가 만들어낸 ‘작창’을 가져와서, 이를 더 ‘입체적인’이고 ‘다층적인’ 소리로 만들어야 한다.
판소리와 창극은 본질적으로 장단의 의존도가 높다. 작창이 새롭게 성공해서 창극의 외연을 넓히려면, 장단의 선택폭을 넓혀야 한다. 곧 판소리에는 등장하지 않는 굿장단이나 민요장단을 가져온다거나, 아니면 아주 장단을 없는 형태로 작창을 하는 것이 좋은 방식이다. 이런 방식이 가능한 작창가는 한승석과 장서윤이 아닐까?
작창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무엇일까? 작사가와 작창가가 일치할 때, 소리의 이면은 탄생한다. 미국의 뮤지컬을 발전시킨 스티븐 손드하임 (Stephen Sondheim. 1930 ~ 2021)이 좋은 예다. 그는 한 작품에서 작곡, 작사, 편곡을 모두 도맡으면서, 음악적인 밀도를 높였다. 돌이켜보면, 판소리사에서 수많은 더늠을 만들어냈던 명창이 그러하다. 그들은 바로 작사가이자, 작창가였다. 작사와 작창을 동시에 해나갔다. 앞에서 거명한 작창가의 노력과 열정을 높이 사지만, 아직은 ‘21세기 작창의 기준이 될만한 작창가’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평론하는 사람의 솔직한 발언이다.